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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칼럼

고사상에 돼지머리를 쓰는 진짜 이유와 돼지머리를 놓는 위치...

by 예경 2016. 12. 11.

 

 

 

 고사상에 돼지머리를 쓰는 이유 혹시 아시는 분 계시나요?

 

다들 고사 때 돼지머리를 쓰는 이유를 온갖 길상한 의미를 다 갖다붙여서 해석을 하지만...

그건 현대에 와서 사람들이 만들어낸 얘기들이 대부분입니다.

 

이제 공개합니다.

 

먼저 소와 양 그리고 돼지는 고대 농경사회의 원시부족들이 신의 화신으로 믿었던 동물들입니다.

 

소는 농경사회가 시작되면서 농사의 효율을 높여주는 동력(動力)이었고, 영양분이 풍부한 우유와 고기는

사람들의 삶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인도에서는 소를 신성시하고, 고대 그리스에서는 소가 왕권을 상징했던 것은

이러한 이유들 때문입니다. 참고로 조선시대에는 노비보다 소 한마리 가격이 더 비쌌습니다.

 

양은 털과 우유 그리고 고기로 사람의 삶을 풍족하게 하였고, 특히 양털은 여러 용도로 쓰였습니다.

 

돼지는 한번에 여러 새끼를 낳아 다산과 복을 상징하고 풍부한 고기를 제공하기에...

동아시아, 동남아, 유럽 등지에서 많이 숭배하지만, 중동지방 같이 척박한 대지에서는 숭배가 아닌 배척의 대상이었습니다.

 

세 동물의 가치는 활용도에 따라 소>양>돼지로 매겨지며 소가 제일 비쌌고, 그다음이 양, 마지막이 돼지입니다.

소, 양, 돼지 같은 고대 동물숭배에 대한 내용은 너무 방대하기에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하나하나 소개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줄 정리하자면, 고대에는 소와 양 그리고 돼지를 숭배하는 부족들이 매우 많았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제사를 지낼 때 숭배하는 동물을 제물로 올립니다.

 

 

 

기본적으로 이정도를 알고 계신 상태에서, 주나라의 예법인 주례(周禮)를 보시면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왕(王)은 소(牛), 양(羊), 새끼돼지(乳猪), 말린 물고기(乾魚), 말린 고기(乾肉), 생두(牲肚), 돼지고기(豬肉), 신선한 물고기(鮮魚), 신선한 육포(鮮肉乾) 즉 구정(九鼎)을 제사 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제후(諸侯)는 소(牛), 양(羊), 새끼돼지(乳猪), 말린 물고기(乾魚), 말린 고기(乾肉), 생두(牲肚), 돼지고기(豬肉) 즉 칠정(七鼎)을 제사 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경(卿)과 대부(大夫)는 양(羊), 새끼돼지(乳猪), 말린 물고기(乾魚), 말린 고기(乾肉), 생두(牲肚) 즉 오정(五鼎)을 제사 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士)는 새끼돼지(乳猪), 말린 물고기(乾魚), 말린 고기(乾肉) 즉 삼정(三鼎)을 제사 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주례에는 이렇게 지위에 따라 제사에 올릴 수 있는 공물이 제한을 하여,

왕(王)과 제후(諸侯)는 소, 양, 돼지 삼생(三牲) 모두를, 대부(大夫)는 양과 돼지를, 사(士)는 돼지를 사용하여 제사를 지냈으며...

여기서 언급하는 제사에서는 통채로 올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왕가에서 지내는 제사의 경우 제물로 사용하는 동물을 별도로 관리하는 직책이 따로 있었을 정도로

하늘에 올리는 제물에 대한 정성을 많이 들였는데, 이에 대한 부분은 삼국사기 등에서 많이 등장하며...

소의 경우는 농경사회의 큰 동력이기 때문에 삼국시대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죽은 것이 아니면 취식하는 것을 금기시 하였습니다.

 

 

 

주례에서 가장 낮은 계급이 사(士)이고, 옛날 마을에서 큰 제사라고 하면 보통 이들의 제사를 지칭하였으며...

위세가 큰 가문일수록 더 화려하고 풍족한 제사음식들이 나왔고, 제사가 끝난 후에는 평민들에게 두루 나누어 주었으니

이들의 제사는 마을의 축제일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지배계층의 제사를 언급한 것이고, 평민들은 돼지, 닭, 물고기로 제사를 하였습니다.

평민중에 매우 잘 살거나 마을단위의 크고 중요한 제사에는 사(士)와 같이 돼지를 썼다는 것으로 보시면 됩니다.

 

또 일반적인 굿은 대부분 평민들의 제사굿이므로 제도적인 부분도 있지만 금전적인 부분으로도 돼지 이상의 제물을

올리기가 어려웠고 돼지 한마리를 올리기가 어려웠던 당시 사회적인 관념속에서 무당들을 중심으로 하나의 무속신화가

탄생했습니다.

 

 

옛날 옥황상제 밑에 업장군과 복장군이 있었는데, 업장군과 복장군은 사이가 좋지 않아 서로 다투지 않는 날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옥황상제가 두 장군을 불러 탑을 쌓는 시합을 열어 이기는 자를 가까이에 두겠다고 선언을 합니다.

 

탑을 쌓는 시합이 시작되고 업장군이 꾀를 내어 복장군을 이겼지만, 하지만 하늘을 다스리는 옥황상제가 이를 모를리가 없습니다.
금방 업장군의 꾀가 탄로나자 꾀를 부리지 않고 성실하게 시합에 임한 복장군을 가까이 두기로 결정하였고, 복장군을 돼지로

환생시켜 인간세상의 사람들이 옥황상제에게 소원을 빌 때 그 소원을 옥황상제에게 전달하는 중개역할의 권한을 주었습니다.

 

이때부터 굿이나 고사를 할 때 복장군을 의미하는 돼지머리를 앞에 놓아 사람들이 소원을 빌면 복장군이 이를 받아 옥황상제에게 전달하였습니다.

 

 

이 무속신화로 인해 평민들에게 있어 돼지머리가 옥황상제께 소원을 전달하는 전달자로 여겨지면서

지금과 달리 조선시대에는 평민들에게 있어 그림의 떡과 같을 정도로 귀했던 돼지고기 대신에

백정들이 돼지를 도축하여 남은 필요없는 돼지머리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돼지머리를 제사상 앞에 올려두어 옥황상제에게 소원이 올바르게 전달되길 기원하였습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돼지머리는 제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 고사를 지낼 때 돼지머리를 놓는 위치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아까 위에서 돼지머리는 옥황상제에게 소원을 전달하는 중간 전달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위의 3장의 사진중 1번째 사진은 돼지머리와 연결된 존재에게 제사를 지내는 양식이고,

2번째 사진은 전혀 제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돼지머리를 제사음식으로서 올리는 양식입니다.

그러므로 위의 무속신화를 빗대어 보면, 위의 2개의 사진은 돼지머리의 위치가 잘못된 것이 됩니다.

 

마지막 3번째 사진은 제사상 앞에 돼지머리가 작은상에 따로 있는데 이것이 바로 제대로 된 돼지머리의 위치입니다.

뒤의 제사상은 신에게 올리는 것이고 바로 앞에 작은상을 마련하여 돼지머리를 올린 것은 옥황상제의 명을 받은 복장군을 상징하며,

중간에서 잘 전달해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로, 고사상의 제사머리는 제물로서가 아니라 전달자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제 돼지머리가 왜 고사나 굿에 사용되고 제사상의 어디에 놓는지 아시겠죠?

 

제가 이렇게 공개한 내용은 온라인에서도 다른 책에서도 없는 내용입니다.

나중에 이와 관련된 얘기가 나올 때 써먹으시면 좋으니 잘 기억해두셨다가 사용하십시요. ^^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평온한 저녁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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