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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칼럼

정법념처경 제 16권 4. 아귀품(餓鬼品)

by 예경 2021. 10. 23.

 

정법념처경 제 16 권


원위 바라문 구담 반야류지 한역
김월운 번역

 


4. 아귀품(餓鬼品) ①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모든 지옥의 괴로움의 바다를 두루 관찰한다. 즉 애욕이 사나운 물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는 큰 지옥 사람들, 즉 부란나(富蘭那)·말가리(末迦離)·구가리(俱迦離)·제바달다(提婆達多) 등의 이런 고기들은 마갈이라는 큰 고기에게 잡아먹힌다.

 

활지옥에서 아비지옥에 이르기까지의 그 지옥들은 광대하고 옥초(沃焦)와 깊은 물이 있으며, 그 밖의 지옥의 큰 괴로움의 바다 속에는 제미고기[提彌魚]·제미예라고기[提彌鯢羅魚]·나가라고기[那迦羅魚]·구비라고기[鳩毘羅魚]·실수마라고기[失收摩羅魚]·거북·자라·큰 자라·악어 등이 물결에 흘러 떠도는데 탐욕·분노·우치의 바람의 힘에 맞아 물결이 소용돌이 치고 쏟아질 때에는 마치 물거품 같아서, 그들은 큰 고통을 받고 눈물은 비처럼 떨어지면서 울고 슬퍼하며 신음하고 외치며 몹시 괴로워 크게 외치면, 마치 물결처럼 시름의 물결은 뒤엎고, 악업의 용의 힘은 매우 괴로운 비를 내려 모든 지옥을 채운다.


아비지옥은 괴로움이 끊임 없고 매우 깊으며 그 불은 맹렬하여 마치 겁의 불이 일어 큰 겁을 태울 때와 같이 작가바라산(斫迦婆羅山)[위(魏)나라 말로 윤산(輪山)이다. 곧 철위산(鐵圍山)이 그것이다.]에 가득 찬다. 이것이 큰 지옥의 고통의 큰 바다로서 용렬하고 약하여 선(善)의 힘이 없는 사람은 건널 수 없다. 그 비구는 이렇게 큰 고통을 관찰하고 마음에 싫증이 생겨 다음 게송을 읊는다.

모든 중생들 어리석음에 속아 애욕의 집착의 결박을 당해 세상의 험난한 길에 끌려 늙고 죽음의 악이 왕성한 두려운 곳에 왔다.

 

세 곳에서 물러나와 지옥에 들고 지옥에서 나와서는 천상에 나며 세 곳에서 목숨 마쳐 축생에 떨어지고 다시 거기 마치면 아귀에 떨어진다.

자기 업의 악행에 미혹을 당해 모든 욕심에 마음대로 부려진 이 중생들 어리석음의 그물에 결박을 당해 소용돌이치는 삼계의 바다에 흘러 다닌다.

처음이 없는 오랜 동안 큰 고통 받고 갖가지로 중생들의 생사 고통 있건만 그 생사를 싫어해 떠날 마음 없는 것은 처음이 없는 오랜 동안 모은 인연 때문이다.

하늘은 방일하여 제 마음을 부수고 인간들은 욕구하다가 온갖 고통 받으며 아귀는 항상 굶주리고 목마름에 타고 축생들은 서로서로 잡아먹는다.

지옥 속에는 사나운 불이 있고 아귀로서는 우치에 시달리나니 모든 중생들 생사 속에서 털끝만한 즐거움도 얻지 못한다.

고통 속에서 즐겁다는 생각을 내는 것은 우치에 미혹되고 애욕에 속기 때문이거니 바른 도를 가르치는 사람 없으면 그 고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누구나 선한 법을 멀리 떠나고 항상 거짓말하여 성실하지 않으며 선정의 법을 닦아 익히지 않으면 길이 생사에 빠져 온갖 고통 받으리.

모든 부처님의 말씀하신 법은 현재의 세상이나 미래 세상에 아버지, 어머니나 친척보다 더하여 언제나 중생들 따르며 떠나지 않는다.

세 가지 종류의 중생 무리들 세 가지 허물이 언제나 자재로워 삼계를 늘 다니며 그칠 줄 모르나니 세 가지 감각으로 짝을 삼는다.

세 가지 업은 중생을 미혹시켜 세 가지 나쁘고 험난한 길 가게 하여 삼계의 행을 좋아하고는 세 세계[三有]의 법 안에 굴러다닌다.

만일 어떤 중생이 세 보배[三寶]에 귀의하여 자재로이 세 가지의 보리를 수행하고 세 가지 소견을 끊어 멀리 떠나면 그런 사람은 온갖 고통 떠나리라.

세 때 가운데 바른 행을 즐기고 세 가지의 늙음을 여실히 보며 음식에서 능히 만족할 줄을 알면 그는 능히 근심과 고뇌를 떠나리라.

탐욕·분노·우치의 세 가지를 지나 세 가지 업을 잘 생각해 악을 짓지 않으면 그런 수행하는 이는 생멸의 고통 떠나 일체의 근심과 열뇌 아주 끊으리.

만일 누구나 도와 도 아님 알고 있고 없는 가운데서 잘 생각하며 자비의 마음을 잘 닦고 배우면 그는 가장 훌륭한 도를 얻으리.

만일 어떤 중생이 흐리거나 어지럽지 않고 그 마음 항상 깨끗해 물들지 않아서 좋지 못한 나쁜 법 능히 떠나면 그 사람은 해탈을 얻을 줄 알라.

만일 누구나 바른 도를 능히 행하고 바른 생각의 큰 힘이 견고하기 때문에 모든 존재를 멀리 떠나기 늘 즐거워하면 그 사람은 결정코 해탈을 얻으리라.

만일 누구나 존재에 대한 사랑을 끊고 존재를 희망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그 사람은 나고 늙고 죽는 고통에 대해 조그만한 집착도 내지 않으리.

어리석은 사람은 온갖 나쁜 업 짓고 온갖 악을 짓고는 더욱 자라게 하지만 욕심이란 독과 같아 친할 것이 아니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버려야 하느니라.

만일 누구나 온갖 욕심 버리고 언제나 해탈의 결과를 즐겨 구하면 그 사람은 불선(不善)을 남김 없이 없애는 것 마치 햇빛 비치어 어둠을 없애는 것 같으리.

이와 같이 훌륭한 법을 가까이하는 이는 항상 온갖 불선을 모두 버리고 깨끗하고 깨끗하지 않음을 잘 생각하리라. 이렇게 간략히 말하였노니 너희들은 알라.

이렇게 그 비구는 이 세상과 다른 세상을 생각하여 지혜로써 이익되게 하고, 마음으로 생각한 뒤에는 지혜로써 모든 세간을 이롭게 하며, 지옥의 고통을 관찰하여서는 일체 중생을 생각하고 기억하여 자비의 마음을 일으키고 자비를 닦아 행하며, 모든 지옥의 두려움과 고통이 핍박하는 곳을 자세히 관찰한 뒤에는 업의 과보를 알고, 업의 과보를 알고는 거기에 염증을 내어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이 중생들은 왜 갖가지 나쁜 길의 매우 두려운 곳에 빠져 생사의 광야 속을 다니고 있는가?'

 

그 비구는 이렇게 생각하고 자비의 마음을 내어 아귀의 길의 험악한 업을 안다. 즉 그것은 탐하고 질투하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을 속이면서 재물을 탐하고 아껴 쌓아 두며, 늘 부자 되기를 바라 온갖 악을 널리 쌓고 나쁜 탐욕에 덮여 보시를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사문·바라문과 병자·장님·빈궁한 사람에게도 보시하지 않고, 와서 구걸하는 사람이 있어도 인색한 마음으로 보시하지 않으며, 공덕을 짓지 않고 계율을 가지지 않아 이 세상이나 다른 세상에서 이익이 없이 쇠하고 고민하며 처자와 노비들에게도 인색하여 주지 않으며 탐하고 질투하여 스스로 속이기 때문이다.


이런 인연으로 아귀 속에 떨어지는데 여자들이 많이 아귀의 길에 떨어진다. 왜냐 하면 여자의 성품은 질투가 많아 남자가 따라 주지 않으면 곧 질투를 일으키기 때문이니, 그 인연으로 여자들은 많이 아귀의 길에 난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즉 아귀는 어떤 곳에 사는가? 이렇게 관찰하고는 곧 들어 얻은 지혜로써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거기에는 대략 두 가지가 있으니, 두 가지란 첫째는 인간에 살고, 둘째는 아귀의 세계에 산다.

 

인간에 사는 아귀는 밤에 다니는 사람을 보는 것도 있고, 아귀의 세계에 사는 것은 염부제 밑의 5백 유순에 사는데 길이는 3만 6천 유순이요, 그 밖의 아귀로서 나쁜 길의 권속은 그 수가 한량없고, 악업이 너무 많기 때문에 염부제에서 가까이 사는 것도 있고, 멀리서 사는 것도 있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한량없는 종류의 모든 아귀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써 대략 서른여섯 종류의 아귀를 관찰한다. 즉 일체의 아귀는 모두 간탐과 질투의 인연으로 그곳에 나는데, 갖가지 마음으로 갖가지 업을 짓고 갖가지 행을 행하여 그 갖가지 사는 곳에서 갖가지 굶주리고 목마름으로 스스로 그 몸을 태운다.


이렇게 그 서른여섯 종류를 대략 말하리니, 서른여섯 종류란, 첫째는 가바리(迦婆離)로서 몸이 가마솥만한 아귀요, 둘째는 소지목거(甦支目佉)로서 입이 바늘 구멍만한 아귀며, 셋째는 반다바차(槃多婆叉)로서 토한 것을 먹는 아귀요, 넷째는 비사타(毘師陀)로서 똥을 먹는 아귀며, 다섯째는 아바차(阿婆叉)로서 밥이 없는 아귀요, 여섯째는 건타(揵陀)로서 기운을 먹는 아귀며, 일곱째는 달마바차(達摩婆叉)로서 밥을 먹는 아귀요, 여덟째는 바리람(婆利藍)으로서 물을 먹는 아귀다.


아홉째는 아사가(阿迦)로서 바라는[稀望] 아귀요, 열째는 기타(企)로서 침을 먹는 아귀며, 열한째는 마라바차(摩羅婆叉)로서 꽃목걸이를 먹는 아귀요, 열두째는 라흘타(囉訖)로서 피를 먹는 아귀며, 열셋째는 몽사바차(瞢娑婆叉)로서 살을 먹는 아귀요, 열넷째는 소건타(蘇揵陀)로서 향기로운 연기를 먹는 아귀며, 열다섯째는 아비차라(阿毘遮羅)로서 빨리 다니는 아귀요, 열여섯째는 치타라(蚩陀邏)로서 틈을 엿보는 아귀며, 열일곱째는 파다라(波多羅)로서 땅 밑의 아귀요, 열여덟째는 의리제(矣利提)로서 신통을 부리는 아귀다.


열아홉째는 사바례(闍婆隷)로서 불타는 아귀요, 스무째는 치타라(蚩陀邏)로서 어린애의 틈을 엿보는 아귀며, 스물한째는 가마(迦摩)로서 색(色)을 탐하는 아귀요, 스물두째는 삼모타라제파(三牟陀羅提波)로서 바닷가의 아귀며, 스물셋째는 염라왕사(閻羅王使)로서 막대기를 잡은 아귀요, 스물 넷째는 바라바차(婆羅婆叉)로서 어린애를 먹는 아귀며, 스물다섯째는 오수바차(烏殊婆叉)로서 사람의 정기를 먹는 아귀요, 스물여섯째는 바라문(婆羅門)으로서 나찰 아귀며, 스물일곱째는 군다화로(君茶火爐)로서 구워 먹는 아귀요, 스물여덟째는 아수바라타(阿輸婆囉他)로서 더러운 거리의 아귀다.


스물아홉째는 바이바차(婆移婆叉)로서 바람을 먹는 아귀요, 서른째는 앙가라바차(鴦伽囉婆叉)로서 숯불을 먹는 아귀며, 서른한째는 비사바차(毘沙婆叉)로서 독을 먹는 아귀요, 서른두째는 아타비(阿毘)로서 광야의 아귀이며, 서른 셋째는 사마사라(摩舍羅)로서 무덤 사이에 살면서 뜨거운 재흙을 먹는 아귀요, 서른넷째는 비리차(毘利差)로서 나무 속에 사는 아귀며, 서른다섯째는 차다파타(遮多波他)로서 네거리의 아귀요, 서른여섯째는 마라가야(魔羅迦耶)로서 몸을 죽이는 아귀다.


이것이 대략 말한 서른여섯 종류의 아귀요, 자세히 말하자면 한량이 없다. 심한 마음으로 악을 짓되 업의 행이 각각 다르지마는, 갖가지 인색한 마음으로 보시하지 않고 탐하는 마음으로 갖가지 몸을 받는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모든 아귀들이 크게 굶주리고 목마름을 받아 스스로 그 몸을 태우는 것을 관찰한다. 즉 그들은 전생에 질투를 많이 일으켜 나쁜 마음으로 부수고, 몸과 입과 뜻의 세 가지 나쁜 업과 열 가지 좋지 않은 업을 두루 지어 아귀들 속에 태어난다. 그는 열 가지 좋지 않은 업을 지은 인연으로 온갖 고통을 받는다.


악업 때문에 아귀들 속에 나고 악업이 이끌기 때문에, 업이 근본이 되기 때문에 나쁜 길에 들어가 거기에 결박되고, 그 업 때문에 생사를 벗어나지 못한다.


처음이 없는 그 때부터 원숭이의 마음이 시끄러이 날뛰고 경솔히 굴기 때문에 험난하고 막힌 곳으로 다니면서 갖가지의 그물과 나뭇가지를 부여잡고 빨리 오가며 생사의 산으로 가서 바윗굴 속에 자는 등 다닌 곳을 다 알지 못한다.


마음의 원숭이를 관찰하면 빨리 달리면서 잠깐도 쉬지 않는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그 마음을 항복 받아야 한다. 마음을 항복 받지 못하면 그것은 중생을 끌고 매우 두려운 곳으로 가므로 중생들은 큰 고통을 받는다. 이 마음의 원수는 중생들로 하여금 생사에 굴러다니게 한다.


비구는 이렇게 마음을 생각한 뒤에 생사에 대해 더러운 욕심을 떠나게 되고 생사의 고통을 싫어한다. 그리하여 이렇게 생각한다.


'일체의 생사는 모두 고통이다.'


그 비구는 생각하고 분별한다. 즉 아귀에는 한량없는 종류가 있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낱낱이 분별한 뒤에 그 모든 업보를 관찰한다. 즉 그것은 원인이 없이 생긴 것이 아니다. 괴롭고 즐거움이나 좋고 더러움이나 깨끗하고 깨끗하지 않음이나 선과 악이나 귀하고 천함이나 높고 낮음이나 나고 죽는 모든 것은 다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다.


그 비구는 이렇게 모든 아귀를 관찰하고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들어 얻은 지혜로써 관찰한다. 즉 몸이 가마솥만한 가바리(迦婆離) 아귀를 어떻게 관찰하는가? 그 몸은 장대하여 사람의 두 배가 넘고, 얼굴과 눈·손·발·구멍 등이 없어 마치 가마솥 발과 같으며, 뜨거운 불이 그 안에 가득하여 그 몸을 태우되, 불이 숲을 태우는 것과 같아서 굶주리고 목마르는 뜨거운 번뇌가 있다. 그것은 업보의 결박으로 구원할 사람이 없고 돌아갈 곳이 없으며 믿을 곳이 없다. 아무리 근심하고 고통하지마는 구호할 사람이 없다.


어떤 업으로 그곳에 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써 본다. 즉 이 중생은 전생에 재물을 탐하였기 때문에 남을 위해 살생을 하되, 삯을 받고 살생하고는 지방과 살을 저미면서도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없다. 또 탐하는 마음으로 살생하는데 살생하고는 기뻐하며, 악업을 지어 모으고도 뉘우치는 마음이 없다.


그런 악한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길에 떨어지되, 가바리 아귀의 몸[가바리가(迦婆離迦)는 위나라 말로 확신(鑊身)이다.]을 받아 땅 밑의 5백 유순에 살고, 거기서 목숨을 마치면 갑자기 매우 두렵고 어두운 곳에 나며, 거기 나면 위아래의 두 산이 한꺼번에 모여 그 몸을 눌러 짜므로 그는 큰 고통을 받는다. 몸은 자꾸 커져 1유순에 차며 굶주리고 목마르는 불은 그 몸을 태운다.


아귀의 길에서 5백 년을 지내는데, 아귀 세계의 하루 낮 하룻밤은 이 염부제의 햇수로는 10년을 지낸다. 그런 5백 년을 1생이라 하지마는 조금 넘고 많이 줄어드는 일이 있기 때문에 그 수명은 일정하지 않다.


또 둘째의 업으로 아귀 속에 떨어진다. 즉 어떤 중생이, 남이 맡기는 물건을 받고도 거절하여 돌려주지 않으면 그는 저곳에 나서 재물도 보시하지 않고 법도 보시하지 않으며 두려움이 없음 도 보시하지 않는다. 남자나 여자나 이 세 가지 보시를 행하지 않고 항상 간탐과 질투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 인연으로 아귀들 속에 태어난다.


또 그 비구가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를 관찰할 때,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써 입이 바늘구멍만한 아귀들을 관찰한다. 즉 어떤 업으로 저 속에 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써 소지목거(蘇支目佉) 아귀[소지목거는 위나라 말로 침구(針口)이다.]를 관찰하고 그 중생을 안다. 즉 그 중생은 전생에 재물로 사람을 고용하여 살생하게 하고 간탐과 질투로 보시하지 않되, 의식도 보시하지 않고 두려움 없음도 보시하지 않으며 법도 보시하지 않았다.


그런 악한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입이 바늘구멍만한 아귀의 몸을 받고, 그 아귀의 몸을 받으면 자기 업에 속아서 그 받은 몸의 입은 바늘구멍과 같고, 배는 큰 산과 같아서 항상 걱정하고 근심하며, 주리고 목마름의 불에 그 몸을 태우면서 몸 안으로는 온갖 고통을 받고, 몸 밖으로는 추위와 더위가 있으며, 모기·등에 등의 나쁜 벌레와 열병 등의 고통이 있다. 그리하여 몸과 마음으로 갖가지 고통을 받는다.


아귀 세계의 하루 낮 하루밤은 인간의 햇수에 비하면 10년이 넘는데, 그런 목숨을 받아 5백 년을 채우지마는 그 수명은 일정하지 않으며, 남자나 여자나 그 속에 태어난다.


또 둘째의 업으로 이 입이 바늘구멍만한 아귀 속에 난다. 즉 어떤 남자가 그 아내에게 명령하여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음식을 주라 하면, 그 아내는 실로는 음식이 있는데도 없다고 말하면서 그 남편에게 말한다.


'우리 집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무엇으로 사문과 도사에게 주라 하십니까?'


이렇게 그 아내는 남편을 속이고 재물을 아껴 보시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입이 바늘구멍만한 아귀들 속에 떨어진다. 그것은 악업을 많이 지어 쌓았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여자가 많이 아귀 세계에 나는 것이다.


왜냐 하면 여자는 탐욕과 질투가 많기 때문에 남자에게 미치지 못하고, 여자는 마음이 작고 마음이 가볍기 때문에 남자에게 미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아귀들 속에 나고, 내지 질투하는 악업이 없어지지도 않고 무너지거나 썩지도 않으면 그 아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업이 다하면 거기서 벗어날 수 있지마는 거기서 목숨을 마치면 축생들 속에 나되, 차타가(遮迦)라는 새[이 새는 다만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만 먹으므로 우러러 입을 벌리고 하늘의 빗물을 받아 마시며, 다른 물은 먹지 못한다.]의 몸을 받아 항상 굶주리고 목마름에 고뇌하면서 큰 고통을 받는다.


축생으로 죽으면 인간에 나더라도 남은 업 때문에 항상 굶주리고 목마름으로 곤란을 당하면서 그 받는 고통은 끝이 없고 항상 다니면서 걸식하여 스스로 살아간다. 남은 업 때문에 이런 고통을 받는 것이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모든 아귀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써 토한 것을 먹는 아귀들을 관찰한다. 이 중생들은 어떤 업으로 이런 아귀의 몸을 받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써 안다. 즉 이 중생은 전생에 여자의 몸이 되어 그 남편을 속이고 저만 맛난 음식을 먹으면서 간탐과 질투로 그 자식을 미워하여 음식을 주지 않았고, 혹 어떤 남자는 그 아내가 딴 마음이 없는데도 질투하는 마음을 내어 혼자서만 맛난 음식을 먹고 처자에게는 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 인연으로 반다(槃多) 아귀[반다바차(槃多婆叉)는 위나라 말로 식토(食吐)이다.] 속에 떨어진 것이다.


아귀의 몸을 받고는 항상 굶주림과 목마름이 그 몸을 태우는데, 그 몸은 광대하여 키는 반유순으로서 광야에서 사방으로 빨리 달리면서 물을 구하고 큰 소리로 외치되 '배고프고 목마르다'고 말한다.


이 중생은 전생에 재물과 두려움 없음을 보시하지 않고 법을 보시하지 않았다. 그 인연으로 아귀 속에 태어나서 수명이 긴 것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 그리고 5백 년을 지내되, 내지 악업이 다하지 않고 부서지거나 무너지지 않으면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다.


토한 것을 먹는 아귀 속에 있으면서 항상 토한 음식을 구하여도 조금도 얻지 못하고, 거기서 목숨을 마치면 축생들 속에 나더라도 또한 토한 것을 먹으면서 굶주리고 목마름의 고통을 받고, 축생 속에서 죽으면 인간에 나더라도 남은 업의 인연으로 항상 굶주리고 목마름에 고민하면서 거리에서 세상 사람들이 먹다 버린 밥을 주워 먹으며, 혹은 사문이나 바라문들에게서 구걸하여 스스로 살아간다. 남은 업 때문에 이런 고통을 받는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모든 아귀들을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써 안다. 즉 이 중생은 전생에 탐욕과 질투를 많이 행하고 항상 인색하여 보시를 행하지 않고 부정한 음식을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보시하여 그 사문이나 바라문이 부정한 음식인 줄 알지 못하고 곧 그것을 먹으면, 그는 그 악업의 인연으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길에 떨어지되, 똥을 먹는 아귀들 속에 난다. 수명의 길고 짧음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다.


또 5백 년 동안 굶주리고 목마름이 그 몸을 태우므로 똥을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데, 업의 힘 때문에 마음대로 되지 않고 더러운 곳에서 구더기와 똥 속을 달리면서 찾아도 항상 만족하지 못하며 목숨이 다하지 않는 동안은 항상 고통을 받는다.


그리하여 악업이 다하지 않고 무너지거나 썩지 않으면 그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만일 악업이 다하면 거기서 목숨을 마치고 업을 따라 흘러다니면서 생사의 고통을 받되,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렵기는 마치 바다의 눈먼 거북이 떠도는 나무의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아서 온갖 나쁜 몸을 받는다.


그리하여 혹 인간에 나더라도 빈궁하고 병이 많으며, 항상 굶주리고 목마름에 괴로워하며 아침밥을 빌어 먹으면서 살아가며, 한량없는 불행으로 장식[嚴飾]을 삼고, 그 몸이 찢어져 더럽고 냄새 나므로 남의 천대를 받으며, 입에는 비린내 나고 그 치아는 검다. 남은 업의 인연으로 그런 과보를 받는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인색하고 질투하는 아귀들이 사는 곳을 관찰할 때, 일체의 아귀들은 인색과 질투로 근본을 삼는다. 이 중생들은 어떤 업으로 먹을 것이 없는 아귀들 속에 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써 안다. 즉 그 아귀는 전생에 인색과 질투로 그 마음을 덮어 거짓말로 남을 속이고, 제 힘을 믿고 선량한 사람을 모함하여 옥에 가둔 뒤에 음식을 주지 못하게 하여 그를 죽게 한다.


그를 죽이고는 유쾌히 여겨 후회하지 않고 도리어 기뻐하며, 다시 남을 시켜 악업을 짓게 하고도 조금도 뉘우쳐 고치지 않는다. 그 악한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음식이 없는 아귀들 속에 태어난다.


남자나 혹은 여자로서 그 속에 태어나면 굶주리고 목마르는 불은 더욱 왕성하여 산의 깊은 물에서 솟는 물결의 힘과 같이 뱃속에서 불이 일어나 그 몸을 태워 남음이 없고, 없어지면 다시 생기며 생기면 다시 태운다.


두 가지 고통이 있다. 첫째는 굶주리고 목마름이며, 둘째는 불에 타는 것이다. 그가 고통의 핍박을 받아 외치고 슬피 괴로워하면서 사방으로 돌아 달리면, 자기 업의 나쁜 과보는 불가사의하여 그는 이렇게 안팎의 고통을 받아 온몸은 업의 불에 탄다.
몸 안에서 불이 생겨 그 몸을 태우는 것은 마치 큰 나무 속이 비고 말랐을 때 어떤 사람이 거기 불을 던지면 맹렬히 타는 것처럼, 그 아귀가 불에 타는 것도 그와 같아서 온몸이 두루 탄다. 그가 슬피 부르짖고 울면 입 안에서 불이 생겨 두 개의 불꽃이 그 몸을 태운다.


그가 두려워하여 길을 찾으면 땅에서 가시가 나서 모두 불에 타면서 두 발을 꿰찌르면 그 고통은 참기 어려우므로 슬피 부르짖고 외치면 불은 그 혀를 태워 모두 익어 녹는 것은, 마치 엉긴 소(酥)를 태우는 것과 같아서 없어지면 다시 생기며, 악업으로 말미암아 돌아다니면서 물을 찾아 여러 못물이 흐르는 근원으로 가면 물은 이내 말라 버린다.


그가 나쁜 업으로 숲 속의 놀던 곳으로 가면, 높은 언덕이나 혹은 늪 속에는 뒤바뀐 소견 때문에 다만 모두가 큰 불에 타는 것을 보고 산의 나무들이 모두 불에 타는 것을 본다. 그리하여 물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 물가를 보면 물을 지키는 귀신이 무기를 들고 그 머리를 때려 그는 큰 고통을 받는데, 그것은 다 전생에 탐하고 질투한 마음의 원수에 속았기 때문이다.

 

수명이 매우 길어 5백 년을 지내는 것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다. 이와 같이 악업으로 항상 먹을 것이 없지마는 악업이 다하지 않기 때문에 죽게 하지는 않는다. 그리하여 악업이 다하지 않고 무너지거나 썩지도 않으면 그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만일 악업이 다하면 거기서 벗어날 수 있으나 거기서 목숨을 마치면 악업에 불려 업을 따라 흘러 다니면서 생사의 고통을 받는다.


그리하여 사람의 몸을 받기 어렵기는 마치 바다의 눈먼 거북이 떠도는 나무의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고, 혹 인간에 태어나더라도 어머니 태에 있을 때에 어머니가 먹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어머니의 몸을 여위고 추하게 하며, 살생한 업 때문에 어머니 태에서 떨어지고 태에서 떨어져 일찍 죽지 않더라도 어머니의 몸이 더러워 밉게 하고 불선을 행하기를 즐기며, 나게 되면 수명이 짧고 어려움이 많으며, 왕의 법에 걸려 감옥의 고통을 받고 굶주리고 목말라 죽는데, 그 남은 업 때문에 그런 과보를 받는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써 기운을 먹는 아귀들을 관찰한다.
어떤 업으로 그곳에 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안다. 즉 그 중생은 전생에 많은 맛난 음식을 먹되, 저만 먹고 처자와 그 밖의 권속에게는 주지 않으므로, 처자는 다만 그 냄새만 맡고 그 맛은 알지 못한다. 처자들 앞에서 혼자 먹을 뿐 아니라 인색과 질투 때문에 업이 같은 권속에게도 주지 않으며, 또 남을 시켜 그 처자에게 주지 않고, 기뻐하는 마음을 내게 한다. 이런 허물을 자주 짓고도 뉘우쳐 고치지 않고 또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이런 악한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기운을 먹는 아귀들 속에 태어나고, 거기 태어난 뒤에는 굶주리고 목마름이 몸을 태우므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신음하고 외치며 슬피 울고 괴로워한다. 다만 믿는 것은 절이나 또 하늘에 제사하는 신심이 있는 사람의 베푸는 공양뿐인데, 그것도 다만 그 냄새와 다른 냄새만 맡고 그것으로 살아간다.


또 냄새를 맡는 아귀들은 세상 사람이 병이 많기 때문에 물가나 숲 속이나 거리에 제물을 차리면 그 냄새를 맡고 살아간다.
이런 냄새를 맡는 아귀들은 한량없는 고통을 받지마는 악업이 다하지 않기 때문에 죽지는 않고, 내지 악업이 다하지 않고 무너지거나 썩지 않으면 그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며, 업이 다하면 벗어날 수 있으나 거기서 목숨을 마치면 업을 따라 흘러 다니면서 생사의 고통을 받는다.


그리하여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렵기는 마치 바다의 눈먼 거북이 떠도는 나무의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고, 혹 인간에 태어나면 빈궁하고 병이 많으며 몸이 추한데, 남은 업 때문에 그런 과보를 받는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법을 먹는 아귀들을 관찰하는데, 그들은 법의 인연으로 몸을 부지하고 또 세력이 있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태어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본다. 즉 그 아귀는 인간으로 있을 때 탐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많은 성질이 있어서 살아가기 위하여, 또 재물을 구하기 위하여 남에게 설법하면서 마음으로 존경하지 않고 계율을 범하고 신심이 없으며, 중생들을 항복 받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깨끗하지 못한 법을 말한다.


즉 살생하면 천상에 태어나는 복을 얻는다고 말하고, 억지로 남의 재물을 빼앗아도 죄가 없다고 말하며, 여자를 남에게 주면 큰 복덕을 얻고, 한 마리의 큰 소를 놓아주는 것도 그와 같다고 말한다.


이런 깨끗하지 못한 법을 남에게 설명하여 재물을 스스로 공양하면서도 보시는 행하지 않고 온 창고에 쌓아 두면, 그는 그 질투가 마음을 덮어 목숨을 마친 뒤에는 나쁜 세계에 태어나되, 법을 먹는 아귀의 몸을 받는다. 그의 수명은 5백 년을 지내고 해와 달의 길고 짧음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다.


험난한 곳에서 동서로 달리면서 음식을 구하지마는 굶주리고 목마름은 몸을 태우고 아무도 구원할 이가 없다. 마치 마른 나무가 불에 타는 것과 같아서 머리털은 쑥대궁이처럼 흩어지고 몸의 털은 매우 길며 몸은 여위어 핏줄은 그물 같고 지방과 살은 다 녹아 가죽과 뼈가 서로 싸며, 그 몸은 장대하고 딱딱하고 추루하며, 손·발톱은 길고 날카롭다.


악업에 속았기 때문에 얼굴은 주름 잡히고 눈은 푹 꺼지며, 눈물은 비처럼 흐르고 몸 빛은 검어 마치 검은 구름 같으며, 나쁜 벌레가 온몸을 파먹고 모기·등에·검은 벌레 등이 털구멍으로 들어가 그 살을 먹는다.


그는 몹시 두려워하여 사방으로 달리다가 혹 절에 가면, 어떤 사람이 스님들에게 와서 두 가지 보시를 행하고, 그 보시로 말미암아 상좌 비구의 설법이 있고 다른 사람들이 그 설법을 찬탄하면, 그 아귀는 그로 인해 목숨과 힘을 얻어 목숨이 살게 되며, 내지 악업이 다하지 않고 무너지거나 썩지 않으면 마침내 거기서 벗어날 수 없고, 악업이 다하면 거기서 벗어날 수 있으나 거기서 목숨을 마치면 전생에 갖가지 마음으로 갖가지 업을 지었기 때문에 여러 곳에서 생을 받으면서도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렵기는 마치 바다의 눈먼 거북이 떠도는 나무의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다.


혹 인간에 태어나더라도 항상 하늘에 제사하는 사당을 지키는 바라문으로서 염소를 잡아 하늘에 제사하고, 용의 주문을 외우는 사람이 되어 자유를 얻지 못하며, 늘 남에게 구걸해 살아가다가 악업의 인연으로 다시 지옥에 떨어지는데, 그것은 남은 업 때문이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써 물을 먹는[食水] 아귀들을 관찰한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안다. 즉 그 아귀들은 전생에 나쁜 탐욕이 마음을 덮어 술을 빚어 팔면서 세상을 속이되, 술에다 물이나 잿물을 타고, 혹은 지렁이나 나비를 담가 우치한 사람을 속이며, 보시를 행하지 않아 복덕을 닦지 않고 계율을 가지지 않으며, 바른 법을 듣지 않고, 바른 법을 행하지 않으며, 다시 남을 시켜 나쁜 탐욕을 행하게 하고, 그것을 보고 따라서 기뻐하며, 그렇게 한 뒤에도 후회하지 않는다.


그런 악업으로 그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물을 먹는 아귀들 속에 태어나서는 항상 굶주리고 목마른 고민으로 그 몸을 태우고, 광야의 험난한 곳을 달리며 물을 구해 허덕이나 물은 조금도 얻지 못한다.


그 몸의 모양은 딱딱하고 껄끄러워 밉기는 불에 탄 황무지 같고 온몸은 찢기어 불에 타며, 긴 머리털은 얼굴을 덮고 눈으로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며, 굶주리고 목마름은 몸을 태우므로 강가로 달려가서는, 강을 건너는 사람의 발 밑에 떨어지는 남은 물과 진흙의 물방울을 빨리 집어 마시고 살아가며, 혹은 다른 사람이 강가에서 물을 움켜 떠서 부모보다 더한 목숨을 보시하면 그것을 조금 얻어 그 인연으로 목숨을 부지한다.


만일 스스로 물을 취하면 물을 지키는 귀신들이 막대기로 그를 때려 그 가죽이 벗겨지므로 그 고통은 참기 어렵다. 그리하여 슬피 외치고 울면서 강가로 달려간다. 악업을 지어 자기 몸을 속였기 때문에 업의 얽맴이 다하지 않아 일부러 죽지 않게 하며, 내지 악업이 다하지 않고 무너지거나 썩지 않으면 거기서 벗어날 수 없고, 업이 다하면 거기서 벗어날 수 있더라도, 또 거기서 목숨을 마치면 업의 바람에 불려 생사에 흘러 다니면서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렵기는 마치 바다의 눈먼 거북이 떠도는 나무의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혹 인간에 태어나면 변방에 태어나서 빈궁하고 곤고하여 숲도 없고 물도 없는 곳에 살면서 항상 갈증에 고민하고, 늘 열병에 괴로워하며 밤낮으로 목이 마른데, 남은 업 때문에 그런 과보를 받는 것이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아사가(阿迦)라는 아귀들을 관찰한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안다. 즉 그 중생은 질투와 탐욕으로 스스로 그 마음을 덮어 어떤 착한 사람을 보고 조그만 물건을 얻기 위해 사고 파는 값을 도리로 하지 않고 그를 속여 물건을 취하며, 취하고는 기뻐하면서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남을 시켜 그 악을 짓게 하고 보시를 행하지 않아 복덕을 닦지 않고 계율을 지니지 않으며, 진실한 마음이 없고 바른 법을 따르지 않으며, 그 마음이 거칠어 항복 받을 수 없고 훌륭한 벗을 친하지 않으며, 항상 질투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런 악한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희망(稀望) 아귀 속에 태어난다.


세상 사람이 돌아가신 부모의 망령을 위해 제사를 베풀면, 그 아귀들은 그것을 얻어 먹고 다른 음식은 아무것도 얻어 먹지 못한다. 그러므로 항상 굶주리고 목마르는 고민으로 그 몸을 태우되, 마치 불이 숲을 태우는 것 같지마는 구원하는 이가 없고, 얼굴빛은 검고 눈물이 흘러내리며, 손발은 찢기고 머리털은 얼굴을 덮으며, 몸 빛은 밉기가 검은 구름 같고 괴로워하고 슬피 부르짖으면서 다음 게송을 읊는다.

보시하지 않으면 갚음이 없고 보시가 없으면 그 과보 또한 없다. 등불이 없으면 밝음도 없는 것처럼 보시하지 않으면 즐거운 과보도 없다.

마치 장님이 눈이 없어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처럼 보시하지 않는 것도 그와 같아서 오는 세상에 즐거운 과보가 없다.

혹은 아귀의 세계에 나거나 인간으로서 언제나 빈궁하며 흘러 다니며 고뇌를 받는 것은 모두 질투의 인연 때문이니라.

보시하지 않으면 그 과보도 없고 지은 업은 마침내 없어지지 않는다. 스스로의 업으로 그 과보를 받나니 중생은 지은 업을 의지해 산다.

나는 나쁜 업에 불태워지면서 아귀들 속에 태어났나니 이 큰 기갈을 받아 사나운 불이 언제나 왕성하다.

언제나 굶주리고 목마름 떠나 언제나 편하고 즐거움 얻겠는가? 받는 고통의 뜨거운 번뇌에서 언제나 그 해탈을 얻을 것인가?

도와 도 아님을 분별하지 못하고 훌륭한 업의 과보를 알지 못하였기에 굶주리고 목마름은 불에 타는 듯 이렇게 이 고뇌를 받는 것이다.

흩어진 머리털은 얼굴 덮는데 구호할 사람 아무도 없고 핏줄은 드러나기 그물 같아서 고통에 시달려도 죽지 않는다.

허덕거리며 광야로 가서 언제나 갖가지 고통 받지만 고독하여 구호해 줄 아무도 없고 온갖 매서운 고초를 모두 받는다.

이렇게 그 희망 아귀는 앓고 달리면서 이리저리 도망을 친다.
비구는 그것을 보고 이렇게 생각한다.

 

'생사의 불길은 왕성히 타는데 욕계 더욱 더하다.'


이렇게 그 아귀의 종류는 때로 망령을 제사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음식을얻어 먹고 살아가는데, 오직 그것만 얻어 먹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얻어 먹지 못한다. 그러나 악업이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지는 않고, 내지 악업이 다하지 않고 무너지거나 썩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다.


만일 그 악업이 다하면 거기서 목숨을 마치고 업의 바람에 불려 세간에 흘러 다니면서 생사의 고통을 받지마는,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렵기는 마치 바다의 눈먼 거북이 떠도는 나무의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고, 혹 인간에 태어나면 장인바치의 집에 태어나거나 하천한 종으로서 남의 심부름꾼이 되는데, 남은 업의 인연으로 그런 과보를 받는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써 침을 먹는[食唾] 아귀들을 관찰한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태어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써 그 중생을 안다. 즉 어떤 남자나 혹은 여자로서 인색과 질투가 그 마음을 덮어 집을 떠난 사문이나 도사에게 부정한 음식을 주면서 깨끗한 것이라 속여 그 말을 믿어 그것을 먹게 하고, 혹 때로는 적당하지 않은 음식을 행이 깨끗한 사람에게 보시하되 이런 짓을 자주 행하며, 다시 남을 시켜 거짓을 행하게 하고 보시를 행하지 않으며, 계율을 가지지 않고 착한 벗을 친하지 않으며, 바른 법을 따르지 않고 부정한 음식을 즐기고, 그것을 남에게 주면 그런 나쁜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길에 태어나되, 기타(企)라는 아귀의 몸을 받아 굶주리고 목마름으로 항상 그 몸을 태우고, 벽이나 혹은 땅의 더러운 곳에서 사람의 침을 구해 그것을 먹고 살아가며, 다른 음식은 아무것도 얻어 먹지 못한다.


그리하여 그 업이 다하지 않고 무너지거나 썩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업이 다하면 벗어날 수 있으나 또 거기서 목숨을 마치면 업을 따라 흘러 다니면서 생사의 고통을 받고 혹 인간에 태어나면 빈궁하고 하천하며 병이 많고 여위며, 코가 막혀 곪아 문드러지며 변소 치는 사람의 집에 태어나고, 혹은 스님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구걸해 먹고 살아 가는데, 그 남은 업의 인연으로 그런 과보를 받는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마라(魔羅)의 만(鬘)을 먹는 아귀를 관찰한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태어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써 안다. 즉 그 중생은 전생에 부처님의 화만(花鬘)을 훔치고, 존경하는 어른의 화만을 훔쳐 그것이 정결하기 때문에 그것으로 장식하되 나쁜 마음으로는 하지 않으나, 그 마음의 탐욕과 질투 때문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부처님의 탑에 나거나 혹은 하늘에 제사하는 사당에 나고 또 신비한 힘이 있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이 싸움하고 그 탑에 와서 맹세하면, 곧 그 틈을 얻어 나쁜 꿈을 보여 사람들을 두려워하게 하고, 혹은 나쁜 일을 당한 어떤 사람이 그 은혜로운 힘을 구하여 이 귀신은 큰 위덕과 신통이 있는 야차라 하고 화만을 올리면, 그 일로 인해 화만을 얻어 먹고는 주림과 목마름을 조금 떠나 주림의 불에 타지 않는다. 그리하여 세상 사람들은 그를 찬탄하고 그 귀신은 항상 기뻐한다.


이것은 화만을 먹는 귀신으로서 내지 악업이 다하지 않고 무너지거나 썩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날 수 없고, 그 업이 다하면 거기서 벗어날 수 있으나 또 거기서 목숨을 마치면 업을 따라 흘러 다니면서 생사의 고통을 받고, 혹 인간에 태어나면 동산지기가 되어 꽃을 팔아 살아가는데, 남은 업 때문에 그런 고통을 받는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써 피를 먹고[食血] 살아가는 아귀들을 관찰한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태어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본다. 즉 아귀들은 본래 사람으로 있을 때에 피와 살의 음식을 탐하여 즐기고, 그 마음이 인색하고 질투하여 장난으로 악을 짓되, 살생하여 피를 먹으면서 처자에게는 주지 않는다.


그런 나쁜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길에 떨어지되, 피를 탐하였기 때문에 나흘타(囉訖)라는 아귀 속에 태어난다. 그 귀신의 몸을 받으면 사람들은 모두 야차라고 불러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되, 피를 바른 진흙으로 제사한다. 그가 그 피를 먹고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어 자주 기도하고 제사하기를 요구하면, 사람들은 모두 신령스런 귀신이라 말한다. 이리하여 스스로 살아가며, 수명이 긴 것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고, 5백 년을 지낸다.

그 아귀는 이런 요사스러운 일을 부리고, 내지 그 악업이 다하지 않고 무너지거나 썩지 않으면 그 때문에 거기서 벗어날 수 없고, 업이 다하면 거기서 벗어날 수 있으나 또 거기서 목숨을 마치면 업을 따라 흘러 다니면서 생사의 고통을 받고, 혹 사람의 몸을 얻으면 백정의 집에 태어나서 사람의 살을 먹는데 그것은 남은 악업의 인연 때문이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고기를 먹는[食肉] 아귀들을 관찰한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안다. 즉 그는 질투와 탐욕으로 그 마음을 덮어 중생의 고기로 고깃덩이를 만들고 조각조각 끊어 저울에 달아 팔면서 남을 속이되, 적은 것을 많다 하고 헐한 것을 비싸다 한다. 그런 나쁜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세계에 떨어지되, 고기를 먹는 아귀들 속에 태어난다.


그것은 야차의 귀신으로서 사거리나 골목이나 거리의 상점이나 혹은 성 안의 스님들이 사는 곳에 태어나는데, 형상은 추악하여 보는 사람이 모두 두려워하고 또 신통이 있다. 그 성질은 경솔하고 부드러워 악은 많이 짓지 않으나 부정한 보시를 행하였으므로 그 인연으로 신통을 얻는다. 즉 중생들의 잡류인 소·염소·노루·사슴 등의 고기로 대회를 열어 사람들에게 보시하였으므로 그 업의 인연으로 신력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악업이 다하지 않고 무너지거나 썩지도 않았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업이 다하면 거기서 벗어날 수 있으나 또 거기서 목숨을 마치면 업을 따라 흘러 다니면서 생사의 고통을 받지마는,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렵기는 마치 바다의 눈먼 거북이 떠도는 나무의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다.


조그만 선업이 있어서 혹 인간에 태어나면, 변방에 태어나서 백정이나 오랑캐의 족속이 되어 사람의 살을 먹는데, 남은 업의 인연 때문에 그런 고통을 받는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향 연기를 먹는[食香烟] 아귀들을 관찰한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태어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안다. 즉 그 중생은 질투와 탐욕에 마음이 덮여 향 장사를 할 때에 빨리 향을 사서 공양하려는 사람을 보고는, 훌륭한 향은 그에게 주지 않고 좋지 못한 향을 비싼 값으로 팔며, 깨끗한 신심이 없어 나쁜 과보가 없다고 말하면서 모든 부처님은 진실한 복밭임을 알지 못한다.


그런 나쁜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향기로운 연기를 먹는 아귀들 속에 태어나서 신통이 있으며, 몸에는 화만을 걸고 바르는 향·가루향과 음악으로 스스로 즐기며, 혹은 신을 제사하는 사당에 태어나거나 사거리·절집·숲 속·유희하는 곳이나, 층계집·다락 등으로 돌아다니면,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들은 공경하고 예배하며 침수(沈水) 등의 갖가지 향을 태워 공양한다. 그것은 전생에 장사로서 향을 팔아 사람들로 하여금 최상의 복밭인 비전(悲田)에 공양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부처님이나 법이나 승가에 조그만 보시를 행하여도 큰 과보를 얻는데, 그것은 마치 니구타(尼拘陀)나무는 그 종자가 아무리 작아도 훌륭한 땅에 심으면 큰 나무가 되어 가지가 사방으로 퍼지는 것처럼, 부처님이나 법이나 승가의 복밭에 보시를 행하면 큰 과보를 얻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그 복밭의 힘 때문에 그 야차는 신통의 힘이 있고 즐거운 과보를 얻으며, 그 귀신 세계의 고통에서 벗어나면 그로부터 목숨을 마치고는 업을 따라 흘러 다니면서 생사의 고통을 받지마는,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렵기는 마치 바다의 눈먼 거북이 떠도는 나무의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고, 혹 인간에 나면 빈궁한 집에 태어나지마는 그 몸은 향기로워 향을 바른 것과 같은데, 남은 업의 인연으로 그런 과보를 받는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빨리 달리는 아귀들을 관찰한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태어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안다. 즉 그 중생은 탐욕과 질투가 마음을 덮어 혹 사문이 되어서는 받은 바의 계율을 깨뜨리고도 법복을 입고 마을에 다니면서 아첨과 거짓으로 재물을 구하되, 병자의 병을 따라 약을 쓰겠다 하면서도 마침내 병자에게는 주지 않고 자기가 먹으며, 구걸하기 위해 훌륭한 옷을 입고 도시로 돌아다니면서 필요한 물건을 널리 구하여서도 병자에게는 주지 않는다. 그는 이 인연으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길에 떨어지되 아비차라(阿毘遮羅)[아비차라는 위나라 말로(疾行)이다.]라는 아귀 속에 태어난다.


귀신의 몸을 받은 뒤에는 더러운 곳에서 더러운 것을 먹고, 항상 굶주리고 목마르는 고민으로 그 몸을 태운다. 혹 어떤 중생이 부정한 짓을 행하면 그 아귀는 그를 괴롭히되 스스로 그 몸을 나타내어 두려움을 주고, 그 사람의 틈을 엿보아 혹은 나쁜 꿈을 보여 그를 두렵게 하며, 무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즐겨 시체를 가까이하고 그 몸은 불에 타면서 연기와 불꽃이 한꺼번에 일어난다.


혹은 세상에 돌림병이 유행하여 죽은 사람을 보면 마음으로 기뻐하고 혹 나쁜 주문을 외워 부르면 그는 곧 와서 이롭지 않은 짓을 한다. 그 걸음은 매우 빨라 한 생각 동안에 백천 유순을 달린다. 그러므로 빨리 달리는 아귀라 부르며,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의 공양을 받으므로 모두 그를 불러 힘이 센 신통을 가진 야차라 한다.


이렇게 갖가지로 사람의 재화(災禍)를 일으켜 사람들을 두려워하게 하고, 내지 악업이 다하지 않고 무너지거나 썩지도 않았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업이 다하면 거기서 벗어날 수 있으나 그로부터 목숨을 마치면 업을 따라 흘러 다니면서 생사의 고통을 받으며, 혹 인간에 태어나면 주술(呪術)하는 이의 집에 태어나서 모든 귀신을 데리고 귀신의 사당을 지키는데, 남은 업 때문에 그런 과보를 받는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틈을 엿보아 남의 단점을 찾는[伺便] 아귀들을 관찰한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태어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안다. 즉 그 중생은 탐욕과 질투가 마음을 덮어 중생들을 모함하여 재물을 취하고 혹은 싸움질로 사람을 두렵게 하여 그 재물을 빼앗으며, 촌이나 도시로 다니면서 남의 물건을 빼앗고, 항상 사람들의 틈을 엿보아 물건을 훔치려 하며, 보시를 행하지 않아 복업을 닦지 않고 선량한 벗을 친하지 않으며, 항상 질투하는 마음으로 남의 재물을 탐하여 빼앗고 남의 재물을 보면 나쁜 마음을 가지며, 훌륭한 벗과 형제 친족들을 항상 미워하고 질투하므로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모두 나쁜 사람이라 한다.

그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길에 떨어지되, 치타라(蚩陀羅)[치타라는 위나라 말로 몰래 엿본다는 뜻이다.]라는 아귀의 몸을 받아 온몸의 털구멍에서 저절로 불이 생겨 그 몸을 태우는데, 그것은 견숙가[甄叔迦 : 이 나무는 꽃이 붉기가 불덩이와 같다.] 나무에 만발한 꽃과 같으며, 굶주리고 목마름의 불이 그 몸을 태우므로 신음하고 슬피 외치며 사방으로 달리면서 음식을 구해 살려고 한다.


세상의 우치한 사람이 탑을 거슬러 가다가 하늘에 제사하는 사당을 보고 순종하고 공경하면, 그 귀신은 곧 그 사람의 틈을 얻어 그 몸 속에 들어가 그의 기운을 먹으며, 또 어떤 사람이 여자와 관계하려 하면 그 귀신은 그 틈을 얻어 그 몸 속에 들어가 그 기운을 먹고 살아가면서 다른 음식은 아무것도 얻어 먹지 못한다.


그리하여 악업이 다하지 않고 무너지거나 썩지도 않았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업이 다하면 벗어날 수 있으나 그로부터 목숨을 마치면 업을 따라 흘러 다니면서 생사의 고통을 받고, 혹 인간에 태어나면 온갖 어려움, 즉 왕의 어려움·물·불·도적의 어려움과 흉년의 어려움을 만나며, 항상 빈궁하고 하천한 곳에 나서 온갖 병이 많고 몸은 약한데, 남은 업 때문에 그런 과보를 받는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땅 밑의 어두운 곳에 사는 아귀들을 관찰한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태어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안다. 즉 그 중생은 어리석어 악을 짓고 탐욕과 질투가 마음을 덮어 법을 어겨 재물을 구하되, 사람을 묶어 어두운 감옥 속에 두어 어둠 때문에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하면, 그들의 서로 부르는 소리는 항상 슬프고 옥에 갇혀 큰 고통을 받지마는 구호할 사람이 아무도 없게 한다.


그런 나쁜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어두운 곳에 떨어져 아귀 속에 태어난다. 땅 밑의 어두운 곳에 있으면 큰 독사가 그 속에 가득하다. 그는 장대한 몸을 받아 키는 20리로서 추운 바람에 떨고 굶주림과 목마름은 몸을 태우며, 머리털은 쑥대궁이처럼 어지럽고 몸은 여위었는데, 그 몸은 몽둥이에 맞아 부서지고 매우 험난하고 어두운 곳을 다니면서 심한 고통을 받으므로, 매우 두려워하여 내닫지마는 고독하여 짝이 없으며, 사나운 바람은 몹시 날카로워 마치 칼로 베는 것 같다. 그러나 악업 때문에 죽으려 하여도 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악업이 다하지 않고 무너지거나 썩지도 않았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업이 다하면 벗어날 수 있으나 그로부터 목숨을 마치면 업을 따라 흘러 다니면서 생사의 고통을 받는다. 그러나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렵기는 마치 바다의 눈먼 거북이 떠도는 나무의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고, 혹 인간에 태어나면 깊은 산이나 험한 바닷가에 살면서 해와 달을 보지 못하고, 그 나라에 나서는 눈이 어두워 아무것도 보지 못하며, 빈궁하고 하천하여 구걸하면서 살아가는데, 남은 업 때문에 그런 과보를 받는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아는 지혜로 신통대력광명(神通大力光明)이라는 아귀를 본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태어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안다. 그 중생은 거짓말로 사람을 속이고 탐욕과 질투에 파괴되어 남의 재물을 훔치며, 사람을 속여 물건을 취하고 혹은 세력을 믿고 남의 재물을 강탈하되 나쁜 벗들에게만 그것을 주고 복밭에는 보시하지 않으며, 더러운 보시로써 은혜를 구하고 구원을 구하며, 명절의 모임을 위하고 급난을 위하며, 아부하기 위한 이런 여러가지의 보시를 행하므로, 그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대력신통의 아귀들 속에 태어난다.


그 귀신의 몸을 받은 뒤에는 한량없는 고뇌를 받는 많은 아귀들에게 좌우로 둘러싸여 깊은 산이나 혹은 바닷가에 살고, 거기 나서는 신통이 자재하므로 오직 그 한 귀신만이 제일의 즐거움을 받고, 다른 귀신은 그 몸이 불에 타는 숲처럼 굶주리고 목마름의 불에 핍박을 받으면서 모두 그 즐거움을 받는 귀신을 우러러보는데, 그것은 더러운 보시의 과보이다.


업이 다하면 거기서 벗어날 수 있으나 그로부터 목숨을 마치더라도 업을 따라 흘러 다니며, 생사의 고통을 받지마는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렵기는 마치 바다의 눈먼 거북이 떠도는 나무의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고, 혹 사람이 되면 흉년 든 세상에서 나라를 다스리거나 혹은 대신이 되는데, 남은 업 때문에 그런 과보를 받는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써 밤에 불에 타는[夜熾燃] 아귀들을 본다. 즉 몸에서 불이 나서 신음하고 슬피 외치면서 내달아 도시나 촌락의 사람 사는 곳과 숲 속의 사는 곳으로 가서 몸은 불더미처럼 굶주리고 목마름의 불에 탄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태어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안다. 즉 탐욕과 질투가 마음을 덮어 다른 사람을 망치는데, 거짓말로 남을 속이고 남의 재물을 억지로 빼앗으며, 남의 성곽을 부수고 백성들을 죽이며, 남의 권속과 친척들을 흩어지게 하고 약탈해 얻은 재물을 왕이나 대신이나 호귀한 사람에게 바치어 왕의 세력을 얻으면, 왕은 그 재능을 가상히 여겨 그를 칭찬하므로 그가 더욱 흉포한 것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다.


그런 나쁜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사바례(闍婆隸)[사바례는 위나라 말로 치연(熾燃)이다.]라는 아귀들 속에 떨어진다. 그것은 그가 전생에 밤에 다니면서 겁탈하고 사람을 옥에 가두어 온갖 고통을 주었기 때문이니, 그 인연으로 밤이면 온몸에 맹렬히 불이 일어나고, 전생에 사람을 결박하여 울부짖게 하였으니, 그 인연으로 맹렬한 불이 몸을 태워 슬픈 소리로 크게 부르짖게 하되 악업이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게 하지는 않는다.


그리하여 악업이 다하지 않고 무너지거나 타지도 않았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로부터 목숨을 마치면 업을 따라 흘러 다니면서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렵기는 마치 바다 속의 눈먼 거북이 떠도는 나무의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으며, 혹 사람의 몸을 얻더라도 항상 남에게 망하는데, 비록 재물이 있더라도 왕이나 도적의 침노를 당해 빼앗기며, 높은 데 오르거나 혹은 나무에 오르다가 떨어져 몸을 다치는데, 남은 업 때문에 그런 과보를 받는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항상 사람의 틈을 타고 그 단점을 엿보아 찾으며 어린애를 죽이는 아귀들을 관찰한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태어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안다. 즉 그 중생은 전생에 어떤 악인에게 자기 어린애를 죽이자 크게 성을 내어 곧 맹세하였다.


'나는 후생에 야차가 되어 갚음으로 저 아들을 죽이리라.'


그 악인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길에 떨어지되 치타라(蚩陀羅)라는 아귀의 몸을 받아 항상 원수를 생각하고 성을 내어 독을 머금고, 아이를 낳는 여자들을 찾아다니다가 어린애의 틈을 엿보아 그 목숨을 끊는다.


그 아귀는 세력이 있고 신통이 자재하여 피 냄새만 맡으면 잠깐 사이에 백천 유순을 가며, 여자가 어린애를 낳으면 미세한 몸으로 그 틈을 찾되 성내는 마음으로 항상 그 틈을 찾아 여러 곳으로 쫓아다니면서 어린애를 죽이려고 그 해칠 틈을 찾는다.


이렇게 그 아귀는 온갖 곳으로 두루 다니면서 어린애의 틈을 구하고 그 인연을 찾다가, 그 어머니가 허물을 범하여 아기를 기르는 법을 잃으면 그 아기의 틈을 얻으며, 혹은 깨끗하지 못하고 더러운 것도 그 아귀에게 틈을 준다. 즉 창 틈을 엿보거나 문 안의 대소변이 있는 곳이나 더러운 물가나 주문 가운데서 단점을 찾고 그 사람의 꺼리는 바를 찾는다.


혹은 화상이나 옷이 부정하거나 혹은 불·물·땅·칼이나 혹은 행복을 구하거나 높은 바위에 오르거나 높은 누각에 오르면, 아래위로 그 틈을 찾는다. 이렇게 갖가지로 항상 그 틈을 찾으면서 원한의 마음을 버리지 않는 것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다.


만일 그 틈을 얻으면 곧 어린애를 죽이고, 그 틈을 얻지 못하면 10년 동안 갖가지로 그 틈을 찾으면서 여전히 죽일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 이렇게 나쁜 생각이 그 마음을 결박하여 굶주리고 목마름이 몸을 태우면 죽이지 못하더라도 그 틈만 얻으면 곧 그 목숨을 끊는다. 만일 그 어린애에게 강한 선업이 있거나 혹은 선한 신의 보호를 받으면 그를 죽이지 못한다.


그 귀신이 성내는 마음 그대로 거기서 목숨을 마치면 업을 따라 흘러 다니며 생사의 고통을 받지마는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렵기는 마치 바다의 눈먼 거북이 떠도는 나무의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으며, 혹 인간에 태어나더라도 전생의 업인 분노의 습관으로 원수 맺음의 결박을 받아 아무 인연이 없는 곳도 모두 원수와 같이 보여 갖가지 방편으로 그 단점을 찾는데, 남은 업 때문에 그런 과보를 받는다."


4. 아귀품 ②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써 가마(迦摩)[가마는 위나라 말로 욕색(欲色)이다.]라는 아귀를 관찰한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써 안다. 즉 그 중생은 남자나 여자나 혹은 고자로서 갖가지 옷을 입고 스스로 장식하되, 혹은 여자의 옷을 입고 음녀의 법을 행하므로 만일 누구나 정욕이 발동하여 그와 음행하면, 그 일로 인해 재물을 얻었으나 범부에게 그것을 주고, 복밭이 아닌 곳에 더러운 마음으로 보시하면, 그는 그 인연으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색(色)을 좋아하는 아귀들 속에 태어난다.


그 아귀의 몸을 받은 뒤에는 갖가지로 장식하면 그것은 다 생각을 따라 마음대로 된다. 즉 좋은 것을 원하면 아름답고, 나쁜 것을 원하면 추하게 되며, 좋거나 좋지 않은 것이 되려고 하면 모두 그대로 된다. 남자가 되면 얼굴이 단정하고 여자가 되면 자태가 미묘하며, 혹은 축생이 되더라도 그 모양이 뛰어나다.


이렇게 갖가지 묘한 장엄으로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음식을 얻으면 잘 먹고 근심이 없으며, 조금이나마 보시를 행하였기 때문에 능히 미세한 몸이 되어 가만히 남의 집에 들어가 음식을 구한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은 '비사사(毘舍闍) 아귀가 우리 음식을 훔쳐 먹었다'고 한다.


혹은 사람의 몸이 되어 남의 명절 모임에 들고, 혹은 새의 몸이 되어 남의 제사 밥을 먹지마는, 그 몸이 미세하여 아무도 보지 못한다.


이렇게 그 아귀는 뜻대로 갖가지 형상을 나타내므로 세상 사람들은 뜻대로의 야차[如意夜叉]라 부른다. 혹은 여자의 몸이 되어 사람과 음행하며 이렇게 갖가지로 장식하여 사람들을 속이면서 세상에 다닌다.


귀신의 세계에 있으면서 내지 악업이 다하지 않고 무너지거나 썩지도 않았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업이 다하면 거기서 벗어날 수 있으나 그로부터 목숨을 마치면 업을 따라 생사의 고통을 받지마는,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렵기는 마치 바다 속의 눈먼 거북이가 떠도는 나무의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으며, 혹 사람으로 태어나면 광대가 되어 갖가지 옷을 입고 마음대로 유희하면서 생활하기를 구하고, 자기 아내로 하여금 남의 일을 시켜 재물을 구하는데 남은 업 때문에 그런 과보를 받는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바닷가의 아귀들을 관찰한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태어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안다. 즉 그 중생은 전생에 어떤 길 가는 사람이 광야를 지나가려 하는데 병으로 고통하며 극히 피로한 것을 보고는 그 사람에게 많은 삯을 받고 적은 일을 해 주며, 나쁜 탐욕 때문에 교묘한 말로 쓸쓸한 광야로 멀리 가는 사람을 속이면 그 인연으로 바닷가에 태어난다.


그 바닷가에는 나무도 못도 강도 없고 그곳은 매우 더우므로 겨울에도 맹렬하게 더워 인간의 여름의 더위에 비하여도 열 배나 더하며, 오직 아침의 이슬로 목숨이 살아 간다.


비록 바닷가에 산다 하지마는 물을 얻을 수 없고, 악업 때문에 바다가 마르는 것을 보며, 숲을 보더라도 그것은 모두 맹렬히 타면서 큰 불꽃이 일어나므로 희망이 끊어지고 갖은 나쁜 일이 모여 편안하지 않으며, 굶주리고 목마름에 몸을 태워 신음하고 슬피 괴로워하며, 자기 마음에 속아서 이리저리 달리면서 슬픈 소리로 울부짖지마는 구원하거나 보호하는 이가 없고 의지하거나 믿을 곳도 없다.


머리털은 쑥대궁이처럼 어지럽고 몸은 여위어 모든 핏줄은 드러나 마치 그 물과 같으며, 가는 곳은 모두 비어 구원하거나 보호할 이가 없고 의지하거나 믿을 곳이 없다. 그러나 악업이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게는 하지 않는다. 업이 다하면 벗어날 수 있으나 거기서 목숨을 마치면 업을 따라 흘러다니면서 생사의 고통을 받지마는,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렵기는 마치 바다 속의 눈먼 거북이가 떠도는 나무의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혹 인간에 태어나더라도 섬에 태어나서, 외발이거나 혹은 발이 짧으며 먹는 물의 곤란을 당하는데, 남은 업 때문에 그런 과보를 받는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염마라의 막대기를 잡은[閻羅執杖] 아귀들을 관찰한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태어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안다. 즉 그 중생은 인색과 질투 때문에 스스로 그 마음을 부수어 국왕·대신이나 호귀한 사람들을 친하여 오로지 포악한 짓을 행하고, 인자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없으며, 바른 도리를 행하지 않아 어질고 착한 사람의 업신여김과 비방을 받는다.


그런 나쁜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염마라왕의 막대기를 잡은 귀신의 몸을 받아 귀신의 세계에서 염마라왕을 위해 쫓아 다니는 심부름꾼이 된다. 어떤 중생으로서 온갖 나쁜 업을 지을 때에는 염마라왕은 그 귀신을 시켜 그 사람의 정신(情神)을 기록하게 한다.


그 귀신은 몸이 추악하여 두렵고 손에는 칼과 막대기를 들었으며 머리털은 쑥대궁이처럼 어지러워 흐트러진 머리털은 몸을 덮고 긴 입술은 밑으로 처졌으며, 귀는 처지고 배는 크며 높은 소리로 크게 외쳐 모든 귀신을 두려워하게 하고 손에는 날카로운 칼을 잡고 죄인들을 겨누며, 죄인의 손을 뒤로 틀어 잡아 노끈으로 묶고 왕에게 끌고 가서 아뢴다.


'나는 인간세상에서 이 죄인을 잡아 여기 끌고 왔습니다. 대왕이여, 이 사람은 전생에서 좋지 않은 업을 지었습니다. 즉 몸의 업도 좋지 못하고 입과 뜻의 업도 좋지 못했습니다. 원컨대 왕은 꾸짖으소서.'


이 때에 염마라왕은 곧 다음 게송으로 그를 꾸짖는다.

너는 바로 인간의 우치한 무리로서 갖가지의 악업으로 스스로를 꾸몄다. 너는 본래 어찌하여 선행을 닦지 않았던가 마치 보배의 섬을 헛되이 지난 것 같다.

좋은 업의 인연으로 즐거운 과보 얻고 즐거운 과보의 인연으로 착한 마음 생긴다. 일체의 법은 마음 따라 구르나니 흘러 도는 생사는 언제나 끊이지 않네.

일체의 모든 행은 모두 덧없어 마치 물거품이 견고하지 않은 것 같다. 만일 능히 이렇게 바른 법을 닦으면 그는 오는 세상에 훌륭한 과보 얻으리.

만일 누구나 항상 좋은 업 닦고 일체의 나쁜 업을 버려 떠나면 그는 내 있는 여기에 오지 않고 층계를 타고 올라 하늘 과보 받으리라.

누구나 우치하여 깨달음 없고 나쁜 업을 즐기면 나 있는 곳에 온다. 나쁘고 좋지 않은 업을 버리면 그 사람은 가장 좋은 길을 가리라.

만일 이 세상의 온갖 업의 과보 보고 또 저 천상의 갖가지 즐거움을 보고도 그래도 그와 같은 방일한 마음을 일으키면 그는 자기 몸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 수 없으리.

누구를 이롭게 하기 위해 나쁜 업을 지어 몸과 입과 뜻의 모두를 마음대로 놀렸던가. 그런 사람의 행은 각기 다르기 때문에 너는 지금 그 업의 갚음으로 나 있는 곳에 왔다.

너는 갖가지의 나쁜 업에 속아서 결정코 험난한 길을 간다. 만일 누구나 즐겨 나쁜 업을 지으면 장래에 사람의 몸을 얻기 매우 어려우리라.

만일 누구나 온갖 악을 멀리 떠나고 기꺼이 좋은 업 행해 마음으로 즐기면 그는 현세에서 언제나 안락하고 반드시 해탈 열반의 과를 얻으리라.

만일 중생으로서 착한 행을 익히면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날 것이요, 누구나 좋지 않은 업을 익혀 배우면 그것은 모든 세상의 가장 큰 죄악이다.

누구나 지혜 있어 선을 행하면 처음·중간·나중의 나쁜 법을 떠나고 만일 온갖 나쁜 업을 지어 익히면 그는 지옥에 들어 괴로운 과보 받으리.

좋은 법으로 모든 감관 잘 다루면 이 세상의 깨끗하고 훌륭한 법을 얻을 것이요, 그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날 때에는 위로 천궁(天宮)에 나서 쾌락을 받으리라.

업이 너를 결박한 것은 매우 튼튼하나니 그것은 염라왕의 사자가 가진 것으로 온갖 나쁜 두려운 그 길로 보내나니 염라왕의 세계는 매우 괴로운 곳이니라.

너는 전생에 온갖 악업 지었거니 그 업을 지금에 도로 받는다. 자기가 지어 자기가 받고 남 때문 아니다. 만일 남이 지었다면 너의 갚음 아니다.

이렇게 염마라왕이 그 죄인을 꾸짖은 뒤에 사자는 그를 끌고 나간다. 그 죄인은 스스로 악업을 짓고 그 업에 스스로 속았기 때문에, 그를 끌고 나가 갖가지 고통을 받게 하면서 혹독하게 그를 다스리므로, 굶주리고 목마름의 핍박을 받지마는 다만 바람 기운만 먹고, 악업이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게 하지는 않는다.


거기서 벗어나면 업을 따라 흘러 다니면서 생사의 고통을 받고, 혹 인간에 태어나면 변방의 수자리 사는 곳이나 깊은 강·험한 언덕 등의 위험하고 두려운 곳에 있으면서 길 따라 여행하는 사람들의 길잡이가 되는데, 남은 업 때문에 그런 죄의 과보를 받는다.


그 수행하는 사람은 다시 안으로 법을 관찰한다. 비구는 어떻게 5지(地)를 관찰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의 밝은 눈으로 열 가지의 색입(色入)을 관찰한다.


열 가지란, 첫째는 안입(眼入)이요 둘째는 색입(色入)이며 셋째는 이입(耳入)이요 넷째는 성입(聲入)이며, 다섯째는 비입(鼻入)이요 여섯째는 향입(香入)이며, 일곱째는 설입(舌入)이요 여덟째는 미입(味入)이며, 아홉째는 신입(身入)이요 열째는 촉입(觸入)이다.


비구여, 눈은 어떻게 빛깔과 모양을 반연하는가? 비구는 관찰한다. 즉 눈은 빛깔을 반연하여 의식을 내고, 그 세 가지 법이 화합하여 촉(觸)을 낸다. 촉은 수(受)·상(想)·사(思)·식(識)과 함께 하는 것으로서 닿임의 모양이란 촉이요 깨달음의 모양이란 수(受)이며, 앎의 모양이란 상(想)이요 길고 짧음과 사랑스럽고 사랑스럽지 않은 것 같은 것들이 현재에 서로 대등한 것을 보는 것은 사(思)이지마는, 의식(意識)은 하나의 인연을 알아 각각의 모양이 있다.


그 각각의 자체가 있는 것은 열 가지 대지법(大地法)과 같다. 열 가지란 첫째는 수(受)요 둘째는 상(想)이며, 셋째는 사(思)요 넷째는 촉(觸)이며, 다섯째는 작의(作意)요 여섯째는 욕(欲)이며, 일곱째는 해탈(解脫)이요 여덟째는 염(念)이며, 아홉째는 삼매(三昧)요 열째는 혜(慧)이다.


하나를 반연하여 각각의 모양이 있고 의식 등의 열한 가지 법도 그와 같다. 마치 햇빛이 한번 나면 여러 빛의 자체가 각기 다른 것과 같고, 의식의 자체가 다른 것처럼 사(思)도 그와 같다.


그 비구는 색입(色入)을 여실히 알고, 눈은 공하여 아무 것도 없으며 견고한 것도 없고 실체도 없음을 관찰한다. 비구는 이렇게 여실히 도를 알고는 삿된 소견을 떠나 바른 소견을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그 눈은 어리석음의 번뇌를 떠난다.


진실로 그 눈을 볼 때 그것은 다만 살덩이로서 우치하여 아는 것이 없고, 그것은 다만 눈물의 구멍임을 여실히 안 뒤에는 욕심을 떠난다. 눈이 무상한 것임을 관찰하여 무상한 것임을 알면 그것은 다만 살덩이로서 구멍 안에 있는 것이다.


그 눈을 여실히 알 때 그것은 힘줄과 핏줄이 얽혀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여러 가지 인연이 화합하여 안입(眼入)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눈이란 보는 것도 없고 나도 없으며, 알음알이도 없고 내지 고통도 그와 같다. 안입을 관찰하고는 욕심을 떠난다.
그 비구는 여실히 안입을 관찰하고 다시 분별하여 색(色)을 관찰한다. 그 색이란 사랑스럽거나 사랑스럽지 않거나 모두 무기(無記)인 것으로서 분별로써 생기는 것이다. 즉 어떤 법을 보고 무엇이 깨끗하며 무엇이 항상 되고 무엇을 탐할 것인가? 그 비구는 생각하고 관찰하여 여실히 색을 안다. 즉 그것은 있는 것도 아니요 즐거운 것도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빛깔과 모양을 관찰하면 그것은 견고한 것도 없고 실체도 없는 것으로서 다만 분별로 생긴 것이다.


사랑스럽거나 사랑스럽지 않은 것은 진실로 있는 것이 아닌데, 모든 중생들은 그 사랑스럽거나 사랑스럽지 않은 것에 대해 허망하게 분별하지마는, 그 색이란 자체가 있는 것도 아니요 항상한 것도 아니며,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진실도 아니며, 즐거운 것도 아니요 무너지지 않는 법도 아니며, 견고한 것도 아니요 나도 아니다. 다만 탐욕·분노·우치가 그 마음을 덮기 때문에 사랑스럽거나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생기는 것이다. 색에는 사랑스럽거나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없지마는 그것은 기억으로 생기는 것이다.


그 비구는 이렇게 색입(色入)을 관찰하고 명색(名色)을 보았기 때문에, 탐하지도 않고 물들지도 않으며, 미혹하지도 않고 취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색이란 견고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 비구는 이렇게 눈을 관찰하고 색입을 관찰하고는 눈의 알음알이에도 집착하지 않고 더러운 욕심에서 떠난다. 그리하여 눈의 알음알이도 나가 아니요, 나도 눈의 알음알이가 아니며, 촉·수·상·사 또한 그와 같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써 어린애를 먹는 아귀들을 관찰한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써 안다. 즉 그 중생은 나쁜 술법으로 용에게 축원하여 우박의 재앙을 없앤다하여 병자를 속이고, 야차에 축원한다 하여 남의 재물을 취하며 혹은 염소를 죽인다.


그런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활지옥에 떨어져 한량없는 고통을 받고, 그 지옥에서 나와서는 바라바차(婆羅婆叉)라는 아귀 속에 태어난다.


또 어떤 중생은 살생한 남은 과보로 인간에 태어나서 이 아귀가 되어 아이를 훔쳐 먹고 혹은 아기를 낳는 여자가 사는 곳에 가서, 그 아이가 기어다닐 때나 혹은 처음으로 걸을 때에 그 아이를 취한다.


이와 같이 그 아귀는 어린애들을 훔쳐 차례로 먹고, 만일 그 틈만 얻으면 곧 그 목숨을 끊는다. 그러나 죽일 업이 없으면 해치지 못한다.


그는 게송을 읊는다.

나쁜 업에 묶이면 나쁜 과보를 받고 좋은 업을 행하면 즐거운 과보 받는다. 길고 튼튼한 업의 노끈 사람 결박하나니 중생들 묶어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안온한 열반의 성(城) 얻지 못하고 삼계에 흘러다니며 온갖 고통 받지만 능히 지혜의 칼로 이 업을 베면 반드시 뜨거운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

업의 노끈을 끊어 결박 없애면 함이 없는 고요한 곳에 가리니 고기가 그물에 들어 사람에게 끌리는 것처럼 애욕의 결박이 중생을 죽이는 것 그와 같아라.

만일 사람이 독한 화살로 들사슴을 맞히면 그 사슴은 미친 듯 날뛰며 이리저리 달리지만 독약이 이미 퍼지면 벗어나지 못하나니 중생을 묶는 애욕의 결박도 그와 같아라.

언제나 중생을 따르면서 놓아 주지 않는 그 애욕을 독처럼 보고 멀리 떠나야 한다. 우치한 범부들이 애욕에 불살리는 것 마치 큰 불에 타는 마른 섶나무 같다.

그 애욕에 처음으로 물들 때는 깨닫기 어려워도 그 갚음을 받으면 불에 스스로 타는 것 같다. 만일 언제나 즐겁고 마음이 안온하려 하거든 애욕의 결박 버리고 온갖 집착 떠나야 한다.

낚시를 삼킨 고기의 목숨이 오래지 못한 것처럼 사람을 묶는 애욕의 결박도 그와 같아서 중생을 결박하여 나쁜 세계로 가되 아귀에 떨어져 굶주리고 목마름의 핍박 받는다.

아귀 세계의 온갖 고뇌를 피해 이리저리 분주히 돌아다니며 지옥의 세계에서 고통을 받는 것은 모두 애욕에 결박된 인연 때문이니라.

혹은 빈궁하고 병으로 괴로워하는 사람 아침 밥을 구해 얻어 겨우 살아 가는 것도 다 애욕에 결박된 인연으로 그런 고통 받나니, 성인의 말씀이다.

이렇게 모든 탐욕과 질투의 인연의 과보를 자세히 관찰하고, 생사에 대한 싫증이 생겨 온갖 욕심을 모두 버린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사람의 정기(精氣)를 먹는 아귀들을 관찰한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태어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써 안다. 즉 그 중생은 전생에 교묘한 말로 사람을 속이되 거짓으로 친구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를 보호해 주리라' 하면, 그 친구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을 채찍질하며 용기를 낸다.


그 때에 그는 그 사람을 시켜 적진에 들어가게 한 뒤에 그를 죽이려고 그만 버리고 떠나 끝내 구원하지 않고 왕에게 가서 재물을 얻으려 한다. 그리하여 그 속은 사람은 적진에 빠져 죽는다.


그는 이런 좋지 못한 인연으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사람의 정기를 먹는 아귀 속에 떨어져, 큰 굶주림과 목마름을 받으면서 스스로 그 몸을 태우며, 칼은 그 몸을 베어 가죽과 살은 끊어지고 하늘에서 칼이 내려 사방으로 달려도 피할 곳이 없다.


혹 어떤 사람이 악을 행하고 신심이 없어 3보를 받들지 않는 것을 보면, 곧 그 틈을 타 그 몸 속에 들어가서 그 정기를 먹고 살아가려 하지마는 그것을 구하기는 매우 어려워 조금도 얻지 못하고, 10년이나 혹은 20년을 지나서야 비로소 한 번의 기회를 얻는다. 그러므로 항상 굶주리고 목마름에 고민하는데, 자기가 지은 악업을 도로 받으므로 그 악업이 다하지 않으면 그 때문에 죽지도 않는다.


그리하여 악업이 다하지 않고 없어지거나 섞지 않으면 그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악업이 다하면 벗어날 수 있으나 그로부터 목숨을 마치고 인간에 태어나면, 항상 하늘에 제사하는 사당을 지키면서 빈궁하고 곤액하여 자유롭지 못하고 제사의 남은 음식을 먹는데 남은 업 때문에 남을 의지해 살아간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범나찰(梵羅刹)이라는 아귀를 본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태어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안다. 즉 그 중생은 전생에 생명을 죽여 큰 모임을 열고 그것을 드문 일이라 하며, 음식을 팔되 조금 주고 비싸게 받으면서 탐욕과 질투에 파괴된다.


그런 중생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아귀 속에 떨어져 이름을 바라문나찰아귀라 한다. 그는 굶주리고 목마름의 불에 그 몸을 태우고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사람의 형상을 나타내어 중생을 죽이며, 혹은 빈 골목이나 거리나 네거리에 살면서 사람들의 틈을 엿보고, 바라문들이 생물을 죽여 모임을 열면 흔히 그 속에 태어나며, 혹은 자기 몸을 숨기고 사람을 죽이며, 혹은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가 그 목숨을 끊는다.


주술하는 사람은 말한다.


'귀신이 사람의 몸에 붙어 그 몸 속에 들어가면, 그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고 미치고 미혹하여 아무것도 모르게 한다.'


이런 악업에 또 항상 온갖 악을 지으므로, 굶주리고 목마름에 몸을 태우고 큰 고뇌를 받으면서 아귀의 세계에 산다. 그러나 악업이 다하지 않고 무너지거나 썩지 않으면 그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업이 다하여 목숨을 마치고 남은 업의 인연으로 인간에 태어나면, 항상 사람의 살을 먹고 혹은 사람의 피를 마시는데 남은 업 때문에 그런 과보를 받는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화로 안에서 먹는 아귀들을 관찰한다.


어떤 업으로 그곳에 태어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안다. 즉 그 중생은 좋은 벗을 멀리 떠나고 탐욕과 질투가 마음을 덮어 승가의 음식을 먹기를 좋아한다.


그런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지옥에 떨어져 한량없는 고통을 받고, 지옥에서 나오면 군다(君茶)라는 아귀 속에 태어난다.


거기에 태어난 뒤에는 굶주리고 목마름에 몸을 태우되 불이 숲을 태우는 것 같으므로 두루 달리면서 음식을 구한다. 그리하여 자기 업에 속아서 절에 들어가 타다 남은 음식을 불타는 채로 먹고는 마음으로 항상 화로의 남은 음식을 생각하면서, 굶주리고 목마름에 몸을 태운다. 이렇게 두 가지 불이 함께 일어나므로 신음하고 외치며 온갖 악업을 지어 결정코 성숙한다.


그리하여 악업이 다하지 않으면 거기서 벗어날 수 없고 업이 다하면 벗어날 수 있으나, 남은 업의 인연으로 인간에 태어나면 빈궁하고 병이 많으며, 가는 곳마다 불에 타고 또 들불에 타는데, 남은 업의 인연으로 그런 과보를 받는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관찰한다. 즉 질투를 많이 행하고 여러 가지 업을 익혀 그 업을 완전히 이루면, 아귀의 세계에 떨어져 더러운 거리에 난다.


어떤 업으로 그곳에 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본다. 즉 그 중생은 인색과 질투가 마음을 덮어 범행이 청정한 사람에게 부정한 음식을 준다. 그 인연으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더러운 라타(囉他)라는 아귀 속에 태어나서 낮에는 사람이 그것을 볼 수 없으나 사람이 밤에 다니면 그것을 많이 본다.


도시나 촌락의 여러 사람이 모인 곳이나, 혹은 광야나 군인이 다니는 뒷간의 으슥하고 더러운 곳이나, 구더기가 가득 차고 냄새 나는 더러운 곳에 사는데, 누구나 그를 보면 사나워서 보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구토를 하고 지나가는데 그 아귀는 거기에 태어난다. 그것은 전생에 더러운 음식을 스님들에게 주었기 때문이니, 그 인연으로 부정한 곳에 태어나서 큰 고뇌를 받는 것이다.


비록 거기에 있으면서 항상 얻어 먹지 못할 뿐 아니라, 여러 나쁜 귀신들은 손에 날카로운 칼을 가졌는데 칼날에서는 불꽃을 내고 곁에서 지키고 있다. 언제나 굶주리고 목마름에 고민하면서도 한 달이나 반달에야 비로소 한 번 먹는데 그래도 배는 부르지 못하고, 혹 배가 부르더라도 똥을 지키는 귀신들이 세게 때려 토하게 한다.


굶주리고 목마름이 몸을 태우므로 그는 신음하고 슬피 부르짖으며, 이리저리 달리면서 근심하고 괴로워하며 슬피 운다. 그리하여 그는 다음 게송으로 말한다.

종자가 좋지 않은 인연 때문에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나쁜 과보 받나니 인과의 성질과 모양은 서로 같아서 악업의 인연으로 괴로운 과보 받는다.

나쁜 업의 갈고리에 끌린 바 되어 낚시 삼킨 고기처럼 나쁜 길에 드나니 낚시 삼킨 고기는 벗어날 수 있으나 나쁜 업에 끌린 사람 면할 길 없다.

나쁜 업은 큰 힘으로 중생을 이끌어서 나쁜 업의 노끈에 결박 당하여 아귀들 세계 속에 끌려 왔나니 기갈의 큰 고통을 모두 받는다.

아귀들의 굶주리고 목마르는 고통은 불보다 칼보다 독약보다 심하나니 이렇게 이 기갈은 그 힘이 세어 한량없이 중생들을 괴롭게 한다.

한 생각 사이에도 쉴 수가 없이 밤 낮으로 그 고통은 떠나지 않고 그리하여 조그만 즐거움도 없이 언제나 가지가지 고통을 받는다.

괴로운 업을 지은 인연 때문에 나쁜 길에 태어나서 괴로운 과보 받는데 이 괴로운 과보는 벗어나기 어렵거니 언제나 편안함과 즐거움을 얻으리.

보이는 샘에는 아무 데도 물이 없고 일체 웅덩이도 모두 말랐거니 이리저리 달리면서 물을 구해도 찾아가는 강에서는 물을 볼 수 없어라.

내가 가는 곳마다 물을 구하여 산이며 넓은 들을 모두 다니면서 가는 곳마다 물 마시기 바랐지만 조금의 물도 구해 얻지 못했다.

굶주리고 목마르는 불은 내 몸을 태우건만 돌아갈 곳도 없고 구원할 이도 없이 큰 고통을 받는다.

이렇게 아귀는 자기 업에 속아서 신음하고 슬퍼 외치지마는 내지 악업이 다하지 않으면 그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과보가 다하여 목숨을 마치더라도 남은 업 때문에 인간에 태어나서는 음녀들의 몸을 받고, 혹 남자가 되더라도 똥 치는 집에 태어나서 여자의 옷을 입고 여자의 법을 행하는데 그것은 남은 업 때문이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어떤 업으로 바람을 먹는 아귀들 속에 태어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안다. 즉 그 중생은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빈궁하고 병든 사람이 와서 구걸하는 것을 보고 음식을 주려고 허락하였다가, 그가 왔을 때에는 끝내 주지 않으므로 그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빈궁하고 병든 사람으로 하여금 굶주리고 목말라 찬바람에 다친 것같이 하면, 거짓말한 그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바이바차(婆移婆叉)라는 아귀들 속에 태어난다.


그가 아귀의 몸을 받은 뒤에는 굶주리고 목마른 고통이 활지옥과 다름이 없으므로 사방으로 달리지마는, 희망이 없고 구호할 이가 없으며 의지하거나 믿을 곳이 없고 자기 마음에 속아서 마침 먼 숲 속이나 절에 음식이 있는 것을 보고 그리로 달려간다. 몸은 몹시 피로하고 굶주리고 목마름은 보통 때 보다 갑절이나 심하므로, 입을 벌리고 음식을 찾으면 입으로 들어가는 바람을 음식으로 삼는다. 그러나 악업의 인연으로 죽지는 않는다.


악업을 몸에 가졌으므로 허망하게 음식을 보는 것은, 마치 목마른 사슴이 아지랑이를 볼 때 그것을 물이라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서 돌리는 불바퀴와 같다. 전생에 사람을 속여서 주겠다고 허락 하고도 주지 않았으므로 그 과보 때문에 다만 눈으로 음식을 보기만 하고 얻지는 못하는 것이다.

'인과 과는 서로 같다'는 성인의 말씀으로서 좋은 원인은 곧 좋은 결과 성취한다. 좋은 원인은 나쁜 결과 받지 않고 나쁜 원인은 좋은 과보 받지 못한다.

인과 연은 서로 따라 중생을 결박하고 나고 죽음 서로 이어 쇠사슬 같다. 나고 죽음은 중생들을 모두 얽어매 온갖 세계에 윤회하면서 벗어나지 못한다.

튼튼한 사슬 같은 업의 번뇌 등 그 온갖 결박을 능히 끊으면 그는 고요한 곳에 잘 이르러 일체의 근심 번뇌 아주 끊으리.

그 사람은 이렇게 그 인과 같은 괴로운 과보를 받을 때 자기 마음에 속아서 사방으로 달리면서 항상 바람 기운을 마시고 살아 가되, 내지 악업이 다하지 않고 무너지거나 썩지 않으면 그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업이 다하여 목숨을 마치고 인간에 태어나면 빈궁하고 하천하여 남의 멸시를 당하며, 항상 남들이 방이나 음식·의복 등을 주기로 약속하였다가 주지 않으므로 남이 준다는 말을 들을 때에는 기쁜 마음으로 얻기를 바라지마는 뒤에 가서 얻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근심하고 번민한다.


그리하여 그는 이중의 고통을 받는다. 첫째는 굶주리고 목마름이며, 둘째는 근심과 고민으로서 큰 고통을 받는데 남은 업 때문에 그런 과보를 받는다.

 

그는 게송을 읊는다.

그런 중생은 악업에 훈습되어 가지가지의 온갖 고통 받는다. 똥에 훈습된 것처럼 더러운 것이거니 그러므로 나쁜 업은 버려야 한다.

좋은 법에 훈습된 것 가장 뛰어나므로 나쁜 길의 고통을 길이 떠나게 한다. 첨복화(瞻蔔花)에 스며있는 향유(香油)처럼 꽃은 비록 없어지나 향유는 있다.

다시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숯불을 먹는 아귀들을 관찰한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태어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안다. 즉 그 중생은 감옥지기로서 탐욕과 질투가 마음을 덮어 중생을 때려 묶고는 음식을 금하여 그를 굶주리고 목마르게 하므로, 그는 진흙을 먹으면서 목숨을 이어간다.


그 감옥지기는 그 인연으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불을 먹는 아귀들 속에 떨어진다.


그리하여 항상 무덤 사이에 살면서 송장을 태운 불을 먹는데 그래도 만족하지 못한다. 그런 악업을 지을 때에는 즐거웠지마는 받는 과보는 극히 괴로우므로 마음은 즐겁지 않다. 그것은 더럽고 미운 것으로서 사랑하는 독의 세력의 인연이 화합하여 불을 먹는 아귀의 몸을 받는 것이다. 그리하여 불을 얻어 먹으면 굶주리는 고통을 조금 면할 수 있는데, 그것은 사람이 물로 세상의 불을 끄는 것과 같다.


그 비구는 이렇게 관찰하고 세상의 애욕에 대해 아주 싫증을 내어 그것과 어울리기를 즐기지 않고 이렇게 생각한다.


'우치한 범부들은 애욕의 지배를 받아 자유를 얻지 못하고 불을 먹으면서 굶주림을 면하는 것은 비유할 방법이 없다.'


아귀의 몸을 받아 내지 악업이 다하지도 않고 무너지지도 않으면 그 때문에 거기서 벗어날 수 없고, 업이 다하여 목숨을 마치고 인간에 태어나면, 항상 변방의 굶주리는 곳에 태어나서 먹는 것이 추악하여 맛이 없으며, 짠맛을 알지 못하는데, 남은 업 때문에 그런 과보를 받는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독을 먹는 아귀들을 관찰한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태어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안다. 즉 그 중생은 탐욕과 질투가 마음을 덮어 남에게 독을 먹여 그 목숨을 잃게 한 뒤에 그 재물을 취한다. 그런 악한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활지옥에 떨어져 온갖 고통을 모두 받고, 그 지옥에서 나와서는 독을 먹는 아귀들 속에 태어난다.

그리하여 민타산(民陀山)의 굴 속이나 파리야다(波梨耶多)의 깊고 험한 산 속이나 빙산의 극히 찬 곳이나 혹은 마라야산(摩羅耶山)의 매우 험난하고 독이 많은 산에 태어나서 사는데, 거기는 물이 없고 독약이 많으며, 추우면 얼음이 얼고 더우면 독이 왕성하며, 매우 두려운 무더기 돌·높은 바위·사자와 호랑이가 사는 곳에 태어난다. 추운 고통의 심한 고민은 남보다 백 배나 더하고 여름날의 뜨거운 고통도 남보다 백 배나 더하다.


한여름에는 닷새 동안 공중에서 불을 내려 그 몸을 태우고 한겨울의 추위가 닥치면 닷새 동안 허공에서 칼을 내리는데, 악업 때문에 공중에서 불을 내리고 또 칼을 내리는 것이다.


그들은 험난한 곳에 살면서 굶주리고 목마르는 불이 그 몸을 태우므로, 부르짖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며 독약을 스스로 먹는데 먹으면 곧 죽지마는, 악업이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곧 다시 살아나고 살아나면 굶주리고 목마름이 먼저보다 배나 더하다. 그리하여 외치고 슬퍼하면 날카로운 부리를 가진 새가 와서 눈을 쪼므로 큰 고통을 받으면서 소리를 내어 크게 외치며, 새가 쪼아 먹으면 눈은 다시 생긴다.


이렇게 고통을 받되 내지 악업이 다하지 않고 무너지거나 썩지 않으면 그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업이 다하여 목숨을 마치고 인간에 태어나면 네거리에서 살아가되 악업의 훈습 때문에 독약으로 남을 해치다가, 도로 활지옥 등의 큰 지옥에 떨어지는데 그것은 남은 업 때문이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광야에 사는 아귀들을 관찰한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태어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그 중생을 안다. 즉 전생에 물이 없는 광야의 험난한 곳에 햇빛이 불꽃처럼 뜨거우므로, 복을 구하는 어떤 사람이 나무를 심고 못을 만들어 길 가는 사람들에게 보시할 때에, 어떤 도적 떼들이 그 못물을 끊어 길 가는 사람으로 하여금 매우 피로하고 목말라 기력을 약하게 하고, 그를 겁탈하여 그 재물을 빼앗고도 질투가 마음을 덮어 보시하지 않으면, 그런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아타비(阿毘)라는 아귀들 속에 태어난다.


그리하여 큰 불이 그 몸을 태우는 것은 마치 불로 나무를 태우는 것과 같고, 햇빛이 불꽃처럼 내리 쪼이므로 광야로 내달아 부르짖으면서 물과 음식을 구하고 동정을 구하며 스스로 살아간다.


그런 아귀는 악업 때문에 멀리서 아지랑이를 보고는, 그것을 맑은 물이 고요히 담겨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빨리 달려가 그 물을 마시려 한다. 그러나 심한 피로는 헤아릴 수 없고 가는 곳에서는 다만 물이 없는 빈 땅만 본다. 왜냐 하면 아지랑이는 원래 물이 없는 성질인데 어떻게 물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 귀신은 매우 두려워하여 광야로 달리면 가시의 모진 바늘은 두 발을 찔러 뚫고, 피로는 극도에 이르러 물을 바라면서 기절하여 땅에 쓰러지지마는, 악업의 힘 때문에 죽었다가는 다시 살아나 굶주리고 목마른 고민은 먼저보다 열 배나 더하다.


땅에서 미처 일어나기 전에 솔개·독수리 따위의 새들이 와서 그 눈을 다투어 쪼고 그 몸의 살을 먹되, 쪼개고 찢어 그 몸의 뼈를 부수어 흩으면 세 가지 고통이 한꺼번에 닥쳐 큰 고통을 받지마는, 돌아갈 곳도 없고 구원할 이도 없으므로, 서로 슬피 알리면서 다음 게송으로 말한다.

솔개·독수리 등의 나쁜 새들이 금강의 날카로운 부리로 내 몸을 쪼고 움켜잡아 찢고 부수어 완전한 곳 없나니 이렇게 온갖 고통 받아도 구호해 줄 이 없다.

온갖 악업은 그림자같이 몸을 떠나지 않아 옛날의 악업 그대로 지금 과보 받는다. 나는 옛날에 길 가는 이 해쳤거니 그러므로 지금에 큰 고뇌 받는다.

업의 울타리에 둘러싸이고 업의 그물에 걸려 아무리 보아도 벗어날 만한 곳이 없는데 오직 지은 악업이 모두 부서진 때라야 비로소 이 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구나.

악업은 능히 모든 중생 잡나니 업은 끌어 이 무서운 곳에 이르게 하고 악업은 능히 어디로 가나 따라오나니 그 결과 받을 때 되어 나쁜 업은 익는다.

업에 묶인 중생은 삼계에 노닐면서 끝없이 생사를 거듭하여 쉴 때가 없구나. 만일 선업 행하고 온갖 악을 버리면 그는 곧 이익 없는 온갖 고통 떠나리.

만일 누구나 온갖 악업 즐기지 않고 그것을 불처럼 보아 탐착하지 않으면 그는 이 아귀의 세상에 이르지 않고 굶주리고 목마르는 불에 타지 않으리.

잠깐도 쉬지 않고 항상 늘고 자라나 굶주리고 목마르는 고통은 생각생각 생기나니 온몸에 붙는 불은 산골짝을 비추어 마치 큰 불이 산림을 태우는 것 같구나.

들불이 큰 산림을 태우더라도 큰 용이 비를 내리면 끌 수 있지만 겁의 불이 한 번 일면 바닷물도 마르나니 내 불도 그와 같아 끌 수 없구나.

업의 섶나무 인연으로 이 불이 생겨났고 애욕의 바람에 불려 이 악업의 불은 내 몸을 태우나니 두루두루 둘러싸서 빈 틈 없구나.

계율과 정진과 지혜의 물 등 보시의 병에 그것을 담고 열반한 큰 사람은 그 물을 갖고 삼계의 업의 불을 능히 잘 끈다.

만일 세 가지 업의 부림 받으면 세 가지 그 업으로 흘러다니며 온갖 곳에 태어난다. 그가 나쁜 세 곳을 돌아다니는 것은 그런 세 가지 법에 속했기 때문이다.

서른여섯 가지 그 업에 휘몰리면 마흔 가지 행을 떠나지 못하나니 아흔여덟 가지의 온갖 번뇌 있어서 그런 따위 법으로 삼계를 다닌다.

백 여덟 가지의 밝은 지혜로 열두 가지 깊은 이치 생각하나니 누구나 법과 법이 아님을 능히 안다면 그 사람은 한량없는 즐거움 얻으리라.

만일 누구나 두 가지의 모양 알고 열여섯 가지의 뛰어난 행 생각하면 열여섯 가지의 뛰어난 행 생각한 뒤에는 그는 온갖 나쁜 길 멀리 떠나리.

만일 누구나 두 가지의 도를 볼 수 있으면 그는 네 가지의 법을 완성한 사람이요. 이미 네 가지 흐름의 바다를 건너뛰면 그 사람은 깨달아 아무 고뇌 없으리.

여덟 가지 거룩한 도 잘 수행하고 열 가지 힘의 이치 잘 보아 알며 두 가지의 고통의 인연을 잘 알면 그 사람은 생멸이 없는 곳에 이르리.

만일 누구나 두 가지 진리[二諦]의 이치를 잘 알고 사념처를 잘 생각하며 과거와 미래 세상 잘 관찰하면 그는 악마의 그물 장애 받지 않으리.

나는 그 나쁜 업의 부림을 받아 온갖 좋은 깨끗한 법 멀리 떠나고 이 온갖 아귀의 세계 속에 왔나니 스스로 악업을 짓고 우치에 미혹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 여러 아귀들은 날카로운 근기와 지혜가 있고 또 조그만 선업이 있으므로 본래의 행을 생각하고 계속해 아귀들을 꾸짖는다. 이렇게 아귀들을 꾸짖지마는 그 악업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내지 악업이 다하지 않고 무너지거나 썩지 않으면 그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며, 업이 다하여 목숨을 마치고 인간에 태어나면 항상 험한 산을 다니며, 사슴떼를 쫓는데 그것은 남은 업 때문이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무덤 사이에 사는 아귀들을 관찰한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안다. 즉 그 중생은 탐욕과 질투가 마음을 덮어, 어떤 믿는 사람이 꽃을 가지고 부처님께 보시하는 것을 보고, 그 꽃을 훔쳐다 팔아 자기가 쓴다. 그는 그 악업의 인연으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아귀 속에 떨어지되 무덤 사이에 사는 아귀의 몸을 받는다.


그리하여 굶주리고 목마른 심한 번뇌 때문에 항상 죽은 사람을 태운 뜨거운 재와 흙을 먹는데, 한 달에 한 번 먹거나 혹은 먹지 못할 때도 있다.


머리에는 쇠의 꽃다발을 썼는데 불꽃은 한꺼번에 일어나 얼굴과 두개골이 모두 타서 문드러지고 타면 다시 생긴다. 다음에는 쓰는 쇠의 꽃다발은 목 위를 꿰뚫고 불꽃이 다시 일어 목구멍과 가슴을 태우며, 온몸 안에서 불이 일어 그 몸을 두루 태운다. 그것은 전생에 부처님의 꽃다발을 훔쳤기 때문에 그런 과보를 받는 것이다.


받은 몸은 추악하고 몸에서는 불이 일며 온갖 벌레가 뜯어 먹는다. 또 어떤 나찰은 거기 와서 몽둥이로 때리고 칼로 그 몸을 벤다. 그는 고통이 심해 부르짖으며 세 가지 고통을 받는다. 세 가지란 첫째는 굶주리고 목마름이며 둘째는 쇠의 꽃다발이요, 셋째는 나찰이 몽둥이로 때리고 칼로 베는 것이다.


그는 악업 때문에 이런 고통을 받고 근심하고 슬퍼하고 고민하면서 다음 게송으로 말한다.

나는 굶주리고 목마름의 온갖 고통 받는데 쇠 꽃다발은 몸을 꿰고 불은 맹렬히 타며 칼과 몽둥이로 때리고 베는 것은 셋째 고통으로서 이런 온갖 고통을 모두 받는다.

나는 내 마음의 속임을 받고 온갖 악업과 우치에 미혹 되어 오늘에 이 아귀의 고통 받나니 좋은 벗과 친족들 아주 떠났다.

내 업의 결박의 고통을 구할 이는 벗도 아니요 또 아내도 아니며 남녀 권속들도 아니거니 그 업은 힘이 세어 뺏을 수 없다.

괴로움과 즐거움은 업 때문이요, 남이 지은 것 아니다. 내가 지금 받는 이 세 가지 업은 보시와 계율과 법을 듣고도 닦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우치의 그물에 덮였기 때문에 가지가지의 온갖 악업을 짓고 가장 나쁜 그 업의 인연 때문에 나는 지금 이 큰 고통의 과보 받는다.

만일 지금 내가 이 아귀 세계의 크게 괴로운 곳을 벗어날 수 있다면 이러한 나쁜 업은 미래 세상에 내지 목숨 잃더라도 짓지 않으리.

그 때에 아귀는 이렇게 말한 뒤에 큰 고통에 눌리면서 본래 지은 업을 후회한다. 그리하여 악업이 다하지 않고 무너지거나 썩지 않으면 그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업이 다하여 목숨을 마치고 인간에 태어나면 백정의 집에 떨어져 백정으로서 살생하는 일을 맡아 송장을 지고 다니는데, 남은 업 때문에 그런 과보를 받는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나무 속에 사는 아귀들을 관찰한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태어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안다. 즉 그 중생은 전생에 어떤 사람이 멀리 여행하는 사람과 병으로 곤란한 사람을 위해 복덕의 나무를 심은 것을 보고, 탐하고 질투하는 마음으로 그것을 베어 재목을 취하고, 또 사찰의 나무를 베었으므로 그는 그 나쁜 인연으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비리차(毘利差)라는 아귀들 속에 떨어져 나무 속에 산다.


그리하여 그 악업 때문에 추울 때에는 매우 춥고 더울 때에는 매우 더우므로, 그 핍박에 몸이 눌려 적목충(賊木虫)처럼 큰 고통을 받으며, 몸은 시들어 개미 따위의 벌레들이 그 몸을 뜯어 먹는다. 혹 그 나무에 버리는 음식이 있으면 그것을 먹으면서 스스로 살아간다.


아귀 속에서 온갖 고통을 받되 내지 악업이 다하지 않고 무너지거나 썩지 않으면 그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업이 다하여 목숨을 마치고 인간에 태어나면 항상 약초와 재목·꽃잎 등을 팔아 살아가며, 남의 심부름꾼이 되어 자유를 얻지 못하면서 큰 고통을 받는데 남은 업 때문에 그런 과보를 받는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하고 어떤 아귀가 네거리에 살기 때문에 그것으로 이름을 삼은 것을 본다.


어떤 업으로 그 속에 태어나는가?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안다. 즉 그 중생은 탐욕과 질투가 마음을 부수어, 남의 여행에 쓸 양식을 훔치고는 웃음을 머금고 그를 버리고 떠나므로 그 사람은 양식을 잃고 광야에 가서 큰 굶주림과 목마름을 받는다. 그런 사람은 그 악업으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차다파타(遮多波他)라는 아귀 속에 떨어진다. 그리하여 악업 때문에 자연히 쇠톱이 생겨 그 몸을 끊되 가로 세로 사방으로 뚫으며, 굶주리고 목마름은 몸을 태운다.


세상 사람들은 병이 많기 때문에 네거리에 제사를 차린다. 범부들은 어리석어 인과를 알지 못하고 나쁜 소견으로 네거리에 제사한 뒤에 병이 나으면 그것을 귀신의 은혜라 생각한다. 그 네거리의 아귀는 그 제사 밥으로 목숨을 구제하고 다른 음식은 먹지 못한다.


악업이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지는 않되, 내지 악업이 다하지 않고 무너지거나 썩지 않으면 그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업이 다하여 목숨을 마치고 인간에 태어나면 빈궁하고 하천하며 염소를 잡는 백정의 집에 태어나는데, 남은 업 때문에 그런 과보를 받는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한다. 그는 들어 얻은 지혜로 본다. 즉 중생들은 삿된 도를 행하고 아첨하고 간사하여 악을 지으며 악의 인을 행한다. 그리하여 삿된 소견의 법을 설명하면서 그것을 진리라 말하고 바른 법을 믿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마라(魔羅)의 몸을 가진 아귀 속에 떨어진다.


비구들이 다닐 때나 음식을 먹을 때나 혹은 좌선할 때에 그 마라의 아귀는 마음을 어지럽혀 장애하는 일을 짓는데, 나쁜 소리를 내어 그들을 두렵게 하거나 혹은 나쁜 꿈을 보인다. 그런 아귀는 악마에 포섭되어 바른 법을 미워하고 오로지 포악한 짓을 행한다.


그는 현재에 악업을 지은 인연으로 크고 뜨거운 쇳덩이가 입으로 들어가 지옥 사람과 다름이 없이 뜨거운 쇠를 먹어 삼키면서 큰 고통을 받되 조금도 쉼이 없고, 그 마라가야(魔羅迦耶)의 아귀 속에서 목숨을 마친 뒤에는 지옥에 떨어져 많은 겁 동안 고통을 받되 10겁이나 혹은 20겁을 채운다.


이렇게 결정코 세 가지의 나쁜 세계에 있으면서 불에 타기도 하고, 혹은 몽둥이에 맞으며 남에게 먹히지마는,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렵기는 마치 바다의 거북이 떠도는 나무의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고, 혹 인간에 태어나면 장님이나 벙어리나 귀머거리로 아는 것이 없으며, 온갖 쇠약과 한량없는 병의 고통으로 그 몸을 장식하며 빈궁하고 하천한데 남은 업 때문에 그런 과보를 받는다.


또 그 비구는 그 업의 과보를 알고는 다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하고, 들어 얻은 지혜로 이렇게 대강 말한 아귀의 처소를 관찰하였지마는, 만일 분별하여 설명하면 한량없는 종류의 아귀 권속이 있다. 그들은 바다 가운데 살기도 하고 바닷가에 살기도 하며 염부제에 살기도 하고 구다니에 살기도 하며, 불파제에 살기도 하고 혹은 울단월 등의 큰 세계의 중간의 처소에 사는 것도 있다.


다만 하나의 이름의 문으로 설명하지마는 갖가지 이름의 문이 있다. 즉 나찰이라는 귀신·구반다라는 귀신·비사사라는 귀신들이 있는데 그 귀신들의 미세한 업행도 안다. 즉 각기 어떤 업으로 그곳에 나서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행을 하며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그런 아귀들은 어떤 인연으로 이곳에 태어나는가? 즉 그들은 모두 마음의 원숭이를 항복 받지 못하여 그 행이 다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코끼리의 귀처럼 가만히 있을 때가 없고, 숲에 있는 새가 사람의 화살을 받고서도 울면서 가지로 옮겨 갈 때 한 가지에서 또 다른 가지로 가는 것처럼, 모든 경계를 쉬지 않고 항상 엿보며, 또 마치 큰 바람에 불려 움직이는 티끌들과 같다.


이 마음의 두렵기는 사자와 같고 범이나 표범 같으며 뱀이나 독약 같은데, 그래도 그것들은 항복 받을 수 있지마는 이 마음의 다루기 어렵기는 그것들 보다 더하다. 그 지은 바 업을 따라 그 업과 같은 과보를 받는데, 이 마음은 이렇게 깨달아 알기 어려운 것이다. 이렇게 더러운 마음은 중생을 결박하지마는 만일 그 마음이 청정하면 곧 해탈을 얻는다.


이 마음은 왕과 같고 모든 감관은 그것을 둘러싼 권속이 되어 있다. 마음이 업을 짓고 업의 인연으로 과보가 있으며, 과보의 인연으로 다섯 가지의 길이 있다.


마음은 기관과 같고 모든 감관은 실과 같다. 그러므로 다섯 가지 감관과 그 마음을 잘 다루지 않으면 나쁜 도를 행하고, 그것을 잘 다루면 온갖 선업을 지어 천상이나 인간에 태어나며 나아가서는 움직이지 않는 열반을 증득한다.


그 비구는 이렇게 미세한 마음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법대로 관찰한다. 그렇게 관찰한 뒤에는 생사에 대해 큰 염증을 낸다. 그 비구는 먼저는 지옥의 고통을 관찰하여 생사를 싫어하고, 다음에는 아귀 세상의 갖가지 고통을 관찰하여 괴로움의 진리에 들어갔다. 그러나 괴로움의 진리의 걸림이 없는 행은 얻었지마는 아직 걸림이 없는 도는 증득하지 못하였다.


다시 수행하는 사람은 안으로 법을 관찰하고 그 법을 따라 수행한다. 즉 그 비구는 있는 그대로 업의 과보를 관찰하되, 먼저는 분별하여 지옥을 관찰하고, 다음에는 모든 아귀의 길의 차별을 관찰하여 온갖 생사의 근심의 매우 나쁘고 천한 것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렇게 관찰한 뒤에는 악마의 경계를 떠나고 생사를 싫어해 버리고는, 정진의 힘을 일으켜 열반을 구하여 그것을 원만히 성취하여 15지(地)를 얻었다.


그것을 성취하였을 때에 땅의 신과 야차들은 마음으로 매우 기뻐하여 허공의 야차에게 알리고 허공의 야차는 그것을 듣고 기뻐하여 사대천왕에 알리며, 사천왕은 그것을 듣고 기뻐하여 33천에 알리고 제석의 권속은 그것을 듣고 기뻐하여 야마천에 알리며, 야마천들은 그것을 듣고 기뻐하여 도솔타천에 알리고 도솔타천들은 그것을 듣고 기뻐하여 화락천에 알리며, 화락천들은 그것을 듣고 기뻐하여 타화자재천에 알린다.


이렇게 욕심세계는 차례로 서로 알리므로 그 소리는 계속해 범신천에서 광음천에 이르러 모두 이렇게 말한다.


'염부제 안의 어느 나라·어느 성·어느 마을 어느 읍의 어떤 종성의 어떤 선남자는 수염과 머리를 깎고 믿음으로 집을 떠나 악마의 경계를 떠나고 악마의 군사를 부수려고 악마의 사자로 하여금 큰 두려움을 내게 하고 온갖 번뇌의 산을 흔들고 바른 도에 들어가 광명을 놓으려고 지금 그 15지(地)의 행을 얻었습니다.'


이 때에 광음천은 이 말을 듣고 모두 크게 기뻐하여 다른 하늘 무리들에게 말한다.


'너희 하늘들은 기뻐하여야 한다. 바른 법을 늘리고 자라게 하며 모든 악마와 악마의 권속들을 줄이고, 바른 법의 강물을 끊임없이 흐르게 하여 삿된 소견의 못을 마르게 하며, 탐욕·분노·우치를 항복 받고 삿된 무리를 무찔러 없애며, 바른 법을 이어 융성하게 하고 생사를 흩으려 한다.'


욕심세계의 천자들은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여 칭찬하는 소리는 차례로 퍼져 서로 알렸으므로 모든 광음천의 무리들에게까지 이르렀다.


그 비구는 이렇게 부지런히 닦아 정진하는 마음을 쉬지 않고, 단정하고 곧아 아첨하지 않으며 삿되고 간사함을 멀리 떠났다. 그리하여 열반의 성을 구하였으므로 좋은 이름은 온 하늘 무리들에게 두루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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