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신수 역사산책 (1) 1950년 625 한국전쟁
태을신수로 지나간 일들을 살펴보는 것만큼 흥미로운 것도 없습니다.
특히 자료가 많은 근현대의 큼지막한 사건사고, 전쟁은 측국을 해단하는데 있어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오늘은 이유없이 한국전쟁에 대한 태을신수 측국을 올려보면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이 있어 몇글자 적어봅니다...
몇년 전 강의 때보다 좀 더 풍부하게 설명할 예정이니 제게 태을신수를 배우신 분들은
프린트하여 공부하시는데 참고하세요. ^^
1945년 8월 6일 미국은 일본의 진주만 공습에 대한 보복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을 투하하여 대량학살을 하였고,
이로 인해 일본의 덴노는 8월 15일 무조건 항복을 선언함과 동시에 일본제국은 패망하게 되며...
한국은 염원하던 광복(光復)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1943 미영중 대표가 모인 카이로 회담과
한반도 분단에 가장 큰 영향을 준 1945년 미영소 대표가 모인 얄타 회담을 통해 정한대로,
미국과 소련이 패망한 일본군의 무장을 해제시키기 위해 북위38도를 기준으로 미국과 소련군이 주둔하였습니다.
이에 소련군이 주둔한 북한 지역의 한국 지도자와 미군이 주둔한 남한 지역의 한국 지도자가 나뉘게 되었으며,
미국과 소련의 의견차이와 남한측과 북한측의 한국 지도자들의 의견차이로 인해 통일정부 수립이 어렵게 되고...
남한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고, 북한은 1948년 9월에 최고인민회의를 수립합니다.
이에 1948년 9월 북한에 주둔한 소련군이 철수하고,
1949년 6월 남한에 주둔한 미군이 철수합니다.
1년 뒤인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경 북한의 남침이 시작됩니다.
1950년(태을적년수 10155867, 양51국, 직부구성 천영, 직사팔문 개문)
당시 기준으로 강대국인 미국 소련 중국을 중심으로 봐야 하며...
미국에서 한반도는 유궁(대족) 정계, 정대, 천충, 경문
소련에서 한반도는 손궁(대경) 객소, 천심, 두문
중국에서 북한은 인궁(여신) 태세, 지을, 천봉, 상문
이렇게 손유인 세 방위를 보고 복합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2010년에 미국 CIA에서 그동안 비공개 되었던 한국전쟁 관련 기록문서들을 공개하면서 밝혀진 바로는...
1950년 당시 미국은 첩보기관 CIA를 통해 한반도 상황이 불안정하고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은 있지만,
소련의 지시 없이는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는데...
실제 북한이 남침을 하여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과 CIA국장 등 모두 크게 놀랐다고 합니다.
https://www.voakorea.com/archive/cia-96652209
625 한국전쟁 발발 이후, 미국 CIA는 7~11월까지 중국의 동향을 파악하였는데,
소련의 지시없이 중국이 전쟁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고 제한적 지원이나 개입만 있을 것이라고 보았지만...
6월에 한국전쟁은 발발하고 10월 말에 중공군은 전쟁에 참여하였습니다.
유궁의 정계, 정대만 보면 뜻 밖의 이익과 지지로 안정된 모양새를 보여주지만,
살벌한 경(庚)의 천충과 깜짝 놀라는 경문 그리고 변화의 대족이 만나...
이들의 판단과 달리 전혀 다른 방향으로 뜻밖의 이익과 지지로 나타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625 한국전쟁으로 여러 피해는 있지만 정계와 정대는...
전쟁특수로 인하여 2차 세계대전때 생산한 잔여 전쟁 물자들을 모두 처리하여 뜻밖의 이익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미국은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1일 뒤인 1950년 6월 26일에 해군과 공군을 투입해 전쟁에 참여합니다.)
그리고 미국 기준 한반도와 같은 유궁에 있는 일본도 전쟁특수의 뜻밖의 이익이 발생했는데
이때 일본은 군대가 해산되어 없는 상태이므로 무기와 물자를 판매하여 큰 이익을 취합니다.
이것은 패망 이후 일본은 1945년 9월 2일~1952년 4월 28일까지 미국의 지배를 받았고,
1947년 1월 1일~1957년 7월 1일까지 미국 극동사령부(GHQ)의 병참기지로서 운용되었기에 그렇습니다.
참고로, 1957년 7월 1일은 한반도의 주한미군이 창설되던 날입니다...
남침은 없을거라는 미국 CIA의 예측과 달리 옛 소련의 한국전쟁 관련 비밀 문서들에 의하면...
북한의 김일성은 1950년 3월 30일~4월 25일간 소련 모스크바에 방문을 하여,
1950년 4월 10일 스탈린에게 남침전쟁을 공식승인 받고, 소련 군사고문단이 남침계획을 작성하여
5월 김일성이 중국 베이징으로 가서 마오쩌둥을 만나 삼국의 구체적인 남침계획이 구체화하였습니다.
https://www.korea.kr/news/policyNewsView.do?newsId=148746351
스탈린과 김일성은 마오쩌둥에게 전쟁 개시일과 작전계획 일부를 알려주지 않아
한국전쟁 발발 이후 마오쩌둥이 많이 당황하게 됩니다...
참고로, 스탈린이 전쟁 개시일자가 6월 25일로 확정승인한 날은 1950년 6월 16일입니다.
https://www.much.go.kr/L/AQkhKt2MH3.do
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729
스탈린의 남침계획에는 소련군이 직접 전쟁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부분이 있었는데,
자신을 감추어 북한을 은밀하게 지원하려는 속셈으로 중국을 끌어들인 것이었다고 합니다.
소련에서 한반도는 손궁(대경) 객소로 북한을 호령하며 전쟁에 대한 보조적 지원을 하고
은밀하게 획책하는 천심,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두문이 있어
라이벌인 미국의 눈을 속이며 치밀하게 계획을 진행합니다.
실제로 625 한국전쟁 당시 소련의 눈에 띄는 직접적인 지원은 없었고,
미국과의 확전을 우려한 소련이 1950년 11월부터 공군을 중공군으로 위장하여 참전한 기록이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공식적으로 소련군의 모습을 들어내지 않았으니 역시 '두문'으로 볼 수 있겠네요...
마지막으로 중국을 보겠습니다.
당시 소련에 큰 영향을 받고 있던 중국의 지도자 마오쩌둥은,
이미 소련과 북한이 합심한 남침계획에 찬성할 수 밖에 없었다고 회고합니다.
(마오쩌둥은 후에 한국전쟁에 참전한 것을 크게 후회하였다고 합니다.)
https://www.yna.co.kr/view/AKR20150622001500083
중국에서 북한은 인궁 태세, 지을, 천봉, 상문으로...
파괴적인 병난 즉, 전쟁을 가리키고 국토가 황폐화되며,
시시각각 상황이 급변하는 천봉과 크게 다치는 상문은 한국전쟁의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625 한국전쟁을 예측하지 못한 미국과 중국은...
각각 정치와 관련된 술궁(음주) 신기, 민기, 직부, 천주, 개문을 추가로 봐야하는데...
북한의 예의없는(선전포고 없는) 남침으로 정치적 충격이 발생하게 됩니다.
(소련은 주도자이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걸 알고 있어 정치적 충격은 없습니다.)
참고로, 국가간의 전쟁은 국제법에 의거해 선전포고 후 시작하는 것이 '예의'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625 한국전쟁은 중국의 마오쩌둥도 찬성했지만,
개시일과 작전계획 일부를 소련의 스탈린과 북한의 김일성에게 듣지 못해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 7~8월 공산당 정권이 흔들릴 정도로 심각한 동요와 혼란이 발생합니다.
이후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형세가 역전되어 국군은 1950년 10월 1일에 38선을 넘고,
UN군은 6일 뒤인 10월 7일에 38선을 넘어 북진합니다.
1950년 10월 1일 북한의 김일성은 소련의 스탈린과 중국의 마오쩌둥에게 구원요청을 하였고...
10월 19일 중국이 중국인민지원군 26만명을 결성해 북한을 지원하기 위해 압록강으로 출정하여
10월 25일 국군 및 UN군과의 첫 전투를 시작하며, 태세와 상문의 상의와 같이 큰 피해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때 인궁 태세의 협궁은 간궁인데 만주 지역을 가리키고 객대의 토벌력으로 말미암아
더 강렬하고 거센 힘으로 북한을 도와줍니다.
무엇보다 주산이 15로 두색무문이고, 객산이 13 잡중양 불화이며, 정산이 6 순음 음화로...
전쟁을 시작한 북한이 객산이 되고 남침을 당한 남한이 주산이 되는데,
태을이 건궁 즉 양궁에 있어 주산을 생해주지만 두색무문으로 방어를 해주는 주대, 주소가 사방이 막혀있어 불리하고
어떻게든 굳건히 지켜야 길한데 실제로 남한은 전쟁준비, 방어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북한군에 밀리게 됩니다.
다행히 이 전쟁에서 객에 해당하는 미군과 UN군이 참전하여 주대와 주소의 방어역할을 대신해주어
방어를 굳건히 하며 형세를 겨우겨우 유지합니다.
북한이 남침에 성공했으려면 최초 계획처럼 미군이 한반도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고
2개월 안에 모든 지역을 점령하는 단기결전으로 나갔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보다 미국과 UN과 여러 나라들이 발빠르게 움직였고...
전쟁발발 약 2달 후 UN군 총사령관인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며,
단기결전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이후 1951~53년 휴전협상이 체결될 때까지 측국과 설명이 있긴한데,
길지는 않고 짧기 때문에 생략하고 풀이를 종료합니다...
이런 식으로 태을신수 측국을 풀어나갈 수 있습니다...
세계정세 등을 알아야 측국의 온전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부분이 조금은 이해가 되시나요? ^^
세계정세에 대한 수많은 자료들이 수집되는 CIA나 국정원 같은 곳은,
수집된 자료들를 토대로 좀 더 원만하게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태을수는 72년마다 동일한 국수가 오는데...
내년인 2022년은 1950년 한국전쟁 때와 동일한 양51국이 되지만
육십갑자와 직부구성 그리고 직사팔문이 다르고,
특히 세계정세와 문화관념 등이 1950년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전혀 다른 내용이 됩니다.
인연에 알맞게 전해지기를 기원하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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