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동안 끊임없이 도둑맞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 도둑에게 빼앗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도둑맞는 것을 원하고, 도둑맞고 기분좋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수시로 자신의 의식세계를 도둑을 맞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분이 안나쁠 수도 있고 늘 평온할 수 있는데, 기분을 나쁘게 하는 생각에게 주인자리를 빼앗기면 기분이 나빠집니다.
그렇기에 도둑을 맞는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무슨 얘기냐면...
늘 주인이 주인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는데, 자기자신의 주인인 '내'가 분명 있을텐데...
주인허락 없이 여러사람이 돌아가면서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공유하며 사용한다고 생각해보십시요...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습니까?
그리고 빙의를 당하는 것도 내 온전한 의식을 빼앗기는 것 아닌가요?
자신의 의식을 도둑맞는 것이죠...
그리고 잠재의식 속에는 많은 의견을 달리하는 의식들이 많습니다.
그러한 것들 표현할 때, 여러가지 감정도 들도 생각도 들고 그렇습니다.
그랬을 때 그러한 잠재의식 하나하나에,
잠재의식들한테 의식으로서의 주인자리를 빼앗기게 되면...
잠재의식에서 올라오는 생각과 감정들이 주인행세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고 있을 때 주인은 뭐하고 있을까요?
눈뜨고 도둑맞고 있을 것입니다...
정신세계를 사람의 집으로 놓고 봤을 때 주인이 집을 비우면,
집주인 아닌 것들이 맘놓고 들락날락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집주인이 집단속을 잘 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도를 닦으면 감정이 없는 사람이 될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수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올라와도 그러한 것들에 물들지 않게 되는 것뿐입니다. 그렇기에 늘 그러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감정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무감정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며, 단지 감정의 영향을 안받을 뿐입니다.
왜 그럴까요?
감정이라는 것이 주인행세를 하려고 할 때,
주인이 정신차리고 있으면 감정이 주인행세를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인의 입장은 어떤 일이든 늘 평화롭고, 온화한 것을 추구합니다.
감정과 생각들의 영향을 받지 않으면, 늘 그렇게 할 수 있으면서 감정과 생각을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인간관계를 할 때 화를 낼 때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화가 나는 감정을 잠시 사용하는 것입니다...
화난 사람으로 돌변해 있는게 아니라, 온화한 주인의 지휘아래에 화가 난다는 감정을 당시 그 상황에서 사용하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그 상황이 끝나면 바로 화가 났던 감정을 돌려보내면 되기 때문에 화를 내도 육체에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습니다.
주인이라는 존재가 점점 성장해가면서 강해질 때, 확실히 그러한 것을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이제 견성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불교에 관심이 있거나 도교 및 수행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견성이 무엇인지
체험은 어떻게 하는지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견성에 대한 부분은 그게 끝이 아닙니다.
견성이라는 것을 알게된 상태를 갓난아기로 비유해보면...
갓난아기는 잘 먹이고 재워 양육을 시켜 성장시켜 나가야 하는게 당연하듯
그와 마찬가지로 견성된 상태에서 갓난아기가 잘 성장해 나가서 성인이 될 때까지 보살펴야 합니다.
즉, 견성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견성한 상태를 잘 양육시켜
좀 더 성숙된 의식상태에 도달할 수 있도록 성장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했을 때 확실하고 강한 의식세계로 자리잡고 있을 수 있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사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끊임없이 도둑맞으며 살아가게 됩니다.
생각에게, 감정에게, 빙의령들에게, 병마들에게...
기분 나쁜 일을 당했을 때, 기분 나쁜게 상식적인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기분 나쁘면 기분 나쁘고
슬픈 생각하면 슬퍼하고
웃기면 웃고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인간본연의 모습일까요...?
감정과 생각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사용되어져야 하는 것이지, 인간이 지배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들이 아닙니다.
종파와 방법을 막론하고 올바른 수행법이란...
주인이 무엇인지를 확연히 알게 해주고,
확실한 주인자리를 찾게 해주고,
아울러 생각과 감정에 지배가 아닌
사용자로서 살아가게 해주는 도구가 바로 올바른 수행법입니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신통력이 있은들 무엇하겠습니까?
영적인 능력을 얻게되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더라도
능력을 올바른 곳에 사용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고
그냥 영능력에 지배받는 사람이 되어 영능력을 사용할 아는 사람일 뿐입니다.
아마도 일반 분들은 상상해 본적도 없고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가 되겠지만 이러한 경우도 많이 발생합니다.
어떠한 영적인 능력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 같아서 그 능력이 스스로 사용되고 싶어 사람을 선택하여 사람을 부리기도 합니다.
그러면 사람입장에서는 마치 본인이 영적인 능력이 생겨서 영능력을 사용하는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영능력이 사람을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기본으로 되어있지 못하면
세상없는 그 어떤 수련을 한들 올바른 성취라는 것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영적인 능력을 얻는 것은 결코 힘든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영적인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 다음이 더 큰 문제가 됩니다.
영적인 능력을 알고 사용하면 도력(道力)이 되고...
지배받는 입장에서 영능력을 사용하게 되면 술법(術法)이 됩니다.
이해를 돕기위해 비교를 하자면...
불경에 나오는 관세음보살님이 신통력을 사용하시면 도력이 되는 것이고,
법사나 술사들이 신통력을 사용하게 되면 술법이 되는 그러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면 도력과 술법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도력을 사용하는 것에는 치뤄야할 대가가 없지만,
술법을 사용하는 것에는 항상 그에 상응하는 치뤄야할 대가가 함께 합니다.
이게 바로 도력과 술법의 차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관세음보살님이나 부처님이 무언가를 하셨다고 하여 대가를 치루셨다는 얘기가 없는 것입니다.
영능력을 얻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도인이 될 것인지, 아니면 술사가 될 것인지 입니다.
수행을 하는 분들에게 질문을 하면...
"적어도 99%는 다들 술사보다는 도인이 되고 싶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깨달음과 상관없이 열심히 밥만 먹고 연습하면 영능력은 얻을 수 있겠지만...
술사가 아닌 도인이 되는 것은 영능력을 얻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입니다.
"혹 영능력을 얻어서 세상을 위해서 좋은 일에 사용하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사람의 생각일 뿐 참으로 이행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정말 세상을 위해 이롭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도인들에게만 가능한 일이기 떄문입니다.
그러니 수행을 하시는 분들이라면, 중요한 선택을 하셔야할 것입니다.
늘 여여(如如)하게 다스리고 살아가실 수 있는 도(道)를 얻기위한 수행자가 되실 것인지...
아니면 오직 영적인 세상에 관심이 많아서 영능력이나 얻으려고 하는 술사가 되는 것이
목적인지를 선택하셔야 할 것입니다.
서유기(西遊記)에 나오는 손오공도 신통력은 얼마나 뛰어났습니까?
하지만 관세음보살님의 상대가 되지 못했던 이유는 손오공의 신통력이 약해서가 아니고...
관세음보살님께서는 도력을 사용하셨고 손오공은 술법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같은 신통력이지만...
도력을 사용할 때는, 도력을 사용하시는 분의 뜻이 곧 하늘의 뜻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좀 더 이해를 돕기 위해 굳이 비유를 든다면, 일반법과 헌법의 차이 같은 것입니다.
일반법에는 항소와 같은 이의를 달 수 있지만...
헌법에는 항소나 이의를 달 수없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바라보고 공부하며 지금 이순간에도 정진하고 있는 전반적인 수행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 보았습니다.
인연이 있는 분들에게 전해지길 기원하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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