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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칼럼

중국의 가짜 활불 낙상단진(洛桑丹真) 사건

by 예경 2023. 10. 12.

10년 동안 활불로 살면서 360억 원을 착취하고 여신도를 농간한 사람

 

 

“너의 손을 잡아 끌고 약간 얼굴 만지작거리면 너는 남녀 구별과 세속 구별을 말하기 시작하니 그러면 스승은 너를 상대도 안 할 거야. 스승이 너를 정화시켜 주기 위해 너에게 ‘가지(加持)’해 주는 것인데 네가 세속적인 남녀 분별이 있다고 하니 스승이 어떻게 너에게 가지를 해 줄 수 있겠니?”

2016년 한 선교활동에서 낙상단진(洛桑丹真) 활불이 대중들 앞에서 여성 신도에게 이런 노골적인 말을 대놓고 했다.

이상하게도 많은 신도들 중 아무도 스승의 이런 패담에 대해 반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부 여성 신도는 기꺼이 자신의 몸을 바치기도 했다. 이것은 오직 스승의 ‘가지(加持)’받아 자신의 몸과 정신을 정화시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 때문이었다.

* 여기에서 ‘가지(加持)’는 불교 밀종파(密宗派)에서 많이 사용하는 용어이다. ‘가지’란 외력으로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강제해 새로운 에너지를 받아들이도록 해 원래의 상태와 모습을 바꾸도록 하는 것이다.

2021년 2월 2일 자칭 사람의 마음을 정화시킬 능력이 있는 한 ‘활불(活佛)’은 제남(济南) 중급인민법원으로부터 불법경영죄, 강간죄, 여성 강제추행죄로 유기징역 25년을 선고받았다.

이런 법원 판결이 난 후에야 이 신비한 낙상단진(洛桑丹真) 활불의 진면목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즉 이 활불은 불교 교리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강호의 사기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세상에 밝혀졌다.

그럼 한 명의 사기꾼이 어떻게 3,000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자신에게 순종하는 충실한 신자로 만들 수 있었을까? 겉으로 보기에는 고상한 활불이었지만 사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비밀에는 또 어떤 것이 있을까?

겹겹이 포장을 해 활불이 된 교도관

 

이 낙상단진(洛桑丹真) 활불의 본명은 왕흥부(王兴夫)로 한족(汉族)이 확실하다.

왕흥부는 1955년 1월 4일 산동성의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가정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에 재산에 대한 막연한 갈망과 탐욕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학력이 높지 않은 시골 아이인 왕흥부는 돈을 벌어 부자가 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왕흥부는 1970년대 들어 기회와 인연이 딱 들어맞아 제남 교도소에서 일하는 공직자가 됐다. 당시만 해도 교도관이라는 직업은 다른 사람들이 부러울 정도로 철밥통이었고 또한 복지 혜택도 나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일하고 싶어했지만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왕흥부는 자신이 큰 행운을 잡은 것을 알지 못하고 어떻게 해서 더 큰 부자가 될 수 있을지 골몰했다.

1990년대 중반 왕흥부는 마침내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찾아 내었는데 자신이 기공(气功)의 대가가 되는 것이었다.

1990년대 중국 전체 사회에 ‘기공’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많은 사람들이 어느 기공을 단련한 후 기분이 상쾌해지고 허리가 시리지 않고 다리가 아프지 않게 되었다고 자랑하였다. 이런 미신적인 풍조가 점점 사회에 퍼지더니 그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이를 믿는 사람들도 많아지게 되었다. 왕흥부는 바로 이 기회를 붙잡아 큰 돈을 벌려고 준비했다.

왕흥부는 1995년 사람들의 관계를 이용해 자신을 기공대사(气功大师)로 만들었고 또한 티베트 불교 밀종(密宗)의 이름을 도용해 스스로‘밀종세심공(密宗洗心功)’을 창조하였다. 그는 대외적으로 이 밀종세심공이 몸을 튼튼하게 하고 병을 치료해 사람을 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장수하는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다. 이 소식이 전파되자 곧 많은 신도들이 스스로 찾아왔다.

왕흥부는 1995년부터 1996년까지 1년여 동안 성도(成都), 제남(济南), 심양(沈阳) 세 곳에 소위 ‘기공반(气功班)’을 설립하여 휘하 신자가 백 명이 넘게 모여들어 매달 학비로만 5,000여 위안을 벌어들일 수 있게 되었다.

1995년 중국에서 일반 노동자 1인당 1년치 임금이 2,000여 위안에 불과했다. 하지만 왕흥부는 한 달에 5,000 위안 내지 7,000위안을 벌 수 있었다. 어릴 적부터 가난한 시골에서 자란 왕흥부는 순식간에 큰 성취감을 느끼게 되었다.

기공반 수입이 매우 많아지자 교도소 공직자인 왕흥부는 아예 이 기공 사업을 본업으로 삼았다. 결국 왕흥부가 장기간 무단결근을 해 교도소에서는 1997년 그를 해고 조치했다.

비록 직장에서 해고되었지만 왕흥부는 조금도 아쉽지 않았다. 자신이 차린 기공반이 그에게 많은 돈을 벌게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1년 교도소에서 일해 번 돈을 한 달이면 벌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총명한 왕흥부는 이때부터 그가 사악한 길로 본격적으로 접어들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2000년이 되어 중국 정부는 법륜공(法轮功) 등 기공 수련을 단속하기 위해 일련의 법안을 제정하였고 각지의 공안 기관들은 ‘기공반’에 대한 수사력을 높였다. 이때 왕흥부는 ‘기공반’을 통한 돈 벌이가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눈치채고 다른 수단을 이용한 돈벌이를 찾아 나서게 되었다. 이후 왕흥부는 자신의 신분을 불법(佛法)을 전파하는 불교 거사로 변신시켰다.

2006년 불교 거사(佛教居士)이기도 한 왕흥부는 우연한 기회에 사천성 감자주 석거현 아약사의 공지(贡智) 활불(活佛)을 알게 됐다. 이를 기회로 왕흥부는 자신의 사기꾼 인생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이 공지 활불은 현지에서 명성이 높지만 아쉽게도 이 활불은 중병에 걸려 살 날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당시 왕흥부는 자신의 포교 활동을 합법화시키려고 도모하고 있었다. 그래서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이 활불을 이용하기 위해 그에게 비위를 맞추기 시작했다. 자신의 제자를 데려가 이 활불이 머무르고 있는 절에 백만 위안(약 1억8천만 원)이 넘는 성금을 바쳤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살아 있는 부처로 환생했다고 했다.

이런 왕흥부의 맹렬한 사탕발림에 이 활불은 왕흥부를 마지막 제자로 받아들였고 아울러 임종 직전 자신의 또 다른 제자로 당시 아약사(俄若寺) 주지이자 민관회(民管会) 주임이었던 노융을 불러 왕흥부를 잘 부탁한다고 신신당부했다.

정통 티베트족 불교인인 노융은 왕흥부의 사기꾼 신분을 한눈에 간파하였지만 스승의 요양에 지장을 줄까 봐 왕흥부의 의도를 폭로하지 못했다. 스승이 열반하자 노융은 자신의 사제 왕흥부를 조금도 안중에 두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왕흥부를 겨냥했다.

왕흥부는 자신을 배척하는 노융의 의도를 간파하고 어느 흑풍이 불던 날 밤에 노융을 따로 집에 초대해 묵직한 지폐 뭉치를 노융의 눈앞에 내놓았다. 이후 왕흥부는 노융에게 자신을 진짜 활불(活佛)로 만들어 주기만 하면 앞으로 사찰 건립에 필요한 모든 비용은 자신이 낼 뿐만 아니라 사형(师兄)의 수고비도 빼놓지 않고 지불하겠다고 했다. 결국 돈과 이익의 유혹에 노융은 굴복하고 말았다.

2008년을 전후로 노융은 자신의 직무를 이용해 왕흥부에게 ‘낙상단지(洛桑丹真)’와 ‘강파낙상단진(降巴洛桑丹真)’이라는 두 티베트족의 신분을 위조해 주어 왕흥부가 티베트에서 포교 활동을 전개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였다.

‘종이에는 (왕흥부는 사찰 스님)이라고 적혀 있어 바깥으로 나가 사찰에 관한 일을 볼 수 있도록 해 사찰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노융 자백

가짜 티베트족 신분이 생긴 후 왕흥부의 환생설은 명목상의 증거가 되었다. 이후 그는 기회를 보아 노융에게 감자주 석거현(石渠县)에서 좌상(坐床) 의식을 완성시킬 수 있는 도움을 주게 하였다. 이로써 왕흥부는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공식적인 ‘낙상단진 활불(洛桑丹真活佛)’이 되었다.

부처님을 가장해 재물과 여색을 취하다

 

교도관에서 활불로 화려한 변신을 마친 왕흥부는 거침없이 재물을 착취하기 시작했다.

왕흥부는 2008년부터 2016년 사이 ‘활불’선교라는 명목으로 제남, 북경, 심양 등지에 8대 핵심 ‘도장(道场)’을 세웠다. 매 핵심 도장 아래에는 약간의 소형 도장을 두었는데 그렇게 10년도 안 돼 왕흥부는 전국 20여 개 지역에서 3,000명이 넘는 제자를 받아들였다.

왕흥부의 눈에는 이 3,000여명의 제자들은 사실 돈이 많은 어린 양들이었다. 왕흥부가 운영하는 선교반에서 제자가 되려면 매년 일정액의 ‘회비’를 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이 제자와 제자 사이에는 등급의 차이가 있었다. 고급 제자는 그만큼 신앙심이 굳건해 스승(上师)이 더욱 총애하였는데 더 높은 등급의 제자가 되려면 더 높은 금액의 ‘공양비(供养费)’를 내야 했다.

활불 왕흥부는 자신을 박전(璞田, 옥이 든 광석)에 비유하기도 했는데 신도가 내는 공양은 바로 왕흥부가 토양에 심을 씨앗이었다. 왕흥부는 이 공양을 가지고 전국 각지에 절을 지었는데 공양을 많이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절을 지었고 이런 신자들은 더 많은 대가를 받게 되었다.

이외에도 왕흥부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종류의 유료 프로그램을 만들어냈다:

 

산 부처에 귀의하다(皈依活佛) - 300위안

구법명(求法名) - 400위안

삼지보살수기(三地菩萨授记) – 2,000위안

오지보살수기(五地菩萨授记) – 3, 000위안

칠지보살수기(七地菩萨授记) - 7,000원......

 

왕흥부가 신도들을 위해 만든 유료 프로그램 항목에 따라 계산한 결과 만약‘활불전가족통(活佛全家桶)’을 가지려면 5만 위안을 내야 가질 수 있었다.

 

또한 왕흥부는 인터넷에서 100위안대에 별로 귀하지 않은 도자기 병들을 구입하였다. 이 값싼 도자기 병들은 그의 ‘법술(作法)’을 거치면 액막이를 할 수 있는 ‘법기(法器)’가 되어 기본적으로 천 위안 이상의 가격으로 상승했는데 심지어 어떤 것은 그 가격이 5,000위안에 이르렀다.

제남 경찰에 따르면 신도들에게 왕흥부는 재물을 탐내지 않고 부처님께 전심전력하는 활불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는 황음하고 방탕 무도할 뿐만 아니라 거액의 재산을 가진 수전노였다.

왕흥부는 부동산만 12채에 달하였고 이 중 그가 자주 거주하는 별장은 그 규모가 1000㎡에 이르렀다.

왕흥부는 침실에 금고를 따로 비치해 놓았는데 왕흥부가 신자들에게 공양비를 받을 때마다 새 지폐를 골라 이 금고에 안에 넣어 두었다. 왕흥부가 체포됐을 때만 해도 이 금고 안에는 수십만 위안의 현찰이 보관돼 있었다.

‘제자가 나를 공양하고 모든 새 돈이면 모두 저축하기 아까워서 찬장에 넣어 두었다 …… 어릴 때부터 가난한 아이였는데 새 돈만 보면 기뻐하고 좋아했지’—— 왕흥부 자백

뿐만 아니라 왕흥부는 아내, 아들에게 돈을 송금했는데 수십만 위안에서 많게는 백만 위안 이상을 송금하였다. 이리하여 왕흥부의 아들과 며느리 명의 아래 백만 위안(약 1억8천만 원)이 넘는 호화차만 해도 여러 대나 되었다.

제남 경찰에 따르면 왕흥부는 2008년부터 2018년 사이에 불법 착취 재물 누적액이 1억9,800만 위안(약 356억 원)에 달해 사람들을 크게 놀라게 하였다.

왕흥부는 스스로 활불로 자처하며 재물을 착취했을 뿐만 아니라 활불 신분을 여자 신도들을 위협하고 겁탈하는 것에 이용하였다.

왕흥부는 휘하 제자에 대한 정신적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이들이 활불인 자신에게 귀의했을 때 그들에게 강제로 귀의증(皈依证)에 맹세(毒誓)를 쓰도록 강요했다. 그 내용으로는 만약 훗날 스승(上师)를 거역한다면 수레에 치여 죽는다든지 독사에 물려 죽는다든지 뜻밖의 날벼락을 맞게 되는데 현세에 그 업보를 받게 된다(现世报)는 내용이었다.

이들 대부분 신도들은 불법에 대한 지식이 낮지만 불법에 대한 경건함이 매우 강하였다. 왕흥부는 신자들의 이런 약점을 이용해 여성 신자들에게 흑심을 품게 되었다.

왕흥부는 여성 신도들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몸에 법력을 더함(身加持)’과 내단 공법 중의 하나인 ‘쌍수(双修)’라는 개념을 심어 주어 이런 거짓말로 여성 신도들의 신뢰를 얻어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데 이용하였다.

2013년에는 독실한 여성 신도 한 명이 왕흥부의 좋은 먹잇감이 됐다. 어느 날 이 여성 신도는 왕흥부의 지시에 따라 호텔에 혼자 방을 예약하였다. 이에 앞서 왕흥부는 그녀에게 따로 몸에 법력을 더함(身加持)’을 진행해야 그녀의 영혼을 정화시키고 그녀의 액운을 없앨 수 있다고 알려왔기 때문에 그녀가 호텔에 방을 잡은 것이다.

하지만 호텔방으로 들어온 왕흥부는 그녀에게 옷을 벗게 한 후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했다. 이에 여신도는 왕흥부가 계속 자신에게 노골적으로 달려들자 겁을 먹고 계속 물러섰다. 그러자 왕흥부가 저속하게 그녀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자로서 몸, 말, 뜻을 모두 스승(上师)에게 공양해야 한다. 너희들은 스승의 뜻에 따른 법기(法器)가 되겠다고 맹세한 적이 있다. 나는 오늘 너의 몸에 법력을 더해 주려고(加持) 한다. 이런 가지(加持)의 기회는 얻기 어려우니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이미 맹세를 했던 업보가 두려운 여신도는 감히 왕흥부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였다. 이 과정에서 여신도는 왕흥부에게 ‘그러지 말라’고 거듭 간청했지만 왕흥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왕흥부의 ‘가지(加持)’법술이 끝난 뒤 이 여성 신자는 화장실에서 여러 차례 목욕을 하며 “내 몸이 더러워…”라고 생각했다. 그 후 이 여신도는 심한 신경쇠약에 걸려 밤늦게 자주 악몽으로 인해 깨어났다. 그러나 맹세(毒誓)의 반서(反噬)가 두려워 이 불행한 여신도는 이후 왕흥부에게 연이어 봉변을 당했다. 하지만 왕흥부가 경찰에 체포될 때까지 감히 소문을 내지 못하였다.

왕흥부는 ‘맹세(毒誓)’라는 믿을 구석이 있기 때문에 아무 거리낌 없이 오랫동안 여성 신자들을 추행하고 겁탈하였다. 하지만 왕흥부는 경찰에게 자신의 범죄 사실을 진술할 때 자신의 뺨을 후려치며 계속‘후회’한다는 말을 입에 올렸다.

하지만 그의 이런 후회는 ‘유혹에 못 이겨’자신의 하반신을 관리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후회였다. 왕흥부는 아주 교활하게 “관계 맺기는 내가 먼저 제안했지만 신도가 반대도 하지 않았어요. 상대방이 반대하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예요……. 또 호텔은 상대방이 미리 빌린 거예요”라고 했다.

자신의 이런 수많은 죄에 대해 왕흥부는 여전히 자신을 변호하고 있었다. 또한 그는 입을 열어 경찰에게 “정부에서 선처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계속했다.

2021년 2월 제남시 중급인민법원은 사교(邪教)를 조직하고 이를 이용해 법률 파괴를 실시한 죄, 불법경영죄, 강간죄, 부녀추행죄로 왕흥부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하였다.

그의 대리인 사형 노융도 법에 따라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이로써 10여 년간 지속된 가짜 활불 사건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출처 : https://blog.naver.com/liangfl1028/22263710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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