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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칼럼

여인국(女人國)에 관한 기록과 후손에 관하여

by 예경 2025. 3. 9.

여인국(女人國)에 관한 기록과 후손에 관하여

 

 

조루(樓)

 

서유기에서 묘사한 여인국은 완전히 허구인가? 아름다운 여왕, 물을 마시기만 하면 아이를 갖게 되는 자모하(子母河). 서유기에서 묘사된 여인국은 여러사람에게 많은 환상을 갖게 하였다. 여인국은 오승은이 순전히 자기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이상낙원인가? 아니면 역사상 이러한 여인국이 있었던가?

 

"여인국은 역사상으로도 확실히 존재하였고, 현재에도 일부 촌락들이 여인국의 옛날 습속을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습니다"

 

사천성사회과학원역사연구소의 연구원 겸 사천강장연구중심 부주임인 임신건은 오랫동안의 연구와 현장답사를 통해서 현재의 사천 감자주 단파현에서 도부현에 이르는 일대가 <<구당서>>에 기재된 동여군(東女國)의 중심이라고 한다.

 

동여국이 전설중의 여인국인가? <<구당서>> 제197권 <<남만서남만전>>에 따르면,

 

"동여국(東女國), 서강(西羌)의 별칭이다. 서해중에도 여국이 있어서 예로부터 동녀라 부른다. 습속이 여자를 왕으로 한다. 동쪽으로는 무주, 당항과 접해 있고, 동남으로는 아주와 접해 있다. 경계는 나녀만과 백랑이를 사이에 두고 있다. 그 경계는 동서로 9일을 걷는 거리이고, 남북으로 22일을 걷는 거리이며, 크고작은 80여개의 성이 있다"

 

임신건의 해석에 따르면, <<구당서>>의 기재에 의할 때, 동녀국은 남북의 길이기 22일거리, 동서의 길이가 9일거리인데, 과거에 하루에 말을 타고 40킬로미터, 걸어서 20킬로미터를 갔던 것에 비추어보면, 동녀국은 남북으로 440킬로미터 내지 880킬로미터, 동서로 180킬로미터 내지 360킬로미터가 된다는 것이다.

 

사서의 기재에 따르면, 동녀국의 건축은 모두 조루(탑과 같은 건물)이다. 여왕은 9층짜리 조루위에 살고 있고, 일반 백성은 4,5층으 조루에서 살고 있다. 여왕이 입는 것은 청보모령의 비단의 긴 치마이고, 치마는 땅에 끌리며, 금으로 꽃을 수놓았다. 동녀국의 최대의 특징은 여자를 중시하고 남자를 경시한다는 것이다. 국왕과 관리는 모두 여인이고, 남자는 조정에서 관리를 할 수 없으며, 단지 밖에서 병사가 될 뿐이다. 궁중여왕의 뜻에 따라, 여관이 바깥에 전달한다. 동녀국에는 여왕과 부여왕이 있고, 종족내부에서 추천받은 사람이 담당한다. 여왕이 죽으면, 부여왕이 승계한다. 일반가정에서도 여자가 가장이 되며, 부부관계는 없다. 가정에서도 모친이 귀하며 가장의 재산을 장악하고 분배하며 일체의 집안일을 주재한다.

 

<<구상서>>에 동녀국에 관한 기재는 매우 상세하다. 그러나, 당나라이후에 역사서에서는 동녀국에 대한 기재가 거의 중단된다. 동녀국은 일시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졌다는 말인가?

 

임신건에 따르면, 당현종 때, 당나라와 토번(현재의 티벳, 서장)은 관계가 매우 좋았다. 토번은 야루장부강 동쪽에서 다두하 일대까지 확장했다. 그러나, 당나라 중기이후 당나라와 토번의 관계는 매우 긴장된다. 여러번 전투를 벌이게 되고, 당나라는 점차 토번이 통치하던 지역의 소수민족을 하나하나 복속시킨다. 당나라는 당시에 8개의 소수민족부락을 민산협곡에서 다두하쪽으로 이주시키는데, 이 8개의 부락안에 바로 동녀국의 여왕이 이끄는 부락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당시 동녀국의 여왕은 조정을 알현하며, "은청광록대부"에 봉해진다. 비록 실제관직은 아니지만, 직급은 매우 높았다. 현재로 따지면 성장에 해당한다. 나중에 당나라 말기가 되면서 토번세력이 점차 강대해지면서 여러차례 다두하 동쪽을 침범한다. 당나라는 군사를 조직하여 반격하는데, 양쪽이 밀고 밀리는 접전을 벌이게 됨에 따라, 동녀국을 비롯한 중간에 끼어있는 부락들은 스스로의 존속을 위해서 양쪽에 모두 잘보이려는 입장을 취하게 된다.

 

나중에 당나라가 점차 몰락하고 분열하게 되는데, 토번도 마찬가지로 점차 멸망한다. 토번이 붕궤된 후, 일찌기 그들의 통치를 받던 청장고원은 다시 원래의 부락시대로 되돌아간다. 당나라가 멸망한 후, 통일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국가가 없었다. 나중의 송원명시대에 이르러, 청장고원지역에 대한 통치력은 매우 박약하였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사료에 기재가 없는 것이다. 청나라때에 이르러서 비로소 토사(土司, 지역부족왕을 가리킴)제도가 완비된다. 그러나 동녀국의 후손들로 이루어진 부락은 교통로에 가까웠고, 외부의 영향을 많이 받아, 여왕이 죽은 후, 전통적인 관습이 이어지지 않고, 점차 부계사회로 바뀌었다. 그러나, 일부 부락은 여전히 심산유곡에서 생활하면서 모계사회의 흔적을 보전하여 오고 있다.

 

임신건은 이 지역에서 모계사회의 흔적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현지의 생활환경에 맞추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 지역은 고산협곡에 처해있어, 생산조건이 열악하고, 토지와 물산이 희소하다. 만일 일부일처제를 실행하여, 아들이 처를 맞이한 후 분가를 하고, 다시 소가족을 꾸민다면, 현지의 경제조건으로 보아서는 도저히 생활할 수가 없고, 생산자료를 나누어줄 수도 없다. 그리고, 폐쇄적인 심산협곡에 살면서 외부와는 거의 단절되어 다른 문화의 영향을 받는 것도 쉽지 않다.

 

북경사범대학 문학원의 민속학전문가 만건충 교수도 이렇게 본다. 일정한 생산력과 일정한 사회제도는 그에 맞추어야 한다. 이처럼 생산능력이 낙후되고, 상대적으로 폐쇄된 지역에서는 노동강도가 크지 않고, 주민이 자급자족할 수 있어, 남성의 우세는 충분히 나타나지 않으며, 여성이 경제권과 발언권을 장악하게 된다. 그 외에 또 하나의 심층의 사회심리요소가 있는데, 모계씨족사회를 유지하는 것은 인간의 과거의 사회형태와 사회구조에 대한 일종의 추억을 나타내는 것이다.

 

임건신의 고찰에 따르면, 역사상 동녀국은 바로 현재의 사천, 운남, 티벳이 만나는 야롱강과 다두하의 지류인 대, 소금천일대라고 한다. 여기는 지금도 유명한 여성문화권이다. "자바는 동여국의 잔여부락중 하나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지금까지 많은 동녀국 모계사회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자바는 과거에 하나의 지역이었고, 현재는 7개의 향으로 구성되어 있다. 5개의 향은 도부현경내이고, 2개향은 아강현 경내이다. 합쳐서 약 1만여명이 생활하고 있다. 임신건은 자바에서 현지조사하는중에 여성이 가정의 중심임을 발견했다. 여성이 재산의 분배와 기타 가정업무를 장악하고 있는데, 동녀국의 "여자를 왕으로 하는" 것과 비슷했다. 어떤 가정에는 30여명이 있는데, 모두 결혼하지 않고, 남자는 집안에서의 아저씨(외삼촌)이고, 여성은 집안의 모친이다. 가장 나이많은 모친이 집안의 일체를 주재한다. "분명한 모계사회의 유습이다. 현대사회의 충격을 받아, 이미 원시적인 모계사회와 완전히 같지는 않게 되었지만, 기본적인 특징은 보유하고 있다"

 

자바인들은 주혼제(走婚制)를 시행한다. 남녀가 만나서, 남자가 만일 여자를 고르게 되면, 여자의 몸에서 물건 하나를 뺏는다. 예를 들어, 수건, 악세사리등이다. 만일 여자측에서 돌려달라고 하지 않으면 동의를 표시한 것이 된다. 저녁이 되면, 여자는 창문에 불을 켜두고 남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자바인이 거주하는 곳은 모두 조루이어서 개략 10여미터 높이가 된다. 남자는 반드시 손가락을 돌틈에 끼워넣어 한걸음 한걸음 조루를 올라간다. 이외에 방의 창문은 매우 작다. 중간에는 가로로 막대기가 있다. 남자는 조루를 기어올라오더라도 몸을 옆으로 뉘어야 들어올 수 있다. 서커스를 하는 것과 같다. 이런 과정은 체력이 좋아야 하고, 몸이 재빨라야 하는데, 이것도 적자생존의 일환이다. 둘째날 닭이 울 때, 남자는 떠나야 한다. 이후부터 두 사람은 아무런 관계도 없다. 남자는 매일 올 수도 있고, 몇 달에 한 번 올 수도 있고, 전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들간의 관계는 "갑의(甲依)"라고 부른다. 즉 짝이라는 뜻이다. 여자는 동시에 여러명의 "갑의"를 둘 수도 있다. 그러나, 극소수의 여자는 평생 한 명의 "갑의"만을 두고, 두 사람의 주혼은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여자가 아이를 낳으면, "갑의"는 보통 자기 자식으로 인정하거나 기르지 않으며, 어떠한 책임도 부담하지 않는다. 아이는 여자의 가정에서 길러진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현지의 아이들은 일반적으로 모두 자기의 부친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다.

 

출처 : https://shanghaicrab.tistory.com/8481429

 

 

여인국의 비밀

 

글: 마백용(馬伯庸)

 

<서유기>에서 가장 멋있는 부분은 서량 여인국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여인국의 주인은 천교백미(千嬌百媚)하여 당승까지도 거의 마음이 동요될 정도였다. 독자들은 이 내용을 읽으면서 안타까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부지불식간에 정말로 그런 나라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한다.

 

<서유기>의 이야기는 진실한 <대당서역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진실과 거짓을 오가는데, 많은 경력은 현실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여인국을 찾을 수 있을까?

 

있다.

 

<구당서.남만전>을 보면 동녀국(東女國)에 관한 기록이 있다: "습속이 여자를 왕으로 삼는다. 동으로는 무주(茂州), 당항(黨項)에 접하고, 동남으로는 아주(雅州)와 접하며, 나녀만(羅女蠻)과 백랑이(白狼夷)와 경계를 하고 있다. 여왕은 "빈취(賓就)"라 불리고 여성관료는 "고패(高覇)"라 불리며, 국사를 논의한다. 외직관료는 남부(男夫)가 맡는다. 왕의 시녀는 수백명이고, 5일에 한번씩 정무를 본다."

 

무주는 현재의 쓰촨성 원촨(汶川)이고, 아주는 현재의 야안(雅安)이다. 소위 이 여인국은 학자들의 고증에 따르면, 오늘날의 단바쟈룽장구(丹巴嘉絨藏區)이다. "쟈룽"의 뜻은 '여인의 골짜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동녀국의 지리적 위치는 현장이 서행한 노선에서 벗어나 있다. 당승이 이곳으로 와서 여인국을 지났다면 셀파를 만나서 히말라야산을 넘었을 것이다.

 

<대당서역기> 제4권에서는 현장이 스스로 또 다른 동녀국을 언급하고 있다. "이 국가의 북쪽 대설산의 소벌랄나구달라국이 있는데....즉, 동녀국이다. 대대로 여자가 왕에 올라서 여(女)를 나라이름으로 삼았다. 남편(夫)도 왕인데 정무를 알지 못한다. 남편은 오직 전쟁을 하고 농사를 지을 뿐이다. 토지는 숙맥(宿麥)이 잘 자라고, 양과 말을 많이 기른다. 기후는 차갑고, 사람들의 성격은 조급하고 포악하다. 동으로는 토번국에 접해 있고, 북으로는 우전국에 접해 있으며 서로는 삼파하국에 접해 있다."

 

어떤 학자의 고증에 따르면, 이 동녀국의 개략적인 위치는 현재의 케시미르지구 부근이라고 한다. 티벳 상웅(象雄)문명의 일부분에 속하며, 또 다른 유명한 이름을 지니고 있는데, 구거(古格)왕조이다.

 

그러나 이 여인국은 현장이 처음 발견한 것이 아니다. 고증이 가능한 최초의 사료는 배구(裴矩)이다. 

 

배구는 <서역도기>라는 책을 썼는데, 티벳 44개국의 풍토인정을 기록했고, 수양제에게 바친다. 수나라가 서역에 진출하는데 쓰일 정보를 모은 것이다. 아쉽게도 이 책은 현재 흩어졌다. 그러나 <수서.서역전>에 대량의 자료를 남겼다. 이 책에서 여인국을 언급하고 있다: "여국(女國), 총령(파미르고원)의 남쪽에 있고, 이 나라는 대대로 여자가 왕이 된다. 왕의 성은 소비(蘇毗)이고, 자는 말갈(末羯)이다. 20년동안 재위했다. 여왕의 남편은 금취(金聚)라고 하는데 정무를 보지 않는다. 국가내에서 남편은 오로지 전투를 의무로 한다."

 

이를 보면 수나라때 이 여인국은 이미 중원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 지리적 위치는 파미르고원의 남쪽으로 현장이 언급한 여인국과 같다.

 

그러나, 동녀국이든 여국이든 엄격하게 말하면 여인국이 아니다. 그들의 국내에는 많은 남자가 있었다. 그리고 남자의 수량도 적지 않았다. 단지 여자가 정치를 할 뿐이다. <서유기의 그 순수한 여인국과는 큰 차이가 있다.

 

마음이 세심한 사람은 이미 주목했을 것이다. <구당서>의 여인국은 동녀국이라고 하는데, 현장이 쓴 그 소벌랄나구달라국도 동녀국이라고 불렸다.

 

왜 동녀국인가? 그렇다면 서녀국도 있을까?

 

<구당서>에 동녀국을 언급할 때, 국명의 내력을 이렇게 해석했다: "서해(西海)의 가운데 다시 여인국이 있다. 그래서 동녀라고 하였다." 즉, 여인국은 3개가 있다. 동쪽에 2개, 서쪽에 1개. 단바에도 동녀국이 있고, 대설산에도 여인국이 있다. 그리고 더욱 먼 서해에도 섬나라인 여인국이 있다. 

 

다시 현장 본인의 기록을 보자.

 

<대당서역기> 제11권에는 파랄사(波剌斯)국을 언급하는데, 파랄사국은 페르시아(波斯)의 사산왕조를 의미한다. 한 마디를 덧붙인다: "서북으로 불름국이 접해 있는데, 불름국의 서남해 섬에 서녀국(西女國)이 있다. 모두 여인이고 남자는 개략 없다. 진기한 보물을 불름국에 주었고, 불름의 왕은 매년 남자를 보내주었다. 그들의 풍속은 사내아이는 모두 사내구실을 못한다(男皆不擧)."

 

즉, 사산조 페르시아의 서북쪽에는 불름국이 있고 그와 이웃해 있다. 불름국의 서남쪽에는 섬이 있는데 섬의 나라가 바로 서녀국이다. 이 국가는 모두 여자이고 남자는 극히 적다. 불름국에 붙어 사는데, 후대를 낳기 위하여 불름국에서 남자를 받아서 자식을 낳는다. 이 국가에서 출생한 남자는 모조리 임포이다.

얼마나 비참한 나라인가. 정자마저도 수입해야 하다니.

그렇다면 이 비참한 여인국의 구체적인 위치는 어디일까?

 

사산조페르시아의 강역은 이란, 이라크, 시리아, 터키등지를 포함한다. 그의 서북방향은 보스포러스해협의 콘스탄티노플이다. "불름"이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것은 바로 대명이 자자한 비잔틴제국이다. 

 

비잔틴의 서남의 섬은 확실히 애게해이다. <구당서>의 "서해의 가운데 또 여인국이 있다"는 기록과 완전히 일치한다.

 

여인국의 내력에 관하여 필자는 장서산(張緖山) 선생이 쓴 서녀국에 관한 고증을 본 적이 있다. 거기에서 독일의 한학자인 하덕(夏德)이 큰 단서를 제시해주었다.

 

고대그리스시대에, 여인국이 존재한 바 있다. 이름은 아마존(Amazon)이다. 아마존은 흑해의 가 소아시아일대에 살고 있었다. 아마존족은 모두 여성전사들인데 아주 용맹했다. 그녀들은 창을 던지고 활을 쏘는데 편의를 위해 자신의 유방을 베어냈다. 아마존 내부에는 남성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인근부락의 남성과 교합을 통하여 후대를 낳았다. 여자아이를 낳으면 남겨두고, 사내아이를 낳으면 남자측에 주거나 죽여버렸다. 호메로스, 헤로도투스, 아리안등의 저작에 모두 언급되어 있다. 그리스신화에는 더더욱 빈번하게 나타난다.

 

하덕이 열어준 단서는 현장이 기록한 서녀국이 아마도 바로 고대그리스 아마존족의 후예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녀들의 활동범위도 비슷하고, 풍속도 비슷하다. 서녀국은 비록 전투력이 예전같지는 못하지만 아마존인들은 외족과 혼인하고, 딸은 남기되 아들은 남기지 않는 전통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그래서 비잔틴에서 남자를 수입하여 후손을 낳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가정이 성립한다면,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생각해보라. 당승 삼장법사가 만난 것은 애교넘치는 여인국의 주인이 아니라, 위풍당당한 아마존의 여왕이었던 것이다. 만일 창 몇 개만 휘둘렀다면 구세동남의 기록은 더 이상 지켜질 수 없었을 것이다.

 

당연히, 가정은 그저 가정일 뿐이다. 아마존과 서녀국간의 관계는 실질적인 증거가 부족하다. 그저 이야기거리일 뿐이다. 기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또 다른 한 국가는 아마존보다 더욱 여인국의 원시적인 모습에 부합한다.

 

그 국가의 이름은 렘노스이다.

 

독일인 쉬바브가 편찬한 <그리스신화이야기>에는 에게해에 렘노스라는 섬이 있다고 한다. 이 섬의 남자들은 배를 타고 나가서 바깥에서 많은 외지여인들을 데려왔다.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나타나서, 섬의 본부인들의 분노에 불을 붙였고, 이들 여인들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이들 외지여인들과 남자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고 하나도 남겨두지 않는다. 국왕의 딸 힙시필레는 스스로 여왕이 된다.

이들 여인들은 이 큰 일을 저지른 다음 돌연 섬에 싸울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걱정을 하게 된다.

마침 이 때, 아르고의 영웅들이 배를 타고 이 곳으로 온다. 이것이 그리스신화의 유명한 전설이다. 이아송이 수퍼영웅들을 이끌고 아르고호를 타고 바다을 건너 황금양털을 찾는 모험이야기이다.

그들의 배는 렘노스섬에 정박하는데, 섬에 남자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다. 힙시필레여왕은 마침 섬에 남자가 없어서 걱정하고 있어서 우두머리인 이아송에게 말한다. "이곳에 남아서 나와 짝을 이루는 것이 어떻겠는가. 당신이 국왕을 하고 나는 왕후를 하고 함께 살자. 굳이 천리만리 먼길을 가서 황금양털을 찾아야 겠는가? 너의 부하들은 내가 여자들을 찾아서 짝을 지어주면 된다." 어떤가? 귀에 익은 내용이 아닌가. 

이아송은 여왕의 애교에 넘어가고, 나머지 영웅들도 여자를 하나씩 안고 궁전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향락을 즐기는 생활을 한다.

 

<그리스신화이야기>의 내용이 여기에 이르렀을 때, 쉬바브는 특별히 한 마디를 적는다. "헤라클레스만이 원래 여색을 싫어하여 소수의 사람들과 함께 배에 남아 있었다." 여색을 싫어하던 헤라클레스와 동료들이 배에서 무엇을 했을까? 모른다. 어쨌든 여러 날이 지난 후 헤라클레스는 이아송이 여전히 떠나지 않으려는 것을 보고, 마음이 조급해져서 그에게 떠나자고 재촉한다. 이아송이 헤라클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미련을 가득 품고 길을 떠난다. 힙시필레 여왕은 눈물을 흘리면서 황금양털을 취하면 돌아와서 나를 찾아올 것을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후의 이야기는 모두 알 것이다. 이아송은 미디아와 함께 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상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더라도 아르고영웅이 렘노스섬에서 겪었던 이야기는 당승이 여인국에서 겪었던 이야기와 아주 비슷하다. 긜고 섬나라라는 설정은 서녀국의 기재와 들어맞는다. 신화학의 각도에서 보자면, 서녀국은 아마도 레노스섬의 지리적 위치와 아마존의 생활방식등 두 가지 기원을 가진 결합의 산물이라고 할 것이다.

 

렘노스섬의 이야기는 아직 끝난 것이아니다. 나중에 트로이전쟁이 시작된다. 그리스연합군이 길을 가다가, 필로크테테스라는 명궁이 부상을 입어 밤낮으로 신음을 하는데 그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그를 렘노스섬에 버린다. 나중에 연합군이 트로이를 공격하지만 대치상태를 지속하는데, 한 예언가는 반드시 필로크테테스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와야 승리를 거둘 수있다고 말한다. 오디세우스는 다시 무인도로 돌아가 그를 찾는다. 계책을 써서 그를 트로이성아래로 불러오고, 파리스를 화살로 쏘아 죽인다. 전쟁국면은 이로써 변화를 맞이한다...

 

이를 보면 트로이시대에 렘노스섬은 이미 황무지가 된 것같다. 섬위의 여인들이 적막을 참지 못하고 다른 남자를 따라서 떠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적에게 멸망당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남아있지 않았다. 후세의 서녀국이 있던 섬이 어디인지는 모르겠다. 렘노스섬인지 아닌지. 그러나 그녀들의 이야기는 확실히 후세에 전해졌고,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는 전설의 모체가 되었다.

 

아쉬운 점은 서녀국의 전신이 아마존부락이든 렘노스섬의 버려진 부인들이든, 그 위치는 모두 멀리 애게해에 있다는 것이다. 현장이 인도로 갈 때 아무리 서쪽으로 돌아가더라도 이곳까지 갈 수는 없다. 그가 정말 여인국으로 가서 구경하려고 했다면 계속 서쪽으로 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현장은 <대당서역기>에 반복하여 강조한다. 이것들은 "인도의 나라라가 아니고 길가다가 들은 것이다." 즉, 그가 가본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당승이 먼저 여인국의 이야기를 실컷 해놓고, 뒤에 가서 직접 가본 것은 아니라고 해명하다니, 그것도 귀여운 점이다.

 

출처 : https://shanghaicrab.tistory.com/16155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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