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慈悲)란, 모든 중생에게 행복을 베풀며, 번뇌를 제거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종교에서 강조하는 것이 자비이지, 자기 홀로 행복하라고 하는 곳은 없습니다.
하지만 자비는, 수많은 종교와 언어를 초월하는 그 무엇입니다.
나 자신도 먹고 살기 힘든데, 왜 자비를 베풀라고 하는 것일까요?
자비를 베풀면 자기자신에게 어떠한 영향이 있기에 옛 성현들께서 자비를 강조하셨을까요?
또 자비만 있으면 만사OK일까요?
4개의 그림을 보며 간략하게 설명해보겠습니다.
자비(慈悲)와 지혜(智慧)를 새가 하늘을 날 때 사용하는 두 날개로 비유할 수 있으며,
자비와 지혜 두 날개가 서로 돕고 균형을 잡아줍니다.
자비심을 냈는데 지혜가 없다면, 그저 불쌍하다 안되었다 라고 밖에 말하지 못합니다. 설사 남을 돕더라도 그 결과는 생각처럼 좋지만은 않으며 심지어 피해를 줄 수도 있습니다. 지혜는 있지만 자비심은 없다면, 타인의 고통을 무시하고 그냥 자기 갈 길을 갈 것입니다. 하지만 지혜가 있는 사람이 자비심을 낸다면, 지혜를 통해 타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비와 지혜는 서로 돕고 균형을 잡아주는 것입니다.
티벳의 몇몇 높으신 분들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법회를 열어 참가한 중생들의 업을 안고 가겠다 하시는 것은 그분들께서 모두 그만한 업을 감당할 지혜가 있으신 분들이기 때문에 그러한 자비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지혜의 역량에 따라 자비를 베푸는 것이 제일 첫 번째로 중요한 것입니다.
자비의 행위는 지혜로서 구하고, 판단합니다.
즉, 자신에게 주어진 지혜의 범위 내에서 자비의 행위를 행합니다.
자신이 법술을 잘 하여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그 사람이 정말 딱하고 불쌍한 사람을 만나 자비심을 내어 자신의 역량을 뛰어넘는 일을 해주게 된다면 법술의 효과가 미비하거나 설사 효과가 있더라도 법술을 행한 사람이 다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벤치프레스 10kg의 무게를 겨우 들 수 있는 사람이 30kg의 무게를 들 수 없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30kg의 무게를 들려다가 도리어 무게에 눌려 다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역량이 부족하거나, 또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인연이 아니라면 우회를 하거나 거절을 해야 합니다. 비단 법술만이 여기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사 모든 일이 다 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지혜의 역량에 맞추어 자비심을 내어 행동해야 합니다.
지혜(智慧)의 운용은, 자비(慈悲)가 배경이 되어야 합니다.
왜 자비가 배경이 되어야 할까요? 그것은 자비가 배경이 되지 않게 되면 결국 사도(邪道)로 빠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도로 빠지게 되면 어항의 물(자비)이 사라져 물고기가 죽는 것처럼, 지혜로서 사람을 해치게 되고 그로 인하여 비명횡사를 하고 다음 생이란 것이 있다면 또 그 업을 풀어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에게 검도(劍道)에 대해 알려주지 않고, 진검부터 준다면 집안은 곧 엉망진창이 될 것이고 타인이 검에 베여 다칠 수도 있으며 심지어 아이가 검에 베여 다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욕심과 집착, 아집 등이 많은 사람에게 진검을 준다면 곧 타인이 다칠 것입니다. 욕심과 집착, 아집 등이 많은 사람에게 한 나라를 움직일 수 있는 지혜를 주게 되면 그 순간부터 그 사람은 걸어 다니는 재앙으로 바뀌게 되고 결국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지혜가 독으로 변해 자신을 망치고 더 크게는 한 나라를 망치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대가는 온전하게 모든 대가를 치루기 전까지 다음 생에도 그 다음 생에도 끊임없이 이어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의 운용은, 자비가 배경이 되어야 합니다.
자비심(慈悲心)을 중하게 여기며 지혜(智慧)를 높으면, 번뇌(烦恼)가 점점 더 적어집니다.
자비심과 지혜는 번뇌와는 정반대의 작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비와 지혜가 증가하면 번뇌는 감소합니다. 반대로 자비와 지혜가 적으면 번뇌는 점점 더 커집니다. 이러한 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수많은 생각들이 아무리 많이 나도 결국 하루는 24시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만약 자비와 지혜의 생각들이 12시간 동안 나게 된다면? 그 12시간 동안은 번뇌가 끼어들지 못합니다. 하지만, 남은 12시간은 번뇌가 언제든지 끼어들 수 있습니다. 만약, 24시간 동안 번뇌가 그 어디에도 끼어들지 못한다면? 번뇌가 사라질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를 불교에서는 아라한의 경지라고 부르며, 도교에서는 천선의 경지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태에 도달했더라도 완전한 끝이 아닙니다.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합니다.
이제 자비와 지혜를 어떻게 증가시키고 사용해야하는지 아시겠나요?
바로 이걸하기 위해 수많은 수행법들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에게 자비와 지혜가 가득하시길 기원드리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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