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징파 창건전설과 현재에 이르기 까지...
명징파의 창건 스토리는 두리뭉실하게 명징파의 초대 장문인 매소향에 대한 이야기 일부분만 소개되어 있는데,
제가 전체 스토리를 공개해봅니다. ^^
아마도 이러한 이야기를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이실 듯 싶고...
읽고나면 자연스럽게 '피는 피를 부르고,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가 떠오르실 것이고...
괜히 겉멋 들어서 밝을 명(明), 맑을 징(澄)을 쓴게 아니라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또 '대대로 실천을 통해 얻은 결과를 바탕으로 비전의 내용을 고쳐 써야 한다.'라는 내용도 눈에 띄네요...
이것은 제가 장명징 선생님의 말년강의를 출판하는 장명징기념관 체계에 손을 들어준 이유이기도 합니다.
재밋게 읽으시기 바랍니다.
https://cafe.daum.net/yeseowon/UvCz/366
그리고 대만 오술계의 분류와 오술대가중 한분이신 종진첨 노사님에 대한 글도 함께 읽어보시면 더욱 좋습니다.
https://cafe.daum.net/yeseowon/SbZ2/587
장명징 선생은 실명을 '장요문'이라 칭해지며 '명징오술'이라는 '오술문파'의 13대 장문(당주)이기도 했습니다.
'문파(門派)'라는 것은 일본에서 말하는 '유파(流派)'와는 달리 주로 명나라 때 유력자의 참모로서,
또 사병부대로서 권력 항쟁의 일익을 담당했습니다.
홍콩의 쿵푸영화에서 무장단체들끼리 전쟁처럼 싸우는 장면을 볼 수 있지만,
쿵푸와 같은 무술도 오술의 일환이어서 당시 문파의 모습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명조말 만력제 시대(1572~1620)의 중국 복건성에는 많은 오술문파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매화문파(梅花門派)'와 '백운문파(白雲門派)'는 유력한 문파였지만,
비전서 뺏기 싸움에서 대립하여 '매화문파' 측이 다른 문파를 속여 자기 편으로 만들어 '백운문파'를 멸문시켰습니다.
멸문당한 '백운문파'의 백부인은 복수를 맹세하고,
'매화문파'의 당주 매씨의 어린 자매들 중 여동생인 여염(麗艶)을 납치하는데 성공합니다.
처음에는 여염을 죽일 생각이었던 백부인이지만, 도저히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염을 자신의 딸로 키우고, '백운문파'의 가전을 가르쳐 '매화문파'에게 복수하게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만약 '매화문파'를 쓰러뜨리면 매씨는 딸에게 죽임을 당하고,
실패하더라도 매씨가 자신의 딸을 죽일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최고의 복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백부인은 여염을 백설학(白雪鶴)이라는 이름을 붙여 키웠고,
어렸던 요염은 매가(梅家)의 일은 까맣게 잊고 백가(白家)의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설학이 16살 때 백부인은 사망하는데,
'매화문파'와 그에 편든 문파를 멸하라고 설학에게 유언을 남깁니다.
복수를 맹세한 설학은 붉은 옷을 입고,
'백운문파'를 멸망시킨 문파에 대한 이합집산(離合集散)을 획책하여 차례로 문파의 당주들을 죽였습니다.
이 소문은 '매화문파'에 전해져 매가의 장녀 매소향(梅素香)이 일어나,
문파의 연합군을 결성해 백설학에게 도전합니다.
소향은 흰옷을 입고, 친자매인 설학이 붉은 옷을 입고 전쟁터에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설학의 세력도 백운문파의 잔당 등이 모여 커졌지만, 문파 연합군에게 패퇴하고 거의 전멸하고 말았습니다.
혼자 포위망에서 벗어난 설학은 '매화문파'의 본거지로 향하여
장문인 매경천(梅耕天), 즉 자신의 친아버지인 줄 모르고 죽여버립니다.
또한 친언니 소향의 약혼녀를 눈여겨보고, 유혹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제서야 소향은 설학이 자신의 누이동생 여염이라는 것을 깨닫고 두 사람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이 무렵부터 소향이의 몸은 병에 침범되어 병상에 눕게 됩니다.
편지를 받은 설학은 놀랐지만, 새삼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빼앗은 약혼녀와 함께 소향의 병상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비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소향의 병은 오늘날로 말하면 백혈병이며,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소향은 두 사람을 용서하고,
더러워진 '매화문파'를 닫고, 새로운 오술문파를 만들어 '명징파'라 이름짓고자 합니다.
'명징파(明徵派)'란 '밝고 맑고 투명하며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문파'를 뜻합니다.
매소향은 '명징오술' 초대의 장문이 되어,
설학 부부의 태어날 아이를 2대째로서 오술의 가전(家傳)을 전부 그 아이에게 주기로 하고,
자신은 산속의 돌무덤에 틀어박혀 다음과 같은 15종류의 [대법]이라 명명한 가전서를 남깁니다.
자미대법, 자평대법, 성종대법,
육임대법, 기문대법, 태을대법,
면장대법, 양댁대법, 풍수대법,
방제대법, 침구대법, 영치대법,
현전대법, 양생대법, 수밀대법
'대법(大法)'을 완성한 후,
매소향은 스스로 돌무덤을 폭파하고 영원히 잠에 듭니다.
여염 부부는 이후 딸을 낳아, 소향의 유언대로 명징오술 2대 장문인을 계승하게 됩니다.
그 후 '명징오술'은 복건성의 명문 오술 문파로 활약하다가 청조시대 후기에 대만으로 이전합니다.
청조는 만주인의 정권이고 한민족에게는 이민족 지배이기 때문에 전통적인 문파가 활동하기 불편한 점이 많았습니다.
당시의 대만도 청나라 통치하에 있었지만, 그 전의 정성공이나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에 비해 훨씬 느슨한 통치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복건성에서 대만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많아 복건어가 그대로 대만어가 되고 습관도 복건성과 다르지 않습니다. 대만에는 많은 오술문파가 남아 있는데, 그 대부분은 일찍이 복건성에서 이전한 것입니다.
장요문 선생의 증조부인 왕원택은 명징오술의 10대 장문이었으나 11대가 너무 이른 나이에 죽고, 12대가 비었으며,
1934년 장 선생이 태어날 때 명식을 보고 13대 장문에 지명하여 호적명인 명징과 실명인 요문이라는 이름을 주었습니다.
장 선생은 왕문택의 증손자이니 대를 따지면 13대인 셈입니다.
왕문택은 한의사로서 저명한 사람이었으나 오술가로서도 천재성이 있었고 많은 저작물을 남겼습니다.
대대로 장문인은 문파의 비전을 보존할 뿐 아니라 실천을 통해 얻은 결과를 바탕으로 비전의 내용을 고쳐 써야 합니다.
특히 초대가 남긴 「대법」은 모두 「가결」로 쓰여진 것으로, 예비 지식 없이는 이해하기 어렵고,
그 후대 대의 장문이 「대법심득」이라는 것을 써서 보완해 왔습니다.
또 복역대법처럼 매소향이 남긴 15가지 대법에 포함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명 : 자미대법, 자평대법, 성종대법
복 : 육임대법, 기문대법, 태을대법
상 : 면장대법, 양댁대법, 풍수대법
산 : 현전대법, 양생대법, 수밀대법
의 : 방제대법, 침구대법, 영치대법
라고 하는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태을명리」 「자평방제」 「육임풍수」 「하락명리」 등과 같이,
어느 체계에도 「오술」이 갖추어져 있어, 15가지의 「대법」만으로 모든 것을 망라한 것은 아닙니다.
또한 매소향은 자평설천기(子平洩天機)라던지 훈덕부(薫徳賦)라던지 예해(芸海)라고 불리는 선사상적 오술서도 남아있습니다.
투파의 텍스트에는, 「대법」 「심득」외 「지관」 「참선」 「수밀」등이 있습니다.
이 중 '지관'은 여러가지 상의가 나열된 것으로, 이것이 있으면 책과 같은 두꺼운 감정서(대만에서는 필수 도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참선'은 '깨달음'의 뜻으로 상당히 수준 높은 가전이라는 뜻이 됩니다. '수밀'이란, 본래 '밀교'를 습득하는 것으로, '참선'의 위인, 지금까지 다른 유파의 어디에도 없는 문외불출의 최고 가전에 붙여지는 명칭입니다.
심득은 대법을 아주 쉽게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과목에 대해서 쓰셨지만,
지관은 감정서를 쓰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필요한 과목에 대해서만 쓰셨습니다.
'참선'은 '명징오술'독자적인 이론이 있는 것에 한정되며,
더욱이 '수밀'은 타문파와는 결정적으로 차원이 다른 진짜 최고 가전을 가지는 과목에만 대해서 쓰여진 것입니다.
덧붙여서 '자평'에는 '수밀'의 텍스트가 있어, 별명을 '무학결'이라고도 합니다.
무학은 불교용어로 더 이상 배우고 배울 필요가 없는 최고의 경지를 의미합니다.
현재 남아 있는 심득, 지관, 참선, 수밀은 모두 왕문택의 손으로 직접 만든 것입니다. 왕문택은, 이들 대대의 장문이 다룬 가전서 외에, 「자평수생결」 「자평정종」 「자평변방」 「보라탐오」 「연두리기해」등등의 타이틀로 방대한 저작을 남기고 있습니다. 13대 장문의 장요문 선생이 심득을 개서(改書)하지는 않았지만, 강의 중에는 장 선생의 실천으로 얻은 새로운 이론도 전개되었습니다.
『명징오술・자평명리・기초편/상의편』(장요문구술・카게가와 편저・명징오술전집 제1권/제2권)『명징오술・자평성명전서』(동 제3권)
등의 서적은, 현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심득」이라고 해야 할 포지션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책을 최대한 많이 출판하여 명징오술을 공개함과 동시에 오술세계에서의 명징오술과 장요문 선생의 진면목을 널리 알려 나갈 생각입니다.
'기타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을신수 기문둔갑 태을신수의 운용목적 (0) | 2021.12.20 |
---|---|
명징파 기문둔갑에는 부격이 흉격일 때 제화하는 비법이 있다는 것 아시나요? (0) | 2021.12.19 |
12월 17일~18일 달라이 라마님의 대념처경 실시간 법문이 있습니다. ^^ (0) | 2021.12.17 |
일본 명징파 학문의 장점중 하나... (0) | 2021.12.16 |
호조류 기문둔갑 시반의 단점!? (0) | 2021.12.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