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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칼럼

일제침탈의 흔적. 지배력 강화를 위해 조성된 목포 유달산 정상 부근에 있는 부동명왕상...?

by 예경 2019. 4. 17.

 

 

일제침탈의 흔적. 지배력 강화를 위해 조성된 목포 유달산 정상 부근에 있는 부동명왕상...?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8/14/0200000000AKR20170814107700054.HTML?input=1179m

 

 

 

광복절을 맞이하여 이런 기사가 났네요.

일부 뉴스기사 내용을 바로잡고 부연설명을 하고자 몇글자 적습니다...

 

 

 

부동명왕상과 홍법대사상이 새겨진 목포 유달산...

 

뉴스기사 내용처럼 유달산 인근 주민들이

"목포를 지배하기 위해, 조선을 지배력을 확대하기 위해 이 두개의 상들이 건립되었을 것이다."

"목포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바위에 새겨 목포를 내려다보며 통치한다는 상징적 의미도 있을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얼핏 어느정도 일리가 있을만한 얘기라고 들릴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언종의 개조인 홍법대사 즉 공해대사가 새겨져 있고, 항복법으로 제일 유명한 본존인 부동명왕이

조각되어 있기 때문이죠... 일본에서만 유명하고 한국에서는 유명하지도 않은 두 분이 한국이란 곳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으니까요.

무서운 모습의 부동명왕이 아니라 자비로운 관세음보살님이 조각되어 있었다면 인식이 조금 달랐을까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내용이지만 청일전쟁 때 일본정부에서 주술전쟁을 위해 일본 고야산 진언종 밀법승들을 파견하여 항복법을

행하였고, 이에 중국은 정부지원하에 현교와 밀교가 하나로 합하여 대대적인 호국법회(護國法會)로 맞섰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건 제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중국, 대만, 홍콩 내에서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내용입니다...

 

여기까지만 얘기하면 뉴스기사처럼 진짜 그런가보다 하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대다수일 것입니다.

 

 

하지만 부동명왕상이 조각된 것으로 조선의 지배력 강화 및 확대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당시 조선에 파견된 밀법승들의 향수를 달래고 헤이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유달산을 불교영지로 조성하면서

홍법대사상을 조각할 때 부동명왕상도 같이 조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조선의 일본불교의 부흥을 위해 조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홍법대사가 당나라 청룡사에서 밀법을 전수받고 일본으로 복귀할 때 부동명왕 도상을 가져온 것이 인연이 되어

일본내에서 부동명왕이 공해대사의 항해안전을 지켜줬다고 전해지면서 홍법대사상 근처에 부동명왕상이 함께 배치가 되니...

홍법대사상이 존재하는 곳에는 부동명왕상이 함께 존재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은 저 2개의 상만이 남아있지만...

일제강점기 때 유달산은 일본 고야산 진언종의 밀법승들이 조선에 파견되어 일본에서처럼 시코쿠 88영지를 순례수행하기

어려워 한국 유달산에 그 축소판을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시코쿠 88영지의 유래는, 홍법대사 공해님께서 거쳐가며 수행한 88곳의 땅으로 이후 88영지로 불리게 되어

진언종의 개조이신 공해대사님의 흔적을 순례하는 것이 진언종 밀법승들의 순례수행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동명왕상과 홍법대사상이 조각될 때 함께 배치된 것이 유달산 입구에서부터 시작하여

일등봉 이등봉 일대에 세워진 약 1m내외의 88개의 불상들이었으며,

해방 후 일제잔재 청산을 위해 한국에서 모두 파괴하였고, 지금은 일부 터와 좌대 부분만 곳곳에 남아 있다고 하며...

 

당시 88개의 불상들은 모두 시주한 사람의 출신과 이름, 현거주지 그리고 불상의 번호가 새겨져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번호를 새겨둔 이유는 아마도 순서에 맞춰서 순례를 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해방후 일제잔재 청산으로 88개의 불상을 모두 파괴한건 괜찮다 싶지만,

현재 문제로 대두되는 지금도 남아있는 2개의 상은 파괴하지 않았고...

무지의 소산이자 어설픈 일제잔재 청산의 해프닝인 '유달산신(儒達山神)'이라는 글자를 만들어내었습니다.

 

본래 일제강점기 때의 부동명왕 옆에 새겨진 글자는 '유달산신사(儒達山神社)'였습니다.

유달산의 신사(神社)라는 의미였고, 해방이후 신사(神社)의 사(社)만을 지워

지금과 같은 유달산신(儒達山神)이라고 남아있게 됩니다.

 

이후 다른지역의 외부 사람들이 찾을 때마다 유달산신이 부동명왕이라는 어이없는 오인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내용은 '목포문화원'에서 발행한 서적 등에 나와있습니다.

 

 

그러면 뉴스기사의 근본적인 내용 유달산의 일제잔재를 청산하는게 나은지 교육용으로 남기는게 나은지에 대해서는...

이상적인 부분이긴 하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교육용으로 남기는 편이 낫다고 봅니다.

 

당나라가 신라를 지배하려고 했다라는 것에 대해 현대에는 별로 피해봤다라는 생각안하고 옛날 이야기 수준으로 받아들이듯...

고려시대의 원나라에 지배를 받게 되어 고종을 시작으로 약100여년간 굴욕의 역사 역시 크게 생각하지 않는 부분처럼...

조선시대의 청나라에 의해 발생한 '삼전도의 굴욕'도 이제는 과거 역사일 뿐이지 이것에 대해 분개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과 같이...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일제강점기 역시도 신라 고려 조선시대의 굴욕의 연장선상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이건 수많은 길고 긴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죠...

 

지금 현재는 일제강점기가 끝난지 100여년도 안되었고 전범국가이기도 한 일본이기에...

한국인이라면 다들 기초소양으로 일본의 만행을 알고 있지만, 앞으로 200년 300년이 더 지나고 그 흔적조차 다 사라지면

누가 과거에 일본의 만행을 얘기할 것이며 미래 일본정부에서 "증거있냐"라고 주장할 때 한국에서 선조들이 청산과정에

다 없애서 없다라고 할 수도 없지 않겠습니까?

 

고통스러운 시절을 보내시고 희생당한 한맺힌 위안부 어르신 분들만 해도 살아있는 증거인데도 불구하고

다 돌아가셔서 한명도 없길 바라며 모른척하고 인정하지 않고 있는게 현실에서의 일본인데,

시간이 더 흘러 일제강점기의 피해에 대해 한국사람들의 관심조차 사라지게되면

일본이 어떻게 나올지는 지금까지 보여준 것만으로도 어떻게 할지 충분히 상상가능할 것입니다.

 

이런건 저보다 머리 좋고 이해관계, 수지타산을 잘 하는 높으신 분들이 결정할 일이겠지만...

차라리 시코쿠 88영지 순례처럼 일제의 만행을 알리는 순례길을 만들어 내외국인들이 찾아 순례하고

이를 통해 뼈아픈 역사를 잊지 않도록 하며 널리 알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듯 싶습니다.

 

대한민국의 밝은 빛이 돌아온 자랑스런 광복절을 기념하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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