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나라가 티벳불교를 흡수한 중국밀교를 탄압했다? 아뇨!
중국에서도 불교에 대한 탄압은 혹독했으며, 특히 명나라에서는 원나라의 국교였던 라마교, 즉 티벳 밀교를 받아들인 '중국밀교(中国密教)'가 철저히 탄압받았습니다. 신자들은 은밀히 법등(法灯)을 지키며 티벳 밀교의 가르침을 더욱 발전시켰고, 특히 강남 지방의 재가 신자들이 '남화밀교(南華密教)'라는 비의체계(秘儀体系)로 완성했습니다.
이것은 장명징 선생님의 남화밀교 강의에 나오는 내용으로...
남화밀교가 이러한 방식으로 형성되었다라고 설명할 때의 주장이지만,
제 짧은 지식과 검색으로는 명나라 때 불교의 탄압이 혹독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보통 한 나라가 기울 때는 국교(國敎)가 함께 타락하는데...
원나라 말기에는 티벳불교의 가르침들이 원나라의 황실과 귀족들에 의해 왜곡되어,
쾌락과 향락의 수단으로 쓰이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은 귀의와 자비심, 보리심 그리고 지혜없이 티벳불교를 배워서 그렇습니다.
이에 대한건 인연있는 분들에게 자주 언급하고 있습니다...
물론, 티벳불교가 언제나 항상 밝고 명료한 흐름만 이어온 것이 아닙니다.
겔룩파(황모파)의 개조이신 제 쫑카파(1357~1419)께서 계시던 당시에는 문란하고 어지러운 불교흐름이 있었던 때였는데,
쫑카파께서 엄격한 규율과 철저한 이론공부를 중시하는 겔룩파를 창시하여 모범을 보이시고
이후 수많은 승려들이 쫑카파의 가르침을 이어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물론, 모든 이들이 잘못된 길을 걸은게 아니고 이 당시에도 수많은 선지식들과 최고위 승려들의 지적논쟁도 많이 있었습니다.
다시 명나라의 불교로 돌아가서...
실제 명나라에서 선종과 정토종 등에 힘을 실어주고, 불교의 사찰수와 승려수를 국가가 통제 및 세금을 부과한 기록을 비롯하여
선종과 정토종, 도교 등에 힘을 실어주었다는 기록은 존재합니다.
즉, 티벳불교를 탄압하여 억지로 못하게 하거나 하는 일이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없었습니다...
만약 그러한 자료들이 있으면 제게 알려주세요.
도리어 조선시대의 억불정책으로 불교를 탄압하여...
'세종 원년, 승려 30여 명이 국경을 넘어 명나라로 가 명제에게 불교 탄압을 호소해 국제적 압력으로 조정의 완화가 약간 이루어졌다',
'세종 3년, 묘향산의 승려 적휴가 도반 8명과 함께 명나라에 건너가 척불 중지를 소청한 사건'의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이 너무 불교를 탄압하니 조선이 조공을 바치는 명나라에 가서 호소를 한 것이죠...
이것은 장명징 선생님의 주장과는 상당히 동떨어지는 부분입니다
중국불교가 탄압받은 때는, 삼무일종법난(三武一宗法難)이라 하여...
북위 태무제(446~452), 남북조시대 북주무제의 북주파불(574~577),
당무종의 회창폐불(840~846), 오대십국시대 후주의 세종(954~959) 때였습니다.
역사적 팩트가 안맞다보니 저는 장명징 선생님의 남화밀교에 대해 중국 강남의 재가신자들이 한 것이라고 보지 않고,
장명징 선생님의 역학(육대과)과 종교의 결합에 대한 학문적 연구의 결과물이 남화밀교라고 봅니다.
즉, 장명징 선생님의 학문을 역학과 남화밀교로 통합된 것입니다.
참고로 남화밀교는 장명징 선생님이 평생 공부한 의술의 핵심 식이법이 지단(地丹)에 들어가고,
도교의 양생도인술과 주천공을 몸을 건강하게 하면서 기운을 기르면서,
자미두수 수호불 시스템을 통해 본존수행을 비롯한 독특한 밀교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밀교수행도 본래 있는거라기보다는 당시 장명징 선생님이 접할 수 있는 밀교적 가르침과
까규파의 나로육법을 장명징 선생님의 천재성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봅니다.
특히 장명징 선생님 기준으로 사람의 마음상태를 보는 자미두수를 통해 불성(佛性)을 보고,
불성에 따른 각 불보살님들의 특징과 삶의 방식을 따라가는게 그 사람의 본성(本性)이라 보았기 때문에...
역학적인 방법으로 불보살을 찾아 관정없이 밀교수행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소의경전은 도교의 신마소설 서유기와 노자, 불교의 남화사부경(금강경 반야심경 이취경 화엄경)입니다.
여기서 소설 서유기에서 수행을 추출한 것은 매우 존경받을만한 부분이지만,
이것을 밀교탄압에 의해 숨긴 것이라고 보는 것은 '팩트'적으로 말이 안되기에 장명징 선생님의 개인적 주장이라 봅니다.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는데 자신의 뛰어난 지성으로 소설책에서 수행을 찾아낸 것을,
'실제 팩트확인은 하지 못했지만 아마도 내 생각에는' 명나라 강남의 재가신도들이
이것을 가지고 수행을 했을 것이다라고 보기 시작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장명징 선생님의 가르침은 같은 중국인에게 전해지는게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인 일본인에게 전해진거라
애매하게 표현하는 것보다는 진짜처럼 인식하게 만들어 자신이 집대성한 도불습합 수행법을 행하도록 만든 것이라 봅니다.
이렇게 팩트와 현실성을 가지고 판단해야 하는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어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글을 올립니다.
일단 이 글은 표현 그대로 중국불교를 탄압한 기록은 없다를 기준으로 설명드린 것이고,
좀 더 생각해보면 장명징 선생의 주장을 다른 방향으로 해석해볼 수 있는 팩트가 있습니다.
이에 대한 내용은 많고 국내에서는 잘 모르는 부분이다보니 이후 다시 글을 통해 자세하게 올리겠습니다.
뭐, 아무리 그래도 장명징 선생님의 남화밀교는 중국본토가 아닌
선생님 자신의 지식을 총집대성한 결과물이 남화밀교라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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