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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칼럼

천지팔양경(天地八陽經) 글모음

by 예경 2017. 9. 6.

 

 

위경이라 불리는 천지팔양경과 당시 시대적 상황...


 

 

불교경전들과 국내에 전해지는 천지팔양경의 맨 앞에는 "이와 같이 들었다."로 시작이 됩니다.

하지만 중국에서 전해지는 팔양경의 일부 전승에는 위의 시작어구와는 전혀 다른 문장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나는 알았다."



무엇을 알았다는 것일까요?

바로 오리지널 불교경전인 진본 불설팔양신주경(서진 월지국삼장 축법호 한역)에 대한 한가지 쓰임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도교든 불교든 특정 성취를 한 수행자들을 중심으로 하늘로부터 경전이 내려오는 현상이 많았습니다.



불설팔양신주경과 인연이 있던 중국의 유가행파 계열의 불교수행자가 수행을 하다가...

이 경문을 하늘에서부터 내려받아 그렇게 알게된 부분을 글로서 포현한 것이 천지팔양경이라고 개인적으로 보며,

'들었다'라는 표현보다는 '알았다'라고 표기한 것이 최초의 원본일 것이라고 보지만, 사실 들었다라고 표현해도 문제가 없고

대부분의 불교경전과 맞춰야 하는 부분이 있어 '알았다'가 '들었다'로 바뀌어 전해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 인도에서 만들어진 경전이 아니기에 전형적인 위경에 속하지만, 진본 불설팔양신주경의 힘이 깃들어 있는 위경입니다.

그래서 '불설팔양신주경을 베이스로 음양의 이치를 분명하게 분별할줄 알게하는 경문'이라는 의미로 천지팔양경이라 하였고,

중국에서는 진본과 함께 독송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위경의 탄생은 당시 시대적 상황, 종파적 상황과도 상당히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고유의 역할과 목적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 경전을 중심으로 당시 중국의 시대적 상황을 어림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1. 도교와 무속이 민간에 상당히 깊숙하게 퍼져 있었으며, 불교가 흥성할 때입니다.

2. 백성들을 미혹시키는 삿된 도사, 무격들이 민간에 많이 퍼져있어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3. 다양한 행사를 할 때에 택일법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4. 특히 건제12신장 택일법이 널리 퍼져 행해지고 있었으며, 그 폐해도 존재하였습니다.

5. 기타 등등



이제 문옥당님이 공개하신 팔양경 번역본을 정독하여 읽어보십시요...

민간에서 삿된 만행을 하는 도사, 무격들을 혐오까진 아니지만 배척하는 내용이 있으며

다양한 행사 때는 이 경전을 독송하면 만사OK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택일과 주술적 의식은 무조건 기본이라고 인식하던 중국의 백성들에게는

이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보다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을 것입니다.



현대식으로 표현하면 평생 아이폰만 쓰던 사람에게 갤럭시노트7 써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의 위경이자 도불습합의 의식용 경전인 불설천지팔양진택신주경이 탄생합니다.




대략 이런 스토리로 진행되는 것이 바로 제가 바라보는 천지팔양신주경입니다. ^^

또 저는 이와 관련된 진택비법도 함께 전승하고 있는데, 자세한 얘기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천지팔양경이 위경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분들께...



불설팔양신주경은 분명 인도에서 들어온 경전이 맞지만...

불설천지팔양신주경은, 사실 깊이 연구할 것도 없이 인도에서 들어온 경전이 아니라 전형적인 도불습합의 위경입니다.



하지만 불설팔양신주경과 불설천지팔양신주경 두 개의 경전을 읽어보지 않고

그냥 팔양경은 산스크리트어에서 번역된 것이다라는 것만 누군가에게 듣거나 책에 한두줄 적혀있는 내용으로

불설팔양신주경=불설천지팔양신주경이라고 자의적인 판단을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조금만 관심있게 두 경전을 찾아보기만 해도 상당히 쉽게 두 경전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이번에는 불설천지팔양신주경이 위경이 맞는 이유를 간단하게 체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1. 왼편으로 삐친 획은 바르다는 뜻이요, 오른편으로 삐진친 획은 참되다는 뜻이니 항상 바르고 참된 일만 행함으로 사람(人)이라고 하느니라.


산스크리트어로 사람이라는 글자가 왼편으로 삐진 획과 오른편으로 삐친 획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으며...

산스크리트어로는 मनुः라고 쓰고, 마누(Manu)라고 읽습니다. 절대 좌우로 찍찍 그은 획이 나올 수 없습니다.

또 산스크리트어, 팔리어가 꼬부랑글씨이지 절대 좌측우측에 획 하나씩 그어서 완성되지 않습니다.

사실 이거 하나면 인도에서 들어왔냐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냐 하는 논란이 끝납니다. ^^;

하지만 만족하지 못하는 분들이 분명 계실듯 싶어 좀 더 이어보겠습니다.



2. 일유 월살 대장군 태세 황번 표미 오토지신


황번과 표미는 인도점성술과 관련이 있지만...

그 외의 일유신, 월살, 대장군, 태세, 오토지신은 인도에는 없는 전형적인 중국도교의 방위신들입니다.

참고로, 일유신과 월살, 대장군, 태세는 구성기학에서도 중요하게 보는 방위신이기도 합니다. ^^



3. 청룡 백호 주작 현무 육갑금휘 십이제신


청룡, 백호, 주작, 현무, 육갑을 산스크리트어를 찾아보시고 그 단어가 다른 산스크리트어 불교경전에

표현된 적이 있는지 확인해보십시요. 굳이 찾아볼 필요도 없겠죠?

사신과 육갑신장은 전형적인 중국도교의 신들입니다. ^^



4. 만평성수 개제집위 파살이란 글자가 있는고로, 어리석은 사람들은 글자대로만 믿으면 흉화를 면하는줄로 알고 또 사도를 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부연해서 이렇게 하면 옳고 저렇게 하면 그르다고 하면서 쓸데없이 사신에게 구하고 아귀에게 절하다가 오히려 재앙을 부르고 괴로움을 받는 것이니 그런 사람들은 천신에 배반되고 진리에 어긋나며 해와 달의 밝은 빛을 등지고 항상 어두운 곳으로 가는 것이며 바른 길인 넓은 길을 버리고 항상 나쁜 길을 찾는 것임으로 뒤바뀐 소견이 심한 까닭이니라.


만평성수 개제집위 파살은 대정신수대장경에 수록되어 있듯 '평만성수개폐건제정집파위'로 표기되는게 맞으며...

중국도교의 북두칠성 신앙과 관계된 건제12신장 택일법을 의미합니다. 육임과도 관련이 깊은 택일법이기도 하죠.

여기에 무슨 더 설명이 필요할까요?



5. 선남자야 결혼을 하려고 할 때에 수화(水火)가 상극(相剋)이 된다고 하거나 표와 태가 서로 눌리운다거나 나이가 맞지 않는다고 따지지 말고 다만 녹명서를 보면 복덕이 많고 적은 것을 알 수 있으니 그것으로 권속을 삼고 친영하는 날에 이 경을 세 번 읽고 성례를 하면


오행설에 해당하는 수화상극이라는 단어와 한 사람의 운명을 알 수 있는 책인 녹명서에 대한 부분은...

인도불교의 마인드가 아닌 중국도교의 마인드에 해당합니다.

정확히는 중국도교의 마인드를 베이스로 중국불교의 마인드를 입힌 것입니다.

녹명서를 통해 상극표태가 아닌 배우자의 복덕이 많고 적음으로 판단하라는 얘기죠...


물론, 녹명서가 인도점성술책이라고 하거나 수화상극은 인도점성술의 수성과 화성으로 풀이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성궁도에 따라 궁합을 본다고 해야할텐데 나이에 따라 궁합이 맞고 안맞고를 따진다라고 되어 있으니 해당사항이 안됩니다.


참고로, 현대에는 팔양경의 녹명서가 사주명리책이라고 하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왜냐하면 시대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만약 이 경이 내려온 시대가 당나라 때일 경우에는

사주명리학이 아닌 당사주(당나라 때의 사주)로 봐야 옳습니다.


그리고 어떤 분들은 녹명서가 비밀스러운 어떤 책이라고 얘기를 하기도 하는데...



성종실록 223권, 성종 19년 12월 24일 계축

무인년(세조4년, 1458년)에 정시(廷試)에서 우등하여 통정 대부(通政大夫) 공조 참의(工曹參議)로 옮겼다.
하루는 세조가 조용히 서거정에게 이르기를, "《녹명서(祿命書)》도 유자(儒者)가 궁리(窮理)하는 일이니,

경이 가령(假令)을 지어서 올리라."하니, 이때에 《오행총괄(五行總括)》을 지었다.



라는 내용이 조선왕조실록에 있습니다.


녹명서는 이미 조선의 왕인 세조도 알고 사대부들도 알고 있던 책의 부류였고,

세조의 명으로 서거정이 한국의 첫 명리서인 오행총괄을 만들었습니다.

이제 녹명서=사주명리책라는 공식이 성립 안할 수가 없겠죠?

 

만약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이 너무 간략해서 못믿겠다는 분들을 위해 자치통감 12권의 내용을 추가로 소개해봅니다. 



자치통감 당기 12권 태종 정관 15년(641년)


황상은 근래에 나온 음양잡서들 가운데 잘못되고 거짓된 것들이 더욱 많았기 때문에 태상박사 여재(呂才)에게 명령하여 여러 술사들과 더불어 유통이 가능한 것을 간정(干定)하게 하니, 무릇 47권이었다. 기유일(19일)에 책이 완성되어 이를 올리자, 여재는 이를 위하여 서문을 썼는데, 경전과 역사서를 가지고서 바탕을 삼았다.


(중략)

 

 [녹명(祿命)]에서 서술하여 말하였다.

  “녹명이라는 책은 대부분 혹시 맞는 것을 말하니 사람들이 마침내 이를 믿는다. 그러나 장평(長平, 산서성 고평현)에서 병졸들을 파묻어 죽였는데, 아직도 다 같이 삼형(三刑, 인사신과 축술미 등)을 범하였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고, 남양(南陽)의 귀한 선비들이 어찌 반드시 육합(六合)에 해당하였단 말인가! 지금 역시 같은 해에 태어나서 같은 녹을 받는다고 하여도 귀하고 천한 것은 현격하게 다르며, 같은 명을 받고 같은 어머니를 가지고 있어도 오래 사는 것과 요절하는 것이 더욱 다르다. 상고하건대, 노(魯)의 장공(노나라의 16대 군주)은 법으로 보아서는 응당 가난하고 천하여야 하였으며, 또 절름발이에 약하고 키가 작고 못생겨야 하였지만 오직 장수할 수 있었으며, 진의 시황은 법으로는 관작이 없어야 하였고 설사 녹을 받을 수 있다 하여도 젊어서 노비였고 사람됨은 시작은 없고 끝나는 것만 있어야 하였으며, 한의 무제와 후위의 효문제는 모두 법으로는 관작이 없어야 하였으며, 송의 무제의 녹과 명은 나란히 공망(空亡)이어야 하였고 오직 장자만 있어야 하였으며, 비록 둘째 아들이 있다고 하여도 법으로는 당연히 일찍 요절하여야 하였다. 이것들은 모두 녹명이 영험하지 않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난 것이다.”

 

(중략)




이건 더 자세하게 녹명서에 대한 언급이 있어 제가 더 부연설명할 필요도 없죠? ^^

 

일단 이 5가지만 보더라도 대략 감이 잡히실 것입니다.

제가 너무 어려운 얘기를 한 것도 아니고, 조금만 생각해보면 모두 쉽게 알 수 있는 내용들을 소개한 것입니다.


대충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불설천지팔양신주경은 인도에서 넘어온 경전이 아니라 중국에서 만들어진 위경입니다.


그런데 위경이라고 아무런 힘이 깃들지 않은 경전이라고 보시면 절대 안됩니다.

왜냐하면 불설팔양신주경의 힘이 깃들어진 위경이기 때문이죠.


제가 이런 글을 올린 이유는 올바른 정보로 바르게 판단하여 위경임을 제대로 인식하고,

불설팔양신주경을 베이스로 한 경전임을 철저히 알고 천지팔양경을 수행하실 때 위경논란으로 인해

마음이 혼란하여 천지팔양경의 수행을 멈추는 일 없이 가볍게 받아 넘기시고 용맹정진길 바라는 마음에 올린 것입니다.


위경임에도 불구하고 효과는 탁월한 천지팔양경을 수행하시는 분들이 한분이라도 더 행복해지시기길 기원하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천지팔양경에 등장하는 무애보살과 무변신보살이란...?



천지팔양경을 연구하시는 분치고, 무애보살과 무변신보살을 모르시는 분은 없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분들이 어떤 분인지 잘 모르는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간략하게나마 소개해봅니다.

 

 


 

무애보살은, 오백나한중 425존에 해당하는 무애행존자를 의미하며...

대반야바라밀다경 제581권에 등장하시고 동쪽의 백세계 저편의 대온여래응공정등각께서 계신 세계에 있는 보살님입니다.

이제 무애보살께서 등장하시는 대반야바라밀다경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때에 사리자와 대중들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자옵고 동쪽을 보니, 백 세계 저편에 대온(大蘊) 여래·응공·정등각께서 성문과 보살들 대중에게 둘러싸여 보시바라밀다에는 수승한 공덕이 있으므로 큰 과위를 얻는다고 설법하고 계셨다. 거기에 무애(無礙)라는 보살이 있는데 비록 집에 있으나 집착함이 없이 모든 것을 버리어 온갖 유정에게 보시하되 진기한 보배를 산같이 쌓아 두고 유정들이 요구하는 대로 모두 보시해 주고, 유정들에게 권하되 스스로가 수용한 뒤엔 다시 다른 이에게 보시하기를 걸림없이 하며, 이와 같이 보시하되 물듦이 없이 밤낮으로 부지런히 하여 게으르지 않으며, 이렇듯이 의복·침구·음식 따위 물건을 모두 산같이 쌓아 놓고 유정들이 요구하는 대로 모두 보시하되 유정들에게 권하여 스스로가 수용한 뒤에는 다시 다른 이에게 보시하게 하되 마음에 걸림이 없이 하며, 이와 같이 보시하되 유정들에게 권하여 스스로가 수용한 뒤에는 다시 다른 이에게 보시하게 하되 마음에 걸림이 없이 하며, 이와 같이 보시하되 물듦이 없이 밤낮으로 부지런히 하여 게으르지 않았다.

 

그 때에 사리자와 대중들이 모두 다시 보니, 무애보살이 7보로 백천 대의 황금 수레를 장식하고, 낱낱 수레에는 하나씩의 여자를 실었는데 얼굴이 단정하였고 갖가지로 장엄하게 하였으며, 그 낱낱 여자들이 백 사람의 시종을 거느렸는데 시녀마다 작은 수레에 타고 뭇 보배로 장식하였으며, 낱낱 수레 위엔 백천 냥의 황금과 온갖 도구를 모자람이 없이 실어다가 거리에 놓고 큰 소리로 외치되 '누구든지 필요하신 분은 마음대로 가져가시오' 하여 이렇듯이 보시하되 집착함이 없이 밤낮으로 부지런히 정진하여 게으르지 않았다.

 

그 때에 부처님께서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동쪽의 무애보살이 집착하는 마음이 없이 보시하는 것을 보았느냐?"

 

사리자가 대답했다.

"보았습니다, 세존이시여. 보았습니다, 선서시여."

 

부처님께서 분부하셨다.

"보살이 큰 보리를 구하려면 모두가 이와 같이 보시를 해야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네 뜻에 어떠하냐? 무애보살의 보시가 광대하지 않으냐?"

 

사리자가 대답했다.

"광대하옵니다, 세존이시여. 광대하옵니다, 선서시여. 무애보살이 보시한 선근은 한량이 없고 끝이 없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옳다, 네 말이 옳다. 만일 보살이 모든 법이 공한 것으로 관찰하고, 일체지의 지혜에 수승한 공덕이 있는 것을 반연하고 유정들을 가엾이 여기어 무엇이든지 가지고 있는 것을 보시하면 동쪽의 무애보살이 얻은 보시의 복덕보다 백배 천배 내지 오파니살담 배나 더 훌륭하리라."




 


 


이번에는 무변신보살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백나한중 207존과 422존이 무변신존자으로 다른 오백나한과 달리 2분이 계십니다.

두분 모두 같은 분이라고 보시면 되는데, 그 이유는 무변신보살은 무변신여래의 화현이시기 때문입니다.

또 아미타불의 서방정토세계의 25보살중 한분이기도 하며 십왕생경, 대반열반경, 완릉록 등에 등장하십니다.

 

아래의 내용은 대반열반경의 내용입니다.

 



이 때 대중은 모두 저 무변신보살과 그 권속들을 보았다. 그 보살의 몸에는 털구멍마다 큰 연꽃이 솟아나고, 연꽃마다 7만 8천 고을[城邑]들이 있는데 길이와 너비가 비사리성과 같고, 담벼락과 해자들은 7보로 섞어 쌓았고 보배로 된 다라나무가 일곱 겹으로 줄지어 섰으며, 백성들이 번성하여 편안하고 즐거우며, 염부단금으로 망루가 되었는데 망루마다 7보로 된 숲이 있어 꽃과 열매가 무성하고, 실바람이 불 때마다 아름다운 음성을 내니 그 소리가 화평하여 마치 하늘 음악을 잡히는 듯 성안에 사는 백성들이 이 음성을 듣고는 곧 가장 좋은 쾌락을 얻으며, 여러 해자 안에는 맑은 물이 가득하여 향기롭고 깨끗함이 진주 유리와 같으며, 이 물 위에는 7보 배가 있어 모든 사람들이 마음대로 타고 다니면서 목욕도 하고 유희도 하며 서로 즐기니 그 쾌락이 그지없었다.

 

또 한량없는 가지각색 연꽃이 있는데 우발라화·구물두화·파두마화·분타리화들로서 그 꽃의 크기가 수레바퀴만하며, 해자의 언덕 위에는 숲동산들이 있고, 동산마다 못 다섯씩 있고, 이 여러 못 가운데는 또 우발라화·구물두화·파두마화·분타리화가 있어 크기가 역시 수레바퀴만하고, 향기가 아름다워 참으로 즐길 만하며, 그 물은 깨끗하고 맑아 부드럽기가 제일이며, 오리·기러기·원앙새 등이 그 속에서 헤엄치며 다니고 그 동산 안에는 각각 여러 가지 보배로 만든 궁전이 있고, 그 궁전 뜰마다 길이와 너비는 사방이 반듯하게 4유순씩이며, 그 담벽은 모두 네 가지 보배로 되었으니 금·은·유리·파리며, 진금으로 만든 창호에는 난간이 둘러 있고 매괴로 된 땅 위에는 금모래를 깔았으며, 그 궁전에는 7보로 된 못과 내가 많고 낱낱 못가마다 열 여덟개의 황금 사다리가 있고 염부단금으로 파초나무가 되었으니, 마치 도리천의 환희원(歡喜園)과 같았다.

 

이 성곽마다 8만 4천 임금이 있고 임금마다 한량없는 부인과 궁녀가 있어 서로 즐기고 쾌락을 누리며, 다른 백성들도 또한 그와 같이 제각기 사는 곳에서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있는 중생들은 다른 이름은 듣지 못하고 위없는 대승의 법만 들으며, 여러 가지 꽃 가운데는 각각 사자좌가 있으니 사자좌의 다리는 모두 감색 유리로 되었으며, 부드럽고 흰 옷으로 자리 위에 깔았으니 그 옷이 아름답기란 삼계(三界)에 뛰어나고, 사자좌마다 한 임금이 앉아서 대승법으로 중생을 교화하며, 어떤 중생들은 받아 지니고 쓰고 읽고 외우며 말씀한 대로 수행하여 대승 경전을 펴는 것이다. 그 때 무변신보살이 한량없는 중생들을 자기의 몸에 편안히 머물게 하여 세간의 즐거움을 버리게 하니, 모두 말하였다.

 

"애달프다, 애달프다. 세간이 비는도다. 부처님이 오래지 않아 열반에 드시리라."

 

그 때 무변신보살이 한량없는 보살에게 겹겹으로 호위되어 이러한 신통력을 나타내고 나서 한량없는 가지각색 공양거리와 훌륭하고 아름다운 음식을 올렸는데, 만일 그 음식의 향기를 맡기만 하면 모든 번뇌의 때가 모두 사라지는 것이었다. 이 보살의 신통력으로 말미암아 모든 대중이 이렇게 변화하는 것도 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무변신보살의 몸뚱이 크기가 가이없어 허공과 같아, 여러 부처님을 제하고는 아무도 이 보살의 몸이 가이없음을 볼 수가 없는 것이었다.




다시 황벽단제선사완릉록(黃壁斷際禪師宛陵錄)이라는 법어집의 내용입니다.



"무변신보살(無邊身菩薩)은 왜 여래의 정수리를 보지 못합니까?"

"실로 볼 것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무변신보살이란 곧 여래이기 때문에 응당 보지 못한다. 다만 너희에게 부처라는 견해를 짓지 않아서 부처라는 변견(邊見)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며, 중생이라는 견해를 짓지 않아서 중생이라는 변견에 떨어지지 않게 하며, 있다[有]는 견해를 짓지 않아서 있다는 변견에 떨어지지 않게 하며, 없다[無]는 견해를 짓지 않아서 없다는 변견에 떨어지지 않게 하며, 범부라는 견해를 짓지 않아서 범부라는 변견에 떨어지지 않게 하며 나아가 성인이라는 견해를 짓지 않아서 성인이라는 변견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다만 모든 견해만 없으면 그대로가 곧 가이 없는 몸[無邊身]이니라. 그러나 무엇인가 보는 곳이 있으면 곧 외도라고 부른다. 외도란 모든 견해를 즐기고 보살은 모든 견해에 있어서도 흔들리지 않으며, 여래란 곧 모든 법에 여여(如如)한 뜻이니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미륵도 또한 그러하고 모든 성현도 또한 그러하다"고 하였다.

 

여여하기 때문에 생겨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볼 것도 들을 것도 없다. 여래의 정수리는 두렷이 볼 수 있는 것이지만 두렷이 보는 것도 없으므로, 두렷하다는 변견에도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부처님 몸은 하염 없으신 것이다. 숫자로써 헤아리는 범주에 속하지도 않지만, 다만 방편으로 허공에 비유할 뿐이니라.

 

‘원만하기가 태허공과 같아서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으며’ 한가로이 일삼을 것이 없다. 다른 경계를 억지로 끌어들여 설명하려 하지 말 것이니, 설명하려 들면 벌써 식[識]이 이뤄지고 만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원성실성(圓成實性)은 의식의 바다에 잠겨서 나부끼는 쑥대처럼 흘러 도네.’라고 하였다.

 

그저 말하기를 ‘나는 알았으며 배워서 얻었으며, 깨달았으며, 해탈하였으며, 도의 이치를 얻었노라.’고 한다. 그러나 자기가 강한 곳에서는 뜻대로 되지만 약한 곳에서는 뜻대로 되질 않는다면 이런 견해가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 내 너에게 말하노니, 한가하여 스스로 일 없도록 하여 쓸데없이 마음을 쓰지 말라.

 

‘참됨을 구할 필요가 없나니, 오직 모든 견해를 쉴지니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안으로 봄[內見]과 밖으로 봄[外見]이 모두 잘못이며 부처의 도와 마구니의 도가 모두 나쁜 것이니라. 그렇기 때문에 문수보살이 잠깐 두 견해를 일으켰다가 그만 두 철위산 지옥으로 떨어진 것이다.

 

문수보살은 참된 지혜의 상징이고 보현보살은 방편적인 지혜의 상징이다. 방편과 참됨이 서로서로 작용을 하여 끝내는 방편과 참됨 그것마저도 사라지고 오로지 한 마음뿐인 것이다. 마음은 결코 부처도 아니고 중생도 아니다. 서로 다른 견해가 있는 것이 아닌데, 부처의 견해를 갖기만 하면 바로 중생의 견해를 내게 되느니라.

 

있다는 견해[有見], 없다는 견해[無見], 영원불변하다는 견해[常見], 단멸한다는 견해[斷見]가 바로 두 철위산 지옥을 이룬다. 이처럼 견해와 장애를 받기 때문에 역대의 조사들께서 일체 중생의 본래 몸과 마음이 그대로 부처임을 바로 가리키신 것이다. 이것은 닦아서 되는것도 아니고 점차적인 단계를 밟아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밝음이나 어두움에 속하지도 않아서, 밝음이 아니기 때문에 밝음도 없으며 어둠이 아니기 때문에 어두움도 없다. 그러므로 밝음 없음[無明]도 없으며 또한 밝음 없음이 다함[無明盡]도 없다. 우리이 선가의 종문에 들어와서는 누구든지 뜻을 간절하게 가져야 한다.

 

이와 같이 볼 수 있는 것을 이름하여 법이라 하고 법을 보기 때문에 부처라고 하며, 부처와 법이 모두 함께 없는 것을 승(僧)이라 부르며, 하릴없는 중이라 부르며, 또한 한몸의 삼보[一 三 ]라 하느니라. 대저 법을 구하는 이는 부처에 집착하여 구하지도 말고, 법에 집착하여 구하지도 말며, 대중에 집착하여 구하지 말아서 마땅히 구하는 바가 없어야 하느니라.

 

부처에 집착하여 구하지 않기 때문에 부처랄 것도 없으며, 법에 집착하여 구하지 않기 때문에 법이랄 것도 없으며, 대중에 집착하여 구하지 않기 때문에 승(僧)이랄 것도 없느니라."



  

진본 불설팔양신주경은 동방과 매우 관련이 깊은 경전이고, 그 활용본인 불설천지팔양신주경도 역시 동방과 매우 관련이 깊습니다.

그렇기에 동방과 매우 관련이 깊으면서 팔양경의 마인드를, 천지팔양경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두 보살님이 등장하신 것입니다.

 

즉, 집착없는 마음을 강조하기 위해 무애보살이...

무변신보살의 몸은 여러 부처님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볼 수 없다라는 내용을 통해,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마음을 연구하는 유가학파의 유식사상을 강조하기 위해 무변신보살이 등장한 것입니다.

 

 

자! 이제 무애보살과 무변신보살이 어떤 분인지 대략적으로 이해를 하셨을텐데요.

두 보살님의 특징을 머리속에 잘 기억하시고 천지팔양경의 번역본을 다시 한번 보시면...

그 내용과 와닿는게 평소와는 조금 다를 것입니다.

 

천지팔양경은 원래 이렇게 읽는 것입니다.

 





 



팔양경의 누진화에 대해서...

 

 

천지 팔양경에는 팔보살에 대한 명호와 함께 불설팔양신주경에는 등장하지 않는, '누진화'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어떤 분은 이 경전에는 보살마하살이 아니라 보살누진화라고 되어 있다라는 식으로 소개를 하는데...
그건 전체적은 흐름보다는 글자 그대로 접근했기 때문에 생기는 폐혜입니다.

 

이제 그 비밀을 공개합니다.

 

천지팔양경은 팔보살과 매우 깊은 경전이고, 팔양경의 핵심명호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 누진화라는 단어가 붙은 이유는, 팔보살의 명호만큼이나 중요한게 번뇌를 여의는 것이라는 것

강조하기 위해 팔보살의 명호와 함께 8번이나 반복한 것입니다.

 

사실 한국에서는 누진화(漏盡化)라고 되어있지만, 중국에서는 누화(漏化)라고 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누화는 유루무루(有漏無漏)를 의미하며 간단하게 번뇌가 있고 없고를 의미합니다.

 

또 유루는 12처중 10처를, 무루는 12처중 2처를 말하고...
간단하게 유루단은 육근청정 수행을 무루단은 열반증득 수행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천지팔양경의 전체적인 내용과 또 겹치죠? ^^

이게 바로 팔보살 명호 옆에 붙은 누진화/누화의 비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된 천지팔양경의 전승에서는, 보살의 명호와 구분합니다.

 

발타라보살(跋陀羅菩薩) [누진화(漏盡和)]
나린갈보살(羅隣渴菩薩) [누진화(漏盡和)]
교목두보살(嬌目兜菩薩) [누진화(漏盡和)]
나라달보살(那羅達菩薩) [누진화(漏盡和)]
수미심보살(須彌深菩薩) [누진화(漏盡和)]
인저달보살(因抵達菩薩) [누진화(漏盡和)]
화륜조보살(和輪調菩薩) [누진화(漏盡和)]
무연관보살(無緣觀菩薩) [누진화(漏盡和)]

 





 

 


천지팔양경을 수행하여 미치는 사람들이 생기는 이유와 그 대처방안...

 

 

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에 보시면 아래와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밀교의 주문 가운데 하나로서 조선후기 재야의 도사들이 많이 사용하였던 주문이 천지팔양경(天地八陽經)이라고 하는 주문인데, 천지팔양경을 외우던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미쳐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밤중에 팔양경을 외우던 도중, 갑자기 방안의 천장이 열리면서 머리에는 뿔이 나고 키가 10미터는 될 법한 왕방울만한 눈을 가진 괴물 같은 신장들이 부라리며 나타나 "왜 나를 불렀느냐?"고 물었을 때, 그 광경을 목격한 주문수행자가 기절했다는 사례를 접한 적이 있다. 물론 다른 사람이 볼 때 이는 일종의 정신적 착란현상이지만, 당사자에게는 실제로 다가온 현실이었다. 현실은 현실인데 가상현실이다.



 

위 글은 천지팔양경을 수행하다가 미친 사람들이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천지팔양경이 아니라 금강경, 반야심경, 카톨릭의 성경, 이슬람교의 코란을 독송했어도

미쳤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입니다.

 

 

????
이게 도데체 무슨소리일까요?
만약 제 얘기가 이해가 되신다면 천지팔양경의 번역본 정독을 매우 잘하신 분들일 것입니다. ^^


이를 이해할려면, 먼저 재야의 도사들이 왜 천지팔양경을 많이 독송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신통력을 얻기 위해
깨달음을 얻기 위해

 

대부분이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 때문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신통력을 얻기 위해 수행을 하는 것은 수행의 시작으로서 절대 나쁘지 않는 선택이지만...
수행을 하면서 그러한 부분을 놓아버릴 수 있어야 제대로 수행을 하는 것인데,
도리어 수행을 하면서 깨달음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신통력에 대한 과도한 욕심

그리고 수행을 한다는 것으로 인해 타인보다 대단해 보이는 듯한 착각으로 자만심이 생기는 것,

이 3가지가 모두 일정범위를 넘기면 게임오버(Game Over)입니다.

 

즉, 미칠만한 상황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지요.

 


 



천지팔양경은 집착없는 마음을 가지라고 강조하고 또 강조합니다.
그런데 팔양경의 가르침을 매일같이 입으로 소리내어 외우면서
그 마음은 청개구리처럼 팔양경의 가르침을 거꾸로 행하는데 어떻게 무언가를 얻을 수 있겠나요?

그리고 영적인 존재들이 얼마나 얼마나 속이고 이용하기 좋은 상태이겠나요?

 

한가지에 과도하게 집착하여 몰입하게 되면 주변을 잘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기에....
영화나 드라마에서 악당이 과도한 욕망에 휘둘리는 사람을 교묘하게 나락에 떨어뜨리는 내용이 나오는 것이죠.


즉, 가장 중요한 자기마음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에 미치는 것입니다.
이제 이해되시죠? ^^


처음에는 신통력과 깨달음에 대한 마음의 에너지로 천지팔양경을 시작하여,
점차적으로 천지팔양경에 의지하여 신통력과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놓으면 미칠 일도 생기지 않습니다.

 

여기서 천지팔양경에 의지한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다면 천지팔양경을 독송하여 미친다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얘기인지 깨닫게 되고....

단순하게 독송만 하는건 천지팔양경의 본연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게 경문만 툭 던져주고 수행을 전했다고 하는 부류와 제대로 된 전승을 통해 가르침을 받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천지팔양경은 수행 매뉴얼입니다.

 

   

천지팔양경에는 독송 이외의 별도 수행체계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제가 만난 분들중 팔양경을 수행하시는 분들중에 명확하게 이를 언급하는 분들을 아직까지 한번도 뵙지 못했습니다.

 

 

경전에는 크게 3가지의 수행체계가 언급됩니다.

 

1. 염불&진언수행

2. 독송수행

3. 마음수행

 

제 전승에서는 염불&진언&독송수행은 절차에 따른 의궤로서 전해지고 있으며....

마음수행은 12연기를 중심으로 공/유식 사상을 공부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천지팔양경에는 12연기는 아함경 180권, 공사상은 대지도론 100권, 유식사상은 유가사지론 100권을 보고

공부하여 자신의 마음을 연구하라고 하였습니다. 최소 약400권의 책을 보고 이해해야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기에 재야의 도사들이 천지팔양경을 독송하여 미치는 일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글자 그대로 경전에서 하라는 것(12연기, 공/유식 사상 공부)을 하지 않고,

거꾸로 하지 말라는 것(과도한 집착과 욕심)을 했기 때문이죠.

 

이건 근현대로 넘어오면서 한자를 제대로 몰라 천지팔양경의 내용자체를 잘 모르는 재야의 도사&무속인들이

지혜롭게 수행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지, 제대로 된 전승에서는 자의적으로 미치고 싶어 노력해도

미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도리어 마음이 진정되고 마음을 다스릴 힘이 생기게 되니까요....

 

어제 언급한 천지팔양경을 독송하고 미치는 사람들은 금강경이나 반야심경, 카톨릭의 성서, 이슬람교의 코란을 독송해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한 것이 더 이해가 되시죠? 그런 분들은 과격하게 얘기하면 판타지소설을 읽고 미칠 수도 있습니다. ^^;

    

이러한 연유로, 과거에 천지팔양경을 하늘에서 내려받아 글로 표현하신 분은 유가행파의 수행자라고 한 것이고....

이번 글에서는 천지팔양경을 수행 매뉴얼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제 다시 천지팔양경을 정독해보시면 좀 더 눈에 띄는 것들이 많아지실 것입니다.

 





 


 

불설팔양신주경과 천지팔양주경의 연결포인트...

 

 

오늘은 천지팔양경이 불설팔양신주경을 베이스로 하였다는 내용을 좀 더 보충하고자

불설팔양신주경과 천지팔양신주경의 연결포인트를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불설팔양신주경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동방팔불과 그 이론이 메인이고 팔보살은 서브가 됩니다.
그런데 천지팔양경은 과감하게 동방팔불을 제외하고 대승불교의 보살도 마인드로 팔보살을 메인으로 하여

동방팔불의 핵심이론을 공/유식사상과 연결한 다음 당시 시대적상황에 알맞게 해설합니다.

 

보통 두 경전이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근본적으로, 동방팔불의 이론을 팔보살이 보호하는건 동일합니다.

 

거기에 동방팔불 이론을 뒷바침해줄 분으로서 무애보살이...

대반야경의 공사상과 유가행파의 유식사상을 뒷바침해줄 분으로서 무변신보살을 등장시켰습니다.

즉, 보살 분들과 공/유식사상을 도입하여 동방팔불의 이론의 당위성을 견고하게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설팔양신주경에는 없는 팔보살의 원력을 진언으로 표현하여

팔보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였습니다.

 

이것이 불설팔양신주경이 천지팔양신주경으로 연결되는 포인트입니다.

 





 



 예서원 간략해설 : 발타라 존자는 16나한 또는 18나한중 6번째, 오백나한중 496번째에 해당되는 분으로 과강나한, 발타화보살 또는 발타라보살이라고 불립니다. 천지팔양경의 팔보살중 한분이기도 하며, 시주자가 스님들을 위해 대시회 혹은 대복회 혹은 5년 무저시회를 열면 스님의 모습으로 오신다고 알려져 있지만 시주자는 발타라보살께서 가셨을 때에야 보살님께서 오셨다 가셨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발타라 존자의 이야기는, 천지팔양경의 전체적인 내용과도 연관된 내용이기에 한번 보시면 좋을듯 싶어 올립니다. 참고로, 바로 아래의 내용은 오백나한 번역본에 있는 발타라 존자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리고 아래의 내용은 발타라보살의 서원입니다.


발타라보살인 내가 즐겨 설하고자 하는 여덟 가지 보살의 미묘한 행[妙行]이 있다. 어떤 것들이 그 여덟 가지 일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섯 가지 혼탁한 세계에 살고 있으면서 중생들을 구제하되 피곤해 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모든 중생들이 복이 될 일을 하는 것을 보면 그 일을 보호하고 도와주되 오염된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남들이 악한 짓을 하는 것을 보면 돈독하게 타이르고 꾸짖고 간청하여 그가 버리고 떠나게 하는 것이요, 넷째는 어려운 일을 당하는 사람이 있으면 가엾고 불쌍하게 여겨 돕고 구제하되 마치 어미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처럼 하는 것이다. 다섯째는 와서 구하는 사람이 있으면 신명까지도 아끼지 않는 것이요, 여섯째는 난처한 일에 처해 있는 사람이 있으면 붙들어 도와주고 인도하여 어려운 일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며, 일곱째는 삿된 견해를 가진 사람을 보면 가엾고 불쌍하게 여겨 잘 타일러서 그가 바른 견해를 얻게 하는 것이요, 여덟째는 중생들을 잘 보살피고 길러 주되 마치 갓난아이 돌보듯 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공덕을 다 베풀어 주어 함께 무상보리[無上菩提]에 회향하는 것이다. 이것이 보살이 한량없는 중생들을 이익이 있게 하는 여덟 가지 일이다.


 

 

발타라 존자 이야기

 


발타라 존자는 평소 깨끗함을 좋아하여 틈만 나면 목욕을 했다.

 

인도의 날씨는 일 년 내내 더워 발타라 존자는 날마다 강물에 뛰어들어 수영을 하든지 우물가에 앉아 시원한 샘물을 퍼올려 몸에 끼얹곤 했다. 몸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지만 발타라 존자는 하루에도 수무 번씩 너무 지나치게 하다 보니 시간을 낭비할 뿐만 아니라 꼭 해야 할 일까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밥 먹을 때가 되어 모두 줄을 서서 식당으로 들어가는데 발타라 존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 때까지 목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목욕을 마치고 느지막하게 식당에 가면 반찬은 다른 사람이 다 먹어치우고 남은 것은 빈 그릇뿐이라 맨밥을 먹는다든지 굶어야할 때도 많았다.

 

또 어떤 때는 모두 대전에서 경을 읽고 찬미가를 부른다든지 참선하는 저녁 수업을 하는데 발타라 존자는 그 시간도 참지 못하고 몰래 빠져  나가 목욕을 했다. 그뿐이 아니다. 심지어 남들이 잠을 자는 한밤중에 일어나 모욕을 하기도 했다.

 ‘이 세상 모든 것 가운데 목욕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어 나는 하루 밥을 안 먹으며 안 먹었지 목욕을 안 하고는 살 수 없어!’

 

 그런 발타라 존자의 괴상한 습관을 옆에서 지켜보던 어떤 사람이 석가모니 부처님께 이야기를 했다.

 “부처님 발타라는 하루에도 수십 번 목욕을 하는데 정말 별난 습관을 가졌지요?”

 “그래? 정말 별난 사람이군.”

 

 하루는 부처님이 금방 목욕을 하고 나오는 발타라 존자를 불러 세웠다.“

 “말타라, 목욕하고 오는구나.”

 “예, 그렇습니다.”

 “너는 목욕하기를 그렇게 좋아한다면서?”

 “예, 아주 좋아합니다.”

 “어째서 목욕하기를 그토록 좋아하는가?”

 “목욕을 하면 몸에서 땀 냄새가 나지 않아 기분이 상쾌합니다.”

 

 부처님은 빙그레 웃으며 다시 말씀하셨다.

 “그렇지, 아주 개운하지. 목욕을 하면 다섯 가지 좋은 점이 있는데 그것이 뭔지 아니?”

 

 부처님은 갑자기 그렇게 묻자 발타라 존자는 한동안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기만 했다.

“목욕은........ .”

“내가 대신 이야기해 주지. 첫째는 몸에 앉은 때나 먼지를 떨어 벌릴 수 있고, 둘째는 몸을 늘 깨끗하게 지킬 수 있으며, 셋째는 피로를 풀고 몸살 같은 작은 병을 괴칠 수 있고, 넷째는 몸을 늘 건강하게 지킬 수 있으며, 다섯째는 몸과 마음을 상쾌하게 할 수 있지.”

 

 그러자 발타라 존자가 말했다.

 “예, 물로 몸에 묻은 더러움을 깨끗하게 씻어 내는 것입니다.”

 

 발타라 존자의 자신 있는 대답을 듣고 석가모니 부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발타라, 목욕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야. 그런 목욕은 몸에 묻은 더러움은 씻을 수 있지만 마음속에 있는 더러움은 씻어 낼 수 없는 거야.” 

 “마음속의 더러움이라고요?”

 

 발타라 존자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참된 목욕은 몸에 묻은 더러움을 씻는 것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속의 더러움까지 말끔히 씻어 내는 거란다.” 

 “부처님, 그럼 어떻게 해야 몸 안팎의 더러움을 모두 깨끗이 씻어 낼 수 있습니까?”

 

 발타라 존자는 몹시 궁금하여 다급하게 물었다.

 “목욕을 할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씻어야한다. ‘내 마음은 늘 욕심과 자만과 비겁함과 좁은 마음과 질투와 분노등 많은 번뇌로 가득 차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맑은 물로 그 모든 더러움을 씻어 버릴 수 없지만 모욕할 때마다 잊어버리지 않고 계속한다면, 어느 날 몸도 마음도 모두 깨끗하게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자상하게 가르쳐 주셨다.

 “예 ,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발타라 존자는 부처의 가르침을 받고 그제서야 목욕의 참된 뜻과 방법을 알았다. 발타라 존자는 그 날부터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되로 하여 얼마안 가 진리를 깨우치고 아라한이 되었다. 뒤에 발타라 존자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몸의 더러움을 씻어 내는 목욕은 평범하고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수행의 좋은 방법가운데 하나입니다. 나도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보이는 더러움만 씻었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은 뒤로는 마음속에 묻은 보이지 않는 더러움까지도 씻어 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앞으로 그런 방법으로 목욕을 하십시오. 그러면 곧 성불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발타라 존자는 뒤따라오는 수행자를 위해 진리를 터득하는 빠른 길을 가르쳐 주었고 불법을 깨우칠 수 있도록 도움을 많이 주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발타라 존자에게 물었다.

 “존자님, 보이는 더러움은 물로 씻어 낼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더러움은 어떻게 씻어 냅니까?”

 “그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나쁜 생각을 품지 않으면 됩니다. 나쁜 생각은 바로 마음속의 더러움이 되어 곧 나쁜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니 늘 아름다운 생각, 착한 생각을 하면 마음속에 더러움이 생기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로 씻어 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씻어 내는 것입니다.”

 

 발타라 존자는 자기가 목욕을 좋아하였기에 남과 이야기할 때도 언제나 목욕하는 것을 비유하여 불법을 가르쳤다. 우리가 목욕을 할 때 올바른 생각을 하지 않고 엉뚱하고 나쁜 생각을 하면 갑자기 귀가 아프다든지 엉덩이가 따끔따끔할 때가 있는데 그것은 발타라 존자가 몰래 와서 정신을 차리라고 벌을 주는 것이라고 한다.

 

 

출처 : http://blog.daum.net/01193704043/8643734







 



천지팔양경에 의지하여 수행할 때 주의해야할 사항....

 


※ 전체적인 부분이 아니라 특정부분만 강조하여 편중된 설명이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천지팔양경에는 택일이나 사주궁합, 풍수 등은 다 헛된거라고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 무조건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면 구설수나 분쟁의 여지가 생기기 쉽습니다.

 

불교적인 입장에서 불성이라는 근본적인 부분으로 보자면 택일이든 사주든 주술이든 다 의미가 없습니다.
부처님이 살아생전에 택일이나 사주, 풍수, 주술 등을 가르치신 적이 없는게 그 증거지요....

 

또 대승불교적으로 보면 몇만년이냐 몇백만년이냐의 몇겁이냐 몇아승지겁이냐 등의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지금 우리들은 누구나 최종적으로는 부처님이 될 귀한 사람들인데, 그건 수백 수천 수억의 미래생 때나 해당됩니다.

 

이 이론대로 하자면 시공을 초월한 미래지향적인 부분으로 본다면 현생에 잘살든 못살든....
정상적으로 태어나든 기형아로 태어나든, 사주, 풍수, 택일 역시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어떻게 태어났든 그냥 열심히 불성을 닦아나가다보면 언젠가 부처님이 될테니까요.

 

그런데 지금 힘든 상황에 다음생에 행복할 것이라는 것을 두고 스스로 자위하는 사람은 이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매일같이 모진 고문을 받는 사람에게 당신이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면 정말 행복한 삶이 기다릴 것이라고
그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하지 않냐고 한다면 욕 안먹으면 정말 다행일 것입니다.
지금 너무나 고통스러운데 다음생은 무슨 다음생이냐고요....

 


또한 유식사상이나 공사상으로 봐도 각종 점술이나 주술 등 여러 방편법들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닙니다.
마음을 연구하여 마음을 제대로 다스리고 불성을 깨닫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대부분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주, 기문둔갑, 자미두수, 현공풍수, 구성기학, 부주술 등등 다양한 방편들을 통해....
현생에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고 좀 더 나은 상태에서 수행을 해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것들이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굳이 수행을 하기위해서가 아니라도, 이 한생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게 여러 방편법들입니다.

 

천지팔양경은 현생의 위안을 복잡한 방편법들 보다 부처님과 보살님의 가피로도 가능하다고 설명하는 것이고요.
이러한 부분을 명확하게 캐치하지 못하면 스스로 분쟁의 여지를 만드는 상황이 되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즉, 평온하게 수행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마장을 만들어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천지팔양경은 택일 등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지,

경문의 내용으로 여러 방편법을 행하는 타인과 분쟁을 하라고 언급하지 않았으니까요....

 

이 부분을 명확하게 이해를 하시면, 일단 팔양경을 통해 생길 수 있는 분쟁에 대한 마장을 피할 수 있게 됩니다.

 






 

천지팔양경의 녹명서로 복덕을 판단하는 방법...

 


천지팔양신주경이 당나라 시대에 등장하였고 녹명서는 당사주라고 이미 과거 글을 통해 밝혔습니다.

 

http://cafe.daum.net/yeseowon/UTln/234
http://cafe.daum.net/yeseowon/UTln/235

 

 

아래는 천지팔양신주경의 경문내용중 일부입니다...



선남자야 결혼을 하려고 할 때에 수화가 상극이 된다고 하거나 표와 태가 서로 눌리운다거나 나이가 맞지 않는다고 따지지 말고 다만 녹명서를 보면 복덕이 많고 적은 것을 알 수 있으니 그것으로 권속을 삼고 친영하는 날에 이 경을 세 번 읽고 성례를 하면 좋은 일만이 항상 지속되고 광명이 서로 모여서 가문은 높아지고 사람은 귀히 되며 자손은 흥성하되 총명하고 지혜롭고 재주 있고 솜씨 좋고 효도하고 공경 잘 하며 대대로 이어가면서 크게 길하고 이로울 것이요. 명이 짧아서 요절하는 일이 없고 복덕이 풍성하고 모두 불도를 이루리라.




팔양신주경에서는 배우자를 결정할 때 복잡하고 어렵게 보지 말고,
녹명서로 복덕이 많고 적음으로 판단하라고 했습니다.


자! 그럼 녹명서를 통해 복덕이 많고 적음은 어떻게 알까요?


녹명서란, 사람의 그릇을 판단하는 비법을 의미합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사주를 지칭하는데 현재의 사주체계는 당시에 없었으므로,

가장 오래되었다고 평해지는 당나라의 사주인 당사주를 중심으로 설명하겠습니다.


당사주에는 총 12개의 별이 등장합니다.

천귀성 천액성 천권성 천파성 천간성 천문성 천복성 천역성 천고성 천인성 천예성 천수성


여기서 복덕이 많고 적음을 판단해야한다고 했죠?


복덕이란 당사주의 길성을 의미하며, 복덕이 많고 적음을 판단하는 방법은 길성이 몇개인지로 판단합니다.
즉, 간단하게 생년월일시에 '천귀성 천권성 천복성 천문성'이 몇개 들어있는지로 판단합니다.

 

이론적인 부분으로는 이것으로 끝내고, 실제적인 부분에서는 당연히 그 사람의 소양이나 자질 등을 봅니다.

그 이후에는 독송수행을 꾸준히하여 재앙을 소멸시키고 복덕을 더욱 쌓아가도록 합니다.

 

이게 끝입니다.

 

녹명서라는 낯선 명칭 때문에 사람에 따라 판타지한 생각을 하는 분들이 계셔서 그냥 공개합니다.

이로인해 더이상 헤매는 분들이 계시지 않으리라 믿고 이만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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