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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칼럼

지장보살 영험담 현대판(地藏菩薩 靈驗談 現代版)

by 예경 2017. 1. 16.

 

 

 

지장보살 영험담 현대판(地藏菩薩 靈驗談 現代版)

 


1. 날마다 좋은 날 - 승진, 지휘부대엔 무사고, 좋은 일만 생겨

 

귀의삼보하옵고, 먼저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대원본존 지장보살님의 원력과 가피력에 감사드리옵니다. 제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렇듯 편안하고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실로 부처님과 지장보살님의 가피력을 입었기 때문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 지난 삶을 되돌아보면, 전생의 업이 너무나 무거웠던지 92년 10월에 부친께서 운명을 달리하셨고, 설상가상으로 93년 2월에 어머니마저 세상을 등지셔서 졸지에 고아가 되었습니다. 갑자기 양친부모를 다 잃고 그야말로 의기소침하여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귀찮고 원망스러웠습니다.

 

이러한 때에 모처럼 가족과 함께 산을 찾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발길이 산 속의 절로 찾아 들었습니다. 산에는 어느 곳이나 절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모릅니다. 절에 드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지고, 고요한 법당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안정감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부처님께 삼배를 드리고 법당에 앉아 있다 온 뒤로 며칠 동안은 근무도 잘 되고 기분도 아주 좋았습니다.

 

그러던 중 부산에서 의정부 지역으로 근무처를 옮기게 되었고, 법당불사를 시작한 모부대로 보직되어 삼보에 본격적으로 귀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년동안 열심히 근무하는 한편 기도정진하였습니다. 그런데, 승진에 실패하였습니다. 전년도에 부모를 잃은 아픔에 이어 승진에서도 탈락되자 충격이 너무나 컸습니다.

 

'왜 나는 이렇게 지질이도 복이 없는 것일까.'라는 자괴감과 함께 부처님도 필요없다, 세상만사가 다 싫어 자포자기 상태가 되었습니다. 정말 그 때는 부처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승진에 실패하던 날 직접 부처님을 뵙고 원망하며 푸념하기 위해 법당을 찾아가던 중 우연히 서울 강동구 길동 대흥사의 주지이신 지족 스님을 만나뵙게 되었습니다.

 

스님을 모시고 법당으로 가서 제 형편을 소상히 말씀드렸습니다.

 

"부모님 돌아가신 뒤 군생활을 하면서 생전에 부모님을 잘 못모신 점이 마음에 늘 걸리고, 승진에 대한 욕심도 떨쳐버리기가 힘듭니다. 막상 승진에 실패하고 보니 부처님까지 원망스럽습니다."라는 제 말씀을 들은 스님께서는 조상천도와 함께 지장기도를 지극하게 해보라고 조언해주셨습니다.

 

스님 말씀을 들은 뒤 지극정성으로 조상천도재를 올렸고, 가족과 함께 경기도 벽제의 보광사에서 2100일 지장기도를 입재하고 날마다 지장기도에 열중하였습니다. 그런데 천도재를 지내고 지장기도를 올리면서 정말 신기한 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어두웠던 제 표정이 밝아지고, 가족들 모두가 밝아지고, 어렵게 맡았던 보직이 쉽게 풀리기 시작하면서 주위의 저를 경계하던 분들이 오히려 저를 생각해주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과거에 상관으로 모시던 분이 저를 적극 도와주었고, 동기생들 역시 무척이나 저를 생각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호택 스님과 인연이 되어 제가 부임한 부대에 법당불사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 해 제가 그토록 바라던 승진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승진이후 지장보살님이 계시는 철원 심원사 인근의 군부대로 곧바로 보직이 결정되어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부임이후 특별한 일이 없는 날은 매일 아침 심원사를 찾아 지장보살님께 지장기도를 드렸는 바 심원사 영도 스님께서 2천만원을 보시하셔서 당시 근무처 부대의 신병교육대에 법당불사를 추진케 된 것을 비롯하여 제 부대의 모든 사고를 미리 막아주신 것도 지장보살님의 가피력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차가 언덕에서 굴러떨어졌지만 차도 그대로고 운전병 역시 하나도 안 다쳤고, 브레이크 고장으로 차가 논두렁으로 굴러야 할 상황임에도 거짓말처럼 낮은 지역으로 가서 논 옆에 서고, 황산이 병사의 눈 부위로 튀었지만 실명되지 않고 무사한 것 등 지장보살님의 가피력으로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휴가갔던 병사가 위기에 처해있는 여자를 구하고, 제대를 앞둔 병사가 전역휴가를 반납하면서 훈련에 참가하여 부대를 빛낸 공으로 신문에 보도되는 등 제가 지휘하는 부대에는 항상 즐거운 일만 발생하고 좋은 일만 생깁니다.

 

이밖에도 가피입은 이야기들이 많지만 지면관계상 이만 줄이고 신행생활에 대해 몇 말씀 덧붙이고자 합니다.

 

첫 번째, 우리 인간은 욕심이 너무 많아서 기도하며 소원을 빌었을 때 금방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만일 소원성취가 되지않으면 쉽게 기도를 포기하는데 절대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수없는 겁동안 쌓아온 전생의 업을 생각해 볼 때 약간의 기도만 가지고 어찌 그 두터운 업장을 다 녹일 수 있겠습니가? 전생에 진 빚이 얼마인가? 이것부터 갚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빚도 갚지 못한 상태에서 저축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인지라 전생의 빚을 갚기 위해 좋은 일(보시)을 많이 하고, 업장소멸을 위한 기도를 해야한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은행에 돈을 저축하지 않고 돈이 필요하여 은행에 간다 한 들 누가 주겠습니까? 무엇보다 보시와 기도의 생활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지극한 정성으로 지장기도를 올리는 동시에 조상천도를 반드시 해야합니다. 제 경험으로 비추어 부처님과 지장보살님의 가피와 아울러 조상님들이 잘 보살펴주셨기때문에 오늘의 제가 있고, 조상의 은덕으로 만사가 형통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세 번째, 부부가 서로 존경하며 같이 기도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지장보살님같이 공경하고, 아내는 남편을 지장보살님같이 공경하며 서로 존중하는 가운데 기도를 하면 그 효험이 배가됩니다. 남편은 흥청망청 사는데 부인이 맘낮 기도를 해도 효험이 적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 제 경험에 비추어 보시를 할 때 아끼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시하는 마음은 남에게 줄 수 있다는 행복한 마음이며, 보시한 것이 유용하게 쓰여지기 때문에 보시야말로 좋은 업을 쌓는 일이며, 업장소멸의 길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실로 보시하는 데 주저하지말아야 합니다. 보시라는 큰투자를 하지않고 인색하게 살면서 큰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것입니다. 열심히 보시하면 하는 만큼 그 과보는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매일매일 시간날 때마다 하는 것이 바로 감사의 기도입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지장보살님 감사합니다. 화엄성중님 감사합니다. 호법신장님 감사합니다. 조상님 감사합니다. 아내님 감사합니다. 자식님 감사합니다. 상관님 감사합니다. 부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합니다. 모든 사물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감사의 기도를 마치고 나면 정말 하루하루가 즐겁고 매사 하는 일이 잘 풀리게 됩니다. 백천만겁에도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만나고, "모든 중생 다 구해 지옥이 텅 비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는 큰 원력을 세우신 지장보살님을 만나 불가사의한 가피를 입고, 더 나아가 날마다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부처님과 지장보살님의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기위해 제 이야기를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제 삶의 변화를 보고 많은 분들이 불법을 배우고 지장기도를 올리면서 감사의 생활을 한다면 이 세상이 살기좋은 극락정토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다시 한 번 이 글을 쓰도록 가피 내려주신 부처님, 지장보살님, 조상님과 불법으로 잘 이끌어주신 심원사 영도스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면서 글을 마칩니다.


이 글을 쓴 사공유님은 철원 심원사, 파주 보광사, 서울 강동구 길동의 대흥사에서 신심을 기른 분으로 현재 육군본부에 근무 중이며, 육군본부 호국사 불자이다.


출처: 지장보살영험록 김 종매외 불광출판부

 

 

2. 태아의 죽음과 해원(解寃)

 

불교를 깊이 신봉하는 한 쌍의 젊은 부부가 있는데, 신자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행복한 불자가정을 이루었다. 결혼 후 두 사람의 생활은 즐거움이 충만하였으며, 계를 지키고 독경하며 수행에 정진하였다.

 

아내인 종홍(鍾紅)보다 일찍 결혼한 몇 명의 여자친구들은 『지장경』과 「관세음보살보문품」을 꾸준히 염송하며, 아울러 가족들에게 살생하여 보신하는 것을 금하였기 때문에 다들 예쁘고 귀여운 아기를 낳았다. 이들 아기의 공통된 특징은 키우는 과정에서 영리하고 잘 웃으며, 거의 울지 않으며 병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들 부부도 아기를 임신한 후 아기를 위하여 『지장경』을 염송하면서 선근이 깊은 아기를 낳게 되기를 기원하였다.

 

임신 기간 내내 아내는 입덧이 매우 심했다. 메스껍고 구토하며, 몸이 붓고 좌골신경통이 생겼고, 음식 맛도 모르겠고 밤에 잠도 편히 못 자고 하면서 처음으로 엄마가 되는 고통을 다 맛보았다. 하지만 낳기 전에 마지막 임신검사까지 줄곧 태아는 모든 게 정상이어서 위안을 받았다.

 

출산 예정일은 정월 초하루, 이것은 더욱 전 가족을 기쁘게 하였다. 납월 30일 집집마다 모두 모여 설 떡을 먹고 폭죽소리가 대지에 울려 퍼졌다. 아내의 뱃속 아기도 특별히 힘을 주며 발로 찼다. 시어머니가 “이 아기는 아마 마음이 급한가 보다. 빨리 나와 폭죽을 터뜨리고 싶은가봐.”라고 말하자 모두 웃음꽃이 피었다.

 

그러나 세상일은 무상한가 보다. 아이는 태어날 때 ‘탯줄이 목을 감아’ 죽은 것이다. 죽은 때가 설 하루 전날 저녁이었다. 태아가 움직인 후 온 가족이 행복의 동경 속에 빠져있을 때 죽은 것이다. 아기가 죽었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그들 부부의 곤혹과 고통은 물론이고, 나도 그 소식을 듣고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 부부의 일 때문에 나는 그 해의 설날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해산하는 방문 앞을 지키고 있던 아빠 맹위(孟偉)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엄마는 아들의 체온을 영원히 느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몸부림쳤다.

 

나는 무슨 말로 위로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왜 하늘은 이렇게 경건하고 정성스러운 불제자에게 이와 같은 횡액을 만나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일은 그들이 불교를 믿지 않는 부모와 친척들에게 ‘불교를 믿는 것은 미신이다’라는 구실까지 주게 되었고, 크게 보면 그들 부부의 도심(道心)을 잃게 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 때문에 나는 묘법 노스님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스님은 이 소식을 듣고 결코 애석해하는 반마디의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직설적으로 “좋아, 잘 됐어!” 하고 말하셨다. 예상을 벗어난 말씀이셨다. 아울러 맹위의 할아버지가 도살장의 백정을 하면서 많은 돼지를 죽인 적이 없느냐고 알아보라고 하셨다. 스님은 또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번에 태에 든 신식은 특별히 빚을 받으러 온 원수이다. 따라서 그가 태에 들면서부터 산모를 괴롭히며 가족들에게 편안한 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 부부가 성심으로 염불하며 아침, 저녁으로 예불을 지속하자 그 태아는 점점 불법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특히 『지장경』은 그를 대신하여 숙세의 업장을 없애게 하였으며, 그로 하여금 진실한 이익을 얻게 하였다. 맹위의 할아버지에 대한 원한을 소멸하면서 다시는 자손들에게 보복하기를 원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 왜 출산 때 죽었느냐? 그것은 첫째 모자의 인연이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둘째 그가 경법(經法) 듣기를 좋아하였기 때문에 최후까지 머물다가 간 것이다. 그는 지금 이미 천계(天界)로 수행하러 올라갔으며, 다시는 인간세계에 와서 원수를 찾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들 부부가 불경을 염송하지 않았더라면 그 아이는 반드시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 집안에 태어나서 성장함에 따라 그들 가족에게 많은 고통을 주면서 최후에는 그 애의 손에 패가망신하게 될 운명이었다. 따라서 아이의 죽음은 겉으로 보기에는 큰 재앙이나 사실은 화(禍)로 인하여 복을 얻은 셈이다. 그러니 기쁘고 축하할 일이지.”

 

나는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난 후 깜짝 놀랐다. 즉시 비통에 빠져있는 아기 아빠에게 사실을 확인해 보았다. 알고 보니 확실히 그런 일이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살아계실 때 정말로 돼지 잡는 일을 하였으며, 죽기 전 이상한 병에 걸려 죽었다고 한다. 가족들이 할아버지를 묶어 놓지 않으면 쉬지 않고 주먹으로 두드렸으며, 그래야 그의 몸이 편안해졌다. 그분은 죽을 때 매우 고통스러워하였으며 또한 보기에도 흉측스러웠단다(이 일은 아직까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야기한 적이 없으며, 이 일 또한 그로 하여금 불교를 열심히 공부하게 한 원인이기도 하단다).

 

그분의 몇몇 자녀도 모두 병으로 고생하였다. 맹위의 부친은 허리디스크에 걸려 고생했으며, 큰아버지는 반신불수가 되어 누워서 10년을 지냈다고 한다. 맹위의 대에 이르러 그의 형은 사십도 못 되어 정신이 이상하여 하루종일 이것저것 의심하고 다른 사람이 뒤에서 그를 욕한다고 생각하여 직장에 출근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맹위와 그의 누나는 앞뒤로 척추디스크를 앓았으며, 누나는 수술을 해도 완치되지 않았다.

 

묘법 노스님은 또 말씀하시기를 “만약 맹위가 불법을 배우며 채식을 하고 불력(佛力)의 가피에 의지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결혼하면 안 되며, 설령 결혼하더라도 자식이 없을 운명이다. 왜냐하면 그의 집안은 살생의 업이 매우 중하여 후대 자손들이 몰락하고 병이 많을 것으로 정해졌다.”

 

스님의 법어는 마치 한바탕 때맞춰 내리는 단비와 같이 여러 사람의 마음에 삿된 불을 껐으며, 모든 사람의 의혹을 해소하였다. 더욱이 맹위와 종홍 부부는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었으며, 부부는 지금 더욱 용맹 정진하고 있다. 나는 그들 부부의 노력이 헛되지 않고 제불 보살께서 그들을 가호하여 빠른 시일 내에 귀한 자식을 낳게 될 것이라 믿는다.

 

출처: 오대산 노스님의 인과이야기 (불광출판부)

불자모임광장 일행님글


 

3. 지장기도로 깨달음을 이룬 큰외삼촌 (일타스님 글)

 

우리 집안 41인의 승려 중 가장 먼저 출가한 분은 나의 큰외삼촌인 김학남(金學南, 1902∼1955)으로 나의 어머니인 성호 비구니의 바로 밑 동생입니다. 큰외삼촌은 할머니 평등월 보살의 기이한 입적을 접하고 열심히 절에 다니다가, 23세의 나이로 1924년에 출가하였습니다. 처음 만공(滿空) 스님을 찾아가 머리를 깎아줄 것을 청하자, 만공스님은 사형 혜월(慧月) 스님의 제자가 될 것을 권했습니다.


"나의 사형 중에는 혜월이라는 천진도인(天眞道人)이 한 분 계시지. 혜월 사형은 너무 천진무구하여 남의 스승이 된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 만약 내가 주선하지 않는다면 사형은 평생 제자를 못 들일거야. 네가 그분의 첫 번째 제자가 되어 봄이 어떠하냐?"


큰외삼촌은 만공스님의 권유대로 혜월스님의 제자가 되어 법안(法眼)이라는 법명을 받았습니다. 그 뒤 큰외삼촌 법안스님은 오대산·금강산·천성산·지리산 등에서 후학들을 지도하는 이름 있는 고승들을 찾아다니며 열심히 참선정진을 하였습니다. 오직 바루 하나, 누더기 한 벌로 살면서 선방에만 다녔습니다.

 

유유자적(悠悠自適), 법안 스님은 그 어떠한 것에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어느 때는 무애(無碍)의 행을 거침없이 하였고, 어느 때는 시를 지으며 스스로의 경지를 점검하였습니다.

 

일천 봉우리 위의 한 칸 집이여 반 칸은 노승이 반 칸은 구름이 차지했구나 어느 때 서쪽 바람 불어 구름이 날아가면 하나뿐인 창으로 밝은 달이 서로 찾아와 비추네

千峰頂上一間屋 半間老僧半間雲 有時西風雲飛去 一窓明月來相照

 

이것은 스님이 금강산 토굴에서 지은 시입니다. 이렇게 10여 년을 참선정진하며 지내던 법안스님은 35세가 넘자 해인사 백련암으로 들어와, 영구천(靈龜泉)이라는 조그마한 샘을 파고 깨달음에 이를 때까지 지장기도를 하리라 다짐 했습니다. 스님은 단순히 입으로만 지장보살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지장보살과 하나가 되도록 마음을 모으고자 했습니다. 처음에는 2시간씩 네 차례, 하루 8시간의 기도를 시작하였으나, 날이 갈수록 기도 시간은 길어졌습니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5년이 경과하자 삼매(三昧) 속에 빠져들어 3,4일을 밥도 먹지 않고 대소변도 보지 않고, 마냥 서서 목탁을 두드리며 지장보살을 부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대중스님들은 "법안스님이 저토록 기도삼매에 자주 드는 것을 보니 머지 않아 깨달음을 이를 것이다."라고 하면서 칭송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9년이 되었을 때, 법안스님은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끼고 법당을 뛰쳐나오며 외쳤습니다.


"허공골(虛空骨)을 보았다! 허공의 뼈를 보았다!"


그리고는 짧은 오도송(悟道頌)을 지었습니다.


허공골 중의 유상 무상이여 상 속에는 부처가 없고 부처 속에는 상이 없다

虛空骨中 有相無相 相中無佛 佛中無相


그 때 백련암 스님들은 당시 법안스님의 기도성취를 축하하면서 '영구천구년지장기도기념비(靈龜泉九年地藏祈禱紀念碑)'를 세웠는데, 그 비석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지장기도를 통하여 한 경지를 이룬 큰외삼촌 법안스님은 걸림 없는 법문으로 대중들을 교화하면서 더욱 자재롭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1955년 가을, 홀연히 서울 도선사 석불 뒤의 바위 위에 앉아 아무도 모르게 입적하셨습니다.


이처럼 삼매를 이룬 기도는 오도(悟道)와 직결됩니다. 깨달음의 원(願)을 세우고 불보살과 하나가 되면 능히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삼매(三昧)! 부디 삼매를 이를 때까지 좌우를 돌아보지 말고 부지런히 기도하십시오. 반드시 '나'의 불성(佛性)이 발현되어 우리를 해탈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출처: 일타스님 기도성취영험담 모음집 祈禱(기도) (도서출판 효림刊)


 

4. 지장경의 힘 - 황 전

 


오래 전에 있었던 이야기 입니다. 말단 공무원 생활을 10년 가까이 하다가 어쩔 수 없는 보증을 서 주다보니, 빈손으로 공무원 생활을 청산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아는 사람이 말하기를

“우리 친정집이 여수 한산사 절 밑에 있는데, 아마 방 하나 정도는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일요일 날 등산복 차림으로 그 집을 찾아갔습니다. “실례합니다.” 하고 대문을 들어서니 60대 할머니가 마루에 앉아 있다가 나를 보더니 “스님께서 무슨 일로...” 하시면서 합장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처음으로 받아본 합장이라 어떻게 답할 줄도 모르고 인사를 하면서 말했습니다.

 

“할머니 저는 스님이 아닙니다.”

“그러고 보니, 스님이 아니네. 거사님이 대문을 막 들어오는데 내 눈에는 스님으로 보였습니다.”

 

나는 할머니라 눈이 좋지 않아서 그러려니 생각하였습니다.

 

“할머니, 방을 하나 얻을 수 있습니까?”

“방? 방이야 있지, 그런데 거사님은 불교를 믿나?”

“아닙니다. 저는 불교를 믿지 않습니다.”

“우리 집은 불교를 믿지 않는 사람은 방을 내 주지 않아! 거사님이 앞으로 불교를 믿는다면 방을 내주지.”

“그러세요?

 

저는 아직 불교가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할머니, 믿고 안 믿고는 나중 일이고, 방을 하나 주실 것인지 안 주실 것인지 결정을 하십시오. 할머니, 이 동네 약수가 좋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그 약수터가 어디 쯤 있습니까?”

“약수터? 저 쪽에 있지.”

“할머니, 그러시면 제가 약수터에 갔다 오겠습니다. 그때까지 방을 줄 것인가 주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십시오.”

 

그렇게 말하고 나는 약수터에 가서 시원한 약수를 마시고 다시 돌아왔는데, 놀랍게도 할머니가 방을 공짜로 내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나중에야 그 이유를 할머니의 시집간 딸이 와서 내게 말을 해 주었습니다. 내게 방을 공짜로 내 준 이유는, 내가 약수터를 가고 있는데 제대로 가는지 할머니가 담장 너머로 보는 순간, 갑자기 어지럼증이 생기면서 내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였다는 것입니다.


나는 분명 약수터로 가고 있었지만, 또 하나의 내가 밭 한 가운데에 결과부좌를 하고 합장을 하는데, 하늘에서 일곱 빛깔 무지개 같은 빛이 내 머리위로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보고 방을 내 주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집 옆에는 이백여 평의 밭에 농사를 짓고 밭 주변으로는 개집을 여러 채 지어 놓고 개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이 집에서 그런대로 살기는 좋은데 많은 개들 때문에 냄새가 나고 시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돈이 없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10여일 후 방 계약 날짜에 이사를 와 보니 개집 앞에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습니다. 다가가보니 개장에 있던 7,8마리의 개들이 다 죽어 있었습니다. 어제 저녁 밥을 줄때 까지만 해도 그렇게 건강하던 개들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죽어 있다며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동네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개들이 죽은 것은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내가 이 집에서 불교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량을 청소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 집으로 이사 온지가 몇 달이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무엇을 하든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집에서 약 500미터 거리에 한산사가 있었지만 절에 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 때 까지만 해도 절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할머니의 딸이 친정에 왔다가 나를 보더니 지장경 한 권을 건네주면서 심심하면 읽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별 흥미가 없었지만 주는 성의를 봐서 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몇 장 넘겨보니 꼭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이야기가 적혀진 책 같아서 도로 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지장경을 내 눈에 잘 띄는 마루 선반위에 올려놓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 놓아두겠습니다. 심심하면 언제든지 읽어보세요?”

“알았습니다.”

 

나는 마지못해 그렇게 대답을 하고 다른 일에 몰두하다가 피곤해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꿈을 꾸었는데, 나는 난생 처음으로 우리 할머니와 그 밖의 조상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장경을 아무런 성의도 없이 그냥 몇 장을 넘겼을 뿐인데. 나는 순간적으로 그 책이 보통 책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지장경을 가지고 방에 들어가 손 가는대로 책장을 펴서 읽어보는데,


아니, 세상에 이럴 수가! 내 이야기가 거기에 적혀 있지 않겠습니까?

 

‘지장경 12품: 만약 미래세에 어떤 남자나 여인이 혹은 젖먹이 때나, 혹은 세 살, 다섯 살, 열 살 아래에 부모나 형제자매를 잃고서, 그 사람이 장성한 뒤에 부모나 권속들을 생각하고 그리워함에 어느 곳에 떨어졌는지, 어느 세계에 태어났는지, 어느 천상에 났는지 모르거든, 이 사람이 만약 정성껏 지장경을 3번 내지 일곱 번을 읽으면 알 수 있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나는 걷잡을 수 없는 뜨거운 눈물이 온 몸을 적실 정도로 울었습니다. 고아들은 세상에서 잊혀진 사람들이며 창살 없는 감옥에서 일평생을 살아가야만 하는데, 그런 고아들을 생각하고 그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분들이 계신다는 생각에 울고 또 울었던 것입니다.

 

나는 그날 밤부터 잠들기 전에 지장경 첫 장에 그려져 있는 지장보살님께 삼배를 올리고 지장경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 지장경을 읽기 시작하면 잠부터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잠과 씨름을 하면서 읽고 또 읽었는데 일주일만에 겨우 한권 읽는 꼴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21일 만에 3독을 마쳤습니다.

 

그날 밤 꿈에, 내가 천상에서 어린동자의 몸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은 지옥 구경을 했습니다. 그 다음날 꿈에서는 연분홍색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나의 어머님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아버지가 어디에 계시는지 알고 싶어서 21일 만에 또 3독을 하고 나니, 그 날 밤 꿈에 나는 또 아버지가 계신 곳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몇 개의 지옥을 구경하고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 보다 더 놀라운 것은 책을 건네준 할머니 따님이 오후에 찾아와서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장경을 다 보셨지요?”

“그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어제 밤에 꿈속에서 아저씨와 아저씨 부모님을 보았습니다. 지장보살님께서 벼루에 먹을 한동안 가시더니 갑자기 맑은 물로 그 먹물을 짝! 씻어내 버리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됐다.’ 그러시는 겁니다. 거기까지 보고나서 꿈을 깼거든요.”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곧바로 절에 올라가 지장보살님께 삼배를 올렸습니다.

 

출처: 황전스님 오도선방카페

 

 

5. 벼랑끝에서... 지장보살님 가피를...


저희 남편은 사진작가입니다. 그런데 2년전부터 차츰 눈이 안보여 결국엔 한쪽 눈을 실명 하게 되었고 나머지 한쪽도 거의 안보이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2년동안 모든 병원을 돌아다니며 진료를 받아보았지만 병명조차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 다 심원사 스님을 찾아 뵙고 상담을 하게 되었고 2003년 1월 31일날 천도재와 구병시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재를 지내고 나서 스님이 병원에 가봐라 하시기에 그 다음날 남편과 병원 을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뇌사진(MRI촬영)을 여러번 찍었어도 한 번도 보이지 않던 뇌종양이 크게 보이더군요. 선천성 뇌종양이라는 의사말이 1월 중순사진에는 안보이고 2월 초에 찍은 사진에는 보이다니...

 

의학적으로 이런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말하더군요. 이제 뇌종양이라는 병명은 받았지만 의사선생님 말씀이 날벼락처럼 느껴지더군요. 수술을 해야하느데 수술하다 죽을확률이 60%, 다시 회생활 확률이 40%정도밖에 안된다고 하더군요. 또 수술이 성공한다 해도 종양의 반 밖에는 제거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였지요. 또 수술을 하지 않으면 1년정도 밖에 살수가 없다 고 하더군요. 의사선생님의 말씀이 수술을 하고 싶으면 내일 아침이라고 빨리 하자고 하더 군요.

 

저는 수술을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고 남편자신도 결정을 못하였습 니다. 그래서 또 심원사 스님께 전화를 해 어떻게 해야할지 여쭈어 보았습니다. 스님말씀이 잠깐 기다리라며 오늘밤에 스님이 위패만모시고 구병시식을 하고 전화를 주겠다고... 저는 초조한 마음에 안절부절하고 있었는데 밤 9시경에 스님이 전화 주셔서 구병시식이 잘 되었으니 수술을 하라고 하시기에 스님을 믿고 수술서류에 사인을 하였습니다.

 

남편에게도 그대로 말하였더니 남편도 "나 맘편하게 수술실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수술실에 들어가던 남편이 갑자기 "나 보인다. 글씨가 보인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 다. 한쪽밖에 안 남은 눈이 거의 보이지 않고 있었는데 참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수술은 성 공적으로 끝나고 남편은 살아서 저의 곁에 왔고 또 반밖에 제거할 수 없다는 종양은 완전히 제거되었습니다.

 

이제 저의 남편은 자기 수명대로 잘 살 수 있게 되었고, 저는 지장보살님의 가피에 어떻게 보답하나 싶어 스님과 상의하여 저희 남편의 작품을 보시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심원사 공양간에 걸려있는 대형 연꽃사진이 저희 남편의 작품입니다. 지장보살님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심원사 스님들께도 이글을 통해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6. 지장보살님의 무한한 가피에 두손모아 감사드립니다

 

지난 2001년 아들이 1차, 2차, 3차 부도에 이어 4차 부도까지 나서 총 부도액만 몇십억원이 되었습니다. 부도를 막을 길이 없어 제가 소유하고 있던 부동산을 은행에 저당 잡히게 되었 지요. 그러나 부도액을 전부 막을 수가 없어서 대지 400여평 되는 살고 있던 집마저도 모두 다 날려 버리게 되었습니다. 은행에서 근저당 가압류가 들어와서 처분하게 되는 고비를 맞 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등법원, 대법원까지 소송이 계류된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저는 마음을 둘 곳이 없던 차에 혜성한의원 한보살님의 소개로 심원사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 날이 바로 2003년 1월 17일, 제가 처음으로 지장보살님을 뵙게 된 날이었지요. 심원사 스님과 상담후에 심원사에서 거주하며 기도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아침에 도량소리와 함께 기상하여 촛불을 켜고 다기물을 올리며 새벽예불도 반드시 참석하였고 시간이 나는 대로 심원사 절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아침에 도량을 쓸고 공양간을 도와주며 시간이 나는대로 제 한몸 아끼지 않고 보시를 한 것이지요. 이 곳 철원은 눈도 많이 내리는 곳이라서 어느날은 10여시간동안 눈을 치운적도 있습니다.

 

그래도 몸살한번도 걸리지 않는 것은 다 지장보살님이 저를 지켜주시기 때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렇게 생각을 하고 매일매일 노동보시를 하게 된 것이지요. 그러길 40 여일이 지난 어느 날 저는 재판에서 승소하였다는 기쁜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빚을 청산할 수 있었고 약간의 재산도 되찾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편안한 마음으로 노후를 맞이 할 수가 있게 되었지요. 지장보살님의 가피력에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도 계속하여 심원사 지장보살님을 찾을 계획입니다. 여러 신도님들도 절실한 마음으로 기도하신다면 저처럼 지장보살님의 가피를 입을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성불하십시오.

 

 

7. 지장보살님의 너무나 크신 가피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저는 5남매의 어머니입니다. 저의 남편은 5년전 뺑소니 교통사고로 사망하였고 장남은 대학1학년부터 영가장애로 아프기 시작하여 대학교도 중퇴하였습니다. 저는 장남의 병을 고쳐보고자 14년동안 천도재, 굿, 만신 등 안찾아 가본 곳이 없을정도로 돌아다니며 일년 평균 2,000만원이상의 재산을 탕진하였으나 아들은 점점 더 심해만 갔습니다. 생활도 궁핍해지고, 사는게 사는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안정자보살님 소개로 심원사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심원사스님과 상담하고 천도재 및 구병시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장남은 정 신병원에 입원을 고려하고 있었으나 구병시식 후 많은 차도를 보여 지금은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 정도로 좋아졌습니다. 십 수년간의 마음고생이 한순간에 날아가는 기쁨이었습니다.

저의 업장이 두터운지 2002년 12월에는 손주가 교통사고가 나서 식물인간이 되었습니다. 의식을 잃은지 17일째 저는 또다시 스님을 찾아와 상담하고 천도재를 하였습니다. 천도재를 지내고 이틀만에 손주는 기적처럼 의식이 들어왔고, 지금은 정상적인 생활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작은 아들은 대학졸업반입니다. 취직시험때 필기시험 성적은 좋은데 면접만 보면 떨어 져서 스님께 기도를 부탁한지 3일만에 한진중공업이라는 대기업에 합격하였습니다. 저는 짧은 기간안에 지장보살님의 너무나 큰 가피를 받았습니다. 지장보살님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또 저를 지장보살님에게 인도해주신 안정자보살님과 저를 위해 기도해주신 심원사 스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미약하나마 이글을 통해 올립니다.

 

나무지장보살마하살

 

출처: 지장도량 심원사(www.simwonsa.or.kr)

 

8. 보살님, 오늘은 3천배를 해보시지요.

 

부천에 사는 자비심(가명)보살은 가끔 고창 선운사 도솔암을 찾아 기도를 드리곤 했는데, 그날따라 내원궁에서 같이 기도하던 스님이 밑도 끝도 없이 3천배를 권하자 의아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스님이 하시는 말씀이라 손해볼 것 없다는 생각에 10시간에 걸쳐 비지땀을 흘리면서 3천 배를 마쳤다.

 

그 다음 날 부천으로 돌아간 보살은 주차장에 남편의 자가용이 없는 모습을 보고는 남편이 외출했나싶어 열쇠를 꺼내들었다. 그러나, 집의 문은 열려있었다. 혹시 도둑이 들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보살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웬걸? 남편이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다가 반갑게 아내를 맞는 것이었다.

 

"여보,여보. 나 정말 큰일 날 뻔했어.죽지않은게 정말 믿기지 않아."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있던 보살은 남편의 말을 듣자 등골에 식은 땀이 흘렀다. 그러니까 어제 남편이 자가용을 몰고 나갔는데 아마 속도를 좀 냈던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전봇대와 충돌해서 차가 전복되어 폐차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남편은 털끝하나 다친 곳이 없었다고 한다. 사건현장 주변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하나같이 기적이 아닐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자비심보살은 그 모든 게 도솔암 내원궁에서 3천배를 드린 덕분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아, 그 때 힘들고 귀찮은 생각에 스님 말씀을 듣지 않았다면 정말 어쩔 뻔했을까?

 

"부처님 고맙고 고맙습니다. 지장보살님, 살펴주신 덕분에 남편이 철갑옷을 입은 마냥 조금도 다친 곳이 없으니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보살은 그 일이 있은 후 형편이 허락하는 한 자주 도솔암을 찾는다고 한다. 하기야 남편의 목숨을 구해주신 지장보살님이 계신 곳인데 아무리 길이 멀다해도 어찌자주 찾아오고 싶지 않을 것인가?

 

9.

1) 도솔암의 지장보살님은 특히 병고로 고생하는 불자들에게 인기가 높은데 언젠가 대구에 사는말기 유방암 환자였던 한 보살이 찾아와 지극 정성으로 기도한 지 23일 째 지장보살님이 방광하심과 동시에 그 보살은 건강을 되찾았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그 때 방광의 정도가 얼마나 휘황찬란했던지 새벽 도량석을 하던 스님들은 내원궁에 불이 난 불 알고 허겁지겁 뛰어올라왔을 정도였다고 한다.

 

2) 1996년 여름, 대구에 사는 40대 후반의 주부는 남편과 아이들의 뒷바라지에만 몰두하다가 자신이 유방암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았을 때에는 유방암이 이미 말기에 이르러 수술로도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불자였던 그녀는 갑자기 찾아든 죽음의 그림자에 휩싸여 괴로워하다가 문득 결심을 하였다.

 

‘그래, 어차피 인생은 한번 죽기 마련이다. 그리고 지금의 고통이 나의 죄업 때문이 아니더냐. 마지막으로 절에 가서 백일기도를 올리며 업장을 소멸하고 죽음을 편안히 맞이하자. ‘

 

가족들에게 자신의 뜻을 밝힌 그녀는 전북 고창의 선운사 도솔암으로 찾아가 지장기도를 시작하였다. 아픈 몸을 이끌고 365개의 돌계단을 오르내리며 끼니때마다 식사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았으므로 ,하루 한두 끼만 먹으며 도솔암의 내원궁에서 지장보살의 명호를 부르고 힘닿는 데까지 절을 하였다. 23일째 되는 날 밤, 땀과 눈물로 옴 몸이 흠뻑 젓은 그녀는 몸을 가누지 못해 쓰러지고 말았다.

 

“정신을 차려라. 저승사자가 기다리고 있는데 이렇게 잠만 자고 있어서야 되겠느냐?”

 

그리고는 불단 위의 지장보살님께서 내려와 가슴 뒤쪽의 등을 어루만지더니 대침(大鍼)으로 세번을 찔렀다. 지장보살님께서 세번째 침을 빼는 순간, 그녀는 움찔하며 잠에서 깨어났고 ,갑자기 가슴주위가 시원해짐을 느꼈다. 같은 시각 , 도량석을 하던 스님들은 내원궁으로부터 붉고 푸른 색의 빛이 하늘로 뻗쳐 오르는 것을 보고 환희의 예배(예경)를 올렸다. 그날 이후 그녀의 통증은 완전히 사라졌고, 예정 했던 백일기도를 마치고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는 암에 걸렸던 자취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지심귀명례 백천방편 교화중생 지장보살 마하살!!!

출전: 지장신앙,지장기도법, 김현준, 효림 , 2000년

 

 

10.

목포에 사는 보광화 보살은 육순이 넘으면서부터 꺼림칙한 꿈에 시달려야했다. 꿈 속에서 젊은 나이에 요절한 친구가 나타나 보살에게 항상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이었다.

 

"자네, 갈 길이 먼데 뭘 그리 꾸물대는가? 빨리 나를 따라가세."

 

보광화 보살은 꿈 속에서 너무 피곤하니 5분만 더 잔 후 출발하자고 애걸했다. 그러나 친구는 흉흉한 기세로 지금 떠나지 않으면 안된다고 다그치기 일쑤였는데 그 옆에는 돌아서있는 탓인지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여자가 보따리를 들고 서 있더란다. 딱 5분만 , 딱 5분만, 보살은 그렇게 친구와 실랑이를 하다가 잠에서 깨어나곤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꿈을 꾸면 반드시 나쁜 일이 생기는 것이었다. 한 번은 그 꿈을 꾼 후 계단에서 굴러 팔이 부러졌고, 또 한번은 연탄가스 중독으로 병원에 실려갔다. 보살은 잠자리에 드는 일조차 두려울 지경이었다. 그러던 중 보살은 도솔암 지장보살님이 영험하시다는 말을 듣고 만사 제쳐좋고 달려가 기도를 하다가 쉬는 틈을 이용해 한 스님에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러자 그 스님은 지장경을 매일 독송하며 지극히 지장보살염불을 하고 정성스럽게 절을 하라고 가르침을 주셨다고 한다.

 

과연 도솔암에 다녀와 매일 지장경을 독송한 이후 보살은 다시는 그 꿈을 꾸지 않았을 뿐더러 불면증에 시달리는 일도 전혀 없게 되었다고 한다.

 

출처: 영험도량에서 기도성취한 이야기 진 현종저 대원미디어刊

 

11.

전라북도 고창 선운사에는 관음전ㆍ도솔암 도솔천내원궁ㆍ참당암 약사전에 각각 지장보살을 봉안하고 있어, 지장 삼장(三藏)을 탱화가 아닌 불상으로 모시고 있는 유일한 사찰이다. 이는 성종 때의 중창이 왕실의 원찰(願刹)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선왕(先王)의 명복을 비는 뜻에서 먼저 지장을 모시고, 이에서 나아가 삼장을 모심으로써 이곳을 지장신앙의 중심지로 삼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장보살과 관련된 각종 영험담이 이어지고 있어, 우리나라 제일의 지장기도 도량으로서 사시사철 기도하러 오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관음전에 봉안된 지장보살상(보물 제279호)과 관련된 대표적인 영험담은, 일제강점기에 도난을 당하였다가 다시 선운사로 돌아오게 된 일이다.

 

1936년 당시 일본인 2명과 우리나라 사람 1명이 공모하여 보살상을 훔쳐간 뒤, 거금을 받고 팔아넘겨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지장보살상이 소장자의 꿈에 수시로 나타나서 “나는 본래 전라도 고창 도솔산에 있었으니, 어서 그곳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하였다. 소장자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이후로 병이 들고 가세(家勢)가 점점 기울게 되자 꺼림칙한 마음에 보살상을 다른 이에게 넘겨 버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지장보살이 소장자의 꿈에 나타났고, 이를 무시하여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게 되자 그 역시 다시 다른 이에게 넘기게 되었다. 그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이 보살상을 소장한 사람들이 겪은 일들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마지막으로 소장하게 된 사람이 이러한 사실을 고창경찰서에 신고하여 모셔갈 것을 부탁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당시 선운사 스님들과 경찰들이 일본 히로시마로 가서 보살상을 모셔오게 되었는데, 이때가 도난당한 지 2년여 만인 1938년 11월이었다. 당시 잃어버린 보살상을 다시 모시고 온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찍은 사진에도 사건에 대한 이러한 개요가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출처: www.koreatemple.net

 

 

12. 이 혜숙님의 법보신문과의 인터뷰 내용

 

"11년 전 남편이 중풍으로 쓰러졌습니다. 백방으로 약을 구했으나 차도가 없던 중 한 불자의 소개로 심원사를 알게 됐습니다. 반신반의하고 심원사를 찾았습니다. 두 번째 오던 날, 철야기도를 하는데 지장보살님이 저를 보고 웃고 계셨습니다. 다음날 집에 돌아갔더니, 글쎄 남편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있는게 아닙니까? 그 후론 집안의 대소사가 모두 잘 풀렸습니다. 그런데 3년 전 남편이 일때문에 충격을 받아 또 쓰러졌습니다. 병원에서는 가망이 없다고 했지만 우리 부부는 확신을 갖고 기도하여 다시 병을 이겨냈습니다. 지금 우리 내외는 매주 심원사를 찾고 있으며, 1박 2일 혹은 2박 3일씩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13.

임 인숙 보살은 3대독자인 남편과 결혼하여 이미 두 딸을 두고 있었다. 1976년 세 번째 임신을 하자 아들이 아니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걱정을 많이 하다가 임신 8개월째 인공중절을 하려고 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어 병원문을 박차고 나왔단다.

 

이윽고 임보살은 이듬해 1월 귀여운 옥동자를 낳았다. 그런데 그 아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허리가 아프다고 하여 병원에 갔는데, 허리 디스크라는 진찰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3주간 입원치료를 받았지만 완쾌되지 않은 채 다시 군병역 신체검사를 받게 되었다. 물론 허리 디스크로 판명되었고 병무청에서는 입대에 지장이 있는데 증빙서류로 종합병원에서 찍은 엑스레이를 가지고 오라했다.

 

임보살은 광명회 문 창기법사를 찾아 상담한 끝에 임신 8개월 때 중절하려는 마음을 품었던 것이 탈이 난 것이라 여기고, 21일 동안 매일 시간을 정해 아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비는 기도를 했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21일 기도가 끝난 날 상계동 백병원에서 MRI촬영을 받았는데 끌쎄 아무렇지도 않다는, 즉 정상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또 신기하게도 4번 척추뼈에 있었던 멍도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임보살의 아들은 현역입대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랑하는 아들을 논산 훈련소로 들여보낸 보살은 집에 와서 이렇게 이미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기도를 했다.

 

"이미 저희가 살고있는 가평으로 인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처님의 아들, 지장보살님의 아들로 잘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남들이 보면 욕심많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여하간 아들은 6주 훈련을 마치고 가평으로 운전교육을 받으러왔고 지금은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인 경기도 양주군 모 부대에서 근무를 하고있다니, 입이 딱 벌어지지 않을 수 없다. 지장보살님의 위신력이 얼마나 큰가를 다시 한 번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임보살은 항상 부처님과 천지만물에 감사하는 태도로 만사를 자신있게 처리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14.

대원화 보살은 어느날 심원사에 차를 몰고 오다가 너무 졸려 길에 차를 세워놓고 잠깐 잠이 들었단다. 그런데, 꿈 속에서 맑은 물에 고기 두마리가 서로 만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개울가득 물고기가 가득차는 모습을 보게되었다. 그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어 마치 극락정토를 보는 것과도 같았다. 잠시 후, 잠이 깬 보살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참 이상한 꿈이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길 징조일까?"

 

그 때는 ,IMF로 불경기가 혹심했던 참이라 대기업도 줄줄이 도산하는데 대원화보살집에는 오히려 반가운 일이 생겼다. 그 혹독한 불경기 속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커다란 일을 수주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대원화 보살은 지장보살님이 보내주신 선물이라 믿고 더욱 열심히 심원사를 찾으며 신행활동을 하고 있다.

 

출처: 알기쉬운 지장보살, 지장기도 이야기 진 현종저 , 은행나무刊

 

 

15. 지장천일기도회향 100일을 앞두고


900일이란 시간이 엄청난 것은 사실이지만 지나고 보면 손가락 틈새로 떨어지는 모래알같이 흘려 보내기가 쉽다. 게다가 내면적으로는 전혀 변화 없이 흘려 보내는 게 보통 하는 일이다. 반면 어떤 서원을 갖고 기도하는 사람은 매 순간을 헤아리면서 보낸다. 때문에 쓸데없이 낭비하는 시간이 없어서 양으로 엄청난 시간을 가지며 항상 자신이 지금 처해 있는 위치가 바른가를 점검하기 때문에 방향을잃지 않고 한 방향으로 나아가 커다란 변화를 얻어내게 된다.

 

이렇게 나는 지금으로부터 900일 전에 지장기도를 시작했다. 그 연유는 이렇다. 우리 집 가장과 나는 대학시절 만나 5년을 사귀다 결혼을 하고 두 딸을 둔 중년의 부부이다. 그러던 중 10년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생계 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훌훌 단신 고향으로 내려가서 사업을 하기 시작했다.

 

몇 달이면 끝이 날 줄 알았던 준비기간이 1년,2년으로 길어지자 우리 가정의 경제는 물론이려니와 정신적으로도 버티기 힘들게 되었다. 그래도 난 끊임없이 부처님을 찾아가 그의 일이 잘되어서 어서 이 고통에서 헤어나기만을 기도하였다. 그간의 어려움을 다 벗고 완벽한 사업체로 일어서려는 순간 그 사람은삐끗 제 길을 벗어나 외간여자와 겉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가 정신을 바짝 차렸어도 버텨 나가기가 힘이 든 상태였던 그 기업이 풍전등화처럼 훅 불어 꺼진 것은 지극히도 당연한 결과이리라.

 

뿐만 아니었다. 그 동안 빌어다 쓴 주변의 빚을 갚지도 않은 채 그이와 또한 여자는 서류 일체를 몰래 뒤로 팔아 이익을 챙기려고까지 하였다. 결국 두 사람은 빚쟁이들의 덜미에 잡혔고 아이들과 내가 살던 전셋집만이라도 안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동안 기도해온 덕이 아니었을까….

 

그는 이성과 판단을 몽땅 잃었다. 옷가지를 챙겨들고 집을 나가 그 여자와 아예 동거로 들어갔다. 서류 상 그 회사의 주주로 되어 있던 내가 그의 권한을 위임받아 빚을 안는 조건으로 회사를 넘겨주었다. 그러면서도 사정사정하여 겨우 오백 만원을 손에 쥘 수 있었다. 10년 간 벌어둔 재산을 몽땅 부어 버린 허탈감과 남편에게 버려 졌다는 배신감, 어린 두딸을 어떻게 길러야 할 지에 대한 불안감 등 …. 밤이면 더욱 그런 감정에 사로잡혀 밤을 꼬박 새웠고, 제대로 먹을 수도 없었다.당시 내 모습을 본 주위의 사람들은 내가 까맣게 타들어 간다고 하였다.

 

천일 기도는 바로 이때에 시작되었다. 시어머니 제사를 21일 앞두고 매일 지장전을 드나들 때였다. 우연히 만난 한 보살님이 본인도 그런 과정을 거쳤는데 지장경을 읽어보라고 권해주었다.

 

다음날부터 매일 한번씩 지장경을 읽고 108배씩 절하며 지장보살을 1000번씩 염송하였다. 밤에 잠이 안 오면 천주 염주를 돌리며 염불을 하였다. 마음이 평온해지고 참으로 오랜만에 잠이 푹 들수 있었던 그 감사 함,그것이 첫 번째 변화였다.


100일이 지날 때쯤이었다. 문득 이러다간 우리 세 모녀 굶어 죽겠다는 판단이 섰다. 그의 일은 제쳐두고 내가 직장을 구해야 했는데 어렵지 않게 취직이 되었다. 각 가정으로 직접 교재를 갖다 주면서 학생을 마다 잠깐씩 지도 해주는 눈높이 교사였다. 이 일이 비록 전문 직업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수는 없었으나 우선 생계 대책이 되었다는 고마움에 정말 최선을 다했다. 방문해야 할 집이 아파트 5층이면 층계 첫발을 디딜 때부터 한쪽 손에는 학생에게 줄 교재가 두둑이 든 가방에 들려 있었다.

 

나에게 커다란 짐인 반면 삶의 보람은 다름 아닌 두딸이었다. 일을 끝내고 지친 다리를 이끌고 집으로 올라갈 때면 내 마음은 그리움으로 꽉 차 있었다. 어떤 때는 유치원에서 일찍 온 작은딸을 잠시보고 나갈 때가 있다. 아이는 집에 들어서면서부터 고양이 추적을 시작한다. 가슴에 종이별을 달고 한 손에는 다림질용 분무기를 들고 고양이에게 선포한다.

 

"넌 체포되었다. 손들고 나와라"

 

고양이는 재빨리 싱크대 밑으로 식탁으로 피해 다니다가 결국 침대 밑이나 책상아래에서 잡히고 만다. 고양이 꼬리를 잡아당겨서 밖으로 꺼낸 뒤 얼굴에 분무기로 물을 뿌려댄다.

 

"은우, 그별은 뭐야?"
"경찰 표시야, 난 경찰이니까."

 

사춘기를 맞은 큰딸아이는 엄마에게 반발하기도 했다. 저녁나절 후다닥 뛰어 나간 딸. 결국 공원에서 만났다. 은비는 얼마나 자신이 슬픈지를 엄마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오늘도 엄마를 편히 해주지 못해서 괴롭다고 하였다. 점차 내가 안정을 되찾아가면서 큰 딸아이의 얼굴이 밝아지기 시작했다.집안 분위기 탓에 책을 좋아하고 조숙해진 아이가 글짓기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장려상, 입상,우수상,장원...차례차례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나 또한 비록 아버지가 없는 가정이지만 아이들이 어두워지지 않도록 휴일이면 함께 산책을 많이 했다. 무엇보다 우리 두 딸들이 큰 위안을 받는 곳은 다름 아닌 어린이 법회, 학생법회였다. 부처님의 밝은 미소가 언제나 우리 두 아이의 마음을 밝게 해주었다. 학교에서 떠나는 여행길에 은비가 대관령에서 전화를 걸었다.

 

"엄마, 너무 사랑해요."

 

어느덧 기도는 500일을 넘기고 600일로 접어들고 있었다. 저녁나절 집에 올라갈 때면 2층 아랫 계단에서부터 큰 딸애가 틀어놓은 라디오 소리가 들렸다. 초인종을 누르면 "엄마,피곤하시죠."하고 큰딸아이가 반갑게 맞아준다. 그 시간까지 나는 아파트 13층의 꽁꽁 언 복도를 걸어다니며 각 집을 방문했다. 그 때마다 어둠 속에서 비치는 가정의 아늑함과 버려지듯 둘이 있을 때모습을 가슴 아프게 비교하기도 했다.


기적이 일어났다. 내가 지도하던 한 남자아이의 어머니를 만났을 때 그 어머니는 사업에 대해 많은 정보를 주었다.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너무 몸이 고달프고 무엇보다 아이들을 전혀 돌볼 수 없는 직장에서 벗어날 것 같은 예감을 느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결국 나는 집에서 불과 15분 거리에 있는 작은 점포를 하나 갖게 되었다.

 

종목은 커튼·침구 수예를 취급하는 가게여서 빈 시간에는 경을 읽고 글을 쓸 수 있게끔 책상과 의자를 갖추어 놓았다. 물론 이 곳에서 틈틈이 아이들 지도도 할 수 있었다. 우리 작은 딸의 유치원 졸업식 날 엄마는 또 눈물을 흘렸다. 2년 동안 스포츠 센터를 다니면서 엄마는 입학식 날 겨우 한 번 왔을 뿐이었는데 누구 못지 않게 씩씩하게 앞장서서 수영하는 아이를 보자 그만 눈물이 핑 돌았다.

 

올 봄에는 큰딸이 우리가 사는 지역 내 중고교학생 백일장에서 시 부문에 입상하였다. 엄마가 피곤해서 먼저 잠이 든 뒤에도 작가가 될 꿈을 실현하기 위해 글을 읽고 원고를 수정하느라 은비의 책상에는 자정이 넘도록 스탠드가 커져 있다. 올 여름은 유난히도 더운 날이었다. 우리 세 모녀는 정말 오랜만에 행복하고 만족한 날들을 보낼 수 있었다.두 딸들은 서해 간월도에서 고기에게 좁쌀도 주었고 수덕사에서 참배도 하였다.

 

불과 두 주 전의 내 생일에는 두 아이가 너무 분주했다. 저녁에 집에 들어가니 집 앞 베란다에는 20개가 넘는 촛불이 출렁이고 있었다. 절에서 쓰고 버린 몽당초를 모아 와서 엄마 주위에 켜 주었다. '소원성취'만 남아있는 부처님께 올려진 초. 하늘의 별보다 더 밝고 아름다운 딸들의 눈동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이모든 평안은 내가 지장보살을 염하면서 내 자리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900일 전에 난 내 자신이 땅을 기어다니는 벌레처럼 비굴하게 느껴졌었다.어떻게 하면 저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될 수 있을까 하고 한탄했다. 이제 나는 번데기를 벗어나 고치를 뜷고 나가려는 나비로 변한 자신을 느낀다. 요즘 들어서 나는 내 스스로 복이 없지 않고 오히려 많다고 생각한다. 불과 한두 차례 작은 실수로도 파산을 하는 가정이 많음에 비해 태풍과 풍랑을 만났음에도 나와 내 두 딸이 안전할 수 있고 또 그 속에서 오히려 더 굳어지고 성숙해졌음에 아주 깊은 감사를 느낀다.

 

이제 100일만 더 있으면 회향이다. 회향의 바른 의미는 그동안 기도하고 닦아온 나의 정성을 주위에 돌린다는 것이다. 비단 내 아이들뿐만 아니라 남편과 그 여자 그리고 그 누구에게라도 부처님의 자비를 보이리라…

 

내가 이제 지장보살의 위신력을 관찰해보니
항하사 겁을 설하여도 다 할수 없네
한순간만 보고 듣고 우러러 예배하여도
한량없는 이익이 하늘과 땅에 넘쳐나리라.

지심귀명례 백천방편 교화중생 지장왕보살 마하살

 

《출전: 지장보살 영험록, 김종매외, 불광출판사, 2001년》


 

16.

이 글을 쓰신 분은 30대 초반의 여성불자입니다. 이 분도 아래 나와있는 지장기도법으로 기도하고 계십니다.


1) 얼마전에 선명하진 않지만 꿈속에서 어떤 스님이 내 머리에 우유를 부어주시는 꿈을 꾸었다.

 

2) 나는 지장보살본원경을 먼저 읽은 후 항상 천알염주(千珠)를 돌리면서 지장보살을 일념으로 생각하며 친아버지와 할머니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그런데 어느날 꿈에서 할머니와 아빠가 똑같은 색종이로 접은 것 같은 파란색 배 2척에 한분씩 타서 강물을 건너가시면서 아주 환한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을 흔들며 사라지셨다. 천도가 되신건가? 그런데 왜 여러명이 아니고 한 배에 한분씩일걸까? 하여간 얼굴표정은 너무 환했고 미소도 너무 아름다웠다. 그렇다면 아마..천도가 되신거겠지?

 

그리고 요즘들어 자꾸 스님꿈을 꾼다. 꿈속에서 나는 한 옛날 초가집의 누추한 방에 앉아있는데 스님이 들어오셨는데 내게는 얼굴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곤 잠깐 앉아있다 나갔는데 스님이 계셨던 자리에는 책 몇권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스님꿈은 내가 스님한테 꾸지람을 듣는 꿈이었다. 꿈속에서 어떤 스님이 나에게 광명진언을 외워보라 하셨는데 난 자면서 생각을 했다. 분명히 이거 내가 달달 외고 있었던 주문인데 왠일인지 꿈속에서는 전혀 한글자도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깨어나보니 너무나 잘 외워지던데...꿈속의 그 스님앞에선 어버버가 되버리는 것이었다. 글구 다시 참회진언도 외워보라고 했는데 이것도 분명히 외워 갖고 있던 주문인데 그 스님이 계시니 한자도 못외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스님이 공부좀 하라고 역정을 내면서 가셨다. 하여간 희한한 꿈들이다.

 

3) 어제밤 나는 천알염주를 돌리면서 지장보살을 염하고 있었다. 효림출판사의 지장기도 지장기도법에 나와있는대로 '무조건 잘못했습니다'라고 생각하면서 세세생생 알게모르게 지은 죄업을 참회하는 심정으로 지장보살을 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마구니가 찾아왔는지 자꾸 졸음이 왔다.

그렇게 나는 졸다가 다시 염주를 돌리다가를 반복하면서 어느순간부터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상태로 지장보살을 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친구가 보이는 것이었다.내친구가 나와! 라고 크게 소리치자 내 몸에서 귀신 하나가 빠져나왔다. 귀신의 모습이 뚜렷이 보이진 않았다. 시커멓고 흐물흐물한 모습에 어느정도 사람의 모양새는 띠고 있었다.그냥 느낌으로 귀신이라는 느낌이 전달 되어져 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몸은 엄청난 충격과 진동을 겪어야만 했다. 마치 우주선이 성층권을 빠져나오듯이 말이다. 나는 아마도 그 동안 빙의 되어있었을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4) 꿈 속에서 지장보살님을 뵈었다. 내가 뵌 지장보살님은 흰색 옷을 입고 계셨으며 온 몸에서 광채가 났다. 난 지장보살님께 나의 아빠에 대해서 물었다. 지장보살님은 날 쓰다듬으시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17. 당신은 정말 내 남편이시네요. (www.ekayana.or.kr에서 퍼옴)


94년 9월말 경부터 제 인생에서 가장 알찬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감사드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장경 독송을 시작한 이유는 이혼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너무도 힘든 결혼 생활에 저는 찌들고 지쳐 있었습니다. 저는 집안 식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얼마 후 24세의 나이로 결혼하였습니다. 남편 된 사람은 인물도 잘 생겼고, 집안도 좋은 편이어서 저는 둘이 힘을 합치면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저는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고, 남편은 대학을 나왔지만 다시 시험 공부를 해 한의과 대학을 가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임신한 아이를 유산까지 시켜가면서 직장 생활을 하여 생활을 책임졌고, 남편은 입시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 너무 달랐습니다. 처음 결혼했을 때부 터 저는 시댁에 적응을 못하고 시부모님을 잘 모시지 못해 시숙님과 동서 형님들과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편 을 가르듯이 형님은 형님, 우리는 우리, 시부모님은 시부모님이라는 식의 상태까지 가게 되었고 결국은 한 집에서 살 수가 없어서 집을 얻어 이사를 나왔습니다.

 

남편의 공부는 뜻대로 되지 않았고, 경제 사정은 날로 어려워졌습니다. 몇 년간 어려운 생활을 하다보니 저도 남편도 지쳤습니다. 게다가 시부모님도 경제 사정이 나빠졌습니다. 젊어서는 큰 사업을 하시던 분들이라 씀씀이는 무척이나 크셨습니다. 그런데 시부모님은 사회적인 지위나 경제적으로나 우리보다는 몇 배나 나은 두 분 시숙님들을 마다 하시고 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남편과 저는 조그만 일에도 서로 다투기 시작했고 남편은 술까지 먹고 저를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공부를 한다고 했다가 그만두고, 그러면 공부는 그만두고 돈이나 벌어달라고 하면 공부를 계속하겠다고 하는 등 저를 괴롭게 했습니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 결혼이라 부모님께는 하소연 할 처지도 못 되었습니다. 의지할 곳을 찾지 못해 교회며 점치는 곳을 찾아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시간만 마음을 채워주었을 뿐 저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했으므로 저의 갈등과 고민은 더욱더 쌓여갔습니다. 저는 생기를 잃어 갔고 저의 결혼생활은 해가 갈수록 악순환이 되었습니다. 살아갈 희망도 없었고 또 뚜렷이 살아봐야겠다는 의지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항상 잠재의식에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고 죽으려고 시도한 적도 있었습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 정도로 저는 무지했습니다. 그러나 용기가 없어 죽지는 못하고 이런 고통에서 헤어나고자 남편과의 이혼을 결심하였습니다.

 

이혼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중 평소에 개인적으로 안면이 있던 ㅇㅇ사에 계시는 보살님을 찾아갔습니다. 그 동안 하지 못했던 가슴 속의 이야기를 털어 놓으면서 이혼을 하고 싶다는 말을 비췄습니다. 그러나 보살님은 아마도 남편은 나에게 받을 빚이 많은 사람인가 보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빚은 갚아야지 회피한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니 정 이혼을 하고 싶으면 지장경 독송을 한 뒤 맑은 머리로 판단하여 이혼을 해도 늦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용기를 가지고 지장경 독송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49번 독송을 발원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절에 와서 기도를 하고 나머지는 집이나 직장에서 독송하였는데 불심이 깊지도 못한 내가 기도를 한다는 것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집에서 경전을 읽으면 남편은 무슨 나쁜 일이나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눈초리를 보냈고, 직장에서 쉬는 틈에 경전을 읽으려고 하면 직장의 상사들이 눈치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짬을 내 지장경 독송을 계속하였습니다.

 

직장을 다니고 가정살림을 하는 제가 두 시간 정도 걸리는 지장경 독송을 하루에 한 번씩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희한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렇게도 저에게 불만이 많으시던 시부모님과 시숙님들, 그리고 동서 형님들께서 달라지신 것입니다. 전에는 직장에까지 전화를 하여 잘잘못을 따지시던 시어머님께서 일체 전화를 안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시숙님들도 "우리 제수씨가 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다."는 말씀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도 감격하여 지장보살님께 한없이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지장기도를 드리면서 어려움도 많았지만 저는 정말 실오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매달렸고, 불평도 많이 했으며, 울면서 떼를 쓰기도 했습니다. 지장보살님은 이런 모든 것을 잘 받아 주셨고, 그런 모든 것을 먼저 자신이 변화해야 된다는 것을 꿈을 통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는 나쁜 꿈으로 잠자리가 항상 불편했는데 지장기도 중반쯤에 꿈 속에서 광륵사의 창건주이신 여화스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여화스님은 "부처님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며 말로 표현할 수없고 근심 걱정이 없고 좋은 곳이다. 꼭 성불하여서 부처님 세계에서 만나자. 나는 부처님 세계로 간다."고 하셨습니다.

 

그 다음날부터는 잠자리가 편안했고 나쁜 꿈에 시달리는 일이 없어졌으며 지금은 꼭 보여 주실 것만 꿈에 보여 주십니다. 고민도 많고 말도 생각없이 하던 제가 조금은 여유가 있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말을 할 때도 조심하려고 노력하게 되었고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런 제 자신을 미워한 적도 많았지만 지금은 머리가 맑아져 조심해서 말을 해야 된다는 걸 알았고, 저로 인하여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도 차츰 술을 덜 마시게 되었고 조금만 마셔도 취해서 많이 마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지장경 49독이 끝난 후 유산한 아이와 남편의 어렸을 때 죽은 형의 천도재를 봉행했습니다. 그런데 조금씩 좋아지던 남편이 갑자기 난폭하게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혼을 원하면 하고, 은 행에 있는 빚은 나중에 벌어서 갚아줄테니 지금은 저보고 해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도 실망하여 절에 가고싶은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지성으로 기도를 했는데 왜 그럴 까? 왜 나만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광륵사 보살님을 밖에서 만나 이런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내가 남편과 시댁 어른들께 진 빚이 너무 많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결혼해서 이 날까지 이렇게 고생을 했는데 빚을 졌다니.. 그런데 빚쟁이도 아닌 사람들이 왜 그렇게 달라고 떼를 쓰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기도할 때 어떤 마음으로 했는가를 물어 보셨습니다. 얼른 이혼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했다고 했습니다. 빚 받으러 온 사람에게 빚도 안 갚고 내쫓으려고만 하니 빚쟁이가 더 날뛸 수밖에 없으니 이제부터는 지장경을 읽은 공덕으로 빚을 갚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와 다음날부터 내가 진 빚이 있으면 정말로 갚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다시 지장경 독송을 시작했습니다.


지장경 100번 읽으면 사주팔자가 달라진다는 법사님의 말씀에 저는 100번 읽을 것을 발원했고, 지장경 100번 독송을 끝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다시금 남편이 변했습니다. 직장에 나가기 시작했고, 적은 돈이지만 결혼 후 몇년 만에 월급봉투를 가져왔습니다. 남편과의 이혼 문제로 시작된 지장보살님과의 만남으로 우리 집안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중 하나가 시댁 식구들의 변화입니다. 동서 형님 두 분 중 한 분은 지장경을 독송하며 절에 다니기 시작하셨고, 다른 한 분은 관세음보살 기도를 시작하셨습니다. 시아버님과 남편은 집에서 지장경 독경 테이프를 듣고 또 지장경을 독송하고 계십니다. 어려웠지만 지장경을 100번 독송하고 나니 이제는 모든 일에 자신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인생을 새로 시작하게 되었고 미래에 희망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장경 100독을 마친 뒤 꿈을 꾸었는데 제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올리는 꿈이었습니다. 꿈을 깨고 나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사람이 정말로 나의 남편이구나. 아니 지장보살님이 모자란 나를 이끄시기 위해 남편으로 화현한 것이었구나. 그렇지 않았으면 어찌 내가 지장보살님을 찾았겠으며 부처님을 만날 수 있었겠는가.' 지금 이 시간 이혼을 생각하시는 분은 부처님과 지장보살님을 만나뵙고 의논하여 결정내리시면 어떨까요. 이혼은 아무 때나 할 수 있지만 부처님과 지장보살님과의 만남은 쉽지 않으며 한순간이 평생을 좌우할 것입니다.


나무 남방화주 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18. 낙태로 얻은 아픔이었는데..(www.ekayana.or.kr에서 퍼옴)


작년 여름 휴가 때 우리 가족은 온천에서 여름 휴가를 지내고 돌아가는 길에 ㅇㅇ사에 들렀습니다. 이 절에는 남편이 존경하는 스승님의 부도탑(浮屠塔)이 모셔진 곳이기도 하고, 남편의 학창시절 친구이며 오랫동안 불교공부도 같이 한 친구 분이 법사님으로 계시기도 하였기 때문입니다.

 

가족들끼리도 결혼 전부터 알고 지냈기 때문에 오랜만에 얼굴도 볼겸 들른 것입니다. 법사님이 서울에 계실 적에 만났었기 때문에 4년의 시간이 흘렀고, 우리들은 반가운 마음으로 그 동안의 밀린 이야기를 하며 오랜 시간 대화를 하였습니다.

 

이야기하던 중 저는 무심코 남편이 너무 무관심하다고 불평을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남편이 그 이상 어떻게 관심을 갖느냐는 것이었 습니다. 옆에 있던 보살님이 제 편을 들어줬습니다.그랬더니 남편이 "아프다고 해서 한약도 지어 주고, 병원에가서 종합진찰을 해본 결과 병이 없으니 신경만 안 쓰면 된다고해서 신경 안 쓰도록 노력해줘도 아프다고 하니, 낸들 어쩌라는 말이야"하며 그 동안의 심정을 하소연이나 하듯이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법사님이 혹시 유산한 아이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법사님은 "임신이 되는 순간부터 이미 생명체이기 때문에 태아일 때 죽은 아이라해서 전혀 관심을 가져 주지 않으면 무주고혼(無住孤魂)이 된다. 일본에서는 유산한 아이들을 수자령(水子靈)이라고 해서 천도시키는 일이 일반화 되어있는 것 같더라. 지난 번 텔레비젼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엠(M)의 작가도 그냥 완전한 픽션으로 극본을 쓴 것이 아닌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34세로 결혼한 지 6년이 넘었습니다. 결혼 후 곧 임신을하여 아들을 하나 낳았고, 그 다음에 곧 임신이 되었는데 아이 키우기가 너무 힘들어 유산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유산을 한 뒤부터 어딘지 모르게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단순히 집안 일이 너무 힘들어서 그런가 하고는 아이를 시어머님께 맡겨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좋아지지는 않아 그 다음에는 한의원으로, 병원으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임신이 되도 몸이 아프니 또 유산을 시키고, 그렇게 하여 6명의 아이를 유산시키게 된 것입니다.

 

나중에는 혹시 산후조리가 안되어 그런가 하고는 다시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정성껏 하였습니다. 그러나 상태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병명이 없이 아프다고 하니 가족들은 이제는 '복에 겨워 그런다'고 하며 관심도 안 갖고 남편마저 짜증을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저대로 몸도 아프고 마음도 상해 이혼까지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여름휴가 때 온천물에 목욕 좀 하자면서 내려왔다가 광륵사까지 온 것입니다.

 

저는 그 동안의 사정 이야기를 했고 법사님은 그러면 지금부터 지장경을 독송한 뒤에 내일 아침에 아이들의 천도를 위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자고 하셨습니다. 저는 지장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불교를 믿었지만 저는 불교신자도 아니고, 심지어는 남편이 못마땅하게 할 때는 불교를 믿는다는 사람이 그렇다고 하면서 비방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남편도 그 이야기가 듣기 싫었는지 법회에도 잘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지장경을 읽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아픈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하니 밤을 새워서라도 읽으려고 결심하고 읽었습니다. 그러나 졸려서 한번도 다 읽지 못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깨고 보니 몇 년만에 처음으로 달콤한 잠을 잔 것 같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저는 공양물을 준비하여 공양을 올렸습니다. 부처님께 기도 올리는 동안 눈물이 마구 나왔습니다. 죽은 아이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그리고 제가 어릴 때 돌아가신 친정 어머님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유산된 아이들의 천도기도를 드리고 나니 아픈 것도 덜 아프고 가슴에 맺혀있던 것이 풀린 것 같이 시원한 느낌이었습니다.

 

빠듯한 일정이라 오후에 출발을 하려니 법사님께서 집에 가서 지장경을 100번 읽어서 채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서울로 돌아와 유산시킨 아이들과 돌아가신 친정 어머님께서 좋은 세계에 나시기를 발원하며 열심히 지장경을 독송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몸이 아프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지장보살님 정말 이럴 수도 있는 것입니까? 제 아픈 몸이 씻은 듯이 나았고 저는 다시금 평범한 가정주부로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된 것입니다. 평소에 무관심했던 불교에 대해 귀의심(歸依心)을 내게 되었고, 이제는 불제자가 되어 지장경 독송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남편도 다시 법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부처님, 지장보살님,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19.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떠나가다.(www.ekayana.or.kr에서 퍼옴)


광륵사와는 93년 음력 사월 초파일부터 인연을 맺었다. 내가 소속되어 있는 불교 청년회에서는 매년 초파일날이 되면 부서별로 인원을 나누어 일손이 부족한 사찰을 찾아가서 봉사를 한다.

 

그 해엔 우리 부서에서 ㅇㅇ사를 돕기로 하였기 때문에 나는 다른 회원들과 함께 ㅇㅇ사에 갔다. 아침엔 신도분들을 안내하고 저녁에는 점등하는 것을 도와 드렸다. 일이 거의 마무리되어 집에 오려고 하는데 법사님께서 우리들에게 자주 들르라고 하셨다. 그렇게해서 난 마음이 착잡하고 울적할 때마다 ㅇㅇ사에 가 서 부처님께 절을 하고 법사님과 보살님에게 나의 마음을 털어놓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에 알고 지내는 법우님이 나의 모습이 항상 병색이 깃들인 것처럼 보인다며 어디 아프냐고 물었다. 나는 약간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그랬더니 영가 천도를 봉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해주었다. 그래서 ㅇㅇ사에 들러 법사님께 상의를 드렸다. 법사님은 나에게 불의의 사고로 죽거나 일찍 돌아가신 분들이 있으면 그 분들을 위해 지장경을 독송해 드리면 좋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인 39세에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고깃배를 타셨는데 새벽에 일찍 일어나 나가시면 저녁 늦게 돌아오셨다. 9년이 지났지만 언제나 아버지의 싱글벙글 웃으시는 모습이 기억난다. 지금 생각하니 우리들에게 힘들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서 항상 웃으셨던 것 같다.

 

사고는 갑자기 일어났다. 뉴스에서는 날씨가 흐리다고만 했는데 갑자기 태풍이 몰아쳤다. 배에 타신 다섯 사람 중에 아버지만 물에 빠져 돌아가셨다. 우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3년 뒤에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내 몸이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이 싫었고 식욕도 없고 옆사람들이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 것 같았다. 몸은 언제나 불편했고 위장병으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런 뒤 나는 광주로 와서 직장엘 다녔다. 나는 평소에 누군가 나를 죽이려고 쫓아오는 무서운 꿈을 많이 꾸었다. 그래서 깨어 있을 때도 누가 꼭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아 두려움을 느껴 마음이 무겁고 소화도 잘 안되며 피로도 많이 느꼈다. 그런데 무엇인가를 해보려는 욕심은 많아 몸은 더욱 피로를 느꼈다. 그리고 사람들의 사소한 한마디 말에도 상처를 많이 받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내 쪽에서 먼저 방어자세를 취하는 바람에 회사 동료들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했다. 그러니 평소에 나의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 밝게 보이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그리고 작은어머니도 젊은 나이에 암으로 돌아가셨다. 작은어머니는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하셨는데 고생만하다가 생활이 좀 나아지니까 중병에 걸렸던 것이다. 작은어머니네 형제분도 젊어서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작은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니께 '사람은 즐기면서 살아야 한다.'라고 말씀을 하셨고, 돌아가시던 날 밤에 할머니께는 '어머니, 저기 시커먼 옷을 입은 사람이 나를 잡으러 옵니다. 어서 저 사람들을 오지 못하게하세요. 전 가기 싫어요!'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또 오빠는 심장병으로 고생을 많이 해 왔다. 갓 태어났을 때 이불 위가 아닌 맨 방바닥에 눕혀 있었고, 어머니는 오빠의 옆 에서 잠이 들어 계셨다. 할머니께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셨는데 방이 뜨거워지자 오빠는 뜨겁다고 울었으나 할머니는 방안에 어머니가 있으니 신경도 안 쓰고 불을 계속 지피셨다고 한다. 그 일로 인해 오빠는 뜨거운 열이 심장에 박혀서 지금까지 고생하고 계신다.

 

돌아가신 분들과 오빠의 심장병 이야기를 하니 법사님께서는 우선 지장경을 49번 읽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기도를 드릴 때 항상 영가님에게 극락왕생 하시라고 하면서 기도를 드리라고 하셨다. 그날부터 영가님들에게 '갈 길을 못 갔으면 얼른 극락왕생 하시고, 나쁜 곳에서 고생하고 계시면 좋은 곳에 태어나세요'라고하면서 지장경을 독송했다.

 

매일 한번 씩 지장경을 읽었다. 처음 지장경을 읽으니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다. 하루에 한 번씩 지장경을 독송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불행하게 인생을 마감한 분들의 극락왕생을 위해 직장에서나 집에서나 틈이 날 때마다 읽었다.

 

49일째 되는 날 꿈을 꾸었다. 누더기 옷을 걸친 스님 한 분이 나타나셔서 나의 등을 두드리며, '기특하다'라는 말을 남기고 가셨다. 그 다음 날은 어떤 할아버지가 맑은 물이 흐르는 냇가에서 왔다갔다하시면서 "밥은 먹을 수 있되, 쌀은 먹을 수 없다."라는말을 하셨다. 나는 그곳을 지나가다가 그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쌀을 씻어서 불에 끓이면 먹을 수 있는 게 아닙니까?"라는 말을 했다. 할아버지는 "그게 아니니라."라는 말만 되풀이하셨다.

 

지금 생각하니 내가 너무 욕심이 많아 처음부터 많은 것을 원하니 차근차근 공부하라는 가르침인 것 같았다. 아마 그 할아버지는 지장보살의 화신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나서 나의 아버님과 작은 어머니, 그리고 나와 인연있는 영가들을 위해 정성껏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다.

 

천도재가 끝난 뒤에 나는 오빠의 건강 회복과 나의 괴로움이 소멸되기를 바라면서 지장경 100독을 발원하였다. 어려웠지만 무사히 지장경 100독을 성취하였고, 지장경 100독을 끝내는 날 밤에 꿈을 꿨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내 주의를 빙빙 돌다가 떠나갔다. 그 뒤부터는 잠도 잘 자고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고 신경질적인 성격도 많이 없어졌고 회사 동료들과의 관계도 매우 원만해졌다. 또한 오빠의 건강도 많이 좋아졌다. 오빠는 아직 수술을 한번 더 받아야 하므로 앞으로도 계속 지장경을 읽을 생각이다. 나는 지장경을 독송함으로써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더욱더 깊어졌고, 나도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을 얻어야겠다는 발원도 하였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전해 주어 그들도 나와 같은 기쁨을 맛보게 하고 싶은 생각을 갖게 되었다.

 

 

20. 바른 정신을 되찾다.(www.ekayana.or.kr에서 퍼옴)


광륵사를 찾게 된 것은 같은 동네에 사는 ㅇㅇ사 신도 분의 덕택이다. 그 신도 분은 ㅇㅇ사 창건시부터 열심히 절에 다니시던 보살님의 며느리로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나서는 당신이 뒤를 이어서 열심히 부처님께 정성을 올린다고 했다. 그 보살님은 자신도 몸이 아파 지장보살님께 공양을 올린다고 지장경을 독송하니까 모든 것이 좋아졌다고 하시면서 나에게도 절에 가서 살 면서 부처님 전에 공양을 올리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5년 전에 남편을 사별(死別)했다. 남편은 두 아들과 세살난 딸, 그리고 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이천만원이 넘는 빚을 남겨 놓은 채로 갑자기 세상을 떴다. 남편은 평소에 간경화를 앓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일찍 떠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죽기 전에는 마을의 이장도 맡아 했고, 산에 있는 나무를 베어 파는 일도 크게 했었다. 그 해만 잘 넘기면 잘 살 수 있었는데 갑자기 죽으니 나무들은 헐값에 넘어가고 채권자들의 빚 독촉이 심했다.

 

바깥 일은 전혀 알지 못하는 내게는 너무도 큰 시련이었다. 죽은 사람을 애도할 시간도 없었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었다. 중3, 중2 되는 아들 둘과 세 살난 딸, 그리고 시어머님과 함께 살면서 공장을 다니면서 논과 밭을 팔아서 빚을 조금씩 정리해 나갔다. 그런데 남편의 1주기가 되는 제사를 모시고는 나는 정신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옷이며, 이불 등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모두 태워 버린 것이다. 가족들이 나를 나주 정신병원으로 데리고갔다. 약을 타다 먹으면서 요양을 하니 조금 나아졌다.

 

그리고는 빚을 갚기 위해서 광주 시내의 큰 식당으로 가서 일을 했다. 1년 정도 일을 하여 오백만원을 모았고, 그 돈으로 다시 은행돈을 일부 갚을 수 있었다. 그런데 다시 정신병이 도진 것이다. 죽은 남편이 당신을 못잊어서 갈 수가 없다고 하면서 내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온 동네를 돌아다녔다. 교회에도 다녀 보았고, 큰 굿도 했다. 그러나 별로 차도가 없었다. 시어머님은 내가 무섭다고 시누이네 집으로 가셨고, 집에는 어린 딸과 나만 남았다. 다행히 큰 아들은 공업고등학교 3학년으로 취업을 나갔고, 둘째 아들은 중학교를 졸업한 채로 마산에 있는 공장에 취직해서 간 상태였다.

 

그런데 나에게 어떤 조그마한 선연(善緣)이 있었는가 절에서 살라는 제안을 받게 되었다. 나도 이렇게 살기보다는 차라리 딸과 함께 절에 가서 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하여 그 신도 분을 따라 ㅇㅇ사로 갔다. 다행히 절에 먼 친척 되시는 할머니도 한 분 계셨다.

법사님께서 이것 저것을 물어보셨다. 같이 간 신도분께서 사정 이야기를 하면서 "법사님이 좋은 일하는 셈치고 병을 고쳐서 광륵사에 살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하고 부탁을 하셨다.

 

법사님께서는 "절에서는 부처님께 공양만 잘 올리면 누구든지 편하게 잘 살 수 있습니다."라고 하시면서 "지금은 약사경과 또 다른 책을 만드는 일로 무척이나 바쁘니 기도 방법을 가르쳐 줄테니 혼자 해 보십시오."라고 하셨다. 나는 가르쳐 주신대로 열심히 하려고 했으나 남편이 항상 가슴에 있으면서 나를 그냥 앉아 있지 못하도록 했다. 나는 법당에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산으로 마당으로 돌아다니면서 남편에게 얼른 극락세계로 가라고 했다. 하지만 남편은 떠나지를 않는 것이다.

 

나를 아는 주위 사람들은 내가 절에서도 며칠 못 살고 올 것이라고 했으며, 시댁 식구들과 친정 식구들 모두가 나를 부담스럽게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신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며칠이 지난 후 법사님이 서울에 갈 일이 생겼다면서, 나보고 3일만 집에 갔다 오라고 하시면서 차비를 주셨다. 그런데 나는 집에 가기가 너무 싫어 앞문으로 나갔다가 몰래 뒷문으로 방에 들어가 있었다. 세 번이나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을 보시고는, 법사님께서 '그러면 정신을 잘 차리고 열심히 기도하면서 있으라' 고 하셨다. 그런데 그 삼일간 나는 더 미쳐서 날뛰었나 보다.

 

법사님이 오시니까 삼일간 절을 관리하던 사람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못 고칠 것 같다고 정신병원에 보내야 된다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서 법사님이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법당으로 들어가 절을 하면서 지장보살님의 명호를 부르시면서 따라 하라고 하셨다. 일곱 살난 딸 아이도 함께 기도를 했다. 딸아이에게는 엄마 병을 낫게 해 달라고 기도를 올리라고 했다.나중에 안 일인데 거의 1080배 정도 했다.

 

그 다음날 함께 과일을 먹는데 보살님이 웃으면서 "아줌마는 어째 배고픈 귀신이 있는 사람 같네요" 하는 것이다. 나는 그때 굿을 하면서 무당이 하던 말이 생각났다. 죽은 시동생이 '배가 고파 죽겠으니 밥좀 주고 장가좀 보내 달라. 우리 어머니는 너무 지독한 사람이다'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남편에게는 열일곱에 공장에 다니던 중 동료들과 장난을 하다가 드라이버에 찔려서 즉사한 시동생이 있었다. 우리 시댁은 그 시동생이 죽으면서 받은 보상금으로 땅을 사서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그 중의 대부분을 남편이 위궤양 수술과 간이 나빠 병원에 입원할 때 병원비로 썼고, 나머지는 남편이 남긴 빚을 갚는 데 썼다. 그런데다 시어머님은 너무 속상하여 그 시동생 일은 생각도 하기 싫다고하며 제사도 안 지낸다는 말을 했다.

 

보살님이 "아줌마는 다른 때는 청소하던 빗자루도 던지고 달아나는데 음식 드시라고 하면 제일 먼저 달려와 다른 사람들이자리에 앉기도 전에 먼저 먹고 일어서는 것을 보니 배고픈 귀신 이 있는 것 같다"고 하셨다.

 

그 다음날 부처님께 시동생과 남편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공양을 올렸다. 그리고 조석으로 절을하며 지장보살님을 부르는 기도를 하였다. 그때가 백중이 돌아오기 한달 쯤 전이었다. 이렇게 기도를 한 후에 백중 날 조상님들과 시동생 그리고 남편의 천도재를 함께 봉행하며 좋은 곳에 가시기를 발원하였다. 그 이후 나는 많이 좋아졌다.

 

아침 저녁으로 건강과 자식들을 위해 기도를 드렸더니 몸도 마음도 아주 편하며, 객지에 있는 아들들도 모두 무사히 잘 있다. 특히 둘째 아들은 다섯살 때 교통사고를 당해, 기억력이 약해 모든 일을 금방 잊어 버려 학업을 계속할 수 없어서 중학교만 겨우 졸업한 상태로 취직해 있었는데 아주 많이 좋아졌다.


이 모든 것이 지장보살님의 가피라 생각한다. 무한히 감사한 마음이다.


 

21.

근무지에서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휴게소에서 사망소식을 전해 들었다. 회한의 눈물을 한없이 흘리며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면서 운전을 했다. 도착하여 보니 이미 영안실에 계셨다. 평소에 아버지께 불효만 했기때문에 가슴은 터질 듯 아팠다. 마지막 가시는 길에 아버지를 위해 내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이 무얼까 생각해보았다. 49일 동안 지장경을 100독을 읽어드려야 겠다고 마음을 정하였다. 아침에 1권 저녁에 한권씩 읽기로 하고 열심히 하였으나 아침기도는 그르지 않았으나 저녁기도가 회식때문에 차질이 생겼다.

 

일주일을 남겨두었는데 49권을 더 읽어야 했다. 막재날까지 마칠려면 하루에 7독(14시간)을 독경해야했다. 마침 휴가기간이라 막재날 아침까지 겨우 100독을 마치고 재를 마치던 날 몽중 가피기가 있었다. 옥상에서 팡파레와 축제가 열리는 듯한 소리에 올라가 보니 스님이 상여를 매고 "자! 서편 공덕장으로 가자"는 소리가 들렸다. 재를 마치고 큰 스님이 관해보시더니 보살님과 주변 식구들이 열심히 기도를 해서 좋은 곳에 가셨다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여러 차례의 기도를 해왔지만 가장 힘들었던 기도였다.

 

 

22. 다시 찾은 건강과 행복

 

광륵사를 처음 찾아왔던 날은 우연찮게도 음력으로 12월 8일 성도재일이었다. 아픈 사람들이 많이 나았다는 말을 듣고서 한 번 가봐야겠다고 생각만 갖고 있다가 그날 불쑥 마음이 내켜서 발걸음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한 발걸음이 있기까지는 너무 많은 고통과 방황이 계속되고 있었고 스물하나의 젊은 나이로서는 버티기 힘든 나날이었다.

 

나는 전문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취직을 하였으나 몸이 아파 일주일만에 그만두었다.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열정은 높았지만 아무 것도 못 하고 집에만 있으니 몸도 그렇고 마음까지 점점 불안하여 헤어날 수 없는 괴로움의 늪에 빠져 들어갔다. 부모님과 가족들의 걱정은 태산 같았다.

 

고 3때부터 시작된 알 수 없는 병.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척추 교정으로 유명하다는 활기원으로, 지압 받는 곳, 단전호흡원, 한의원 등등...지치도록 돌아다녔지만 허사였다. 병원에서는 급히 입원하라해서 입원하여 종합진찰을 하면 병명을 모른다고하고, 활기원에서도 다른 아픈 사람들은 모두 치유가 되어 나가는데 나 만 치료가 되지 않으니 특이체질인 것 같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척추에서 물까지 빼 보았고, 단전호흡원에 가서 체조도 해 보고, 나중에는 마음의 병인가 싶어 성당에도 다녀 봤다.

 

하지만 몸과 마음은 괴로움으로 찌들려갔고 어느 때는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서 뛰어내려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부모님께 불효한다는 생각이 들어 행동으론 옮기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몸이 아프니 밤에는 불면증마저 생겼다. 내가 이러니 어머니의 걱정은 태산이셨다.

 

그러다가 아는 언니와 함께 ㅇㅇ사를 찾게 되었고, 법사님으로부터 많은 말씀을 듣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원인 모르게 고통을 겪고 있다면 그것은 우연이라고 하기보다는 내가 알게 모르게 지은 업의 과보이지 않을까라는 말씀을 들었다. 그리고 전생의 악업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면 지금 살아가면서 더 커다란 선업을 지어야 한다고 하시며 지장경을 열심히 읽으라고 하셨다.


더구나 예전에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취미로 사냥을 자주 하셨고 할아버지는 교통사고로 객사하셨다는 사실에서 우리들이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불쌍하게 죽은 영가들을 천도하는 것이 병을 낫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게되었다. 그래서 하루에 지장경을 2번씩 독송하기로 했다. 몸이 아파 걷기도 힘든 내가 소리를 내어 독송을 하고 경전 한 품이 끝날 때마다 3번씩 절을 한다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의심이 갔다.

 

다행히 함께 온 언니도 어려서부터 몸이 아파 고생하던 사람이라 이번 기회에 지장경을 백 번 읽기로 발원하고 함께 기도를 시작했다. 아침에 절에 와서 법당에 가서 예배를 드린 후 지장경을 한 번 읽고 방에서 누워 쉬다가 오후에 다시 일독을 하였다.


난생 처음 들어가 본 법당은 모든 것이 어설프고 서투르기만했다. 하지만 아픈 몸이 나을 수 있다는 말만을 믿고 아픈 것을 참고 독경을 겨우 마쳤다. 절을 하는데도 온 몸이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은 통증을 느꼈다. 사람들은 내 몸이 이렇게 아프다는 것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일이 생겼다. 첫날 지장경 독송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 잠을 자는데 다른 때와는 달리 불면증으로 시달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대신 밤에 꿈을 꾸었다. 초췌해 보이는 어떤 남자가 나에게 다가와 칼로 나의 얼굴을 여러 번 그었다.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얼굴인데 왠지 낯설지 않 아서 그를 피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꿈속에서 약간의 아픔을 느 낀 것도 같고, 손으로 얼굴을 만지면 약간의 점액이 느껴지기도했다.

 

이런 꿈을 꾸고 난 다음 날은 전날보다 몸이 가벼워져 절도 조금 더 할 수 있었다. 그날도 지장경을 두번 독경하였다. 한번에 2시간 정도 걸리니 하루에 꼭 4시간을 소리내어 지장경을 읽은 것이다. 그날 밤에도 꿈을 꿨다.

 

어느 조그마한 방이었다. 그런데 방문이 미닫이인 것으로 봐서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아닌 것 같았다. 혼자 방안에 있는데 초록뱀이 자꾸만 방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평소 뱀을 가장 싫어하는 나는 뱀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문을 닫았다. 그래서 그 뱀은 중간쯤 들어오다가 방문에 걸려 죽고 말았다.


셋째 날에도 다시 꿈을 꾸었다. 사람들이 많고 의사와 간호사들도 많았다. 아마도 종합병원인 듯했다. 그런데 한 장소에서 접수도 받고 진찰도 받았다. 칸막이도 없었다. 난 빨리 진찰을 받고 싶어 접수를 하고 차례를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내 이름은 호명되지 않았다. 의사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화가 난 나는 간호사에게 "왜 진찰을 받을수 없어요? 의사 선생님을 만나게 해주세요."하고 항의를 했다. 내가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화내 본 적은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나의 의견만 주장하다가 깨어났다.


넷째 날의 꿈이다. 엄마와 숙모, 나 이렇게 셋이서 버스를 탔다. 처음 본 거리의 풍경이 차창에 나타났다. 버스를 내려 어떤 동네로 올라갔는데, 지대가 높은 것으로 보아 산동네인 것 같았다. 올라가기도 힘들고 다리도 아팠다. 그런데 한참을 올라가다 보니 조그마한 절이 보였다.

 

엄마와 숙모는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먼저 법당으로 들어가시고 난 그곳에서 전에 지압을 해 주시던 아저씨를 만났다. 어떤 아저씨랑 둘이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나에게 왜 요즘은 지압 받으러 오지 않느냐며 걱정하셨다.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아저씨가 "그럼 내가 네 몸을 낫게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마. 첫째는 잠잘 때 베개를 허리에 놓고 자고, 둘째는 어떤 책을 주면 이 책을 열심히 보아라."라고 하셨다. 그 책을 받고 법당으로 들어갔으나 엄마와 숙모는 안 계시고 법당 안은 허전했던 것 같다.


다섯째 날의 꿈이다. 같이 기도하는 언니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아는 어떤 할아 버지가 있는데 산 속에서 할머니와 같이 아주 젊고 건강하게 사신다." 그런 말을 듣고 한 번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찾아 산속으로 가니 그 분들은 흰 머리가 하나없이 건강한 모습을 하고 계셨다. 그곳에는 조그마한 방이 많이 있었고 그 방안에는 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큰 건물이 있어서 안으로 들어가 보니, 계단식 강당처럼 아주 큰 공간이 나왔다. 위에서 내려다 보니 앞은 아주 작게 보일 정도로 컸다. 맨 앞 단상에는 동으로 된 부처님이 모셔져 있었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법회를 시작한다는 말을 듣고 한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옆에 언니와 그 친구가 있었다. 중간에 땅콩을 나눠 주면서 이걸 먹어야 한다고 했다. 난 받아서 맛있게 먹고 노래도 부르면서 법회를 마쳤던 것 같다.

 

여섯째 날 꿈이다. 고등학교 때 별로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던 친구들이 내 생일을 축하해 준다면서 제과점으로 불렀다. 가 보았더니 서너 명의 친구가 한 테이블에 앉아 음료수, 피자, 치킨 등을 시켜 놓고 자기들은 먹지 않으면서 나더러 살이 쪄야 하니까 많이 먹으라고해서 나 혼자 맛있게 먹었다.

 

일곱째 날 꿈이다. 그리 깨끗하지 않은 물이 내 눈 앞에 끝이 없이 펼쳐졌다. 물 위에 크나큰 다리들이 줄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한강인 것 같았다. 나는 그 물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여덟째 날 꿈이다. 산 속에 초가집이 있었는데 그 집에는 백발의 노인이 한 분 살고 계셨다. 영화 속에서 본 듯한 그런 첩첩 산중이었다. 밖에서 혼자 놀고 있는데 초가집 마루에 많은 남자들이 모여 있었다. 아마도 할아버지로부터 뭔가를 배우고 있는 듯했다.

 

이런 꿈을 꾸며 지장경 독송을 4주일쯤 계속했다. 그런데 차 차 잠도 잘 자고 몸도 가벼워지고 마음이 편안해져갔다. 지장경을 읽으며 인과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그런 뒤로는 '내 인생은 이렇게 망가져 불행하고 어둡기만할 것이다'라는 생각이 없어졌다. 지금은 내가 지은 악업으로 괴로움을 받지만 이제부터 선업을 지으면 언젠가는 즐거운 과보도 받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몸이 조금 나아지니 이제 생활에 대한 욕심도 생겼다. 지금은 하루에 한 번씩만 독경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취직 시험 공부를 하고 있다. 한 달 전만 해도 죽음을 생각했던 내가 이렇게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지장보살님께 너무나도 감사하다. 집안 식구들도 나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너무도 놀라신다. 다시 한 번 지장보살님의 위신력에 감사드리며 더욱 더 정진할 것을 다짐한다.


출처: 광륵사(www.ekayana.or.kr)

 

 

23. 방광(放光)을 한 장처사의 지팡이


수십 년 전 경북 예천에 장처사(張處士)라는 분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처사는 지팡이를 하나 짚고 다니면서 어디를 가든지 지극하게 '지장보살'을 염했습니다. 어찌나 지극하게 불렀던지 ,잠을 자면서도 지장 보살을 염하였다고 합니다. 장처사가 죽고 난 뒤 가족들이 제상(際床)을 차려놓고 아침저녁으로 상식(上食)을 올렸는데 ,그 제상에 올려놓은 지팡이가 밤만 되면 방광(放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팡이에서 뿜어 나온 빛이 온 방을 밝혀 불을 켜지 않아도 방이 환하게 밝았습니다. 그뒤 화장을 하면서 그 지팡이도 같이 불에 태웠는데 ,지팡이의 손잡이 부분에서 사리가 나오기까지 하였습니다.

 

 

24.

1) 약 20년 전 , 서울에 사는 법연거사는 40대중반에 이르러 조상님을 공경하고 공양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 조상의 영가천도와 누이동생의 임신을 기원하며 백일 지장기도를 시작하였다. 누이동생이 결혼을 한지 10년이 넘도록 아기를 갖지 못하여 불화가 잦았고 ,자주 친정으로 쫓겨 오기도 하였다.

 

법연 거사는 매일 진관사의 지장보살님께 나아가《지장보살본원경》총13품중 1품 또는 2품을 읽은 다음 ,〈지장보살예찬문〉을 읽으며 158배를 드렸다. 그리고 30분정도 ‘지장보살’의 명호를 외웠다.

 

이렇게 매일 같이 지장기도를 한지 80일가량이 되었을 때 아기를 갖지 못했던 누이동생이 임신을 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그리고 백일기도를 끝마치는 날 새벽녘에 참으로 묘한 꿈을 꾸었다. 꿈에 보통보다 약간 작은 키에 남루한 한복 차림의 노인이 나타나 말을 하였다.

 

“나는 장호원 할아버지다. 너의 덕을 입어 좋은 곳으로 가게 되었기에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왔다. ”

그리고 집안 어른들로부터도 장호원에 조상이 살았다는 말도 들어보지 못하였으므로 , 의아해 물었다.

“누구신지요” 저는 감사의 인사를 받을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노인은 서울 장위동에 살았던 법연거사의 아저씨를 데리고 와서 말하였다.

 

“이 사람이 내 손자다.”

 

그리고는 조금 있다가 포졸 두 사람이 나타나 노인을 모시고 나갔다가 돌아왔다. 노인은 이미 남루한 한복 대신에 찬란한 장군복을 바꾸어 입고 있었다. 노인은 거듭 법연거사에게 ‘고맙다’ 는 인사를 하였고 포졸들도 합장하고 정중히 인사를 한 다음 노인을 모시고 사라졌다. 너무나 실감나는 꿈을 꾼 법연거사는 집안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당숙모에게 전화를 하여 장호원 할아버지에 대해 물었다.

 

“그와 같은 할아버지가 계셨다는 말은 들었으나 나도 뵈온 적은 없다. 네가 그 할아버지를 어떻게 아느냐 ? "

 

이렇게 법연거사는 지장기도를 통하여 집안의 근심 이었던 누이동생의 잉태를 도왔고 , 가족들에게 완전히 잊혀져 있었던 선대 조상을 천도하였던 것이다.


【 출전: 지장신앙,지장기도법, 김현준, 효림, 2000년도 】

 

 

2) 산이 다하고 물이 다 한 곳에 - 지장보살님이 주신 아기 -


불광법회를 만나고서 비로소 부처님의 크신 위덕과 은혜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상님 공경하고 공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백일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조상님께서 극락 왕생하시고 저의 누이동생도 보살펴 주시고 형제들을 돌보아 주시기를 기원하고 감사하였습니다.저는 9남매 중에 맏이인데 집안과 형제들에 대한 책임도 컸지만 그무렵 출가한 동생이 소생이 없어 가정불화가 끊이지 않아 참으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개울에서 목욕하고 가까이 있는진관사를 찾아 갔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작은 정성이나마 부처님 앞에 공양올리고 지장보살님 앞에 엎드려 기도를 하였습니다.

 

진관사 부처님은 그전부터 자주 참배한 부처님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기도를 시작하는 날 법당 문앞에 서니, 무서운 생각이 들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머리가 쭈뼛쭈뼛해지고, 머리카락이하늘로 올라가는것 같았습니다. 몸은 굳어지고 어떤 전율같은 것이 온몸을 휘감았습니 다.

 

저는 손에 염주를 들고 단단히 마음먹고 법당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한걸음 법당에 발을 들여 놓았을때 그때의 지장보살님과 시왕님의 무서운 상호를 지금껏 잊을 수 없습니다. 크게 노하신 것처럼 저에게는 느껴졌습니다. 어떤 힘이 저를 법당 밖으로 밀어내는 것같은 느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기도 첫날이니까 물러갈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에는 시험도 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만 그렇게 무서운 때는없었습니다. 저는 눈을 꽉 감고 일심으로 합장하고 부처님께 예경드렸습니다.

 

스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지장보살경 1품 또는 2품을 읽고, 지장예찬문을 읽으며 백 오십 팔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30분간을 일심염불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기는 듯 법당에서 나오곤 하였는데 이러한 힘든 경계가 1주일 후에야 바뀌었습니다.

 

차차 그런 경계가 사라져 1주일이 지난 후부터는 지장보살님이 반겨 주시는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독자들은 어찌 장부가 그런 요망한 말을 하느냐고 꾸지람 하시겠지만저는 거짓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표정이 나날이 반겨하시고, 기뻐하시는 표정으로 바뀌었으며 법당 근처에 오기만 하여도 반겨주시는 것이 가슴으로 와 닿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백일간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도를 하였고 그 사이에는 오직 환희심과 감사로나날이 지나갔습니다. 집안 이야기를 드리자면, 제 여동생이 충청도 제천에 사는데 결혼하여10년이 넘도록 아기를 갖지 못했습니다.

 

집안 어른들은 한결같이 후사를 바랐지만 아이를 낳지 못한채 세월이 흐르니 어른들의 불만이 겹쳐서 불화가 빚어지고 마침내는 몇번이나 친가로 쫓겨 오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일을 여러차례 겪고 나니 친정의 큰 오라비라고 하는 책임에서 고민하다가 부처님께 기도를 드리자고 하였던 것입니다.

 

기도를 시작한 후 세달 가까이 되니 임신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동안 하도 걱정했던 일이라믿기지 않더니 드디어 달이 차 금년 봄에 아들을 순산했습니다. 병원에서 의사는 난산을 예고했습니다만 저는 부처님만 믿고 아들 순산을 선언하고 집에 왔더니 과연 꿈만 같은 일이 이루어졌습니다.백일 기도를 마친 저는 계속하여 또 백일기도에 들어갔는데 하루는 희한한 꿈을 꾸었습니다.

 

어떤 분은 또 꿈이야기냐 하시겠지만 이 꿈은 정말 꿈같지 않은 꿈이었습니다. 새벽녘인데 꿈속에 어떤 노인이 나타났습니다. 키는 보통보다 약간 작은편이고 남루한 한복 차림에 아무렇게나 수염이 났으며 머리에는 갓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너의 덕을 입어서 내가 좋은 데 간다. 그래서 인사하러 왔느니라. 나는 장호원 할아버지라고 한다." 저는 반문했습니다.

 

"누구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런 인사 받을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하였더니 서울 장위동에 사시는 저의 아저씨를 모시고 왔습니다. 그리고서는 "이 사람이 내 손자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더니 역사물 TV에서 보던 포졸형식을 한 두사람이 나타나서 그 노인을 모시고 갔습니다. 그리고 금방 다시 돌아왔는데 그때 노인은 새옷으로 갈아 입었고 그것은 옛 장군복 같았습니다.

 

저에게 가까이 와서 거듭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포졸 형색을 한 사람도 합장하고 정중히 인사하고 노인을 모시고 갔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실감있는 꿈이었습니다. 아침에 잠이 깨자 저는이상한 생각이 가득했습니다. 저는 일찍이 그런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진관사에 가서 기도하고 그 길로 사무실로 나가 당숙모댁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당숙모는 올해 83세이신데, 16세에 시집오신 저희 집안의 산 역사이십니다. 전화로 "장호원할아버지가 계셨습니까."하고 물으니 형상을 물으셨습니다. 제가 본 대로 형상을 말씀드리니 "내가 그 할아버지를 뵙지는 못하였지만, 그러한 할아버지가 계시다는 말은 들었다. 근데 너는 그 할아버지를 어떻게 아느냐."하셨습니다.

 

저는 그동안 조상님을 위한 기도이야기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당숙모는 "참 잘했다. 나는 천주교를 믿고 있지만 조상님을 위해서 그렇게는 해보지 못했다. 너는 참으로 잘했구나"하시며 기뻐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지. 경전 말씀에 일체중생이 미혹하여 어둠을 방황하고 불보 살님이 능히 이를 구원하신다 하였고 일심으로 염불 기도하면 모든것이 이루어진다고 한 것을 생각할 때 신기하기도 하지만은 우리가 알수없는 세계에서 일어난 현실의 한 단면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의 조상님은 확실히 이름모를 분까지 모두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꿈에 본 무주고혼

 

그런데 저에게는 저의 생친이 계시고 또 큰아버님이신 아버님이 계십니다. 말을 바꾸면 큰아버님 앞으로 몫이 지어진것입니다. 두 어른모두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가신 지 오래입니다.

 

저는 편모 슬하에서 자란 까닭인지 아버님에 대한 사모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습니다. 부처님 법을 믿으면서부터 제사는 정성드려 올렸지만 그래도 모자라는 듯하여 백일기도를 시작했습다. 매일 아침 개울에 가서 냉수욕을 하고 진관사에 참배하고 지장보살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스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반야심경을 봉독하고 지장경을 독송하였습니다. 그리고 염불하며예배하고 예배하며, 염불하는 것으로 정근일과를 삼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기도에는 아버님을 위한 기도와 아울러 저의 기도인연 으로 무주고혼들까지도 모두 부처님 은혜를 입기를 기원했었습니다.

 

저는 매일 기도 일과를 정확히 지켜 나갔습니다. 그런데 100일 기도를 하면서 홀로 정근하고부처님앞에 약간의 공양을 올렸을 뿐 무주고혼들을 위하여 시식은 8월18일 회향날로 잡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지고 진관사 개울에는 빠알간 꽃물이 다 흘러가고 어느덧 여름이 한창인때였습니다. 그때가 7월말 경이었는가 합니다. 새벽 늦게 꿈을 꾸었습니다. 저는 낯익은 진관사 일주문 안에 서 있었습니다. 그건데 별안간 수십, 수백명의 낯설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저를 둘러쌌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진관사를 향하여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저를 둘러 싸며 "배가 고프오, 못살겠소. 어서 먹을 것을 주오."하고 일제히 소리소리 질렀습니다. 저는 말하기를 "오는 8월 18일까지 기다려 주시오. 그때는 소참이나마 준비해서 대접하겠오."하였으나 저들은 막무가내였습니다.

 

"배가 고파 못견디겠오. 어서 밥을 주시오." 하고 외치는 것 이었습니다. 저는 잠시 난처해졌는데 순간 저의 곁에 위풍이 당당하고 키가9척이나 됨직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대대장이오. 이대로 있어서는 아니니오. 우리 병력을 풀어야 하겠오. 객귀들 하나라도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하오." 하더니 금방 일단의 병력이 나타났습니다. 모두가 군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저에게도 군모와 군복이 배당되어 곧 입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팔짱을 끼어 스크럼을 짜고 빈틈없이 줄을 서서 전진하였습니다.그런데 여전히저들은 밥을 달라고 아우성이었습니다. 저는 그 속에서도 20일만 기다리라고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는데 저 대대장이라는 사람을 말하기를 저들에게 무엇인가 먹여야지 그냥 두면 안된다."하더니 어디서 날라 왔는지 큰 밥통에 밥과 나물이 운반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비빔밥을 만들어 군대용 반합에 담아서 우리 군인들이 숟가락으로 퍼서 저들을 먹였습니다.

 

수백명의 군인들이 한줄로 서서 그 앞에 밥을 먹겠다고 모여들어 웅성대는 군중들에게 큼지막한 숟가락으로 비빔밥을 쉴사이 없이 퍼먹이는 광경은 참으로 장관이었습니다. 한참동안 그러는 사이에 거기에 모여 있는 모든 객귀들을 배부르게 먹였습니다. 그러고 나니 앞서의 대대장이라는 9척이나 되는 사람이 앞에 나와 일장연설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좀체 들어보지 못한 훌륭한 법문을 설하는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너희들은 마음이 어두워 이런 고생을 한다. 마음을 밝히자면 부처님을 믿어라. 그리고 이제까지 저지른 잘못을 참회하라. 그리고 부처님 믿고 염불하여 극락세계에 나아가라. 이번에 너희들이 배부르게 먹고 극락세계에 가는 것은 법연거사의 은덕이니 그 은혜를 잊지 말라"

 

이말을 들은 군중들은 일제히 저를 향하여 절을 하며 감사인사를 하고 기쁜 얼굴로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대대장이라는 사람은 또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이 가운데 혹 기독교신지가 있으면 손을 들어라"하니 역시 여러 명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들에게 말하는 것 이었습니다.


너희들은 법연거사의 은덕으로 하늘나라보다 더 좋은 극락세계로 가게 된다." 하며 앞서 말을 기독교적 표현으로 바꾸어 되풀이하고 나서 "법연거사에게 감사하라"하였습니다. 역시 그들도 앞으로 나와 저에게 각별한 인사를 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눈으로 보는듯 생생한 것은 그들의 기쁨에 넘치는 얼굴입니다.

 

그것은 흡사 법회를 마치고 나오는 저희들의 얼굴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꿈을 꾸고 나서 "객귀"라는 것이 무엇인지 처음 듣는 말이라 스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것은 "무주고혼"이라는 말씀을 들었을때 저는 비로소 이번 기도의 목표인 선망부모와 무주고혼을 위한 기도가 성취됐음을 알았습니다. 사람은 죽으면 그만인 것이 아니라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을 다시 실감합니다.

 

분명히 인간은 육체나 현실생활이 다가 아니며 사후 영혼의 생활만도 다가 아닌 불멸의 세계가 또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기도에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저와 같은 제가불자의 독경,염불의 공덕이 경전말씀 그대로 불가사의하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은,지장보살은 절에서만 부르는 것이라 하는데 이 말은 정말 잘못된 말입니다 또한 가지는 중생세계에는 무주고혼과 같이 시장(배고픔)을 견디지 못하는 불쌍한 중생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을 누가 보살펴 주고 구재하여 밝은 길로 인도하여 주겠습니까? 불법만이 제도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진정 우리 부처님만이 모든 생명을 밝히고, 구원해 주는 영원한 광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효성을 일으키고 자비심을 일으켜 조상님과 무주고혼에게 부처님의 법문을 열어주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1983년)


출처: 산이 다하고 물이 다한곳에 (불광출판부 법연 이광연님의 체험수기)


 

25.

여든을 바라보고 있는 서울의 홍서주 보살이 약 20년 전에 체험한 일이다. 당시, 그녀의 아들은 합판상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대리점으로부터 거래대금 300만원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 돈을 달라고 하자 대리점 사장은 묘한 제안을 하였다.

 

"지금은 나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한 건만 해결하고 나면 아주 괜찮아집니다. 1,500만원만 융통해 주십시오. 300만원도 바로 드리고, 1,500만원은 약속어음을 발행하여 500만원씩 세 달 동안 갚겠습니다."

 

아들은 300만원을 받을 욕심으로 누나의 남편인 매형에게 1,500만원을 빌려 대리점 사장에게 주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서주보살은 은행에 대리점의 신용을 알아보았더니 언제 부도가 날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1,500만원은 매우 큰 돈이었고, 잘못되면 딸의 가정에도 큰 회오리가 몰아칠 판이었다.특별한 방법이 없었던 서주보살은 지장기도를 시작하였다. 매일 오전 10시와 오후 10시에 <지장보살예찬문>을 독송하며 158배씩의 절을 올리고, 지장보살염불을 하였다. 자비하신 지장보살님께서 이 어려움을 막아주실 것을 확신하면서….

 

마침내 500만원 1장의 기한이 돌아왔고, 그 전날밤 보살은 꿈을 꾸었다. 많은 조상들이 배를 타고 떠나려고 하는데 배가 진흙벌에 박혀 움직이지 않았다. 모두가 애를 태우고 있을 때 한복차림의 키가 훤칠한 남자가 나타나 배를 밀었고, 배는 물에 떠 순조롭게 바다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은행에서는 오후 5시 10분전까지도 입금이 되지 않았다고 하였다. 보살은 지난밤의 꿈을 생각하면서 꼭 도와주실 것을 믿고 속으로 소리쳤다.'부처님, 감사합니다. 지장보살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5시가 되자 은행원이 '현찰로 줄까, 수표로 줄까' 하고 묻는 것이었다. 보살의 기쁨과 놀라움과 감사는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었다. 그 뒤에도 서주보살은 지장기도를 계속하였고 두 번째 약속 날짜가 다가오자 또 꿈을 꾸었다.

 

아들이 큰 나뭇가지에 매여 있는 그네를 타고 있는데, 갑자기 한쪽 그넷줄이 끊어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네를 멈추려 하였지만 어찌나 힘차게 흔들리는지 잡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그넷줄이 막 끊어지려는 순간, 지난 번 꿈에 배를 밀어주었던 분이 나타나 나무 위로 뛰어오르더니 말을 하였다.

 

"손에 쥐고 있는 밧줄을 던져라."

 

어느새 보살의 손에는 밧줄이 쥐어져 있었고, 그것을 던졌더니 곧바로 받아 끊어지려는 그넷줄을 고쳐 매는 것이었다. 보살은 꿈 속에서도 조이던 가슴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좋아하였고, 두 번째 약속어음 500만원도 마감시간이 다 되어 해결되었다. 세 번째도 서주보살에게는 현몽이 있었다. 아들과 함께 산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들을 따라가자 법당과 비슷한 넓은 방이 나타났으므로 거기로 들어가 대중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잠시 뒤 모습이 매우 수려한 스님 한 분이 나타나 문밖에서 안을 살피더니 보살을 보고 손짓을 하며 부르셨다.

 

"길을 잃어 집으로 갈 수가 없지? 이 길을 따라가라."

 

보살과 아들이 가르쳐 준 길을 따라 조금 걸어 내려오자 아래쪽에 사는 동네와 빈집이 보이는 것이었다. 물론 세 번째 약속어음도 잘 해결되어 1,500만원을 모두 받을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그 대리점은 그 후 곧 부도가 나서 망하였다고 한다.


출처: 도서출판 효림 김현준저 지장신앙 지장기도법

 

26. 법운거사 부부의 죽음을 초월한 지장기도


며칠 전 불성계발훈련이 실시되고 있을 때였다. 이날의 주제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괴로웠던 순간과 가장 기뻤던 순간의 나의 이야기'를 가지고 자기 노출을 하는 것이었다. 법운(法雲)거사가 초대받자 눈을 지그시 감고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지난 1년 6개월은 나의 생애 가운데 가장 힘들었지요. 그러나 그 고통이 끝난 날은 생애 최고의 기쁨을 느꼈습니다."

 

법운 거사는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했다.

 

"내가 포교원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내 자비행 보살에게 어려운 문제가 생겼지요. 아내는 열심히 절에 나가고 신심도 깊었지만 자신의 문제를 혼자 해결하기에 너무 힘이 들었던지 나에게 의논을 했어요. 글쎄, 그 고민이라는 것이 너무나 황당한 것이었어요. 매일 저녁 꿈에 저승사자가 나타나 날짜까지 정확히 알려주면서 1년 6개월후에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아내가 다니는 사찰 스님께 말씀을 드렸는데 기도만 열심히 하라고 일러 주었다. 그러나 생각대로 기도는 되지 않고 고민만 점점 깊어 갔던 모양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신심이 너무나 약해서 걱정이 태산 같았어요. 그래서 법사님께 상담을 드렸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 하시기에 순간 무슨 해결방법이 있구나 하고 안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때 법운 거사의 모습은 너무나 근심스러워 보였다. 젊은 나이에 아내가 잘못 될 수도 잇다는 생각을 잠시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갈 것이다.

 

"법운 거사님, 지금부터 아내를 끔직히 사랑해 주세요. 신혼부부 시절의 사랑으로 돌아 가세요. 아내를 사랑하는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 전에 공덕을 지으면 지금의 이 고통이 오히려 기쁨으로 변할 것입니다. 공(功)을 드려 덕(德)이 생기는 것 아니겠어요. 『지장경』「제6품 여래찬탄품」에보면 '만약 십재일에 불 ·보살과 모든성현의 존상 앞에서 『지장경』을 읽으면 모든 재앙과 고난이 없으며 , 그가 사는 집안에 어른이나 어린이가 현재 또는 미래 백천 세계에 영원히 악도를 여의게 될 것이다'하였지요. 그러니 지금부터 십재일뿐만 아니고 매일 지장 보살의 말씀을 믿고 함께 기도해 나갑시다.“

 

법운 거사님은 이 제의에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하고 있었다. 다음날, 법운 거사의 자택에 방을 비워 작은 원불을 모시고 몇 사람이 모여 점안법회를 실시하였다. 법문을 통하여 지장보살의 원력에 대하여 설법을 하였다.

 

"지장보살님은 구원의 보살입니다. 여러분이 가장 힘들어 하실 때 지장보살님은 여러분을 구원해 주십니다. 여러분의 믿는 마음이 깊으면 깊을수록 불심은 믿는 이의 마음속으로 배어듭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의 마음으로 섞이고 ,그러함이 느껴져서 서로 통할 때 부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일심으로 기도할 때 신앙의 힘은 솟아나고 모든 일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서 화·복은 자재롭게 될 수 있습니다. 지장보살은 '염부제 중생을 살펴보니,몸 움직이고 생각 일으킴에 죄 아닌 것이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열반경』에서'온갖 제유(諸有)를 벗어남을 이름하여 열반이라 한다 '고 하셨습니다. 부처님이 말씀 하시는 제유란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게되는 여러 가지 차별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침마다 밝은 태양이 높이 떠오르고 대자연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데 유독 인간의 마음은 탐욕으로 가득 차서 지옥을 떠도는 모습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장보살은 인간의 고통의 세계를 절대로 피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고통받는 중생을 건져주시려는 지장보살의 원력을 믿고 나면 어떠한 고난도 극복할 수 있을 것 있을 것입니다. “

 

이날부터 법운거사 부부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예불을 모시고 『지장경』을 읽었다. 부처님을 향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일관하게 생활했다. 법운거사를 아끼는 법우들은 매월 정기적으로 한번씩 모여 『지장경』을 독경하며 ,강설을 들었으며 ,함께 기도하였다. 저승사자가 나타난다는 마지막 날 저녁에 많은 법우들이 가정법회를 열고 법우들이 돌아간 후 우리부부는 계속해서 간절히 기도하면서 기다렸어요. 그때 갑자기 눈앞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지장보살 님이 구름을 타고 나셨어요. 금빛 찬란한 빛을 발하면서 서서히 아내 앞으로 다가 오셨어요.

 

우리는 너무나 감격했어요. 지장보살님을 친견(親見)하다니, 어찌된 일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지요. 지장보살 님의 입안에서 향내음이 넘쳐 나와 방안을 가득 채우고 온몸을 감싸니 1년 6개월 동안 긴장된 몸과 마음이 일시에 가벼워짐을 느꼈어요. 너무나 편안 했어요! 세상에 태어나 가장 환희로운 순간을 맞이했던 겁니다.

 

이곳이 극락이구나 생각하면서.'아!지장 보살님 감사합니다'하고는 눈을 뜨니 새벽이었어요. 온몸이 촉촉이 젖어 있었어요. 우리는 말없이 서로 마주 보고 빙그레 웃었어요. 살아 있구나 하는 확인이었지요. 나는 아내의 땀을 딲아 주었어요. 부부는 3천겁의 인연이라 했던가, 부부는 이생에서 인연맺어 살아 가면서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맞이하게 된다. 아내의 고통을 덜어주고, 괴로움에서 구제하기 위하여 가정에 부처님을 모시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아내를 위하여 기도하던 법운 거사님이 오늘은 왠지 존경스럽다. 1년6개월의 긴시간 동안 조금도 흔들림 없이 정진하던 법운거사 부부의 사랑은 불자들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우리에게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온들 법운거사 부부처럼 깊은 종교적 믿음과 사랑이 있다면 무엇이 문제가 되랴?

 

『출전:기도가 간절하니 가피를 입지,이동성,정우서적,2000년도』


 

27. 불연(佛緣)을 맺게 해준 지장기도


콜레라에 걸린 첫돌 된 아기는 하루에도 몇 번씩 싸고 토하고 밤새 울고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태였다. 몇날 며칠을 그렇게 싸고 토하니 아이는 탈진상태가 되고 나의 몸은 지칠 대로 지쳐서 죄받을 소리지만 서도 저 아이가 차라리 죽었으면 싶었다.

 

오죽이나 보기에 안타깝고 가슴이 메어지면 그런 무서운 생각을 했을까 , 탈진한 아기는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물론 병원은 매일 매일 열심히 다녔으나 웬일인지 설사도 멈추지 않고 토하는 것도 별차도가 없었다. 마침내 아이는 눈을 아예 감고 헐떡거리고만 있었다. 도저히 살아날 가망은 없는 듯 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아이를 등에 업고 며칠 밤을 꼬박 세우기도 했다. 하루는 아이를 윗목에 이불을 덮어씌운 채 밀어 놓았다.

 

이젠 도저히 어쩔 수도 없으니 차라리 죽으면 저 헐떡거리는 숨소리는 멎으면 그만 이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아파서 정신이 없는데 설상가상 애들 아빠는 집에를 며칠째 안 들어오고 있었다. 애들 아빠가 능력이 없어서 친정 건넌방에 잠시 와 있을 때였다. 그땐 어디에도 매달릴 끄나풀도 없으며 의지할 곳도 없는 처지였다. 종교가 무엇인지 조차도 알지 못하던 때였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것은 친정 건넌방에 얹혀 있는 처지인데도 , 아이들 고모가 결혼을 했다가 아이를 하나 낳아 놓고 억울하게 죽었기에 ,나는 아무것도 해놓지 못하나 항상 마음속으로 그 고모가 좋은 곳으로 극락 왕생 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음력 4월이면 그 고모의 밥 한 그릇 이라도 형식상으로라도 윗목에 떠놓았다. 물론 뭔가를 알고 했음이 아니고 다만 이상하게 아이들을 위하여 그 고모님의 밥을 떠놓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었다.

 

그 몇 년 전에 우연히 ,아주 우연히 금호동 극장 옆 민가에 절이 있기에 아이를 업고 지나가다가 무심코 들렀던 적이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으나 그곳은 너무 작고 초라했으며 다시 되돌아 나오고 싶었던 생각이 드는 곳이었다.

 

아이를 업은 나 역시 젊고 초라한 모습이었으리라. 머리를 기른 나이든 아주머니가 힐끗 쳐다보더니 본체 만체 하고 자기 일만 계속 했다. 나 역시 계면쩍어서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어서 밖으로 나오려는데 가만히 아주 조용하게 "지장보살"하는 소리가 안에서 들려 왔다. 밖으로 나오려던 나는 뒤를 돌아봤다. 저게 무슨 소린가? 나는 소리나는 데로 몇 발짝 옮겼다. 냄새까지 나는 집 ,아주 더럽고 지저분한 집이었다.

 

한쪽 방에 문이 조금 열려 있어서 그곳을 들여다 보았더니 아주 초췌하고 늙고 나이든 남자가 냄새나는 방에 누워 있었다. "지장보살, 지장보살…"아주 가느다란 목소리로 지장보살을 외고 있었다.

 

나는 잰걸음으로 빨리 그 집을 나와 버렸다. 왜 그리 그곳이 지저분하고 싫었던지.... 그런데 몇 년이 지난 지금 아이가 사경을 헤매는 데 나도 모르게 그때의 그 꺼림 직한 집에서 흘러나오던 "지장 보살"이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흘러 나오는 것이었다.

 

"지장보살"아마도 아픈 사람이 불러서 좋은 말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초라하고 병에 찌든 모습의 그 남자가 부르던 소리. "지장보살"나는 무심코 아이를 윗목에 밀어 놓은 뒤에 눈물을 흘리면서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사람인지 귀신인지 누군 지는 몰라도 나는 울면서 한참을 그렇게 앉아서 찾았다.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무엇인지 모를 상대를 그렇게 애절하게 찾았다. 아마도 지금으로부터 30년이 넘는 그때부터 나는 지장 보살 님과 인연이 맺어진 것이리라.

 

잘되면 내 탓이요, 못되면 부모 조상 탓이라고 내가 이렇게 되어야만 하는 환경 자체도 부모가 원망스러웠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몇 시간인가, 얼마 나였나 모르는데 문득 이게 아니다.

 

아이를 업고 오랜 경험이 있는 나이 드신 의사가 있는 소아과를 찾아가자 하고 정신이 퍼뜩 들었다. 정신 없이 지장기도를 하다 보니 윗목에 아이는 헐떡이고 있고 밖은 어느덧 밤11시가 넘었는지 깜깜했다. 어떻게 아이를 업고 달려갔는지 모른다. 다른 때는 병원간판도 많이도 보이더니 그날 따라 아무리 병원을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밤11시가 넘은 뒤라 문도 다 닫았을 것이다.

 

나는 엉엉 소리를 내어 울면서 송장처럼 차디찬 아이를 등에 업고 얼마나 한참을 헤맸는지 모른다. 저 만큼서 아주 히미 하게 ㅇㅇ의원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아이가 하도 말라서 등에 아이가 있는지 조차도 감각이 없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 불빛을 만난 듯 ㅇㅇ의원 앞으로 가서 무작정 문을 두드렸다. 아무런 기척이 없다. 또 두드렸다. 양심도 체면도 없었다. 한참 만에야 문을 비스듬히 열고 그때 내 생각으로는 60이 훨씬 넘은 할아버지가 짜증스런 얼굴로 내다보았다.

 

"할아버지 , 살려 주세요. 아이가 죽어요"크게 소리쳤다.
"누구요?" 하더니 그 할아버지는 다시 문을 닫으려 했다.
"살려주세요, 우리 아이를 구해 주세요. 제발!"하고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마지못해 할아버지는 "들어와"하고 문을 열어 주었다. 아이를 데리고 들어간 곳은 낡고 허름한 진찰실이었다. 정말로 수리를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아이를 딱딱한 침상에 눕히고는 아이의 눈을 벌려보고 배를 만지더니 할아버지는 혀를 찼다. 이런 애를 이렇게 될 정도로 놔두었어 ,죽일 것들 ……"무서운 눈으로 나를 바라 보았다.

 

그러더니 천천히 다 낡은 서랍 속에서 천천히 알약을 몇 개 꺼내서 하얀 그릇에다 득득 갈기 시작했다. 약을 가는 그릇이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갔고 그릇이 너무 더러웠다. 약을 갈아서 또 물약 같은 것을 꺼내더니 "이 것 먹여" 하면서 퉁명스럽게 내주었다.

 

나는 무조건 밤에 의사를 만난 것이 감사하고 약을 받은 것이 기뻤다. 어떻게 집을 왔는지 모른다. 인사나 제대로 했을 리가 없다. 아이는 너무나 탈진 상태로 죽은 듯이 입을 벌릴 줄 몰라서 내 입에다 약을 한 모금 물어서 아이 입에다 조금씩 흘려주었다. 반은 아마도 흘렸기에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어느 결에 잠이 들었는지 모른다. 얼마나 잤을 까? 찬기가 느껴져서 아이가 있는 자리에서 이불이 들썩들썩 거렸다. 놀란 가슴에 이불을 벗기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이게 웬일인가, 아기는 두손을 저으며 까만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나는 아가! 아가! 소리치며 아이를 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무심코 시계를 바라보았더니 새벽 5시가 넘어 있었다. 서너 시간을 잔 듯 했다. 나도 지친 몸이라 잠이 들었으리라. 우리 아기는 그렇게 살았다. 필히 죽을 것을 그 할아버지가 살리 신게 아니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무작정 아이를 안고 허공에 대고 절을 했다. 보리차를 미지근하게 데워서 입에다 떠 넣어주니 아이는 받아먹었다. 그리곤 곧 잠이 들었다. 나도 아기를 안고 잠이 들었다.

 

며칠 뒤 나는 몸을 추스르고 아이를 회복시킨 다음에 그냥 그대로 있을 수가 없어 아이를 업고 그 감사한 할아버지를 찾아 길을 나섰다. 헌데 이상한 일이었다. 이런 경우를 두고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 하는가. 어디가 어딘지 도저히 몰라서 찾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다시 간 길을 돌아서 또 가고 또다시 되돌아서 그 날밤의 기억을 아무리 되새겨서 그곳을 찾으려 하였으나 허사였다.

 

그 이튿날도 또 그 이튿날도 아무리 찾으려 하였으나 허탕을 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갔다. 이 불쌍한 인간을 가슴아픈 일을 당하지 말라고 부처님께서 지장보살님을 시켜서 우리아이를 구해주신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금호동을 며칠씩이나 뒤져도 못 찾다니 …

 

우연한 기회에 우연한 인연으로 몇마디 흘러들은 "지장보살님"감사합니다. 지장 보살 님의 위신력은 무궁 무진 하다는 것도 이제야 비로소 진지하게 나마 느끼고 살고 있지 않은 가 생각한다.

 

내가 이제 지장보살의 위신력을 관찰해 보니,
항하사 겁을 설하여도 다 할 수 없네.
한 순간만 보고 듣고 우러러 예배하여도,
한량없는 이익이 하늘과 땅에 넘쳐나리라.

지심귀명례 백천방편 교화중생 지장보살!!
두손을 모아 나무 대자비 대원본존 지장왕보살 마하살!!!


출처: 오! 지장보살님 나는 언제 지옥문을 두드리나이까?(박영옥 , 관음문화사, 2002년도

 

 

28. 교통 사고 후 새 삶을 열게 한 간절한 지장기도

 

오늘 혜광(慧光) 거사는 5계를 받고 불자가 되었다. 특별한 계기가 아니고는 남자신도가 수계를 받는다는 것은 불교계의 현실로 대단히 드문 일이다. 그래서인지 오늘 수계법회에는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진다. 30여 명의 새 불자 가운데 혜광 거사는 첫 번째로 수계를 신청했으며 , 오늘 만큼은 직장을 뒤로하고 부처님 전을 찾은 것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다.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혜광 거사는 온전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직장에 야간근무를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연락을 받고 대학병원으로 올라갔다. 중 환자실에 누워있는 환자를 바라보니 앞이 캄캄했다. 온몸에 붕대를 감아 놓아 도무지 알아 볼 수가 없었다. 식물인간이 되어 피부는 검게 변하고 있었다. 가족들은 이미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넋이 나간 상태라 도무지 위로의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혜광 거사의 아내 보명심 보살은 포교원의 자원봉사 활동을 열심히 해온 신심이 돈독한 보살이었다.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보살님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지장보살님이 옆에 계십니다. 오늘처럼 어려 울 때 지장보살을 부르면 반드시 가피를 주실 것입니다. 자, 힘내세요. 저와 함께 이 순간부터 함께 기도합시다. 생명은 존귀한 것입니다. 회복할 가능성이 단 1%뿐이라도 기도하면 불보살님은 응답해주십니다."

 

그것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간과 위, 장의 파열로 인하여 오장육부에 지혈이 되지 않아 의사 선생님도 가재로 그냥 봉해 놓은 상태였다. 중 환자실을 나오는 사람들마다 말을 못하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보살님의 손을 잡고 다시금 지극한 마음을 다하여 기도했다.

 

"대원본존이신 지장보살이시여,당신의 고통받는 중생이 찾으시면 기꺼이 다가오셔서 고통속의 중생을 건지시기 위하여 성불도 늦추셨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당신의 제자 보명심 보살의 남편이 교통사고로 인하여 생명이 위독하오니 살펴주시옵소서. 오늘 이러한 병고는 모두가 지난날 지은바 어두움의그림자라고 생각합니다. 지장 보살님, 이 고통 속에 잇는 가엷은 중생이 생명을 건지면 저는 반드시 진실한 불자로 평생토록 살아가도록 인도하겠나이다.“

 

이러한 원을 세우고 보명심 보살님과 약속을 했다. 100일 동안 매일새벽4시, 그리고 사시(오전9∼11시),저녁7시에 함께 기도하며 회향은 환자가 완쾌된 후 포교원에서 함께 하자는 것이었다. 도저히 이루어지기 어려운 원이었지만 지잘 보살님의 원력은 어떠한 고난도 이겨낼 수 있다고 하였으니 최선을 다해보기로 결심하였다.

 

이때부터 간절한 기도는 시작되었다. 새벽부터 기도를 시작해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오직 한 생명을 살려 보려는 순수한 열망으로 기도했다. 포교원 신도들도 각종 기도나 법회를 봉행 하면서 다함께 마음을 합하여 기도에 임해주었다. 간절한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지나가듯이 숨죽이며 환자를 지켜보기를 50여 일이 되던 날 새벽,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보살님의 전화였다.

 

"법사님 남편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의사 선생님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조금씩 좋아진다고 그러셨어요."
"아. 그래요 잘됐군요. 올라가 뵙겠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다. 환자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2차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2차 수술 후 회복만 되면 생명을 건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 까진 산 넘어 산이었다. 불 보살 님께 감사 드렸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다시금 간절함을 더하여 기도에 몰입했다. 드디어 환자는 다행스럽게 2차 수술을 마치고 며칠 후 눈을 떴다. 그리고 고통을 호소하듯 얼굴을 찡그리기도 하였다. 환자의 이마를 어루만져주고 ,합장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환자는 눈을 뜨고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쉬는 모양이었다. 병실을 나왔다.

 

"보살님 ,힘 내세요.이제 확실하게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더욱 열심히 기도합시다."

 

보살님도 표정이 많이 밝아져 있었다. 환자를 면회하는 시간외에는 오직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을 일과로 삼고있었다. 환자는 3차 수술을 받아야 했다. 오장육부가 성한 곳이라고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3차 수술이 무난히 끝나 회복되었고 산소마스크 도 뗄 수가 없었다.

 

조금씩 움직이고 말을 하더니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문병을 갈 때마다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다. 몸의 피부 색깔도 조금씩 제 색깔을 띠기 시작하였다. 70여 일이 지나면서 조금씩 죽을 먹기 시작했다. 지옥을 넘나들며 처절한 고통을 당하던 혜광 거사는 이제 계절이 바뀌면서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육신 어느 한곳도 성 한곳이라고는 없지만 모두가 회복되었고 전신건강도 되찾게 되었다.

 

100일이 되던 날 환자는 그렇게도 원하던 퇴원을 했다. 그리고 포교원에 도착하여 회향기도를 봉행하였다. 많은 신도들의 축하 속에 조금은 힘들어 하면서도 그의 눈에는 삶에 대한 강한 집념과 새로운 출발에 대한 환희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 순간 불자의 길을 가기 위하여 수계를 받는 저 모습이 마치 도를 구하려 출발하는 수행자의 모습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계사가 수계자에게 연비하는 동안 헤광거사는 대중과 함께 끓임 없는 참회진언을 하고 있었다. 다시금 계사스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연비 할 때의 따끔한 그 찰나에 여러 생에 지은 모든 죄업이 마치 마른 풀이 불에 타면서 사라지듯 순간에 소멸되었습니다."

 

헤광 거사는 자신에게 들려오는 청정한 스님의 말씀에 합장으로 공감하여 감격해 하였다.

 

나무 유명교주 지장보살 마하살!
나무 남방화주 지장보살 마하살!
나무 대자비 대원본존 지장보살 마하살!


(출전: 기도가 간절하니 가피를 입지,이동성법사,정우서적,2002)

 

29.

마음이 답답하고 외롭고 허전할 때 , 나와 그 형님은 각각 홀로 이름 난 절에 바람처럼 다녔었다. 절은 교회와 달리, 왔다고 잘왔노라 반기는 이 없고, 간다고 잘가라고 배웅하는 이 없었다. 물론 그런 점이 우리를 더욱부처님 앞으로 끌려가게 한 힘 이었는지, 혹은 인연이 그런것이었는지...

 

절하는 법도 몰랐고, 염불도 모른채 , 답답한 마음에 보문사, 전등사, 수덕사, 구룡사, 낙산사,,,기타 도착해서는 고작 남들 절하는 모습 뻘쭘히 넘겨다 보다가 경내 한바퀴 휘돌아 보고 돌아 오는게 고작이었다. 그래도 다녀오지 않은것 보다는 나았으니까. 그러길 수년이 흐른 어느날 어느 보살님의 권유로 작은 절에 이름을 올리고 지장경 한권과 108염주를 스님께 서 주신걸 받아 가방에 챙겨넣고 인연을 맺은지 불과 6개월 남짓 되었을까?

 

형님은 간절한 마음으로 100일 지장경 완독 하는 기도를 시작하셨다. 일이 바빠 새벽에 귀가하는 날 에도 2시간 넘게 걸리는 기도를 빠지지 않고 지성으로 하셨는데, (나는 7일 만 하였는데도 엄청 힘들어서 7일 기도로 끝내고 나의 능력에 맞게 천수경 1독씩 으로 매일 바꾸어 하고있다.)

 

100일 기도 완료 이틀전 형님을 경제적으로 너무나 힘들게 하던 부동산 매매가 이뤄질 거 같다는 부동산사장님의 전갈이 왔다. 누가 봐도 그 물건은 임자가 나설 것같지 않아 모두가 포기 하라고 했던 물건 이 었는데 매월 수백만원의 고리만 지불하면서 골머리를 썩혀 왔었으며, 명의가 4명이나 더 되어 있어 문서에 도장 찍을 일 도 예삿일이 아니었다.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당시로선 기적이 일어나지 않으면 도저히 성사가 불가능 해 보였다. 한옥 보존지역 이라 신축은 도저히 불가능하며, 본채에 새로 증축을 하여 지붕이 기와 와 스렛트가 맞물려 외관도 우스워 보였으니...

 

그러나 기도도 무사히 끝내고, 잔금까지 무사히 받았다. 우리는 그 것을 지장기도의 영험이 아니면 불가능 했으리라 생각한다. 형님과 나는 그 이후 3000배 7번 완성을 하리라 하며, 참회기도를 하고 있다. 반드시 어떤 원을 세워놓고 하는것은 아니고, 올바른 생활을 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것 같아 너무나 즐겁다.


출처:나무아미타불카페 불교의 영험록 송 ㅇㅇ님 글

 

 

30. 석장을 짚고 단을 내려와 제게로 걸어오시던 지장보살님” 저는 오늘도 그 모습을 뵙니다.

 

精進行/28기 출처:능인선원

 

세상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빛과 색이 있습니다. 들에 핀 이름 없는 한 포기 들풀도, 작은 조약돌 하나도 그만의 투명한 아름다움을 지닌 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세상의 어느 것에도 비교 할 수 없는 아름다운 빛과 색을 지장보살님 모습에서 보았습니다.

 

소리가 잠든 세계, 승화된 빛으로 다가서시던 그 모습은 천상의 재현처럼 성스러운 한줄기 찬란한 빛이셨습니다. 석장을 짚고 불단을 내려와 춤을 추듯 제게로 걸어오시며 손을 흔드시던 지장보살님을 친견하며 저는 그저 머리를 조아리고 지장보살을 염송했습니다.

 

탐욕으로 지친 병든 육신을 이끌고 능인 법당을 찾아와 두 무릎을 꿇고 오열로 참회했던 그날은 묵묵히 미소로 저를 지켜만 보시던 지장보살님이셨습니다. 아버님 위패를 법당에 모시고 작은 일부터 찾아 봉사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신문 접기, 교도소 봉사, 법당 청소 등을 하며 열심히 기도에 매달렸습니다.

 

멀고 먼 길을 돌고 돌아 이제야 고향에 온 것처럼 법당에 들어서면 마음이 편안해져 집에 돌아 갈 생각조차 잊곤 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기도 중에 지장보살님을 친견하고 보니 더욱 몸을 낮추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위패들을 모셔 놓은 영가단에 초하루, 지장재일은 꽃을 사다 꽂기 시작한지 2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꽃을 꽂는 전날 밤 꿈에는 꼭 지장보살님이 매번 다른 색깔의 꽃을 들고 나타나십니다. 저는 지장보살님이 들고 계셨던 꽃을 사다 꽂습니다. 노란꽃, 빨강꽃, 국화, 백합 등등......

 

요즘은 상조회 시다림 봉사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원장스님 말씀처럼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망자를 위로하여 저승 먼길을 편안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도리이자 의무이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 불자들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지난번 삼성병원 시다림 봉사를 나갔을 때였습니다. 어느 영가가 슬피 울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그 다음날 시다림을 나간 상조회 법우20명이 열심히 영가천도를 해주고 마지막 목탁을 치고 나서보니 어제 본 그 영가가 영정 속에서 밝게 웃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영가 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 사실이었습니다.

 

요즘도 우리 능인 상조회에서는 조를 나누어 쉴 틈이 없이 시다림 봉사를 다닙니다. 법당에서도 천도재, 49재, 막재등을 지냅니다. 쉼 없이 기도하고 수행 정진해야 하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영가들도 기도가 필요합니다. 참회가 필요합니다. 육신을 벗은 영가들에게는 우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영가천도를 해주고 난 날은 가끔은 극락에 가는 꿈을 꿉니다. 온 천지가 보석으로 장식된 그곳은 실크처럼 부드럽고 신비로웠습니다. 살갗을 스치는 감촉이 너무도 부드러워 꿈을 깨고 나면 화가 났습니다. 훗날 내가 육신의 몸을 벗으면 갈 곳이기에 결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곳이 그립기도 합니다. 지금은 지광스님 말씀 잘 듣고 부처님 법 따라 수행하며 열심히 봉사하고 살면 됩니다.

 

법당에 들어서면 하심하는 마음으로 청소하고 작은 물건 하나도 소중히 다루며 내가 아닌 남을 위해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는 것, 이것이 바로 도 닦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자칭 법당의 왕언니입니다. 누구라도 초발심으로 우리 능인선원을 찾아오는 법우들이 있으면 안내하는 길잡이가 되고자 합니다. 항상 지광 스님 화이팅을 외치며 작은 힘이지만 부처님을 위해 쓰고싶습니다. 내일도 삼성병원에 시다림봉사가 있습니다. 또 하나의 생명이 영가가 되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우리 삶의 연장일 뿐입니다. 그들을 위한 우리의 기도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나무지장보살마하살.


출처: 능인선원 (www.gotobuddha.org)

 

 

31. 새 생명을 주신 지장보살님께 감사드립니다. - 반야화님글

 

저의 하루는 지장보살님을 염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대원본존 지장보살님과 함께 시작한 하루하루는 늘 상쾌합니다. 집에서 요리하고, 청소할때는 물론 절에 와서 노래하고 차를 탈때도 지장보살을 염하고, 지장보살님께 감사하면서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하루를 마칩니다.

 

이렇게 지장보살님을 의지하면서 살게 된 것은 지장보살님의 큰 가피를 입고 자연스럽게 생긴 신행생활입니다. 불교를 믿고 부처님과 지장보살님께 귀의한 것은 오래되었지만 직접 가피를 입고나서야 오늘과 같이 철석 같은 믿음을 갖게 되었으니 약간 부끄럽기도 합니다.

 

하지만,병고의 시련 속에서 "지옥중생을 다 건지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으리라"는 지장보살님의 대원력을 몸소 느끼게 되었고 나도 이제부터는 "지장보살님과 같은 마음으로 살리라.."는 새로운 서원과 희망을 갖게 되니, 그또한 지장보살님의 크신 위신력이라 믿습니다.

 

몇 년 전 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픈 병고에 시달렸습니다. 너무 아파서 차라리 죽는게 나을 것 같단 생각을 할 정도였습니다. 대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의사의 진단과 함께 수술 날짜를 받고 나니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수술을 한다해도 건강을 다시 찾을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습니다.

 

사실 주사나 약물에 대한 부작용이 심한 특이체질이고... 마이신 등 항생제에 대한 알러지가 있어 평소 감기에 걸려도 약도 못먹어 한약과 민간요법으로 이겨내곤 했는데, 대수술이라니... 그때 불현듯 수술하고 죽을바에야 죽을 힘 다해 기도정진이나하고 죽자는 생각이 들어 , 스님께서하라는 대로 지장백일기도를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다 보니 수술날짜가 다가왔습니다. 수술 일주일 전,그날도 전 삼보사 법당에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불자님들과 함께 소리 높여 염불하는 고성염불의 지극한 마음으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도 중에 갑자기 불단에 모셔진 지장보살님께서 다기그릇을 들고 제 앞으로 오시는 것이였습니다. 지장보살님께선 다기물을 제게 주시면서 다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그 무렵 목이 아파서 음식물을 넘기기 힘든 상태라 목은 말랐지만, 먹기싫다고 하니, 지장보살님께선 마치 어머니가 이제 갓 이유식을 시작한 아기에게 밥을 떠먹여 주듯, 먹기싫어 뿌리치는 아기에게 다 먹이려고 애쓰는 어머니처럼 제게 다기물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 제가 다 먹을 때까지 자비로운 눈빛으로 지켜보시던 지장보살님께서는 제가 물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먹자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으시곤 다시 불단 위에 앉으시는 것이였습니다.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고 주위를 보자 불자님들은 여전히 기도 중이었습니다. 그렇게 지장보살님을 친견하고 물을 얻어먹은 다음 날부터 제 몸은 날아갈 만큼 가벼워졌습니다. 기도할 때도 몸이 아파서 몇 번이나 쉬어가며 했었는데, 마치 새 몸을 갖다 붙인 것 같았고, 그동안 저를 괴롭혔던 병마가 싹 빠져나간 것 같았습니다. 일단 수술 예정 날짜에 맞춰 병원에 가서 재진찰을 해봤는데 기적이라며 놀라워하시는 의사선생님을 뵈면서 저는 저절로 미소가 나왔습니다.

 

전 " 기적이 아닙니다. 불가사의하신 지장보살님께서 대자대비하신 위신력으로 저를 치유해주신 것입니다. 지장보살님께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면 이렇게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난답니다." 라는 답변을 마음속으로 하면서 병원을 나왔습니다.

 

현대의학으론 수술을 해도 목숨을 장담못한다고 했는데 수술도 하지않고 지장보살님 덕분에 지금까지 이렇게 건강하게 살면서 저는 늘 새 생명을 주신 지장보살님의 은혜를 갚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불자로써 부끄럼없는 삶, 지옥중생을 다 구제하기 전에는 성불을 하지 않겠노라는 지장보살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절절하게 들었습니다.

 

이제는 합창단에서 노래를 할 때도 모든 중생이 행복한 삶을 살기를 부처님과 지장보살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생활속에 실천하는 삶을 살아 너와 내가 모두 중생의 탈을 벗어 이땅을 극락세계로 만드는 큰 일꾼이 되길 기원하면서 하루하루 지장보살님의 뜻을 실천하며 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영원히 이 땅이 불국토되기를 기원하면서 지장보살님을 염하고 찬탄하는 노래를 부르며 이웃에게 법음을 전하리라는 원력을 간직하며 살아갈 것을 다시 한번 지장보살님전에 서원드립니다.

 

* 이글을 쓰신 반야화님은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 화산리에 거주하고 있으며, 은평구 역촌동 삼보사 합창단단장으로써 법음을 전하고 계십니다. *


출처: 지장보살영험록 김 종매외 (불광출판부)

 

 

32. 신행이야기 - "오로지 할 뿐" 선법경 임순빈

 

15년 전 직장선배가 “이번 일요일에 별일 없으면 아침 8시까지 동대 앞 태극당 앞으로 나오라”는 말에 아무 의심없이 따라 나선 것이 부처님과 인연이 시작되었다. 선배를 따라 간 곳은 한달에 한번 가는 ‘불교문화기행’이었는데 충북 보은의 법주사였다.


유교집안의 나와 형제들은 기독교 학교를 다녀서 성경이며 찬송가가 더 익숙한 편이었다. 불교교리는 물론, 부처님이 뭔지, 절3배 하는 것도 모르는 내가 다른 사람들이 법당에 들어가 좌복을 깔고 법사의 선창에 따라 ‘한글 108대참회문’으로 108배를 하는데 나는 한쪽 구석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기로 하였다. 사람들은 구슬땀을 흘리며 정성껏 절을 하고, 그 내용은 생각없이 할 수 있는 잘못된 일과, 몸과 말과 뜻으로 지은 죄업을 참회하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불교는 할머니들이 불상 앞에 쌀이나 초 등을 올려놓고 복이나 비는 기복종교 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의 모든 죄업이 몸과 말과 뜻으로 지었다는 것과 다른 종교에는 없는 회향이라는 말이 참 좋았다.

 

진작 불교가 이런 종교인 줄 알았으면 ‘아까 나도 할 걸’하는 아쉬움과 매달 가는 불교문화기행이 기다려졌다. 나도 108대참회 하러.

더구나 사찰에 있는 모든 조형물들이 불교정신에 의해 세워졌다는 설명을 듣고는 불교문화를 배우는데 신이 났다. 그리고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불교공부도 하고 그런 신행생활을 하고 싶었다.


당시에는 직장을 다니는 관계로 불교공부는 잘 할 수 없었지만 직장에서 가까운 조계사에서 108배를 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언제쯤 제대로 불교공부를 하고 신행생활을 온전히 해보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 후 퇴직을 하고 능인불교대학을 다니면서 교리공부를 하고 경전을 배우는 사찰을 찾아 경전공부를 하면서 집에서는 108배를 했다. 어느 해 겨울 나에게 불교가 무슨 종교인지 알게 해 준 분(불교문화기행 지도법사)이 “사람에게서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타고난 업보와 뜻하지 않은 장애들이 수시로 찾아들어 그렇다. 우리가 뜻하는 바를 이루고 공부를 잘하여 향상의 길로 나아가기를 원한다면 한차례 깊은 참회기도를 하는 것이 좋다. 신년들어 지장기도를 한번 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말씀에 그러겠다고 하고 이런 형식으로 100일간 해보라고 하셨다.

 

매일 108배를 하고 별 어려움없이 지내던 나는 “그래. 업장만 다 녹이면 내 앞날은 탄탄대로” 일거라는 생각이 들자 기도만 잘 회향하면 반드시 신천지가 열릴 것 같았다. 그리고 주변에 기도를 많이 하신 보살님께 여쭈었다. 지장기도를 잘 하면 기도성취가 빠르지만 대신 마장도 많다는 얘기와 마장의 사례들을 들었다. 그런 점을 모두 감안하여 집에서 기도하기로 하고 절에 안오면 궁금해 하실 친한 도반 두분께만 말씀드렸다.

 


지장기도 요령은

1. 먼저 3배 올리고
2. 지장보살본원경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독송
3. ‘나무지장보살’ 천번 염송
4. 지장보살예찬문 외우며 158배
5. 지장보살예찬문 끝부분에서 ‘지장보살’천번 염송

 

그리고 기도를 시작하기 전 스스로 다짐하기를

1. 기도시간에 전화기 코드 빼고
2. 꼭 필요한 일 외에는 전화 및 외출 절대 안함
3. 100일간 오로지 身口意 三業을 조심하고 지장보살님의 가피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지장경을 읽을 때에도 영가에게 들려준다는 생각으로 하고 읽다가 잡념이 들면 읽은 기억이 나는 대목부터 다시 읽었다. ‘나무지장보살’과 지장보살예찬문을 외우면서 158배, ‘지장보살’ 천번 염송을 하는 동안에는 무조건 ‘잘못했습니다’라고 했다. 그렇게 기도시작 1주일 후 꿈을 꾸었다. 기도당시 1년 전 돌아가신 어머님께서 내 옷을 입고서 우리집에 오셨다.

 

바쁘신 듯 현관에서 ‘내가 다른 사람들하고 좋은데 놀러 가는데 너한테만은 얘기를 하고 가야 할 것 같아서 왔다. 사람들이 기다리니까 빨리 가야겠다’고 하시면서 총총히 가시는데 어찌나 섭섭한지 APT 11층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까 햇빛에 빛나는 잔잔한 바다와 배 한척, 아무도 없는 깨끗한 백사장과 송림松林이 펼쳐져 있고 APT 주차장 앞에는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가득 차 있고 어머님은 그들과 같이 그 배를 타고 같이 가시는 모양이었다. 어머님과 다른 영가님들이 천도되었음을 알고는 ‘열심히 기도해서 어떻게든 기도성취해야지’ 하는 마음이 생겼고 더욱더 신심이 났다.

 

기도를 시작한 53일 뒤 또 꿈을 꾸었다. 지장기도를 하면 꿈을 많이 꾼다고 했다. 한옥집에서 의사같은 하얀 까운을 입은 거사가 사람들을 진료하고 있었는데 줄이 한참 길었다. 그집 안에서 큰언니가 나를 불렀다. 의사는 나를 보더니 옷을 다 벗고 엎드려 누우라고 하면서 목부터 허리까지 침을 꽂고는 허리를 문지르는데 허리가 지릿지릿 아픈 것이었다.

 

나는 아픈 데가 없는데 내가 모르는 병이 있었나 생각하고 있는데 다 됐으니 내려 오란다. 옆방으로 가서 내 몸을 보니 온통 생선가시같은 침이 꽂혀 있었다. 침을 빼고는 그 방을 나왔다. 그렇게 꿈을 깨고는 다음날 기도시간부터 단 5분을 앉아 있을 수 없이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이것이 마장인가? 이 마장을 극복하지 못하면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낸다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허리가 아프면서 지장경을 읽는데 경전 위로 개미들이 줄을 지어 지나간다. 손으로 만져보니 아무 것도 잡히는 게 없었다. 몇 년 전 집에 이유없이 개미들이 들끓었던 생각이 났다. 그때 개미에게 진심瞋心을 내고 억지로 죽이지는 않았지만 살생도 했었다. 아아! 그때 개미에게 화를 내고 개미를 죽임에 과보를 받는구나! 인과는 한치의 오차도 없다더니. 화를 내고 살생한 과보를 받는 것이었다. 그 후로는 계속 개미영가에게 참회하고 허리가 아픈지 2주쯤 된 어느 날 기도시간에 지장경을 읽고 있는데 스르르 예전처럼 허리가 풀리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이번 기도로 모든 업장을 소멸케 해주십사 더욱 간절히 참회하였다.

 

그 후 80일이 조금 지나 다시 꿈을 꾸었다. 세면대에서 가슴이 답답해서 토하는 꿈을 꾸었다. 입에서 한참동안 피고름이 나오는데 새끼손톱만한 노란 근(종기의 근)이 튀어 나왔다. 종기처럼 근이 나오면 다시 진물이 날 때까지 짜야한다는 생각에 다시 토하는데 또 피고름이 나오더니 또 같은 크기의 노란 근이 나오면서 피고름이 멈추는 것이었다. 세면대에서 입을 씻고 나오니 만나는 사람마다 오랜만에 보는 것처럼 나를 반가워한다.

 

기도가 끝나갈 무렵 그동안의 기도생활에 대한 점검을 해 보았다. 70%정도만 만족할 뿐 100일 회향하고 그 다음날로부터 다시 7일을 하고 마지막 회향을 했다.

 

기도회향 후 도반보살님이 궁금하고 보고싶다고 전화를 주셨다. 전화 속에서도 느끼시나 보다. 목소리가 아주 부드러워지고 편안해졌다고 하셨다. 이후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에서 빛이 나고 맑아지고 편안해 보인다고 무엇을 했길래 그렇게 좋아졌느냐고 묻는다. 나의 업을 녹이고 향상의 길로 나아가기를 원하여 시작했던 기도가 어머님과 영가님들의 천도와 身業과 口業을 소멸하는 가피를 입게 되었다. 인과는 한치의 오차도 없어 연緣이 닿으면 과보를 받는다고 했다. 자기의 업을 녹이고 향상일로向上一路를 가고자 하시는 분은 한번 꼭 해보시기를 권해 본다.

 

가까이 사는 신심 깊은 후배가 가끔 집으로 놀러 온다. 서로 공부이야기도 하고 집안의 일상사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후배는 늘 나에게 “언니는 복이 많은 줄 알라”는 말을 한다.

 

하루는 후배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중에 금전으로도, 누구의 의지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이야기 하다가 집으로 돌아갔고 그들이 도대체 무슨 업과 인연으로 그러한가 혼자서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 내가 지금은 그런 인연을 만나지 않았을 뿐 앞으로도 다음생에도 나는 그렇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들자 산다는 것이 구차하게 느껴졌다. 다시는 인간 몸 받지말고 성불해야지.(인간 몸 받아야 또 불법인연 만나겠지만) 왜 이제까지 성불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을까! 願을 크게 세워야 한다면서 기실 작은 소원에 만족해 하고 있었다.

 

‘성불해야지’하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참선을 해야지.”

 

후배는 오래전부터 참선을 해왔고 나에게도 참선을 권해 왔었다. 때마침 참선공부 하느라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도반을 만나 힘을 얻은 것을 보자 더욱 더 조바심이 났다. 그리고 수련회에서 배웠던 참선을 하기 시작하고 부처님께 ‘꼬옥 선지식 만나기를, 좋은 도반 만나기를’ 발원했다.

 

다행히 기도공덕으로 공부를 지도해 주실 큰 선지식을 만나 禪法門과 화두드는 법, 공부인의 자세등 자상한 가르침을 주셨다. 큰스님께서는 “무릇 생명있는 모든 것은 죽음을 가장 두려워 한다. 우리가 죽는 순간 어떠한 마음상태로 가느냐에 따라 내생이 결정된다. 그리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수행하는 것은 임종 그 순간을 위하여 하는 것이다. 그러니 죽을 때까지 화두잡고 간다는 마음으로 행주좌와 어묵동정에 화두 놓지 말 것”을 당부 하셨다.

 

앞으로 나는 선지식의 가르침을 받아 깨친다는 조바심 버리고 “오로지 할 뿐” 죽음이라는 것도 그렇게 이겨가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아울러 초발심인 나를 따끔한 조언으로 일깨워 주시는 묘법륜보살님과 따뜻한 격려로 발심케 하는 법공심보살님께 감사드린다. 그동안 탐진치 삼독에 빠져 나라는 상을 버리지 못하여 헐떡이며 어리석게 살아 온 것 깊이 깊이 참회하고 계정혜 삼학을 닦아 바른 행을 실천하면서 부지런히 정진하여 본래 부처인 도리를 밝히는 등불이 될 것을 부처님께 발원합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33. 우물자리를 가르쳐주신 지장보살님

 

부산도림사는 사찰의 위치상 상수도 시설을 하기가 불편하다. 그래서 물은 지하수에 의존하는데, 기존의 지하수로는 늘 물이 부족해서 물의 양이 많은 샘을 새로 파려고 했다. 90년 봄, 기술자를 데려다 여기 저기 적당한 곳 몇 군데를 파 보았는데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스님은 기술자에게 의지하지 말고 부처님께 의지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지장보살님께 일념으로 [샘 자리를 가르쳐 주십시오]하고 기도를 드렸다.

 

어느 날 밤, 스님 꿈에 지장보살님이 나타나서, 스님을 한참 바라보시다가 아무말 없이 산으로 올라가신다. 스님은 지장보살님께 합장을 한체채조용히 쳐다보다가, 따라 오라는 뜻이라는 것을 곳 알아차리고 뒤라 갔다. 산 7부 능선에 다다른 지장보살님은 손을 펴서 작은 거북이 한 마리를 땅위에 내려놓으니, 거북은 이리저리 한참 기어다니다가 땅에 구멍을 파고, 그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음 날 아침 스님은 꿈에 본 곳으로 올라가 보았다. 너무나 꿈이 생생해서 거북이가 파고 들어간 지점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잡초를 헤치고 이리 저리 찾고 있는데, 풀숲에 놀랍게도 지난밤에 거북이가 파고 들어간 것과 비슷한 작은 구멍이 있지 않는가! 스님은 확신을 갖고 그 곳을 팠다. 그랬더니 거기서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좋은 물이 많이 나와서, 지금은 그 물로 식수, 생활 용수 ...... 등 모두를 충당하고, 물 걱정 없이 살고 있다.

 

우물이 완성되고 몇 달이 지나자, 스님 꿈에 지장보살님이 또 나타나서 이번에는 금붕어 3마리를 절 입구 잔디 위에 내려 놓고 가신다. 스님은 그 자리에 작은 연못을 만들어서, 지금 금붕어를 기르고 있다. 물이 너무 좋아서 금붕어는 특별한 관리를 하지 않아도 생기 있게 잘 살고 있다.

 

 

34. 귀에 소리 나는 병을 고친 재일교포

 

재일 교포 차□식씨는 오래도록 일본에 살다가 90년도 봄 한국으로 돌아 와서, 지금은 부산시 동래구 명륜동에 살고 있다. 일본에서는 사업에도 성공해서 돈도 좀 벌었고, 한 때는 민단의 간부직도 지낸 유능한 사람이다. 7년전 본부인이 죽자, 한국에 나와 살고 있는데, 일본에 있을 때 노후에는 한국에 와서 살려고 부인을 시켜 일본의 재산을 미리 한국으로 갖고와서 적당한 곳에 투자를 해 놓았다. 그런데 부인이 갑자기 변을 당해 죽자, 부인이 일본에서 갖고 온 재산은 어디에 있는지 찾을 길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차□식씨는 심증이 가는 곳을 모두 탐문 해보았으나 결국 재산의 행방은 알 수 없고, 이상한 병만 얻었다. 혼자서 살기가 불편해서 5년 전에 재혼을 했는데, 재혼한지 3달 뒤, 본부인이 꿈에 나타나서 차□식씨에게 욕을 하고 머리를 때리는 꿈을 꾸었는데, 그때부터 머리 위에서 이상한 잡음이 나며 두통이 심해서 견딜 수가 없다. 온갖 약을 다 써 보고, 여러 병원을 다 찾아 다녔으나 증상은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다.

 

그후에도 꿈에 본부인이 보이기만하면 이상하게도 좋지 않은 일이 생기고, 두통과 잡음은 더 심해지기만 했다. 절망에 빠진 차□식씨는 어느 날 도림사를 찾아갔다. 그리고 스님의 권유에 따라 지장기도를 시작했다.

 

파 마늘등 냄새나는 음식을 먹지 않고, 술과 고기를 삼가하고, 부부관계를 하지 않고, 정성을 다 해서 스님과 함께 새벽예불를 올렸다. 어느 날 아침, 법당에서 혼자서 절을 하는데 그날은 기분이 좀 좋아서 절을 많이 하기로 결심하고 30번쯤 절을 하고 그만 두려고 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뒤에서 [108배를 해라! 108번 절을 해라!] 하였다. 뒤돌아보니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놀라움과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열심히 108배를 올렸다.

 

스님에게 그 이야기를 하였더니 스님은 그저 가만히 미소짓기만 하였다. 7일 기도를 마친 날 새벽, 차□식씨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그의 본부인이 커다란 붉은 연꽃을 손에 들고 골프장 보다 더 널찍한 잔디밭을 천천히 걸어서 산 위로 올라가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을 꾼 다음부터 두통도 없어졌고 머리 위에서 나는 소리도 없어졌다.

 

차□식씨는 모두가 도림사 지장보살님의 덕이라고 생각하고 지금도 매월 지장재일에는 도림사에 나가 지장보살님께 열심히 기도를 올리고 있다.


원작성자: 권 영한님

 

 

35.

나의 경험인데, 그러니까 79년도에 지독한 질병에 걸려서 식음을 전폐하고 사경을 헤멘적이 있다. 그 때에 진실로 지장보살전에 엎드려 참회하고 일주일 기도를 올린적이 있다. 하루에 총 2 시간 밖에 하지 아니했는데도 마지막 날에는 거의 완쾌되어 밥을 한사발 먹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기도도중에 아픈 부위가 이상한 소리와 함께 마치 무슨 신이한 존재가 수술을 하는 것과도 같음이 매우 희안하더라는 점이다. 이런 것을 보면 참으로 불가사의한 것이 바로 이 신앙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한계상황에 마주치면 대개 신앙을 찾는 심정을 나는 이해하기로 하였다,


출처: 천불동 천문천답 PBOBJANG님 글

 

 

36. 우란분절을 앞두고


우란분절 을 앞두고 영가천도를 위해 기도 중입니다. 49일간 영가천도를 위해 기도 드리고자 발원하고 입재하여 기도하다 보니 몇 년 전 제가 불교에 입문하기 전의 일이 어제 일처럼 나의 뇌리에 스침은 왜 일까. 아마도 저를 불교에 입문하게 했던 계기가 되었기에 더욱더 생각이 생생한가 봅니다.

 

다름이 아니고 전 기독교 집안의 맏며느리이다 보니 절에 다닌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교회에 나가지 않고 묵묵히 불자가 아닌 사람으로 생활해 왔습니다. 하지만 전생에 불연이 있었는지 기독교 집안의 맏며느리 생활을 하면서도 마음은 부처님께 다가가고픈 간절한 마음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불교 경전을 구입하여 가족들 몰래 뜻도 모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시간만 나면 읽었습니다. 가게를 하면서 시간나는 대로 경전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때는 일념으로 읽을 줄도 모르고, 기도의 목적으로 읽을 줄도 모르고 오직 즐겨 읽을 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다라니가 혀도 잘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어려웠는데 자꾸자꾸 반복해서 일념으로 독경하다보니 이상하게 다른 부분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예불문과 천수경 반야심경은 한 자도 틀리지 않고 외워지는 신기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뜻도 모르면서 왜 그리도 빨려 들어가는지, 어떠한 힘에 의해 빨려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매료되었습니다.

 

열심히 하다 보면 불보살님의 가피가 계셔서 원하는 일이 꼭 이루어질 것 같은 생각이 나의 마음에 욕심으로 꽉 채워졌습니다. 그래서 경전은 물론 불교에 관한 책을 탐독하며 한발한발 불자의 길로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그러기를 얼마 후 어느 날 며칠을 밤마다 꿈에 돌아가신 시아버님께서 보이시며 왜 집을 지어주지 않느냐고 하셨습니다. 너무나 생소한 꿈이었기에 이상하다 생각하고 시어머님께 말씀드리니 교회에 다니시는 시어머님이셨기에 나의 꿈 이야기를 듣고 쓸데없는 소리한다고 하시면서 나의 말을 무시해 버리셨습니다.

 

교회에 다니시는 시어머니로서는 당연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음 날 밤도 그 다음 날 밤도 며칠 밤을 똑같은 꿈이 보였습니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또 어머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님께서 이상하다고 생각하셨는지 사실은 아버님 산소에 잡초가 많아서 제초제를 뿌렸는데 잘못 뿌려 잔디가 다 죽었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불자가 아닌 저로서는 어디서 그런 생각이 났는지 남편한테 부탁하여 깨끗한 모래를 구해서 일곱 번 씻어 말린 다음 21일 기간을 정해 하루도 빼놓지 않고 지장경 1품에서 13품까지 읽고 츰부다라니 지독하고 광명진언 108독을 하고 영가천도를 위한 발원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기로 마음먹고 기도를 하는데 며칠 밤을 왜 집을 지어주지 않느냐며 선몽하던 아버님이 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천도기도를 하겠다고 마음만 내도 천도가 되는가 보다 생각하고 더욱더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21일 기도를 마치고 시골에 모셔진 아버님 산소에 광명 진언한 모래와 음식을 준비하여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아버님 산소가 잔디는 물론 흙이 새까맣게 타 있었습니다. 기도 드린 모래를 뿌려드리고 준비해간 음식을 차려드리고 아버님께 다녀온 날 밤 꿈에 어떤 흰옷 입은 할머니 한 분과 아버님께서 집에 오셔서 할머니는 방에 앉아 계시고 아버님께서는 웃으시며 나가시는데 순간 하늘에서 밝은 광채가 났습니다. 그 이후에 기독교 집안의 장남인 남편이 당신도 일요일마다 애들 데리고 절에 다니라며 허락을 하였습니다. 5년 전의 일입니다.

 

그 후 지금까지 한 주일도 빠지지 않고 일요 법회에 참석하게 되어 절에서 아주 열심히 다니는 불자로 꼽히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절에 다니며 기도 정진 열심히 하는 제게도 참기 어려운 장애가 있습니다. 나의 정진을 시험이라도 하시기 위한 부처님의 뜻인지 아니면 제가 쌓은 업인지 시련의 장애가 옵니다. 하지만 기도 정진으로서 이겨내려 열심히 노력합니다.

 

“일체유심조” 모든 일은 마음에 달려있다고 내 마음 단속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불자로 생활하기 전에는 아상을 못 버리고 나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상대의 잘못만을 생각하며 원망하고 미워하다 보니 더욱더 괴로운 것은 내 자신이었습니다. 그래도 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상대에게 문제가 있는 듯 생활했습니다.

 

그런데 불자로서 생활하며 덕 높으신 스님들의 법문을 듣고 불서들을 읽으며 모든 괴로움의 원인은 상대에 있는 게 아니고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내 잘못으로 돌리며 내 마음 단속을 위해 노력해도 참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행해왔던 습인지 상대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얼마 전(요즘)의 일입니다. 남편과 다툼이 있었는데 화를 내며 나가는 남편이 너무나 야속하고 미운 생각에 속이 상하여 잊으려고 기도를 드리는데 집중이 되지를 않고 마음 속엔 남편을 원망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혼자 중얼거렸죠. 남편을 원망하며 왜 그럴까 하고 잘못을 남편에게 돌리는 원망과 원망에서 오는 미움으로 구업을 짓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연인지 아니면 나를 깨우치게 하시려는 부처님의 뜻이었는지 경전을 모셔둔 책장을 보니 경전이 옆으로 비틀어지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순간 반듯이 놓으려고 책장 문을 여는데 지금까지 몇 년 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책장 문이 갑자기 떨어져 박살이 났습니다. 순간 내가 남편을 원망하고 미워한 업을 지었기에 그 과보를 받는구나 생각하고 마음을 진정시킨 다음에 참회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후 어떤 고통과 괴로움이 내가 하는 기도를 방해 한다해도 절대 마장과 장애가 아닌 나의 기도 정진을 더욱더 돈독히 하라는 스승으로 생각합니다.

 

사람이 뭔가를 갈망함이 크면 더욱더 매달리고 싶은 욕망이 있기에 불보살님을 간절히 찾게 됩니다. 나의 해이해진 마음을 채찍하기 위한 스승이라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기독교 집안의 장남인 남편 마음의 문이 열리지 않고 닫혀 있었더라면 제가 어떻게 불자로서 생활할 수 있을까요. 모든 게 부처님의 가피와 보살님의 가호하심이라 생각하고 감사 드리고 항상 초발심의 마음으로 생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모든 일이 내 마음 안의 일임을 알고 생활한다면 누구를 원망하고 미워하면서 생활하지는 않겠지요? 내 마음 단속 잘 하여 어리석은 행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루하루 불은에 감사 드리고 부처님께서 주신 위신력의 힘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굳게 믿고 더욱더 열심히 정진하려고 서원을 세워 봅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불자님들의 가정에 부처님의 향기가 충만하시길 두 손 모읍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글· 김갑숙/서울 용산구 거주
월간 불광 2000년 8월호 전재

 

 

37. 목숨을 연장해 주신 지장보살님

 

점촌에 사는 임정□ 여인은 윗대부터 김룡사에 다녔으며, 특히 지장 기도를 열심히 해 왔다. 지금 환갑이 지난 임여인은 약 10년 전 우연히 얻은 기관지 질환으로 무척 고생을 해 왔고, 지난겨울에는 증상이 너무 심해 중환자실에 입원까지 할 정도로 증상이 악화되었다.

병원 병실에 입원해 있던 어느 날 밤 꿈에 저승차사 3명이 검은 옷을 입고 임정□여인을 찾아와서 무조건 따라 가자고 한다. 꿈속에서도, 저승차사를 딸아 가면 이 세상을 하직하는 날이고 죽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한마디 대항도 할 수 없고 또한 피할 수도 없는 절대 절명의 위엄에 눌려 가자는 대로 따라 갔다.

 

그런대 문밖에 나가 정신을 차려 보니 거기에는 낯선 남자 한 사람과 여자 한 사람, 두 사람이 말없이 서 있었다. 임정□ 여인은 그 사람들과 함께 저승차사를 따라 어디론가 걸어갔는데, 이상하게도 천천히 걸어가도 몸이 공중에 떠서 날아가는 것처럼 잘 걸어갈 수가 있었다.

 

저승차사가 그들을 대려 간 곳은 김천에 있는, 임정□ 여인의 동생 집이었다. 그리고 동생 집에 있는 개집 앞에 다다르자, 개집 속으로 들어가라 한다. 함께 간 두 남녀는 아무말 없이 시키는 대로 개집으로 들어가는데, 임정□은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나서, [지장보살심 나는 싫어요. 지장보살심 나는 싫어요. ]하면서 개집에 들어가기를 거부했다. 그랬더니 저승차사들은 임정□여인을 한참 노려보다가 어디론가 가 버렸다.

 

깨니 꿈이었다. 온 몸에 땀이 나서 이불이 흠뻑 저졌다. 며칠 뒤 꿈이 너무 이상해서 오랜만에 동생집에 가보 기로 했다. 병고에 시달리느라 동생을 못 만난지도 1년이 넘는 듯 했다. 그래서 몇 마디 안부를 묻고나서 [너의 집에 개를 기르느냐?]하고 말하니 [암개를 한 마리 기르는데, 몇 일 전에 새끼를 세 마리 낳았어. 한 말리는 죽은 것을 낳고, 두 마리는 암컷 수컷 한 장운데 아주 귀여워. 언니 한 번 볼래?] 하며 개집으로 인도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개집이 꿈에서 본 개집과 꼭 같았고, 개가 새끼를 낳은 것도, 저승차사가 그들에게 개집에 들어가라고 말한 날짜와 꼭 같았다. 임정□은 겁이 났다. 그리고 만일 자기가 개집으로 들어갔더라면 지금 이 집 개로 환생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친다.

 

그리고 그 강아지 두 마리는 꿈에서 본 두 남녀의 환생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임정□은 동생에게 그 강아지는 특별한 강아지니, 함부로 팔지 말고 언니에게 달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를 구해 주신 김룡사 지장보살님께 한없는 감사를 들이고, 다음 생에 더 좋은 곳에 태어나기 위해서 더욱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영험이 많으신 김룡사 지장보살에 더 기도하고 살기로 맹서 하였다.

 

(김룡사에서 만난 임정□)

출처: www.andongkwon.pe.kr 권영한님 글

 

 

38.
이렇게 글을 올리다니 꿈만 같네요. 지장기도를 하다보니 불보살님의 가피도 입고 조금이나마 도움이되고자 글을 올립니다.

 

전 올해 26살로 카드빚만 수천만 원가량지고 있었고 그 빚은 제가 아는 사람 때문에 도와주려다 같이 신용불량자가 됐습니다. 그 빚으로 인해 차압이다 뭐다 죽고 싶을 만큼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은 나머지 자살까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지장보살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어린 시절 방황할 때 어느 비구니 스님의 권유로 지장경 한 권과 지장보살예찬문을 받아든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도 지금 만큼이나 힘든 시기였는데 기도 덕분이었는지 무사히 잘 헤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기도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잊고 살다가 사람이란 것이 힘들어지면 다시 찾듯 그렇게 지장 기도를 다시 시작하게 되고 하루 지장경 4독씩 8시간을 경을 읽으며 지냈습니다. 나머지 시간은 108배 참회를 하고 나중엔 지치다 못해 쓰러질 만큼....

 

그런데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제 음식 공양을 받고 흡족한 모습으로 다들 떠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꿈을 꾸고 카드빚은 거짓말같이 해결되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오빠가 교통사고가 나는 시간에 전 잠이 들었는데 꿈에 오빠가 운전을 하고 사고가 나려고 하는 순간 어느 스님이 갑자기 나타나서 우리 오빠를 감싸 안는 꿈을 꾸고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고 깨어났는데 아니나 다를까 병원에서 교통사고가 났다고 전화가 오고 대형사고임에도 불구하고 저희 오빠는 상처 하나 없이 무사하게 전치 1주 진단을 받았습니다.

 

전 늘 기도를 하면서 제가 이렇게 어려웠는데 지장보살님이 절 도와주신다면 전 평생 어려운 이웃을 돕고 살겠다고 다짐하곤 했기에 이제 남은 생은 정말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살겠다고 생각합니다..

 

지장보살님 가피에 _()_

 

 

39. 연이파리님 글 - 나무아미타불카페 (cafe.daum.net/amtb)

 

1)지장경을 1독씩 읽고 있어요 거의 1년이 되어 가네요 첨엔 돌아가신 아버지 좋은곳 가시라고 100일 기도후 그담엔 시할아버지 시할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일체인연 맺은 영가 기도까지 100일 했습니다 그때는 잠을 자다가도 영가들이 꿈에 나타나서 길을 저한테 묻기도 하고 제가 기도하는곳에서 염주를 목에 걸고 환희심에 차서 제주위를 돌기도하고 기도시간이 되면 잠을 깨주기도 하더군요 조금 무서운꿈도 꾸다가 이번엔 일체인연 영가는 빼고 시댁조상영가 2분과 저의 조상영가3분만 발원해 드리고 있습니다


2) 지장경 독송을 집에서 하는 중이였어요 그날은 몸살감기약을 먹고 약기운에 무지 졸려서 독송중 꿈을 꿨나봐요 저는 분명 평소 하던대로 경전 독송중이었고 제어깨너머로 희뿌연 연기기둥처럼 어떤형상이 저와 함께 경전을 보고 있었어요 그리고 한번은 독송중 졸다가 어떤 쇳소리가 나는 남자 목소리가 제 이름을 크게 불러줘서 그소리에 깜짝 놀라 잠을 깨고 무사히 지장경독송을 마쳤습니다

 

그후엔 좀더 정성들여 경전독송 중입니다 그 체험이후 저는 영가가 확실히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독송 중 잠을 깨게 해준 목소리가 저희 아버지영가 였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 가신후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 그 당시엔 제가 기독교신자였었고 , 자주 아버지가 꿈에서 보이긴 했었지만 대수롭게 생각않고 넘어갔었던 제가 너무 무심했었단 생각도 들었습니다 죄 스런 마음에 경전독송은 꾸준히 할 생각입니다

 

3) 지장기도를 하면서 저도 잠들기전 환청이 들리기도 했었지만 ...개의치말고 지장경독경 하시다보면 그런현상도 사라집니다^^ 지장기도하다보면 꿈자리가 사나워지기도하고 낯 모르는사람들이 꿈에 나타나 가야할 길을 알려달라고도 하더군요 그래도 저는 지장경 읽을려고 합니다 ()()()

 

옮긴이의 말: 이러한 경우에는 지장기도를 계속하면서 더욱 광명진언을 소리내어서 많이 외우시면 여러가지 현상이 정리되어집니다.

 

 

40. 미타사랑님 글 - 나무아미타불카페 (cafe.daum.net/amtb)

 

얼마 전, 시댁에 갔다가 문득 오래 전에 읽은 “지장경”생각이 나서 어머님께 여쭈어보니 읽지 않고 놓아 두셨다길래 제가 가져 왔습니다. 바깥사람 일로 항상 감사드리고 있어서 틈틈이 읽어 보려고요. 집에 와서 무심히 읽다가 정말로 깜짝 놀랄 부분이 있어서 이 글을 씁니다. 바깥사람의 병세가 좋아진 얼마 후에 꿈을 꾸게 되었더랬습니다.

 

- 제가 어디론가 꼭 가야하는데 그 가야할 길이 매우 좁은 골목길이었고 그 골목에는 늑대인지 악어모양 괴물인지 모를 이상한 동물들이 양쪽으로 늘어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잡아 이빨로 뼈와 살을 찢어내 죽여 피가 사방에 흥건한 처참한 모양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무섭기는 하였지만 목적지로 가는 길이 그 길 밖에 없어서 어쨌든 각오를 하고 그 길로 들어섰습니다. 심호흡을 하고 막 한 발을 내딛는 순간 뒤에서 어떤 스님이 저를 부르시고는 팔을 잡더니 뒤로 돌아서 다른 넓고 큰 길로 저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 길이 매우 밝고 따뜻하며 쾌적한 길이어서 곧 마음이 평온해지고 감사한 마음이 들어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 스님께서는 웃으시면서 “다음부터는 이 길로 다니시오. 얼마나 좋은 길입니까?”하시며 고개를 올라가 멀리 사라지셨습니다. -


잠에서 깨어 무언가 감사함을 입었다는 것은 알았으나 스님이나 절과는 인연이 먼지라 곧 잊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지장경 제8품”에 꼭 그 꿈과 같은 구절이 있지 않겠습니까.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미혹하여 본집을 잃고 험한 길로 잘못 들어섰는데, 그 길에는 숱한 야차와 호랑이· 사자· 독사· 따위가 있어서, 그 사람이 이 길에 들어서자마자 저 여러 악독한 짐승들과 곧 마주치게 되었다. 그때, 한 선지식이 있어서, 큰 술법을 가지고서 모든 악독한 것들을 잘 막아 낼 수 있는 분이었는데, 갑자기 미혹한 사람이 그 험한 길로 가고자 하는 것을 보고 이 선지식이 말하였다.

 

「이 딱한 사람아! 어쩌자고 이런 길로 들어섰는가? 무슨 기이한 술법이라도 있어서 저 모든 사나운 것들을 막아낼 수 있다는 말인가?」

 

그 사람이 문득 이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험로임을 깨닫고 곧 물러서며 여기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이때 그 선지식이 손을 잡고 이끌어 독물을 막으며 좋은 길로 인도하여 안전하게 해주고는 또 말하였다.

 

「딱한 사람아, 이 다음부터는 저 길을 다시는 밟지 말게. 저 길로 들어가면 좀체로 벗어날 수 없고, 더구나 목숨을 잃게 된다네.」

길 잃었던 사람은 깊이 감동하였다. 서로 작별할 때에 선지식이 또 말하기를

 

「만약 모든 길가는 사람을 보거든 친지거나, 아니거나, 남자든 여자든 간에 저 길에는 여러 가지 사납고 독한 것들이 많아서 목숨을 잃게 된다고 말해주어, 그들이 스스로 죽음을 취하지 않도록 하게.」

 

라고 하는 것과 같느니라. 이렇게 지장보살이 대자대비를 갖추어 죄고 중생을 구출하여 천상이나 인간에 태어나게 하고 묘락을 누리게 하여 주면, 그들이 업도의 괴로움을 알고서 거기를 벗어나 다시 겪어가지 않는 것은, 저 길 잃은 사람이 험로에 잘못 들어갔다가 선지식을 만나 이끌려 나오게 되어 영원히 다시는 들어가지 않는 거와 같고, 또 다른 사람을 만나서도 들어가지 말도록 권하면, 자연히 이 미혹한 것으로부터 해탈케 되고 다시는 악도에 들어가지 않는 거와 같느니라...... <제 8 품 염라왕들을 찬탄하시다.>

 

어쩌면 그 스님이 지장보살님이셨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깥사람 때문에 어쩔 줄을 몰라 하던 때에도 도움을 주시더니 저도 모르게 저를 도와주시고 계셨다니 감사한 마음과 환희심이 들었습니다. 어디에도 기댈 데가 없는 저를 이렇게나 돌보아주시

다니요.

 

저는 마음속으로 감사드리는 것 밖에 모릅니다. 하지만 이 감사함을 님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나무지장보살마하살. _()()()_

 

41. 中安님 글 - 나무아미타불카페 (cafe.daum.net/amtb)

 

경오 스님은 저녁 공양을 마치고 큰방으로 잠깐 오라고 하시며 합장을 하시고 일어나셨다. 왜일까? 내가 뭘 잘못 한게 있는가? 작설차를 한잔 준비하시곤 내얼굴을 보며 살며시 웃으셨다. 짧은 순간이지만 무슨일일까?...

 

"젊은이 에게 물을게 하나있네..."
"항상 입으로 중얼거리는 것이있던데 ... 무슨기도를 하시는가?"
"예.나무아미타불 을 외우고 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이라...?"
"어떤 연유로 외우게 되었는지? 이야기 해줄수있겠는가?"

 

........처음 불교에 입문을 하곤 사실 무얼 어떻게 접근을 해야 할런지 막막 할때 어느 책을 보니 시간날때 마다 나무아미타불 을 쉼없이 외우다 보면 해탈을 경험 할수있다는 내용을 보고 외우게 되었습니다..... 하고 말씀을 드렸다.

 

그 이야기를 들으신 스님은 간략하게 이렇게 말씀하신것 같다..

 

"젊은이! 내가 하나 권해 드리고 싶은데 이제부턴 지장보살을 불러 보시게.... 지장 보살님은 보살님 들 중 으뜸으로 부처님 께서 직접 사바세계 중생제도를 부촉 하신 보살님 이시라네.. 항상 지장보살님 을 부르시면 어떤곳에서나 두려움이 없어지는 편안 함을 얻을것이며 지금은 자네와 나 누구도 그내용을알수없는 가피를 경험할걸세..... 이책 속에도 나와있지만 명호를 부르면 조상님 들의 모습도 손을 꼭잡고 다니시면서 보여주신다네..."

 

하시면서 겉에 "지장경"이라는 글씨가 써진 책을 한권주셨다..

 

“젊은이가 이책을 한번읽고 두번읽을때 마다 더불어 이스님 의 속가 선망 부모님 과 조상님 들이 제도 되시는데 큰힘이 되니 앞으로 지극 정성으로 기도 해보시면 지금은 나도 모르고 젊은이도 모르는 그무엇이 꼭 나타날껄세...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때가 되면 이말뜻이 생각날꺼야..."

 

그로부터 20여년이 훨씬흘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스님은 불성이 어떠하니.탐진치가 어떠하고 집착이 어떻고..등등 무슨 말씀을 하신들 내가 담을 수있는 그릇 이 아니었음 을 아셨을 것이다. 단순하게 수없이 지장 보살 명호를 부르면 그명호를 부르는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묻고 헤아리게 된다. 이렇듯 나자신이 스스로 알아차릴때 까지 물레방아를 돌리신것이다..

 

차라리 혜능스님 처럼 따귀를 한대 때려도 내가 알아들을 수있었을까? 그때 스님 께서 하신 말씀의 뜻 만분의 일이라도 이해하는지? 모르겠지만 해가 바뀌는 이즈음 어두운 밤. 그분의 손에 쥐어져있는 횃불의 따스함을 느껴보네...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中 安 올림

* 경오스님 은 창녕 부곡 효자사 주지스님 이셨습니다

 


42. 김 ㅇㅇ님 글

 

작년 여름에 사랑하는 남편이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49재도 지냈지만 시댁과의 예기치 않은 불화로 아이와 함께 나와서 살고있는 동안 49재 첫재만 지내고 그이후엔 찾질 못하였습니다. 누구나 한번쯤 목도하는 죽음앞에서 늘 인생무상을 느끼겠지만 예기치 않았던 이런 일에 내 업장이 얼마나 두터운지 연애결혼을 한 우리 내외는 전생에 어떤 인연이었는지 답답함속에서 저는 불교관련 서적을 닥치는대로 읽어가다가 지장경 독송을 통해 남편이 바른곳으로 가길 원하는 마음에 집에서 독송을 하였습니다.

 

몇번인가 남편이 꿈에서 나타났지만 좋은 모습으로 있는것도 보았으나 그렇게 있길 원하는 저의 망상이 꿈에서 나타난 거려니 하고 지장경을 여건이 허락하는 한 독송을 하였습니다. 남편 사진도 옆에 놔두면서요.... 경전을 독송하는동안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요 임종전에 아미타불 부처님만 따라서 가라고 외쳤고 아미타불 아미타불 하면서 염불도 했지만 터져나오는 울음에 제대로 보내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시댁과의 불화를 지켜봤을 남편이 꿈에서 눈물 훔치는 꿈도 꾼지라 정말 열심히 독송하였습니다.

 

어쩌면 그건 제가 제 스스로 위안삼아 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더 들더라구요 답답하니까. 얼마전 꿈엔 아이의 모습을 한 남편을 보고 제가 이제 아프지 않냐고 물었더니 웃으며 아프지 않다고 말하면서 자긴 이제 다시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하더군요 원래는 인간으로도 태어나지 말고 극락세계에 최하품으로 나더라도 윤회를 없애 성불하는게 최고지만 생전에 우리다시 태어나서 만나진다면 다시 만나 오래 살자고 했던 약속때문일까요? 그렇게 답하더군요

 

인간으로 태어는 것도 힘들고 부처님 가르침 받는 것도 힘들다지요? 그래도 그 꿈꾸고 위안을 얻었습니다. 웃기게도 이기적이지만 넌 다시 태어나는구나 난 살아내야 하는데 라는 씁쓸한 웃음이 지어지지만요... 참 지장보살님께 감사하라 하대요..... 남편관련꿈을 꾸고 나면 늘 새벽4시 10분에서 20분 사이었거든요 망상이 지어낸 나의 꿈.... 때문인지 요즘은 삶에 감사하고 부처님께 감사하고 삽니다. 차에 출퇴근 할때도 염불테잎틀고 따라하고요 부처님의 가피력이겠지요? 지장보살님의 서원때문이겠지요?


나무아미타불카페 김 ㅇㅇ님 글 옮김

 


43. 파랑새78님 글

 

(i) 벌써 4년이 지났습니다. 부모님이 불자라서 어렸을 때부터 말 그대로 왔다 갔다만 했을 정도입니다. 그저 향냄새가 너무 좋아서 법당에 몇 시간씩 앉아있기도 하고 맘이 동하면 법당에 있는 경전도 한 번 읽어보기도 했었죠. 대학원 진학을 앞둔 27살 때의 일이었습니다. 1여년 전부터 잠자리가 너무 불편하고 무섭고 뭔가가 계속 괴롭히고 하는 일이 점점 그 시기가 짧아지더니 맨 정신에도 귀신이 보이고 어느 날은 TV에서나 보았던 저승사자 3명이 삼각 구도로 서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더군요. 그 중 대장으로 보이는 저승사자는 덩치가 무척 크고 3명 모두 다리는 없었습니다. 너무나도 또렷이 눈 앞에 나타나기를 여러번이었습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눈 밑이 검다며 저승사자 같다는 말도 자주 들었고 이유없이 아프고 힘이 없고 모든 의욕이 떨어지고 밤마다 무엇가에 시달리고 고함지르기를 몇 달간 계속되었습니다. 단지 몸이 약해져서 그럴거라는 생각으로 지내다가 어느 날 제가 신내림을 받아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전 그 당시에도 딱히 종교가 없던 터라 기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못했었고 뭔가에 빌어야 한다는게 용납이 안되더군요. 하지만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잖아요.

 

지장보살님이 누군지 기도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얼마나 해야하는지.... 정말 대책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만해도 석가모니부처님만 알았지 무슨 보살님의 이름이 이렇게 다양한지... 그 중에 나름 택한 것이 지장보살님이었습니다. 지장기도는 정말 힘든 기도다.. 함부로 해서는 안되는 기도라는 등... 이상한 말들이 자꾸 들리더라구요.

 

전, 맘속으로 "그런게 어딨어??!! 정성껏 진심으로 하면 되는거지... 설마 죽기밖에 더 하겠어??" 그저 했습니다. 오로지 지장보살님만 생각하면서 염불을 했습니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하루에 만 번씩 그렇게 간절히 부르기를 100일을 했습니다. 밤 8시 부터 시작하기로 한 시간을 반드시 지키기 위해 뛰어서 집에 오다가 넘어져서 무릎이 깨지기도 하고 씻지도 못하고 땀을 뻘뻘 흘린채로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가방을 던져두고 바로 지장보살님 사진 앞에 앉아서 또 염불하고...

 

'지장보살님~ 저 좀 살려주세요. 정말 신내림 싫거든요. 만약 제가 신내림을 받아야만 한다면 절 그냥 데려가주세요.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어요...'

 

정말 이 말을 수없이 되풀이 하면서 '죽을 각오'로 지장보살님만 부르고 부르고... 간절하면 이루어진다잖아요. 그렇게 울고 있으니까 정말 지장보살께서 와주시더군요.

 

100일 회향하던 , 회향 의식을 마치고 너무 고되서 동생 침대에 대자로 벌러덩 눕는 그 순간, 온 몸이 전기에 감전된 듯 한참동안 전율이 나면서 몸이 공중으로 뜨더라구요. 정말 본 사람이 있어서 이것이 거짓이 아닌란걸 아실거에요. 말도 안나오고 무섭더라구요. '지장보살님~~ 절 데려가시려나보네요... '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어떤 목소리가 들렸어요.

 

"못 나와~~~!!!!?" 하는 호통치는 젊은 여자의 청아하면서도 힘있는 목소리가요.

 

그 순간 온 몸에서 큰 덩어리 같은 것이 쑤욱~~~ 하는 느낌과 함께 빠져나가면서 몸이 침대로 떨어졌어요. 정말 말로는 표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 날 밤 꿈을 꾸게 되었는데, 목욕탕에서 때로 벗기고 있는데 어떤 어린 꼬마 두명이 들어오길래 여긴 여탕이니 나가라고 하니까 성년의 남자가 들어오면서 "걱정말고 깨끗이 씻어라. 내가 다 데리고 갈테니... 이제 괜찮을거다." 하는 말과 함께 두 명의 어린 남자를 데리고 나가셨어요. 너무 생생해서 신기했어요.

 

그 뒤로 이유없이 아픈 몸도 아무렇지도 않았고 꾸는 꿈마다 조상이 천도된 꿈이라는 말과 업장이 소멸되는 꿈이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한달 동안 절에 들어가서 기도 한 경험도 있는데 기도 시작 전날에 가슴안에서 시커먼 물체가 빠져나가는 것을 경험했고 15일 후쯤에 스님이 오라고 해서 가니까 얼굴만한 연꽃 화분 앞에 앉으라고 하시더라구요. 스님이 꽃잎을 떼서 먹여주고 있는데 하늘에서 셀수도 없이 많은 꽃비가 내리는 꿈을 꿨습니다. 그리고 회향 전 날밤에 자려고 눕자마자 비로자나 부처님의 커다란 손이 얼굴쪽으로 오더니 얼굴을 쓰다듬는거에요. 이건 꿈도 아니고 너무 신기하고 포근했어요. 어떠한 반응도 없이 그러고나서 그냥 편하게 잠든 기억이 있습니다.

 

그 후로 개인적으로 100일 기도를 3번정도 연달아서 더 했는데 꿈을 너무너무 많이 꾸는거에요. 특징적인 거는.... 입에서 벌레가 왜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그리고 스님들이 안 나올때가 없었습니다. 법당에서 춤도 추시고 같이 놀자며 사람들 사이로 데리고 오셔서 함께 춤추는 등... 그리고 바닷가에서 배를 타고 굶주린 듯한 애기에게 뭘 먹여주고 있는데 큰 절벽같은 돌 위에서 화려한 장삼을 걸친 스님께서 미소짓는 얼굴로 서 계시기도 하는 등의 꿈들이요.

 

모두 다 부처님과 지장보살님의 가피였습니다. 너무 간단하게 쓰려니까 정리가 안된 부분도 있네요....^^;;

 

요즘은 자연스럽게 기도하는게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요즘은 토요일마다 삼천배, 능엄주와 광명진언 독송 등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예전엔 전 복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빽인 불보살님이 늘 곁에 계신다고 생각하니까 자다가고 뿌듯한 마음에 눈물이 납니다. 늘 밝은 곳에 복 많이 짓는 하루하루가 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II) 저와 비슷한 경험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네요... 사실 전,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냥 떼쓰기 작전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전, 오랜 수행을 한 수행자도 아니구요, 교리를 많이 공부한 사람도 아닙니다. 어까지나 제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올리는 글이니까 태클은 사양합니다. 저와 비슷한 상황에 계신 분들에게 조금이라고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부디 정답이 아닌 참고 사항으로만 생각해주시길 바랍니다.

 

일단,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님들의 맘이 더 중요하다고 봐요. 이런 말은 누구나 흔하게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이것보다 더 정확한 정답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제가 경험한 사실이잖아요. 그리고 님들께서 제가 완치되었냐는 질문을 하셨는데 제 견해로는 이건 병이 아니고 '의지문제라' 봐요.

세상은 내가 중심이에요. 못할 일이 없어요. 내가 하기 싫음 안하면 되요. 칠성줄은 타고 나서 신내림을 안받으면 안된다는니 지장기도는 너무 센 기도라서 함부로 하면 안된다느니.. 누가 그래요?? 스님이든 법사님이든 그런 말은 무시하세요. 삿된 말에 현혹되면 안됩니다. 부처님만 믿으세요.

 

흔히 이런 힘든 경우에 점을 보러간다든지, 용하다는 스님들께 뭘 좀 보러 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일로 스님들 곤란하게 하지 마세요. 스님들은 점 봐주는 분들이 절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도 절대 점 치지 말라고 경전에 수없이 말씀하셨느데, 스님들 죄짓게 하지 마시고 정법을 만나시길 바래요.

 

어떤 기도든 님들이 된다 생각하면 무조건 됩니다. 일단 된다!!! 라는 결론을 마음에 문신으로 세겨두고 기도를 시작하세요. 결과는 그냥 부처님께 맡겨두세요. 미혹한 중생의 탈을 쓴 우리가 무슨 재주로 점을 치고 미래를 예측하겠습니까.

 

점 쳐주는 그 사람은 얼마나 바르게 잘 사는 사람인지.. 불보살님들 이름 팔아서 얼마나 훌륭한 삶을 살고 있는지부터 물어보세요. 그냥, 밝은 결과를 마음에 새기고 부처님께 맡기는 수밖에요. 아음이라는 거 신기하고 무서운 겁니다. 그리는 그대로 이루어지니까요. 밝은 결과만 그리시길 바래요.

 

저도, 지장기도는 함부로 하면 안되는 기도라느니, 너무 센 기도라서 마장이 심하다느니... 이런 말을 많이 들었어요. 당연히 기도가 잘 되고 있으니 방해하는 요소들이 생기는건 당연한거 아닐까요?? 원래 잘 나가는 사람들 주위엔 질투한는 못된 인간들이 많은 거니까... 그거 무서워서 포기하실거면 안하는게 낫죠.

 

지장보살님이 어떤 분이신가요?? 석가여래께서 일체 모든 중생들을 너에게 내가 맡기겠다... 하신 분이 지장보살님이세요. 미혹한 중생들을 위해 성불까지 포기하신 엄청한 원력을 가지신 분이신건 아시죠?? 일체 모든 마를 항복받으신 석가여래께서 위촉하신 지장보살님을 감히 누가 !!!! ^^

 

어쨌든 일단 아무 걱정 마시라는 말부터 해드릴께요. 제일 친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랑 저랑 함께 다니면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어요. 친구보고는 관세음보살 닮았다 그러구요, 저보고는 지장보살님 닮았다는 말을 많이 해요. 스님들조차 그러시더라구요. 친구 역시 5년 전쯤에 저와 비슷한 일들로 인해서 굿도 하고 산 기도도 다니는 등... 몇 년간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결론은 말 안해도 아시겠죠??

 

돈은 엄청나게 깨지고 몸과 마음은 지칠대로 지쳤어요. 기도라는 건 누구에게 비는 행위가 아닙니다. 알 수 없는 지난세월부터 오늘에까지 자신이 지은 데로 인과의 법칙에 의해서 결과가 나타나는 것 일뿐입니다.

 

'참회'를 통해서 풀어야죠. 그것 뿐입니다. 말을 하자면 무당들도 잡신이 들어와서 자신도 어쩌지를 모르는데 누가 누구를 구제하고 어쩐단 말인가요?? 더 큰 힘에 의지하세요. 진리에 의지하고 그 진리를 등불로 삼아서 자신을 참회하는 것이 제일 우선입니다.

 

추천하건데, 이것저것 아무것도 모르시겠거든 절을 하세요.. 친구도 절을 통해서 모든 것을 이겨내고 지금 얼마나 잘 지내고 있는데요... 힘이 드시면 108배 만이라도 100일을 잡으시고 지난 시간 지은 죄를 무조건 참회하고 이 법을 만나게 되어 감사한 마음을 부처님께 바치세요. 성철스님 말씀이 절을 하는게 업장소멸에 가장 큰 약이라고 했어요. 업이 녹아내리는 것을 스크린으로 보여줄수만 있다면 모든 사람이 직장을 관두고도 절만 할려할거라시면서요.

 

카페회원님들의 비슷한 질문이 많아서 참고로 제 기도체험을 다시 옮겨보겠습니다. 제 이야기는 정답이 아니며 참고로 하세요. 어디까지나 제 체험담에서 나온 제 견해니까요.

 

전 대학원 다니면서 일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태어나서 처음 한 기도가 지장기도라서... 그것도 목숨걸어두고 한 기도가 되다보니까 몸에 익숙해졌나봐요. 그리고 그 당시 전, 일반적으로 많이 행해지고 있는 '염불'을 택한겁니다.

 

집에서만 했습니다. 장소는 중요하지 않아요. 하루에 천 원 혹은 삼천 원... 혹은 만 원... 여유가 없을 때는 몇 백원씩 저금통으로 만든 불전함에 불전을 넣고 얼마간 모이면 저희 동네에 어렵게 사는 분들에게 익명으로 쌀 한가마니 보시하면서 기도에 임했습니다.

 

장소에 연연해 하지 마세요. 어떤 사람은 북쪽이 좋은 사람, 동쪽, 서쪽... 등등... 말이 많은데, 내가 앉아서 불보살을 생각하는 그 자리가 법당이고 그 곳이 적멸보궁이지 따로 어느 장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미리 말씀드리자면 어떤 기도가 좋다는 개념은 '없다'라는게 제 견해입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토속신앙이나 타력신앙에 뿌리가 깊어서 기도는 오로지 빌어야 한다는 개념이 짙고 상황에 따라서 영가기도엔 지장기도, 극락왕생땐 아미타불, 현세를 위해선 관음기도, 취직이나 일의 성취는 신중기도 등으로 분리를 해주는 경우가 많은데, 주의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시는 부분은 왜 염불만 했나..하는 건데요, 제 나름대로는 단 하나에 집중하고 싶어서였어요. 그 당시 제 상황은 신내림을 받아야하는 너무 급박한 상황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숨 넘어가는 어린 애기처럼 살려달라고 지장보살님만 부르고 부르고 또 불렀던거죠...

 

보통 신내림은 거부할 수 없다고 하잖아요. 아닙니다!!! 무속인은 자기도 귀신이 몸에 들어와서 어쩌지를 못하는데 누가 누구를 구한다 말인가요?? 더 큰 힘과 원력에 의지해서 극복하는 게 바람직하고 이치에도 맞지 않을까요? 잡신은 잡신일 뿐이고 선신이라면 인간에게 해꼬지 같은 건 하지 않을거란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제 생각)

 

그 기도가 끝나고 곧 바로 들어간 100일기도 역시 '지장기도'였어요. 그 때는 제가 다니던 회사에 사표까지 내면서까지 강원도 월정사에서 30일간 삭발염의하고 단기출가를 해서 행자교육을 받고 온 바로 그 시점입니다. 님들께서 알아보시면 아시겠지만 한 달간 세속 생활을 STOP 상황으로 만들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이 행자교육이라는 거 헉!! 힘듭니다. 말 그대로 스님이 되기전에 행자 생활을 하고 오는건데, 인간도 아니고 스님도 아닌 존재라고 보시면 되요.

 

이 과정에서 '하심'을 크게 배웠죠. 태어날때 부터 미숙아로 태어나서 몸도 워낙 약한대다가 울기도 엄청 울어서 오대산에 소문이 자자했어요...스님들이 많이 괴로웠죠^^ 더 크게 발심해서 진짜 출가하시는 분들 아주 많습니다. 일체모든 만물은 부처다... 어찌 눈에 보이는 모든게 공경의 대상이지 않고 감사하지 않았겠어요.

 

교육중에 금강경 사경을 했는데 제가 좋아하는 기도수행법입니다. 부처님 말씀을 더 가까이 깊이 음미해보는 계기가 되었고 삿된 일과 정법에 대해서 어느 정도 나름의 가치를 세운 경험이었어요. 그리고 모든 상황은 내가 만든것이고 나의 죄는 스스로의 참회를 통해서 풀어야 겠다... 그리고 인과의 무서움과 밝고 큰 원력으로 세상을 다시 살아야 겠다는 마음이 생겨서 '지장보살본원경' 상권,하권 일자일배 기도를 했어요. 100일을 잡았죠. 해보시면 아시겠지만 아비라기도 이상으로 굉장히 힘듭니다.

 

일단, 100일이라는 시간동안 5신채와 술, 고기를 먹지 않았구요, 오로지 기도생각뿐이었습니다. 주변에선 미쳤다고 했죠. 모든 일이 그렇듯이 미쳐야 이뤄집니다. 기도 목적은 '업장소멸'이었습니다. 그 기간중에 전 엄청나게 많은 꿈을 꾸면서 신기한 경험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꿈에 너무 연연해 하시면 위험해요~~ 무(無) 꿈이 대(大)꿈이다. 성철큰스님 말씀이에요. 제가 근기가 워낙 약하니까 꿈으로라도 일러주는 거겠죠.

 

100일을 한 번도 안빠지고 퇴근 후, 절에 가서 예를 올린 뒤 바로 사경기도를 했어요. 시간은 2시간 30분 정도 걸리더라구요. 일상을 마치고 저녁에 기도를 하다보니 사경중에 법당에서 자다가 스님께서 깨운 경험도 몇 번있고 절 문이 잠겨버러셔 스님깨워서 문 열고 집 간적도 여러번 있었어요. 절에선 문제아였어요...^^

 

아시겠지만, 기도 중에 오는 경계가 무지 많습니다. 고기 먹을 일, 회 먹을 일, 회식자리...물론 술도 포함이구요, 연락 잘 안오던 친구들도 만나자고 연락오구요. 어떤 분은 집안에서 마찰도 많고 건강한 애기가 아프기도 하더라네요. 전, 모두 다 마장이라고 생각하고 뿌리쳤어요. 부처님 만나러 가는 시간이 저에겐 더 즐겁고 중요하고 소중하고 기다려지는 시간이었죠. 하지만, 굉장히 망설이게 되고 힘들었던건 사실이에요^^;

 

그 날 분량만큼 일자일배 사경이 끝나면 그 날 했던 양을 한 번 읽고 스님들께서 강의한 관련 책으로 내용 공부도 하면서 뜻을 맘에 새기는 것으로 그 날 기도는 마무리됩니다. 무조건 독경한다고 끝나는게 아니고 부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일러주시려나 하는 맘으로 임해야 합니다. 그 순간은 2500여년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부처님께서 지금 나에게 직접 법문을 해주고 계시는 시간이에요.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죄를 참회하게 되고 업장이 소멸되는 거라 봅니다. 이건 분명한 말이에요. 이 얼마나 다행하고 수승한 일이겠어요~ 사람 몸 받기 힘들고 불법 만나기는 더욱 힘들다는데 말이에요. 그리고 전, 기도 마지막 부분에 항상 했던 말이.. "사랑하는 부처님, 일체중생이 모두 행복하게 하소서..."로 마무리 했습니다. 원을 크게 세우시길 바래요. 과녁을 크고 크게 만들어야 화살 쏘기가 쉽겠죠? 부처님이나 지장보살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기특하고 대견하겠어요. 나만 잘 되고자 '밥 주세요' '돈 주세요' '취직시켜 주세요' ... 얼마나 밉겠어요^^

 

사실 처음부터는 아니고 기도 해 나가면서 마음이 커지더라구요.. 저도 처음에는 달라고만 했지만 해 나가면서 느껴지는게 분명히 있습니다. 비록 졸다가 나오더라도 내가 오늘 너무 피곤하니까 부처님께서 잠시 자게 하셨나보나.. 생각하고 또 감사함에 울컥하기도 하면서 하루 기도를 마치고 절밖으로 나오면 그 엄청난 환희... 님들께서도 꼭 느껴보시길 바래요~~~

 

직장다닌다, 학교다닌다, 일이 많아서... 집안 일이 있어서... 결혼을 한 주부라서 애들이 있어서...모두 다 핑곕니다. 미혼이라고 시간이 많고 기혼이라고 시간 없는 게 절대 아닙니다. 70~80평생 중 고작 100일 정도 투자 할 의지조차 없으시다면, 그런 나약한 생각을 가진 분이라면 기도 할 생각 하지마시고 그냥 그렇게 사세요!!!

 

생전 코피 한 번 안 나본 저는 기도 중에 코피도 여러 번 쏟았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구요, 인과의 법칙은 에누리 없다는 걸 우선 뼈속깊이 아셔야 합니다. 모두 다 자신의 지은 바 결과일 뿐입니다. 부처님이라고 해서 님들의 죄를 면해줄 수가 없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이 말 하니까 갑자기 화가 나는데....^^;;

 

스님들도 왜 이런 말을 해주는 분들이 많지 않을까요?? 자기 기도는 자신이 해야 합니다. 보통 이런 일이 있죠?? 어느 절에 무슨 기도를 붙였는데, 스님께서 실수로 어떤 분의 축원을 빼먹은 거에요. 그 신도가 노발대발 화도 나고 섭섭하기 하고... 그래서 스님에게 따지기기도 하고 섭섭함에 울기도 하고 말도 많고 탈도 많고.. 그러다 다른 절로 옮겨버리고.. 스님보고 절에 다니나요?? 허.. 참... 자기 자신이 그 도량에 있고 거기서 기도하는데 스님 축원 한 마디가 뭐 대숩니까??

 

자기는 온갖 나쁜 말을 입에 담고 섭섭한 생각으로 성내는 마음을 내고 어리석게 행동해서 기도 잘 한 그 복까지 까먹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스님께서 축원해주시는 그 공덕보다 본인 스스로 3배라도 하며 영가를 위해서든, 본인을 위해서든, 가족을 위해서 축원 하는게 더 올바르고 수승한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시 돌아와서, 기도를 하시는 도중에 어떠한 선지식의 지도를 받지 않더라도 여러가지 큰 공부가 되실겁니다. 불교는 체험의 종교라고 하잖아요. 정말인 것 같아요.

 

저랑 같이 절에 다니시는 분이나 절 신도분은 매일 3000배씩 12년째, 8년째, 짧게는 100일을 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학교 선생님도 여럿 계신데 이분들은 시간이 많아서 하시겠어요?? 집에서 학교에서 틈틈이 하시고 그 만큼 원력이 밝고 크기 때문에 극복하고 가능한 일이라고 봅니다.

 

참, 그리고 기도할 때 아침, 밤 상관은 없어요. 책에서 보니까 지장기도는 밤 9시~11시 사이가 좋다고 하는데, 저는 퇴근 후 7시 부터 9시 30분까지 했어요. 저의 어머니 경우도 늘 일과로 지장기도만 하시는데, 새벽 4시부터 108배와 지장보살 염불, 반야심경 11독, 밤 8시부터 광명진언 540독, 반야심경 11독하고 마치시더라구요. 시간은 중요하지 않아요. 얼만큼 지극정성으로 꾸준히..가 중요하죠.

그리고 지장보살님 사진을 두지 말라는 말은 근거없습니다. 조선시대때 억불 정책으로 인해서 집안에 불보살 사진이나 불상을 모시지 못하게 한 유교사상이 아직 뿌리내려져 있어서 하는 말이에요. 혹 궁금하시면 큰스님들께 여쭤보시면 압니다. 그야말로 근거없는 미신입니다.

 

저의 집에는 지장보살님 불화를 모셨습니다. 절에서 점안식을 하고 와서요. 불당처럼 된 건 아니구요. 작은 향 하나 켜두고 기도해요. 이런 것도 부담되면 원상을 걸어 두셔도 좋다네요.

 

앞서 말씀드렸지만 내가 맘 속으로 불보살을 생각하고 앉은 그 자리가 법당입니다. 아무것도 모시지 안아도 됩니다. 시방삼세 모든 우주법계에 두루 불보살님께서 계시고 다 아시고 다 보고 계십니다. 기도 순서가 좀 틀렸다고 넌, 복 조금만 가져가... 하실 분들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상에 집착하다보면 삿된 소견에 빠지기 쉬우니까 늘 주의하시고 기도하셨으면 해요~^^

 

그리고 지장기도 중에 능엄주와 광명진언은 왜 하나 하는 질문이 여러 분 계시던데요. 능엄주는 성철스님 문중에서 주로하는 부처님 비밀주문 중 하난데요, 기도 중에 오는 경계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능엄주 독송만을 기도법으로 택해서 기도 하시는 분도 많은데, 부처님 정수리 광명이라고도 하더라구요. 모든 일체 마를 타파하는 주문으로 알고 있는데, 이 주문만큼 출처가 분명한 주문은 없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도 직접 이 주문으로 모든 마를 극복하고 도를 이루었다고 능엄경에도 나와있어요. 기회되면 읽어보시길 바래요.

 

어떤 스님은 능엄주는 너무 큰 주문이라서 일반재가자들이 하는 게 아니라고 큰일 난다고도 하시던데 그건 올바른 말이 못된다고 성철스님께서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능엄경에 부처님께서 능엄주의 공덕부분에 하신 말씀이 분명히 나와있으니까 헛소리 하는 사람들의 근거없는 말들에 현혹되지 마세요.

 

모든 진언이 그렇듯이 능엄주는 대단한 큰 힘이 있는 건 아주 분명하고 착한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방해를 면할 수있답니다. 저도 여러번의 100일 기도 하는 동안 하루에 5독 이상은 했습니다.

 

그리고 지장기도 중에 왜 광명진언을 하냐는 질문에 관해선데요. 광명진언은 지장보살예찬문에도 나옵니다. 광명진언은 법신인 비로자나부처님의 진언이고 모든 불보살님의 총주이며, 부처님의 한량없는 자비와 지혜의 대광명으로 살아있는 이와 죽은 이 모두에게 새로운 태어남을 얻게 하는 신령한 힘을 지니고 있다하네요. 원효대사도 이 진언의 공덕을 크게 말씀 하셨다고 하니 영가 기도 때 아주 좋으리라 봅니다.

 

어떤 기도가 더 수승하고 좋다는 개념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께서도 같은 내용이라도 각각의 근기에 따라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셨다고 하잖아요. 너무 몰라서 살려달라고 오로지 구걸하듯 염불을 시작했지만, 염불 역시 마음을 밝히는 최상승의 기도법이라고 합니다.

 

저도 아직 제게 맞는 기도법을 찾는 중입니다. 그래서 여러가지 해보는 중입니다. 3000배, 능엄주 108독, 광명진언 1080독, 독경, 사경, 염불... 무엇이든지 좋습니다. 그리고 지장기도가 장애가 있다는 말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런 상이 생겨버렸기 때문에 그 한생각이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전, 지장보살님이 '너무너무 사랑스럽다', '두건까지 하셨네, 지장보살님은 센스쟁이~~', '너무 이쁘다'... 그러면서 기도했어요. 기도 시작할 땐 늘 '사랑하는 지장보살님, 제자 OO는...' 이렇게 시작했죠. 내가 사랑한다는데 대자대비하신 지장보살님께서 싫다고 무서운 얼굴로 내치시겠요??

 

지장보살님뿐만 아닙니다. 관세음 보살님도, 용수보살님도, 대세지 보살님도... 누구라고 마찬가지라고 봐요. 지장기도 중에 관세음보살님이 꿈에 나오셔서 답변해주는 경우도 무수히 많고, 관음기도 중에 보현보살님이 답변해주는 경우도 흔한 일입니다. 각각 근기가 다른게에요.

 

영가 천도라고 해서 지장보살님이 최고다라는 것도 아닙니다. 불법을 옹호하는 모든 일체 신들과 불보살님은 다 아십니다. 아미타불~~ 하셔도 되고 지장보살~~석가보니불~~ 관세음보살~~~ 모두 다 산자와 죽은 자를 이익되게 하시겠다고 큰 원력을 세우신 분이십니다. 부디 어떤 삿된 말에 현혹되지 마시고 한 분의 불보살을 님의 주불로 정하셔서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시길 바래요.

 

그리고 염불기도를 했다고 하니까 그 방법에 대해서 물으신 분들도 있는데요, 염불할때 전 천주를 이용했어요. 기도 할려하니까 엄마가 사주시대요~~

 

소리는 자신의 귀에 들릴 정도로 했구요, 처음엔 똑똑한 발음으로 시작해서 틈을 주지 말고 빠르게 했어요. 그게 집중하는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발음에 상관 안했구요, 염불할 때 지장보살님이 나에게 광명을 비추고 있다는 것을 맘 속으로 그리면서 하세요. 어떤 날엔 넘 하기싫을 때가 있는데 경계니까 필히 주의하시고 그럴땐 큰 소리로 하니까 도움이 되더라구요. 잘 되는 날엔 기도가 잘 되고 있다 생각하고 더 많이 했구요. 하지만 마장이 온다는 것도 기도가 잘 되니까 방해하는 요소가 생기는 거니까 실망마시고,

 

"아~ 내가 잘하고 있는거구나!!"하세요. 포기만 안하시면 됩니다. 저도 절에 작은 할아버지 위패를 모셨는데 요즘엔 집에서 합니다. 영가는 식이 맑아서 님께서 맘 속으로 부르면 금방 알아차리고 온다네요... 어디든 상관없지만, 이왕이면 일주일에 한 번씩은 영가위패 모셔진 절에 가셔서 기도 하심이 좋을 듯해요.

 

전, 절에서 기도할 때 늘 동방이라고 하는 고름달린 옷을 챙겨입고 합니다. 옷이 뭐 중요하냐 하겠지만, 중요합니다. 트레이닝 복 입고 기도하는 것이랑 법복을 정식으로 바르게 차려입고 하는 건 마음자세를 말하는 겁니다. 꼭 동방이 아니라도 기도 때 입는 옷은 늘 깨끗이 하셔서 입으시길 바래요.

 

그리고 사람들은 기도 중에 꿈을 꿔야 하는데... 왜 난, 꿈을 안꾸지?? 기도를 잘 못하고 있나?? 하시면서 너무 꿈에 의지하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정말.... 그게 뭐라고..기도하면서 너무 신비스러움 쪽으로 의미를 두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말들에는 현혹되지 마시길 바래요. 부처님께선 해몽도 하지 말라 하셨어요. 다 마음 작용인거죠. 해몽도 하기 나름이잖아요. 가피라는 게 별거에요??

 

힘든 기도를 해냈다는 성취감과 자신감으로 인해서 긍정적인 사고가 형성되면서 업장이 소멸되고 가피를 받는거에요.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 마시고 그 날 그 날의 기도에 최선만 다하면 되지 언제 가피를 받나...하는 쓸데없는 생각하는 시간에 염불 한 번 더하는게 더 낫지 않을까요?

 

제 경우는 6월 26일 까지 금강경 사경을 마칠 계획이에요. 그리고 자나깨나 오고갈때 늘 광명진언을 입에 달고 다닙니다. 꿈속에서도 가능해지기위해....^^

 

그리고 6월 27일 부터 우란분절(백중)날까지 제가 사랑하는ㅋㅋ 지장보살님께 일체영가의 왕생극락을 위해 그리고 늘 부처님 곁에 태어나게 되기를 발원하며 기도 드릴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어머니께서 영가기도는 계속하시지만 개인적으로 작은 할아버지(아버지 삼촌)를 위한 기도를 이번엔 집중적으로 하려고 해요. 제겐 특별하신 분이라서요. 결국, 기도라는건 내가 편하자고 하는 거 아니겠어요?? 돌고 돌다보면 결국 나 자신이라는 걸 아시리라 봅니다.

영가 장애가 있거나 어려운 상황에서 기도하시는 분들은 부디 불보살님께 '...해 주세요'등의 기도보다는 '잘못했습니다'의 참회기도와 '...일체 중생의 행복을 발원합니다' 혹은 '... 부처님전에 부디 복 많이 짓게 하소서..;등의 크고 밝은 원을 세워서 기도 하셨으면 합니다.

 

부처님은 해달라고 해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모두 자기 지은 바 대로 인과의 법칙만이 있을뿐입니다. 그것을 일러주신분이 부처님이고 강을 건너는 뗏목으로 알라고 하셨어요. 뗏목도 이미 강을 건넌 사람에겐 필요없듯이 상에 집착하지 마시고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바르게 생각하서서 늘 불보살님의 가피로 소원성취하시길 바라고 밝은 곳에 복 많이 지으셔서 오늘 여러분이 기도 한 공덕이 씨앗이 되어 반드시 탐스러운 열매가 맺어지는 날이 오기를 발원합니다.


부디 님들께서도 기도성취하시고 일체생명에게 회향 잘 하셔서 맑고 밝은 분이 되시길 바래요~~ 님들과 인연있는 모든 영가들의 왕생극락을 바라며 이만 줄일게요.

 


44. 강보리심님 글

 

저도 한때는 무섬증으로 잠을 못이뤘어요 그러다 지장기도를 한후에 점점 없어지더군요, 그리고 신기하게 우리 강아지가 자주 경기를 했었는데 지장기도후에 그 증상도 없어져서 홀가분해요

 


45. 보소미님 글

전에 지장기도를 한적이 있었는데 4년쯤전에 그땐 꿈에서 거의 선명하게 풀려나가는게 보이고 지장보살님도 친견하고 했었는데요.( 산꼭대기로 따라올라갔어요) 제 생각일지도 모르겠네요. 참.. 지팡이든 할아버지셨어요.

 

 

46. 맑고 깨끗한 마음님 글

 

지장기도를 생활 수행 삼아 한지 100일이 넘었는데요 저의 가족의 업장소멸을 계속 기도 중이며 더러 꿈을 꾸기도 하는데 며칠전 꿈에 동남아의 한 나라에 제가 잠시 체류중인 듯한데 너댓살 먹은 아이가 나랑 같이 있다가 이제 가야 되겠다고 하면서 나를 떠나려 하는데 제가 안쓰러움과 아쉬운 마음을 느끼면서 제가 갖고 있던 가방을 메어주고 옷을 벗어서 입혀주고나서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그 아이에게 주면서 다독거려주고 잘가라고 말했던 것 같습니다. 꿈을 꾸고 나서 마음이 참 평안했습니다

 

47. 지장경 독송 가피 - 海印님 글

 

두서없이 짧게 적어 보겠습니다만...길지도 모르지요. 어느날 몸이 부르르 떨리면서 빙의가 왔습니다.

 

그날이후 몸은 천근만근 정신은 오락가락이 되어 버리더군요. 팔다리는 아령이 하나 달린 몸이 되어 100m 걸어면 지쳐버렸습니다. 간다가 쉬어간적이 한두번이 아니지요. 정신을 흔들어 버리니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되더군요. 모든 눈에 보이는 대상물이 무섭고 두려움의 대상이 되더군요.

 

숟가락 신발 테레비 책장 벽 ...기타 모든것이 눈에 꼽힐때 바로 무섭고 두려워 지더라구요. 나중에는 우울증까지 오더군요.. 아뭏듯 정신상태가 자살을 유도할 정도로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혼자 죽으면 남은 가족들이 불쌍해서 동반자살 할까 고민할 정도로.. 빙의에 의한 몸의 괴로움과 두려움, 무서움 그기에 우울증까지 동반... 아무튼 날이 갈수록 더 심해 지더군요...

 

대체 원인이 뭘까...고민하다가 우연히 제가 다니는 절의 지장재일법문을 인터넷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빙의와 업병에 대해 법문이 나오더군요... 이거구나...이거구나... 그나마 지장보살님의 가피로 인해 지장법문을 보게 되었구나... 참으로 고맙더라구요... 지장기도를 해야겠다 싶어..이리저리 서점에 가서 지장경과 영가천도에 관계되는 책을 10권 정도 구입해서 우선 다 읽었습니다...물론 지장기도 하더라도 지장보살님에 대해 제대로 알고 하자는 취지였죠.

 

수많은 기도법이 나오는 가운데...딱 하나만 하기도 했습니다. 지장경 1독만 하자.. 딱 하나만 죽도록 패자... 지장경 1독을 시작했습니다. 참 길더군요 1시간 30분...그것도 소리내어서 하니 힘이 딸리더군요. 깡....으로 버텼습니다... 일주일후....그 무겁던 다리가 풀리더군요.. 100m 걸으면 치쳐버리는 아령이 하나 달린 그 무거운 다리가 풀리더군요... 또 일주일후..그 무겁던 아령달린 팔이 풀리더군요... 그 찝찝하고 더러운 기분의 몸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니 좀 살것 같더군요... 하지만 정신은 여전히 오락가락... 또 한달 보름후 어느날 지장경을 독송하는데 갑자기 정신이 맑아 지더군요... 두려움과 무서움이 다 날아 가버리고 평상시의 정신상태를 나타내더군요...

 

얼마나 기뻤던지...지장보살님의 가피가 빠르다는것을 알았지만..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입으로 자동으로 대원의 본존이신 지장보살님이시여...감사합니다. 수없이 되새겼습니다.. 지장경의 내용대로 독송의 위력이 이정도 구나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아뭏듯 그날이후 정상적인 생활을 지금껏 하고 있습니다...

 

빙의 탈출외 또 지장보살님의 가피를 보너스로 더 받으니.. 어찌 감사해야 할지... 몇자 더 적어 보겠습니다.. 제가 매일 지장경 독송할때 매일 천원씩 보시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매일 천원씩 모은돈이 한달이 지나니 조금 쌓이니.. (사실 금액은 한달에 3만원 꼴입니다...) 어떻게 할까 생각 하던중...어느 스님 법문이 귀에 지나가더군요.

 

스님이 이런이야기 하는것 사실 부끄럽지만 부처님전에 보시하는것이 가장 수승하다...말씀이 생각나더군요. 그래서 제가 다니는 절 지장전에 보시해야겠다 싶었지요.. 제가 절에 모든 재일에는 거의 갑니다... 처음 한달반을 모은 보시금을 들고 초하루때 지장전에 보시하고 왔지요... 일주일후...2천만원의 공돈을 들어 오더군요... 오....오... 그로후 한달뒤 또 그동안 모은 보시금을 들고 지장전에 보시하고 왔지요.. 일주일후...5백만원의 공돈이 들어 오더군요... 오...오... 그로후 또 한달뒤 그동안 모은 보시금을 들고 지장전에 보시하고 왔지요.. 사실.. 이때는 또 주시겠지..하는 기대를 하게 되는 어리석은 심정이 되더라구요.. 일주일후...백만원의 공돈이 들어 오더군요... 그때 무릎을 쳤습니다...보시에는 어떤 조건이 걸리면 안되고 무조건 청청해야 한다고... 그뒤 기도후 천원을 보시할때마다 딱 한가지만 이야기합니다.

 

대원의 본존이신 지장보살님이시여. 제가 보시하는 이 공덕을 우주법계에 회향합니다. 모든 중생들 다 잘되게 하여 주십시요.

나무 대원본존 지장보살 마하살
나무 대원본존 지장보살 마하살
나무 대원본존 지장보살 마하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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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뭏듯 지장경 독송의 가피의 위대함을 알았습니다... 빙의 탈출과 경제적 이익을 얻었으니 말입니다... 빙의 탈출이후 다시 기도를 시작하여 지금은 지장경독송 3년 목표로 64일째 기도중입니다... 마지막으로 경봉 큰스님의 말씀을 들려드리겠습니다.

 

" 믿음 그것만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 "

 

기도하시는 모든 불자님들 우리는 이 세상에 가장 강력한 빽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고 행하기만 하면 모든 가피가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나무 대원본존 지장보살 마하살 ()

 

 

48. 익명님 글

 

삼칠일 지장기도를 마치고 절에 다녀온 그 날 꿈을 꾸었는데, 한복 차림의 수많은 이들이 아주 하얗고 아름다운 장식이 화려한 가마를 들고 빛이 환하게 빛나는... 경사가 완만한 언덕으로 올라가더군요. 거의 잔치 분위기 였고, 모든 이들이 어딘가에다 대고 감사하다고 연거푸 절을 하며... 합장한 채로... 기뻐하며 가더군요

 

 

49. 성국누나님 글

저는 사실 몇 년 전에 장소 안 가리고 지장보살님 염불하던중 지장보살님을 뵈었는데, 지장보살님은 너무나 따뜻하고 인자하신 미소를 지으시면서 제 손을 잡아주셨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원만한 상호이셨습니다. 원불을 바꿔 모시지 마시고, 꾸준히 지장보살님 모시고 지장기도 열심히 하셨으면 합니다. 분명히 크게 가피를 입으실 겁니다.

나무 지장보살마하살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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