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약은, 한나라와 위진남북조 시대의 연단술(練丹術)에서 탄생했습니다.
화약은, 한나라와 위진남북조 시대의 연단술(練丹術)에서 탄생했습니다.
중국 전국시대의 기록중 하나인 전국책(战国策)에는 방사(方士), 즉 연단술사가 형왕(荆王)에게 불사약(不死药)으로 헌상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불로불사약을 황제가 간절히 원하고 그에 부응하고자 연단술사들이 실험하고 연구하는 과정에 탄생한 우연의 산물이 화약이었다고 말합니다. 시간이 흘러 이것이 사람을 살리는 약재가 되기도 하고 사람을 죽이는 무기의 재료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태평광기(太平廣記)에는 수나라 초기에 두춘자라는 사람이 연단술사 노인을 찾아간 기록이 적혀있는데, 그날 한밤 중에 일어나 연금로 안을 보았는데 '보라색 연기'를 보았고 곧 집이 불로 휩싸였다라는 이야기가 적혀있는데, 사용한 재료가 화약인지는 모르겠지만 인화성 물질을 연단술사 노인이 만들고 부주의하여 집에 불을 낸 것으로 유추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국내에 알려진 조선시대의 태평광기상절(太平廣記詳節과 태평광기언해(太平廣記諺解)는, 중국의 태평광기(약 6,900여 이야기)를 일부 뽑아 한글로 번역한 것입니다.
일본의 구성기학 취토법에서 신사의 마루나 처마 밑 흙을 채취하라는 것은, 땅의 기운이 깃든 흙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질산칼륨을 채취하기 위한 설명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단, 질산칼륨은 호흡으로 들이마시면 건강상 좋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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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학으로 취토법(取土法)을 행할 때, 국내에서 제일 문제인 부분은 바로...
구성학으로 취토법(取土法)을 행할 때, 국내에서 제일 문제인 부분은 바로... 얼마전 강의수강하러 오신 분중에 한분이 다른 곳에서 구성학과 취토법을 배워 행하였는데아무런 효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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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신문사의 글인데 상당히 만족스러워 올리니, 견문을 넓히는 마음으로 읽어보세요.
조선의 화약은 왜 '똥천지' 길가의 흙에서 뽑아냈을까
‘화약(火藥)은 원래 약(藥)이었다’는 말은 그렇다칩시다. ‘화약이 똥에서 나왔다’는 게 무슨 소리일까요.
국립진주박물관이 3월 22일까지 ‘화력조선’을 주제로 조선무기 특별전을 열고 있는데요. 그런데 발간을 앞두고 있는 특별전 도록 원고를 받아본 제 눈길을 끈 소재가 몇 있었습니다. 먼저 ‘화약(火藥)’이 당초에는 ‘약(藥)’으로 쓰였다는 게 눈에 띄더라구요.
화약은 9~10세기 무렵부터 중국 송나라 때부터 무기로 활용되었는데요. 그러나 그 이전에도 화약은 제조되었답니다. 화약은 염초(초석 혹은 질산칼륨·KNO3)와 숯, 유황을 혼합해서 만들죠.
■ 약재로 쓰인 화약
화약은 도교사상이 유행한 중국 한나라와 위진남북조 시대에 연단술(煉丹術)의 하나로 사용되었는데요. 연단술은 금단(광물로 만든 약)을 조제·복용하는 신선도술이죠. 불로불사를 원한 도사들이 사용한 팔석(八石·염초·주사·웅황·운모·공청·유황·융염·자황) 중에 화약의 재료인 염초(초석)와 유황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초석과 유황 같은 화약재료가 왜 도교에서 신성시되었을까요. 단약을 만들려면 재료들을 청동솥에 넣고 끓여야 합니다.
그 재료가 화약재료(염초·유황)라면 산화재인 염초와, 연소 온도를 낮추는 유황의 화학작용으로 자연스레 불꽃이 튀는데요.
자연에서 얻는 물질에서 불꽃이 튀는 모습에서 신비감을 느꼈을 겁니다.
그 때문인지 화약은 무기로 개발된 이후에도 약재로 사용되었습니다. 명나라 의서인 <본초강목>은 “화약을 장티푸스 등 열병 치료제로 쓴다”고 했고, 허준(1539~1615의 <동의보감>도 <본초강목>을 인용하면서 “염초 성분을 포함한 ‘아궁이 속 흙’과 ‘지붕 아래 먼지’ 등이 약재로 쓰인다”고 기록했습니다.
■역관 김지남이 비밀리에 가져온 비법
‘조선의 의성(醫聖)’이라는 허준은 왜 ‘아궁이속 흙과 지붕 아래 먼지’ 등을 장티부스의 치료약으로 언급했을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약재로 쓰든, 무기에 쓰든, 화약제조를 위해 가장 구하기 어려웠던 것은 염초(초석 혹은 질산칼륨)이었습니다. 숯(목탄)은 자체수급이 가능했고, 유황은 화산섬인 일본에서 수입하면 됐습니다.
그러나 화약 제조를 위해 70% 이상 드는 염초는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인도나 남미 같은 곳에서는 새나 박쥐 등의 분뇨가 광산처럼 널려있어서 구하기 어렵지 않았는데요. 유럽에서도 인분을 쌓아둔 염초밭을 조성해서 질산염을 대량 생산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에는 분뇨광산도, 염초밭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화장실이나 동굴, 마루밑, 아궁이, 처마밑 속 흙 등에서 염초 성분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랬기에 취토장(取土匠)이라는 기술자를 두어 각 집안 곳곳의 먼지와 흙 등을 긁어모았습니다.
이런 곳의 흙에는 쥐, 개, 닭과 같은 동물의 분뇨와, 재, 석회 등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렇게 모으는 염초가 얼마나 됐겠습니까. 필요한 염초량은 흙의 1%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역관 김지남(1654~?)이 중국에서 몰래 들여온 <자초신방>이라는 책이 고민을 단번에 해결했답니다. 화약제조법은 국가기밀이었죠. 통역관을 맡아 중국을 방문한 김지남은 ‘염초 구하는 비법’이 적힌 이 책을 입수해서 천신만고 끝에 국경을 넘어왔습니다.
■똥흙에서 화약을 추출하라
김지남은 이렇게 들여온 <자초신방>을 토대로 <신전자초방>이라는 28쪽 짜리 책을 펴냈는데요.(1698년·숙종 24)
이 책에 적힌 ‘염초 구하는 비법’이 무엇일까요. 바로 길가에 널려있는 흙에서 염초의 원료를 찾을 수 있었다는 겁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똥흙’이었습니다. 허무개그 같죠. 아닙니다.
왜냐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18~19세기까지는 길가에 똥과 오줌을 마구 버렸거든요. 서양 하이힐의 원조가 중세 유럽에서 똥천지인 거리를 오가기 위해 불가피하게 만든 굽높은 구두였다는 것은 너무도 유명한 일화죠.
조선에서도 마찬가지였죠. 북학파 실학자인 박제가(1750~1805)는 “서울에서는 오줌을 마구 내다버리므로 우물물이 짜고, 냇다리의 석축가에 똥이 더덕더덕 말라붙어 있다”(<북학의>)고 했잖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똥천지였던 거리의 흙이 염초밭이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된 겁니다. 콜럼버스의 달걀이라 할까요. 덕분에 이제는 남의 집 화장실이나 마루·처마밑에 들어가 흙을 긁어낼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정조의 개인문집(<홍재전서>)와 <정조실록>(1796년 5월12일조)은 “이제 길가의 흙에서 마음껏 염초 구하게 됐다”면서 “숙종 때 인쇄·반포한 <(신전자초방>은 영원히 준수하고 따라야 할 금석과 같은 성헌(成憲·헌법)같은 책”이라고 극찬했습니다.
이렇게 얻은 ‘똥흙’에서 어떻게 염초가 만들어질까요. 똥흙을 잿물과 섞어 끓인 뒤 졸여서 생기는 결정을 얻어내는 건데요.
염초(초석)은 질산칼륨(KNO3)인데요. 발효된 생물의 분뇨(질산염·NO3)가 주 원료거든요. 이 분뇨(질산염·NO3)와, 칼륨(K)이 다수 함유된 재나 석회가 잘 섞이고 발효되어야 염초(KNO3)가 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똥’이 ‘염초’로, 아니 ‘똥’이 화약으로 거듭나는 겁니다.
출처 : https://www.khan.co.kr/article/202201100602001
[이기환의 Hi-story] 조선의 화약은 왜 '똥천지' 길가의 흙에서 뽑아냈을까
‘화약(火藥)은 원래 약(藥)이었다’는 말은 그렇다칩시다. ‘화약이 똥에서 나왔다’는 게 무슨 소리일까요. 국립진주박물관이 3월 22일까지 ‘화력조선’을 주제로 조선무기 특별전을 열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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