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 있는 내용중 일부입니다. ^^
<독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몇 년 전부터 독서에 대해서 자못 깨달았는데, 헛되이 그냥 읽기만 하는 것은 하루에 백번 천 번을 읽어도 읽지 않은 것이다. 무릇 독서할 때 늘 도중에 한 글자라도 의미를 모르는 곳을 만나면 널리 살피고 연구해서 근본을 깨달아 글 전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매일 이렇게 책을 읽으면, 한권을 읽더라도 수백 권을 아울러 보는 것이다. 이렇게 읽어야 읽은 책의 의미와 이치를 명확히 알 수 있다.
만약 사기 자객열전을 읽을 때 기조취도(旣祖就道: 조를 마치고 길에 올랐다)라는 한 구절을 보고 "祖가 뭡니까?"하고 물으면, 선생님은 "전별할 때 지내는 제사다."라고 하실 것이다. "하필 할아버지 조를 쓰는 이유는 뭔가요?"라고 여쭈면, 잘 모르겠다고 하시겠지. 그 후 사전을 가지고 祖의 원래 의미를 살펴보고 다른 책의 풀이와 해석을 살펴, 뿌리를 캐고 지엽을 모은다. 또 통전, 통지, 통고 등의 책에서 조제(祖祭)를 지내는 예법을 찾아보고, 한데 모아 차례를 매겨 책을 만든다면 길이 남는 책이 될 것이다. 이렇게만 한다면 전에는 하나도 모르는 네가 이날부터는 조제의 내력을 훤히 꿰는 사람이 되어, 비록 이름난 학자라도 조제에 대해서는 너와 다투지 못할 것이다. 이 어찌 큰 즐거움이 없겠느냐. 주자의 격물공부는 이와 같이 한 것 뿐이다. 오늘 한 가지 물건에 대해서 이치를 캐고 내일 또 한 가지 물건에 대해서 이치를 캐는 사람들 또한 이렇게 착수를 했다. 격(格)이라는 뜻은 가장 밑까지 완전히 다 알아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니, 가장 밑에까지 알아내지 못한다면 또한 아무런 보탬이 없는 것이다....
(중략)....
초서(鈔書: 일종의 스크랩)하는 방법은 반드시 먼저 자기의 뜻을 정해 만들 책의 규모와 편목을 세운 뒤에 그 책에서 간추려내야 한다. 만일 그 규모와 목차 외에도 꼭 뽑아야 할 것이 있을 때는 별도로 한 책을 만들어 좋은 것을 깨달을 때마다 기록해 넣어야만 도움을 받을 곳이 있게 된다. 고기 그물을 쳐 놓으면 기러기란 놈도 걸리기 마련인데 어찌 버리겠느냐
<오직 독서만이 살아나갈 길이다>
이 세상에 있는 사물 중에는 자연 상태로 존재하여 좋은 것이 있는데 이런 것은 오히려 기이하다고 떠들썩하게 말할 필요가 없다. 다만 파손되거나 찢어진 것을 가지고 어루만지고 다듬어 완전하게 만들어야만 그 공덕을 바야흐로 찬탄할 수 있듯이 죽을병에 걸린 사람을 치료해서 살려야 훌륭한 의원이라고 부르고 위태로운 성을 구해내야 이름난 장수라 일컫는다. 누대에 걸친 명문가 고관들의 자제들처럼 좋은 옷과 멋진 모자를 쓰고 다니며 집안 이름을 떨치는 것은 못난 자제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이제 너희들은 망한 집안의 자손이다. 그러므로 더욱 잘 처신하여 본래보다 훌륭하게 된다면 이것이야말로 기특하고 좋은 일이 되지 않겠느냐? 폐족으로서 잘 처신하는 방법은 오직 독서하는 것 한 가지밖에 없다. 독서라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깨끗한 일일뿐만 아니라 호사스런 집안 자제들에게만 그 맛을 알도록 하는 것도 아니고 또 촌구석 수재들이 그 심오함을 넘겨다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드시 벼슬하는 집안의 자제로서 어려서부터 듣고 본 바도 있는 데다 중년에 재난을 만난 너희들 같은 젊은이들만이 진정한 독서를 하기에 가장 좋은 것이다. 그네들이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뜻도 의미도 모르면서 그냥 책만 읽는다고 해서 독서를 한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원(醫員)이 삼대를 계속해오지 않았으면 그가 주는 약을 먹지 않는 것같이, 반드시 몇 대를 내려가면서 글을 하는 집안이라야 문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건대 내 재주가 너희들보다 조금은 더 나을지 모르지만, 어려서는 방향을 알지 못하였고 나이 열다섯에야 비로소 서울 유학을 해보았으나 이곳저곳 집적거리기만 했지 얻은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그후 스무살 무렵에 처음으로 과거공부에 전력을 기울였더니 소과(小科)에 합격하여 태학(太學)에 들어가게 되었다. 여기서 또다시 대과(大科) 응시과목인 사자구(四字句) 육자구(六字句) 등의 변려문에 골몰하다가 규장각으로 옮겨가서는 그 과제에 응하느라고 한갓 글귀만을 다듬는 공부에 거의 10년이나 몰두하였다. 그뒤로 또 책을 교열하고 펴내는 일에 분주하다가 곡산부사(谷山府使)가 되어서는 백성을 다스리는 일에 오로지 정신을 쏟았다.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는 신헌조(申獻朝) 민명혁(閔命赫) 두 사람의 탄핵을 받았고, 이듬해 정조대왕이 승하하신 비통함을 당해 서울과 시골을 바삐 오르내리다가 지난봄에 유배형을 받기에 이르렀으니, 거의 하루도 오로지 독서에만 마음 쓸 겨를이 없었다.
그러므로 내가 지은 시나 문장은 아무리 맑은 물로 많이 씻어낸다 해도 끝내 과거시험 답안 같은 틀을 벗어날 수 없고, 조금 괜찮은 것일지라도 관각체(館閣體)의 기운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머리털과 수염이 이미 희끗희끗하고 정기도 시들고 말았다. 이것이 다 운명이구나. 너희들 중에 학연의 재주와 기억력은 내가 젊었을 때보다는 조금 떨어지는 듯하나 열살 때 지은 네 글을 나는 스무살 적에도 짓지 못했을 것 같고 이 근래에 지은 글은 지금의 나로서도 미치지 못할 것이 더러 있으니, 그것은 네가 효과적으로 공부하는 길을 택했고 견문이 조잡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네가 곡산에서 공부하다 집으로 돌아간 뒤 내가 과거공부를 하라고 한 적이 있었지. 당시 주위에서 너를 아끼던 문인이나 시를 짓던 선비들은 본격적인 학문을 시킬 일이지 과거 따위나 시키고 있느냐고 모두 나를 욕심쟁이라고 나무랐고 나도 마음이 허전했었다. 그러나 이제 너는 과거에 응시할 수 없게 되었으니 과거공부로 인한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구나. 내 생각에는 네가 이미 진사도 되고 과거에 급제할 실력은 족히 된다고 본다. 글을 알면서도 과거 때문에 오는 제약을 벗어나는 것과 진사가 되고 급제한 사람이 되는 것 중 어느 편이 나은 일인가는 말하지 않더라도 잘 알 것이다. 너야말로 참으로 독서할 때를 만난 것이다. 지난번에 말했듯이 가문이 망해버린 것 때문에 오히려 더 좋은 처지를 이룩할 수 있다는 게 바로 이런 것 아니겠느냐. 너희들 중 학유의 재주와 역량을 보면 큰애보다 주판 한 알쯤 부족한 듯하나 성품이 자상하고 무엇이든지 생각해보는 사고력이 있으니, 진정으로 열심히 책 읽는 일에 온 마음을 기울이면 어찌 형을 따를 수 없다고 하겠느냐. 근자에 둘째의 글을 보니 조금 나아졌기에 내가 알 수 있다.
독서를 하려면 반드시 먼저 근본을 확립해야 한다. 근본이란 무엇을 일컬음인가. 학문에 뜻을 두지 않으면 독서를 할 수 없으며, 학문에 뜻을 둔다고 했을 때는 반드시 먼저 근본을 확립해야 한다. 근본이란 무엇을 일컬음인가. 오직 효제(孝弟)가 그것이다. 먼저 반드시 효제를 힘써 실천함으로써 근본을 확립해야 하고, 근본이 확립되고 나면 학문은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들고 넉넉해진다. 학문이 이미 몸에 배어들고 넉넉해지면 특별히 순서에 따른 독서의 단계를 강구하지 않아도 괜찮다.
또한 나는 천지간에 의지할 곳 없이 외롭게 서 있는지라 마음 붙여 살아갈 곳으로 글과 붓이 있을 뿐이다. 문득 한 구절이나 한 편 정도 마음에 드는 곳을 만났을 때 다만 혼자서 읊조리거나 감상하다가 이윽고 생각하길 이 세상에서는 오직 너희들에게나 보여줄 수 있겠다 여기는데 너희들 생각은 독서에서 이미 연(燕)나라나 월(越)나라처럼 멀리 떨어져나가서 문자를 쓸데없는 물건 보듯하는구나. 쏜살같은 세월에 몇 년이 지나면 나이 들어 신체가 장대해지고 수염만 텁수룩해질 텐데 갑자기 얼굴을 대면한다 해도 밉상스러워지기만 하지 아버지의 책을 읽으려고나 하겠느냐. 내가 보기에는 천하에 불효자였던 한(漢)나라의 조괄(趙括)은 아버지의 글을 잘 읽었기 때문에 어진 아들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너희들이 참말로 독서를 하고자 않는다면 내 저서는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내 저서가 쓸모없다면 나는 할일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마음의 눈을 닫고 흙으로 빚은 사람처럼 될 뿐 아니라 열흘이 못 가서 병이 날 거고 이 병을 고칠 수 있는 약도 없을 것인즉 너희들이 독서하는 것은 내 목숨을 살려주는 것이다. 너희들은 이런 위치를 생각해 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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