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성좌(十二星座): 별자리는 중국에 어떻게 전래되었는가?
글: 마백용(馬伯庸)
이전 사람들은 얘깃거리가 없으면 날씨를 얘기했다. 오늘 날씨는 어떻고 저떻고...현재는 사람들이 얘기하다가 막히면, 이전보다 풀기 쉬워졌다. 날씨 이외에 별자리(星座)를 얘기하면 된다. 별자리는 좋은 것이다. 이것을 얘기하기 시작하면 누구든지 줄줄이 얘기를 끄집어 낼 수 있다. 무슨 아무나 건드려도 좋지만 처녀자리(處女座)는 건드리지 말라든지, 사장을 찾을 때 황소자리(金牛座)는 만나지 말라든지, 실연에 대하여도 12개의 별자리는 각각 다른 반응을 보인다든지...어쨌든 별자리를 얘기하기 시작하면 국면은 바로 풀어지고, 난감하게 되는 국면은 피할 수 있게 된다.
황도(黃道) 12성좌는 중국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외래품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그리스신화와 관계있다는 것만 알고 있지, 기실 그것의 원래 원산지는 고대 바빌로니아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의 천문학 지식은 아주 발달하였다. 왜 그랬을까? 그들이 특별히 총명해서가 아니다. 바빌로니아는 지금의 이라크인데, 지세가 평탄하여 일마평천(一馬平川)이다. 하늘의 별을 관측하기 아주 쉽다. 그들은 전체 황도를 춘분에서부터 나누기 시작하여 12등분을 하고, 하나 하나를 "궁(宮)"이라 부른다. 그들은 이들 천문기록을 <Enuma Anu Enlil(아누신과 엔릴신)>의 점토판에 써서 후세에 전해 주었다.
바빌로니아인의 황도12궁은 나중에 그리스로 전해지고, 그리스신화와 결합되어, 초보적으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별자리순서가 형성된다. 나중에 이 것은 스리스인의 손에서 다시 인도로 전해지고, 산스크리트어 불경에 흡수된다. 다시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면서 십이성좌도 따라 들어오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12성좌가 새로운 것이라고 생각해서, 중국에서 유행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우리가 찾을 수 있는 한문자료를 보면, 가장 먼저 12성좌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은 수나라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나라 개황초기, 천축에서 고승이 한 사람 온다. 이름은 나련제야사(那蓮提耶舍)이다. 이 고승은 불경을 가득 가져 왔고, 친히 번역했다. 그의 손으로 번역한 경문을 <대방등일장경(大方等日藏經)>이라 부른다. 이 경문에 이런 기이한 이야기가 적혀 있다:
한 큰 성(城)이 있었는데, 이름이 첨파(瞻波)였다. 대왕의 이름은 대삼마다(大三摩多)라고 불렀다. 대삼마다는 좋은 사람이었는데, 왕후가 욕심도 많고 색욕도 있었다. 하루는 화원에서 당나귀무리를 보게 되는데 음심이 발동하여 옷을 벗고 당나귀와 교합을 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임신을 하고, 머리와 귀, 입과 눈이 모두 당나귀인 영아를 낳는다. 왕후는 크게 놀라서 그를 버려버린다. 이 당나귀머리의 태자는 여신(驢神)이라고 불리는 나찰여자에게 거두어져서 길러진다. 그리고 열심히 수행하여 큰 스님이 된다. 사람들은 그를 여선인(驢仙人)이라고 불렀고, 인도제갈근(印度諸葛瑾)이라고도 불렀다.
여선인의 이름은 기이했으나, 학문은 아주 컸다. 제석천에서도 와서 친히 천문에 대하여 물어볼 정도였다. 여선인은 감추어 두지 않고, 성수(星宿)의 법을 설명해주었다. 즉, 불교이론에서 천문에 대한 인식을 설명해준 것이다. 한 달여 얘기를 했을 때 여선인은 이렇게 말한다: "구월은 사신(射神)이 주재하고, 십월은 마갈지신(磨竭之神)이 주재하고, 십일월은 수기지신(水器之神)이 주재하며, 십이월은 천어지신(天魚之神)이 주재한다. 정월에는 특양지신(特羊之神)이 주재하고, 이월에는 특우지신(特牛之神)이 주재하며, 삼월은 쌍조지신(雙鳥之神)이 주재하고, 사월은 해신(蟹神)이 주재한다. 오월에는 사자지신(師子之神)이 주재하고, 육월은 천녀지신(天女之神)이 주재한다. 칠월에는 칭량지신(稱量之神)이 주재하고, 팔월에는 갈신(蝎神)이 주재한다."
보라. 완전히 12성좌의 설정이다. 단지 이름이 약간 다를 뿐이다. 예를 들어, 백양(白羊)을 특양이라고 하고, 금우(金牛)를 특우라고 했을 뿐이다. 여기서 '특'이라는 것은 웅성(雄性, 수컷)을 가리킨다. 천녀는 처녀이고, 쌍자(쌍둥이)는 쌍조로 번역했는데, 두 남자를 암시적으로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특별히 언급할 것은 마갈좌(摩羯座, Capricornus, 염소자리)이다. 번역명칭도 '마갈(磨竭)'이다. 이는 산스크리트어의 '마카라(makara)'를 음역한 것이다. makara는 인도신화에 나오는 큰 물고기이다. 긴 코와 날카로운 이빨을 지녔다. 마가라(摩伽羅)라고도 한다. 어떤 사람은 원래 악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원래 고래라고도 한다. <낙양가람기>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항하(恒河, 갠지스강)의 서안에 여래가 있었는데 마갈대어가 되어 강에서 나온다. 12년동안 고기로 사람들을 구한 곳에 탑을 세워서 기념했다. 돌에는 물고기비늘무늬가 있었다." <번역명의집축생>에는 이렇게 해석한다: "마갈, 마가라라고도 한다. 이것은 고래를 가리킨다. 수컷은 경(鯨)이라 하고, 암컷은 예(鯢)라고 한다. 큰 것은 길이가 십여리에 달한다." 당삼장은 <대당서역기>에서 이 괴물을 언급하고 있다. 어떤 상인이 불법을 경멸하였는데,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폭풍을 만나서 먹을 것을 모두 잃고 만다. 그때 돌연 바다 가운데서 큰 산이 나타난다. 이제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산이 아니었고, 마갈어였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것이 바로 그 큰 물고기이다.
마갈좌는 그리스신화에서 가축의 신(牧神) 판(Pan)의 화신이다. 그는 천칭자리(天稱座)와 같이 선택장애증이 있다. 괴물의 추격에 물길로 갈지 땅길로 갈지를 결정하지 못한다. 그 결과 양머리에 물고기꼬리를 가진 괴물이 된다. 제우스는 이 모양이 아주 아름답다고 여기고 그것을 벽에 걸어둔다. 그리하여 하늘의 별자리가 된 것이다. 십이성좌가 인도에 전해진 후, 아마도 인도인들은 Capricornus의 모양이 너무 기괴하다고 여겼고, 번역하기 쉽지 않아서인지, 현지의 괴물로 바꾸어 부르게 된다. 마갈의 주체는 물고기이다. 그리고 상반신은 여러가지로 변신할 수 있다. Capricornus와 약간은 유사하다. 그래서 아예 Makara로 Capricornus를 대체하게 된 것이다.
나머지 11성좌의 이름은 모두 의역이다. 그런데, 오로지 이것만 음역이다. "마갈"은 중국인에게 있어서 발음하기도 어렵고 기억하기도 쉽지 않다.
이 문제는 당나라때가 되어서야 해결된다. 개원연간에, 대당에는 스리랑카에서 중국으로 한 고승이 온다. 그의 이름은 불공(不空)이었다. 불공은 내력이 범상치 않다. 그는 불경한역의 오대자막조의 일인이고, 개원삼대사의 으뜸이다. 그는 <분수사리보살급제선소설길흉시일선악숙요경>이라는 경전을 번역한 바 있다. 간칭하여 <숙요경(宿曜經)>이라 한다. 이 경전은 불교경전이라기보다는 <10분만에 공부하는 인도 점성술>과 같은 책이다. 그 안에는 고인도의 여러가지 점성술이론을 소개하고 있다. 나중에 일본의 공해(空海)라는 스님이 이를 배워가서, 일본특색의 성요점성술을 발전시키게 된다.
이 경문에는 십이성좌가 두번 나타난다. 두번의 번역명칭은 서로 조금 다르다. 왜냐하면 불공이 구술한 것을 두 제자 사요(史瑤)와 양경풍(楊景風)이 각각 초고와 수정을 맡았는데, 두 사람은 서로 상의하지 않아서 번역명칭이 통일되어 있지 않다.
상권에는 여전히 나련제야사의 번역명칭을 사용한다. Capricornus를 '마갈'로 번역한다. 그러나 하권에서는 '마갈(磨竭)'을 '마갈(摩羯)'로 고쳐 버렸다. 이 번역명칭은 아주 재미있다. '갈(羯)'의 글자는 원래 불알을 깐 숫양을 가리킨다. 발음은 '마갈'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리고 Capricornus가 반양(半羊)이라는 것과도 들어맞는다. 이렇게 하여, '마갈'의 발음은 고인도의 큰 물고기라는데서 나왔지만, '갈'은 숫양이라는 뜻도 가지게 되어, 이 두 글자를 가지고 산스크리크어와 한어의 이중어원으로 Capricornus의 반어반양(半魚半羊)을 잘 표현하게 되었다. 이는 고금제일의 정묘한 번역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런 괴이한 명칭은 오늘날까지도 전해지는 것은 그 이유가 있는 법이다. 이 번역이 도대체 양경풍의 작품인지, 사요의 작품인지는 알 수가 없다.
말이 나온 김에 한 마디 더 하자면, 이 마갈은 중국문화에 또 다른 하나의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의 이미지는 수나라 당나라때 일종의 서수(瑞獸)로 되어, 자주 절의 조각, 용기무늬장식과 묘장조각에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는 점점 용수(龍首), 수각(獸角),조시(鳥翅), 잉어신(鯉魚身)등 중국사람들이 좋아하는 길상원소가 된 것이다. 그리고 문화재분야에서는 전문용어까지 나온다. 바로 마갈문, 즉 그 이름도 유명한 어룡문(魚龍紋)이다.
<숙요경> 의 12궁의 번역명칭의 이슈는 마갈 만이 아니다.
예를 들어 쌍둥이자리(雙子座)는 나련제야사가 "쌍조(雙鳥)"로 번역했었다. 이것은 아마도 기관(器官)의 형상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숙요경>의 상권에는 '쌍자좌'를 기괴한 글자로 번역했다: "음(婬). <설문>에 따르면 "사일(私逸)'이라고 해석했다. 소위 '사일'은 중국의 간부들이 최근 들어 자주 범하는 범죄이다. 바로 간통이다. 이것은 '음(淫)'의 이체자(異體字)라 할 수 있다. 그저 약간 숨기는 정도라고나 할까.
<숙요경>의 원문은 이렇게 쓰여 있다: "제십일기자이족(第十一其觜二足). 삼사족(參四足), 정삼족(井三足). 진성위언(辰星位焉). 기신여부처(其神如夫妻). 고명음궁(故名婬宮). 주태임자손지사(主胎姙子孫之事). 약인생속차언자(若人生屬此言者). 법합다처첩득인애경(法合多妻妾得人愛敬). 합장호약지임(合掌戶鑰之任)"
이게 무슨 상황인가? 쌍동이자리의 기원은 스파르타의 왕비 레다의 쌍동이아들이다. 어떻게 하여 남녀간의 관계로 되어는게, 어찌 "모습이 부부와 같다(神如夫妻)"고 하게 되었을까?
다시 <숙요경> 하권의 기록을 살펴보면 이제는 '음궁'이 아니라, 아예 '남녀궁(男女宮)'으로 번역했다. 더욱 직접적이 된 것이다.
두 제자의 기록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불공화상의 구술에 문제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한가지 견해로는 이 '음'은 기실 '요(媱)'라고 한다. 이 글자의 <설문>에서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곡견행모(曲肩行貌), 일왈희야(一曰戱也),미호야(美好也)" 두 아이가 서로 노는 것으로 보면 쌍동이의 모습과 유사하다. 다만 음, 요 두 글자는 너무 비슷해서 베껴쓸 때 잘못 썼을 수는 있다.
그래서 <숙요경>은 여기서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후 각 경문과 기록에서는 일률적으로 남녀궁이라고 적게 된다. 그리고 해석도 남녀간의 일과 관계시키게 된다. 송나라때 <난니계습박라천설지륜경>에는 번역자가 '남녀'라는 두 글자가 너무 노골적이라고 생각해서 아예 '음양궁(陰陽宮)'이라고 바꾸게 된다. 잘못된 방향으로 계속 나아간 것이다.
이 오해는 일찌감치 명나라초기의 <명역회회천문서>에서 한번 바로 잡은 바 있다. 이 책은 아랍점성술이고, 십이궁에 관한 논술도 인도에서 온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더욱 정확했다. 여기에서는 쌍동이자리를 "양동자병립(兩童子幷立)"이라고 적었다. 제대로 시정된 셈이다. 아쉽게도 전통의 역량은 너무 강했다. 나중의 <칠정추보>, <서역회회력>등의 책에서는 여전히 '음양궁'이라는 번역을 고수한다. 청나라말기까지 계속 그러했다.
유사한 경우는 '처녀자리(室女座)'에서도 나타난다. <숙요경>에서는 "쌍녀(雙女)"로 번역했다. 나는 처음에 그들이 쌍둥이자리와 처녀자리를 혼동한 것이 아닌가 여겼다. 나중에 <명역천문서>를 읽고서 처녀자라를 "부인이 두 날개를 가지고 있다"로 번역한 것을 알았다. 그제서야 처녀자리의 고성도형상(古星圖形像)에서 날개가 달린 여신이 낱알을 수확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래서, '쌍녀'는 기실 두 날개를 가진 여자라는 뜻이다. 그리하여, 쌍녀라는 말이 이후 전해져 내려갔고, 중국고대에 처녀자리에 대한 주류의 번역명칭이 되었던 것이다.
나머지 성좌의 이름은 형상이 고정되고 간단하여 그다지 많은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없었다. 번역상황도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었다. 양자리(白羊), 황소자리(金牛), 게자리(巨蟹), 전갈자리(天蝎), 천칭자리(天稱), 사수자리(人馬), 물병자리(寶甁), 물고기자리(雙魚)의 몇 개 이름은 모두 <지륜경>에서 먼저 번역된 것이고, 이후 바뀌지 않았다. (또 다른 한 가지 견해로는 오대의 두광정이 <옥함경>에서 최초로 번역했다고 하나, 이 책의 작자와 책이 나온 시간은 모두 의문스러워서 정설이라고 하기 어렵다)
당나라때부터, 십이성좌는 전적과 문물에서 자주 나타난다. 막고굴에서 서하왕궁까지 모두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선화에서는 요나라고묘가 발굴된 바 있는데, 묘주의 이름이 장세경(張世卿)이다. 그의 묘실의 천정중앙에는 동경(銅鏡)이 있는데, 동경의 주변에는 중판연화(重瓣蓮花)를 그렸다. 연화의 주위에는 이십팔수(二十八宿)를 그렸다. 그리고 바깥에는 황도십이궁(黃道十二宮)이 그려져 있었다.
불경(佛經)이외에, 여러 한적(漢籍)에도 십이성좌가 기록되어 있다. 송나라대 부굉(傅肱)이라는 사람이 <해보(蟹譜)>라는 책을 써서 게에 관한 모든 기록을 모았는데, 거기에는 천문이라는 조목 아래에 <석전>을 인용하여 이렇게 썼다: "십이성궁에 거해가 있다(十二星宮有巨蟹焉)"
북송 경력연간에 증공량(曾公亮), 정도(丁度), 양유덕(楊惟德) 등이 군사저작 <무경총요>를 편찬한다. 십이성좌와 십이중기(十二中氣)를 서로 매치시킨다.예를 들어, "춘분(春分), 이월중...후삼일은 백양궁에 들어간다. 그 신은 천괴(天魁, 별이름)이다." "하지, 오월중, 후육일은 거해궁에 들어간다. 그 신은 소길(小吉)이다." 같은 식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이것을 천문학범주로 보지 않고 직접적으로 <출군결승잡점범육임지법>에 넣어두었다. <자미두수>같은 책에도 모두 "가여사자위명(假如獅子爲命), 기행한도지궁(其行限到之宮), 천곡(天哭在寶甁), 대조교한지연말(對照交限之年末), 편가언사(便可言死)"라는 말이 나온다. 사자, 보병은 모두 별자리이다. 완전히 중국의 점술체계에 집어넣은 것이다.
나중에 사람들은 십이궁과 천상의 관계에만 만족하지 못하고, 십이궁을 지방과 연결시키게 된다. 예를 들어, 쌍어(물고기자리)는 병주(幷州)를 대표하고, 보병(물병자리)은 청주(靑州)를 대표하며, 마갈(염소자리)은 양주를 대표하고, 인마(사수자리)는 유주(幽州), 쌍녀(처녀자리)는 형주(荊州), 사자는 익주(益州)등등이다. 이 설정은 점술에서 많이 쓰지는 않지만, 시인이나 소설가들이 많이 사용했다.
진서가(陳恕可)는 <계지향(桂支香)이라는 게를 읊은 사(詞)를 지었는데, 다음과 같다: 서풍고국(西風故國). 기작면내황(記昨免內黃), 몽귀계곡(夢歸溪曲). 환시진성야영(還是秦星夜映), 초상추족(楚霜秋足). 여기에서 '진(秦)'은 진나라땅을 가리킨다. 십이궁으로 나눌 때 거해궁(게자리)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진성은 여기에서 게를 상징한다.
<삼국지평화>에는 맹획의 난 때, 제갈량이 유선으로 하여금 밤에 천상을 보도록 한다. 붉은 기운(赤氣)이 사자궁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익주에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무왕벌주평화>에는 더욱 터무니없는 내용이 있다. 강상(姜尙, 강태공)이 서방의 하늘을 보고 진짜 주군이 어디 있는지 찾는다. 거해궁(게자리)에 자색 기운이 일어나서 서진의 땅에 이어진 것을 본다. 그리하여 기뻐하면서 서기(西岐)로 간다. 타임머신을 타고 너무나 멀리 간 것이다.
그리고 <동한비사>라는 책이 있는데 그 내용은 왕망이 한나라의 황권을 찬탈한 것이다. 사천감(司天監) 왕풍(王豊)이 일어나서 말한다: "신이 어제 밤에 천상을 보았는데, 하늘이 별이 서로 섞이며 자미성의 빛이 밝아지고, 나중에 이십팔수로 들어와서 사성구요의 여러 별이 모두 북궐에 임했다" 그러자 왕망이 어디인지를 묻는다. 왕풍이 아뢰기를, "쌍녀궁에 임하였으니 마땅히 초나라땅입니다. 이를 가지고 판단하면, 이미 남방의 땅에서 태어난 것입니다."라고 한다.
천천히 십이성좌는 자신의 인격과 신화적 이미지를 갖게 된다. 이 일을 가장 열심히 한 곳은 도교이다. <무상황록대재입성의> 제52권에는 자미원열위성군과 천강대성만진절도성군의 명단 가운데 천칭궁존신, 천갈궁존신, 인마궁존신, 마갈궁존신....쌍녀궁존신등 12명의 존신이 있다. 그들을 12궁신성군으로 하여 도교신선으로 모셨다.
현존하는 명나라때 보녕사 수륙견화를 보면, 주로 불교,도교의 여러 신, 지옥의 귀신류이다. 화가는 아주 정교하게 그렸다. 그중에 보병, 금우, 천갈, 거해, 마갈, 천마, 천칭, 쌍녀, 쌍어, 백양, 사자의 십이궁신이 있다. 이것은 이미 완전히 중국의 신화속의 신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십이궁의 현대에 유행하는 명칭을 최초로 번역해서 확정한 사람은 누구일까? 그 사람의 이름은 아마도 들어보았을 것이다. 성은 강이고 이름은 유위. 즉 대명이 자자한 강유위이다.
강유위는 책을 하나 썼는데, <제천강(諸天講)>이라는 것이다. 이십팔세에 붓을 들어, 사후에 비로소 간행되었다.이 책의 주체는 서방의 각종 선진과학이론을 소개하는 것이다. 특히 천문학을. 이 책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된다. 책안에는 많은 정보가 들어 있다. 당시로서는 대단한 내용이다. 예를 들어 그는 달에 대하여 쓰면서, "달은 지구에서 갈라져 나갔고 지구와 가장 가깝다."라고 했는데, 인용한 것은 바로 영국의 천문학자 다윈이 막 발표한 달기원공진설이다. 태양계에 대하여 쓰면서, "나선형의 성운으로 되어 있고, 두 태양이 서로 접근하면 각각 그 인력으로 조류운동이 발생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미국 천문학자 몰튼(Moulton)이 막 내놓은 신무설이다. 그 때는 인터넷도 없었는데, 강유위가 이를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 기타 편에는 <지구는 다른 별이 끌어당겨 남북이 기울어 있다>, <해의 원물질>, <달의 산과 땅은 모두 환형이다>, <흑점> 심지어 <화성인>, <화성은 차가워서 아무 것도 없다고 하는데 이는 큰 오류이다> 이렇게 언뜻 듣기에 SF소설같은 글까지 모두 있다.
말이 나온 김에 언급하자면, 강유위는 이 책에서, 천문학성과를 소개하는데 아주 엄격했으나, 나중에는 갈수록 허황된 얘기들까지 기록한다. 그는 현재 관측할 수 있는 우주는 하운천(霞雲天)이라고 했고, 그 후에 우주는 너무나 넓어서 하늘 밖에 또 하늘이 있다고 했다. 하운천의 밖에는 더욱 큰 천지가 이어져 있다고 하였다. 강유위는 그 때 아마도 할 일이 없었던 것같다. 모두 242급의 천지를 상상해낸다. 이것이 가장 할일없는 일은 아니어다. 그는 매 하늘의이름까지도 생각해냈다. 그중 가장 높은 하늘은 바로 원원천(元元天)이다. 강유위가 평소에 어떤 웹사이트를 자주 방문했는지 이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어쨌든 강유위는 고대 역서, 불경, 명청시대에 번역된 서방천문서적 내지 서방의 근대경전을 정리했다. 책에서 그는 명확히 얘기한다. '쌍둥이자리(쌍자좌)'는 음양궁의 정확한 번역이라고. 이전에 옛 사람들이 잘못 안 것이라고, 그 이후 일남일녀의 음양상(명나라때의 성좌의 모습을 나타낸 상)은 두 남자아이의 형상으로 돌아가게 된다. 나중에 천문서적은 모두 이 번역을 따랐다. 다만 조읍분의 <천지변>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쌍자좌를 "음양정(陰陽井)'이라고 번역했다. 이 우물 정자는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정말 알 수가 없다.
다만 이와 동시에 강유위는 백양, 금우를 "목양(牧羊)", "목우(牧牛)"로 바꾼다. 쌍녀는 "을녀(乙女)"로 바꾼다. 마갈은 "산양(山羊)"으로 바꾼다. 뒤의 두 개는 분명 일본어 번역을 따른 것일 것이다. '실녀(室女)'라는 단어에 관하여 살펴보자면 처음에 Virgo와 연결시킨 것은 1896년 미국인 W M Hayes가 번역한 <천문게요>에서이다. 실녀라는 용어는 전아하고 함축적이므로, 그 후에 이 별자리의 표준번역어가 된다. 청나라말기에서 민국시대까지의 천문서적에는 모두 실녀좌라고 칭한다. 단지 상복원(常福元)의 <중서대조항성록>에서는 이를 열녀좌(列女座)라고 불렀다.
출처 : https://shanghaicrab.tistory.com/16155130
십이생초(十二生肖)의 쥐와 소: 대(大)와 소(小)의 전화(轉化)
글: 장공성조(長空星照)
쥐(鼠)가 십이생초에 들어간 것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 문제가 음미할 만하다. 쥐는 우리가 가장 잘아는 동물인가? 왜 제일 앞자리를 차지했는가?
첫번째 문제에 대한 대답은 그렇다는 것이다. 고대인들은 용이 어떤 모양인지는 모를 수 있고, 호랑이를 본 적이 없을 수도 있다. 가난한 집안에서는 오금육축(五禽六畜)을 기를 능력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쥐를 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설사 오늘날 이미 공업사회에 들어선 도시에서도 모든 야생포유동물이 인류에게 쫓겨났지만, 쥐는 그래도 남아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사람이 거주하는 곳이라면 쥐는 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쥐는 인류에 의지하여 생존한다고.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쥐와 인류의 먹거리는 같다. 그래서 쥐는 인류와 같이 생존한다고 할 수 있다. 믿기지 않으면 산쥐, 들쥐를 보라. 인류를 떠나서도 여전히 생존하지 않는가. 반대로 인류는 여러가지 쥐를 없애는 도구를 발명했다. 이는 사람과 동물의 관계에서 전혀 없던 일이다. 그러나 시종 쥐에 대하여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인류는 비록 이 쥐를 싫어하지만, 쥐의 생존능력은 인정하는 것이다. 특히 민간에서, 사람은 쥐를 싫어하는 동시에, 어느 정도 존경도 한다. 쥐처럼 사람들에게 멸시받는 동물에게도 중국어에서는 "노(老)"자를 붙여주지 않았는가.(쥐를 노서(老鼠)라 부름)
가장 익숙하면서도 또한 존경받을 점이 있으니, 쥐가 십이생초에 드러갔다고 하여 이상할 것은 없다.
두번째 문제, 쥐는 왜 가장 앞자리를 차지했을까? 한가지 견해에 따르면, 쥐가 자시(子時)에 활동하고, 하루는 자시에 시작하므로, 자서(子鼠)가 서로 짝이 맞아서 첫번째가 된 것이라고 한다. 이 첫번째 견해가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쨌든 이 시간에 쥐를 제외한 나머지 포유동물은 모두 잠을 자고 있으니까. 다만 농촌생활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다. 집쥐가 가장 활발하게 돌아다니는 시간은 황혼후 여명전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런 견해는 그다지 당당하게 말하기는 어려울 것같다. 또 한가지 견해로는 이런 것이 있다. 쥐와 소가 누가 더 큰지를 가지고 말싸움을 벌였다. 그때 쥐가 한 가지 제안을 한다. 길거리로 나가서 사람들에게 물어보자는 것이다. 그 결과 쥐가 지나가지 사람들이 모두 "쥐잡아라(打老鼠)"고 소리쳤다. '타노호(打老鼠)'와 '대노호(大老鼠)'는 발음이 같다. 그래서 쥐가 제일 앞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이런 후세문학창작적인 해석은 확실히 원래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쥐가 첫째를 차지한 진정한 원인은 무엇일까? 진정한 원인은 그것이 작기 때문이다. 자(子)의 의미는 작다는 것이다. 작은 사물은 '자(子)'라고 부르는 것이 많다. "....자(子), 소칭야(小稱也)". 시작은 작고, 처음은 작다. 처음 나온 것은 반드시 작다. 자시는 하루에서 시작하는 때이다. 그러니 작을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아이의 출생을 보면서, 자신의 처음은 작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가 현재는 커졌지만, 이것은 원래 작은 데서 점차 커진 것이 아닌가? 다시 십이생초를 보자, 어느 것이 쥐보다 작은가? 작은 것은 왕왕 군체가 크다. 이처럼 없는 곳이 없고, 좇아내도 없어지지 않는 것은 분명히 최대의 군체일 것이다. 이것때문에 쥐가 첫째를 차지한 것이다.
십이생초중 소가 가장 크다. 육지동물중에서 소보다 큰 동물도 있다. 예를 들어, 코끼리, 물소, 하마등등. 다만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동물은 소이다. 그런 것들이 아니다. 그래서 비록 코끼리는 길상(吉祥)을 대표하지만, 십이생초에 들어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장 익숙한'이라는 기준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이다. 소라는 동물은 너무나 진귀하다. 천지귀신과 우리의 그 신분이 있었으나 이미 죽어서 땅에 묻힌 조상들도 모두 그것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소는 희생될 수밖에 없다. 농경시대, 소는 실제로 너무나 중요했다. 누구집이든 소 한 마리만 있으면 황무지를 더 개간할 수 있었고, 더 많은 땅에 농사를 지을 수 있었으며, 더 많은 양식을 거둘 수 있었다. 생활이 즉시 개선되는 것이다. 이 소는 너무 적었다. 일반백성들이 그것을 얻기는 쉽지 않았다. 진귀하다고 하여 희귀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부족하지도 않았다. 우리의 집에는 없어도 옆집에는 있다. 위로는 왕공귀족, 아래로는 평민노예까지 소를 보지 못한 사람은 없다. 그래서 소가 십이생초에 들어가는 것은 너무나 정상적인 일이다. 단지 이 가장 큰 소는 첫번째를 차지할 수 없었다. 최대가 되면 오히려 좋지 않다.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만일 가장 큰 소를 첫째에 놓는다면, 그것은 바로 천하제일이 되는 것이다. 이는 우리 자신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작은 것을 첫째에 두고, 큰 것을 뒤에 두는 이런 우의(寓意)는 깊이가 있고,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준다. 한자에서 "영(零)"은 십백천만같은 "정(整)"에 상대되는 말이다. 가장 작은 숫자는 1이다. 그러나 누가 1이 가장 크다고 하겠는가.
현실생활에서, 백성은 작다. 작은 것은 쥐와 마찬가지로 무시당하는 사람들은 '쥐새끼같은 무리들(鼠輩)"이라고 불렀다. 제왕장상(帝王將相)은 크다. 큰 것은 소와 마찬가지로 이야기나 설화에서 대단한 인물이다. 다만 소가 아무리 귀하더라도 사람이 부리는 것이다. 마치 왕후도 국가를 위하여 일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혹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표면적으로 보아서, 한 군왕이 그의 백성을 부리지만, 백성의 인심향배가 다시 군왕의 지위가 공고한지여부를 결정한다. 군왕은 국가를 위하여 힘쓰지 않으면 그는 자신의 반대편으로 향하여 백성이 된다. 이것은 바로 백성도 군왕을 부린다는 말이 아닌가. 바로 맹자가 말한 것처럼, 백성이 중하고, 사직이 그 다음이며, 군왕이 가볍다는 것이다. 즉, 백성은 쥐이고, 군왕은 소이다. 개체로서 대소는 분명하다. 그러나 군체로서 소와 대는 분명 바뀌게 된다.
십이생초(十二生肖)의 호랑이와 토끼: 강(强)과 약(弱)의 교량(較量)
호랑이는 가장 강하다. 십이생초중 유일하게 사람을 잡아먹는 동물이고, 모든 포유동물의 왕이다. 동물들은 호랑이에 복종하며, 인류는 호랑이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감히 호랑이에게 한 자리를 주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누군가 이렇게 물을 수 있을 것이다. 호랑이가 용보다 강대하단 말인가? 확실히 그렇다. 용은 하늘 위의 동물이다. 그것은 지상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 용은 의식속의 존중이고, 호랑이는 현실속의 강대함이다. 볼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강대함이다. 용은 토템이고 사람들이 숭배하는 것이다. 용을 두려워하는 것은 경외(敬畏)이다. 그래서 용은 고귀하다. 호랑이는 현실이고, 우리의 면전에서 강대함이다. 호랑이를 두려워하는 것은 공구(恐懼)이다. 그래서 호랑이는 구체적인 강대함이다. 이런 말이 있다. '용호상박', 전혀 관계없는 둘이 어떻게 싸운단 말인가? 이는 계기가 필요하다. 어느 집단이 강대해져서 충분히 용(귀족집단 혹은 왕위)과 항쟁할 수 있을 때, 용과 호랑이가 서로 싸우는 것은 필연적이다. 진승과 마찬가지로, 그가 요역을 하러 가기 전에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가 강대해진 이후에, 여러 사람들이 그를 쫓아서 반란을 일으키는데 참가한 것이다. 그제서야 그는 비로소 그 인류의식을 바꾸고, 사회질서를 바꾼 역사적인 좌표를 지닌 명언을 내뱉은 것이다: 왕후장상에 씨가 따로 있는가? 천고이래로, 아무도 용호상박에 대하여 판결을 내리지 않았다. 도대체 누가 승리자인지에 대하여. 왜 그러한가? 왜냐하면 싸움을 건 것은 호랑이인데, 승리후에는 바로 새로운 용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쟁투는 단지 왕위쟁탈전일 뿐이다.
고대사회에서 가장 강한 집단은 군대이다. 가장 강한 개체는 용사이다. 양자는 모두 호랑이와 연결된다. 호랑이는 고대군대의 상징이다. 호부(虎符)는 군대를 이동시키는 증빙이다. 호부를 쥐고 있다는 것은 군대를 쥐고 있다는 것이다. 전투에 용맹한 사람을 호장(虎將)이라 부른다. 무장의 위풍을 호위(虎威)라고 부른다. 장군의 영장을 호장(虎帳)이라고 부른다. 용사를 호분(虎賁)이라 부른다. 군대보다 더 강대한 집단이 있을까? 용사보다 강대한 개인이 있을까? 이것이 바로 군대와 호랑이가 하나로 연결된 원인이다. 십이생초는 모두 인류가 잘 아는 동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호랑이는 바로 이런 독특한 방식으로 사람들에 익숙해졌다.
토끼를 말해보자. 자연계에서건 아니면 십이생초중에서이건, 모두 약자이다. 쥐는 양식을 먹어서, 간접적으로 인류를 배고프게 만든다. 닭은 벌레를 먹어서 어떤 분야에서는 소패왕이다. 양은 두 뿔을 가지고 화가 나면 들이받아서 그는 쉽게 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토끼는 아무 것도 없다. 그저 토끼에 관한 단어는 죽는 것 아니면 도망치는 것이다: 토사구팽(兎死狗烹), 토사호비(兎死狐悲), 토탈(兎脫). 힘들게 무대에 한번 등장하는 것은 바로 거북이와 경주를 할 때이다. 여기서도 자신의 오만함과 자만심으로 잠을 자다가 시합에 진다. 바로 그 가장 총명한 토끼는 굴을 세 개 파는데(狡兎三窟), 이것도 그저 숨는 것뿐이다. 여전히 연약한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무술초식중에 "토자쌍등퇴(兎子雙蹬腿)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토끼가 매에 대항하는 것을 배운 것이다. 사람이 땅바닥에 쓰러진 후에 이 초식은 아주 유용하다. 아쉽게도, 사람이 이 초식을 쓰면 반패위승(反敗爲勝)할 수 있지만, 토끼가 이 초식을 쓰는 것은 죽기 전에 한번 쓰는 것이고, 우연히 어린 새끼를 만나야만 성공할 수 있다. 가장 좋은 결말은 상대방과 동귀어진하는 것이다. 그래서 토끼보다 더 연약한 것은 없다.
그저 한 가지 의문이 나의 마음 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러한 강약은 영원불변한 것인가? 사람들은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水滴石穿) 자연현상을 보고,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길 수 있다는 이치를 깨달았다. 동시에 약소한 토끼가 더 쉽게 생존한다는 것도 발견한다. 늑대는 사람에게 길들여져서 개가 되었고, 연(年)은 사람들이 폭죽을 쏘면 쫓아버릴 수 있고, 그와 동류인 소는 사람들을 위하여 일한다. 인류가 정착한 곳에서 호랑이, 표범, 이리, 늑대는 모두 도망치지만 토끼는 남아서 우리 인류와 함께 한다. 생초중에서, 집에서 기르는 동물과 그들의 원래의 야생종류는 이미 질적인 변화를 겪는다. 그러나 토끼는 다르다. 집토끼는 장기간 사람들에게 갇혀서 길러져, 대부분의 달리는 기능을 잃는 것이외에, 다른 방면에서는 야생토끼와 다를 바가 없다. 특히 그들의 용도는 전혀 다를 것이 없다. 그래서, 인류는 토끼가 귀엽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에게 아름다운 이름을 붙여주게 된다. 옥토(玉兎). 그리고 토끼를 인류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주는 달과 연결시킨다. 고인은 달을 아주 자세히 관찰했다. 달에 대한 묘사와 찬미가 아주 많다. 비록 유약하지만 실재적이고 귀여운 토끼는 하늘의 그 사람들이 그리워하고 아주 조용한 곳에 살게 된다.
이것이 바로 토끼와 호랑이가 우리에게 남겨주는 계시이다: 강대한 포식자는 더욱 쉽게 사라진다. 강대한 것은 오래가지 않는다. 약소한 초식자는 더욱 쉽게 환경에 적응한다. 약소한 것이 더욱 오래간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 광대무변한 토지위에 두 마리의 호랑이와 두 마리의 토끼가 남았다면, 누가 멸망할 것인가. 말하지 않아도 분명할 것이다.
비록 십이생초가 하나의 문화현상이지만, 인류사회생활의 부착물이지만, 이런 상징적인 의미는 사람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호랑이와 같은 귀족은 한세대 한세대를 내려오며 소멸했고, 그 이름도 없는 토끼같은 초민은 계속하여 번식하여 살아남았고, 계속하여 집단을 확대했다. 특히 춘추전국시대에 전쟁이 끊이지 않으면서, 각국의 국군은 전쟁을 치르기 위하여 계속하여 백성들에게 세금을 거두었다. 사람들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그래서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전쟁이 지나간 후, 그 국가의 전답이 황무지로 바뀌고, 사람은 희소해진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전체국가의 인구가 완전히 소실된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반대로, 호랑이같은 소국국군 및 그 '호랑이떼'(가족)는 철저히 멸망한다.
호랑이와 토끼의 상징적인 의미는 현실사회에서 귀족과 평민의 현실을 그대로 비추어준다.
그리고 그 군대. 너는 호랑이이지만 너도 먹어야 한다. 설사 호랑이같은 군대라고 하더라도, 만일 먹을 것이 없으면, 그저 병든 고양이일 뿐이다. 제환공의 "구합제후일광천하(九合諸侯一匡天下)"에서 의존한 것은 강대무비한 군대이다. 그러나 이 군대의 강대함은 관중이 앞장서서 제나라에서 진행한 개혁에서 온다. 제나라의 국민은 부유했다. 그래서 제나라의 국군, 군대는 호랑이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정국거(鄭國渠)는 완공한 후에, 관중지구의 양식생산량이 몇배 성장한다. 진나라군대라는 이 맹호는 충분한 먹거리가 공급되었기 때문에 용감하게 전진할 수 있었고, 무적이 될 수 있었다. 즉, 군대의 강대함은 백성의 뒷받침이다. 이 기초를 떠나면 약소함도 없고 그저 사망뿐이다. 그래서, 진정한 강대함은 네가 무시하는 이들 겉으로 보기에 약소한 것이다. 혹은, 이 약소한 것이 너의 중시를 받으면, 너는 강대해질 수 있다.
십이생초(十二生肖)의 용과 뱀: 고(高)와 저(低)의 위치
용은 신이(神異)동물이며, 중화민족이 숭배하는 토템이다. 상고시대, 각 민족 심지어 각 부락은 모두 자신의 토템이 있었다. 단 토템의 대다수는 모두 실제로 살아있는 동물이었다. 예를 들어, 사자, 호랑이, 코끼리, 매, 공작등이었다. 중국의 용은 그렇지않다. 그것은 단지 허구의 동물일 뿐이다. 다만 한 가지 문제는 주목해야 한다. 한자의 최초문자가운데 "용(龍)"이 있다. 최초의 한자는 상형자이다. 이 글자가 있다면 당연히 이 사물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용은 어떤 실재하는 동물이었을까? 이상적인 것은 우리의 의식중에 존재하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의식에서 의식까지 최종적으로 반드시 물화성형(物化成形)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하여, 사람은 이런 진상을 찾아내려 애썼다. 용은 현실에 존재하는가? 어떤 사람은 말한다. 용은 뱀이다. 아주 큰 뱀이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한다. 용은 악어이다. 남방지구에서 악어를 다루는 사람을 저파룡(猪婆龍)이라고 부른다. 또 어떤 사람은 절충하여, 북방지구에서는 뱀을 용이라고 부르고, 남방지구에서는 악어를 용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뱀이 십이생초에 들어간 것은 두 가지 원인이 있다:" 하나는 충류(蟲類)의 대표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류가 뱀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고인들은 뱀을 충(벌레)의 대표로 보았다. 최초의 뱀은 "충(蟲)"자로 썼다. 현재 민간에서도 뱀을 장충(長蟲)이라고 부른다.
뱀의 원래 글자는 "사(它)"이다. 역시 상형자이다. 한자의 변화와 더불어, "충(蟲)"과 "사(它)"는 합쳐져서 현재의 "사(蛇)"가 되었다.
인류이외에 동물은 단지 조수충어(鳥獸蟲魚)이다. 물고기는 우리와 같은 세계에 살지 않는다. 같은 육지상의 생물로는 새,짐승이 모두 있다. 그런데 어찌 벌레만 없을 수 있겠는가? 충류의 물종은 아주 많다. 사람과 가깝고, 사람이 잘아는 것도 적지 않다. 왜 사람은 뱀을 선택했을까? 이는 바로 두번째 원인 즉 인류가 뱀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인류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두 가지였다. 우레(雷)와 뱀이다.
뇌전은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인류가 무서워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는 하늘의 것이다. 인류가 하늘 위의 일을 어떻게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사람은 그것을 이용한다. 그래서 북(鼓)을 발명한다. 북소리는 비로 우레소리이다. 군대가 싸울 때 북을 치며 진공하는데, 그 의미는 바로 하늘의 우레의 위력을 이용하여 적군을 겁주는 것이다. 북을 일단 치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 그래서 북을 치면 기세가 호랑이와 같다. 이뿐 아니라, 적군보다 북을 크게 치게 되면, 대진중의 전사들이 아군의 역량이 크다고 느끼게 된다.
뱀은 사람을 물어죽일 수 있다. 원고의 선주민들의 곁에는 항상 뱀이 있었다. 그래서 인류는 더욱 두렵게 느꼈을 것이다. 호랑이, 표범, 곰, 비휴(貔貅), 시랑(豺狼)은 모두 사람을 죽일 수 있다. 다만 이들 맹수에 대하여는 사람들이 상대할 방법이 있다. 호랑이, 표범은 사람이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지면 된다. 곰,시휴,시랑은 사람들이 화살,도창으로 죽일 수 있다. 오직 뱀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방법이 없었다. 고대에는 빗물이 많이 내리고, 강물과 호수가 많았다. 초목과 산림이 무성했다. 뱀류에게는 득천독후(得天獨厚)의 번식조건이었다. 그래서 수량이 아주 많았다. 인류가 강과 호수에서 물을 길어 마셔야 했고, 풀과 씨앗을 채집하여 먹어야 했다. 이는 뱀이 사는 '지역'과 딱 겹친다. 사방에서 독사가 출몰하니 사람과 쉽게 만나게 된다. 일단 사람들이 너무 가까이 가거나 부주의하여 밟게 되면, 분명히 뱀의 공격을 받게 된다. 이런 것은 아주 위험하다. 약간의 독액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이다. 뱀에게 물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번 뱀에게 물리면 십년은 밧줄도 겁낸다는 말이 있다. 설사 독이 없는 뱀에게 한번 물리더라도. 십년동안 밧줄만 보아도 심장이 쿵광쿵쾅 뛰는 것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사람들이 뱀을 얼마나 많이 무서워했는지 알 수 있다. 건드릴 수 없으면 피할 수는 없을까? 뱀이라는 것은 정말 피하기도 어렵다. 사람이 집을 나무 위에 지으면(有巢氏), 호랑이는 막을 수 있고, 아이를 바구니에 담아서 나뭇가지에 걸어놓으면 표범은 막을 수 있지만, 뱀은 피할 수 없다. 활,화살,검,극이 있지 않는가? 이것들로 뱀류를 상대해봐야 별 쓸모가 없다. 즉 정말 진세를 갖추고 싸우려고 해도,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 뱀은 정말 신령한 동물이다. 또 하나의 방법이 있다. "타초경사(打草驚蛇)"이다. 다만 알을 낳는 뱀, 교배하는 뱀, 허물을 벗는 뱀, 무리를 이룬 뱀을 만나면 이 방법은 쓸모가 없다.
뱀에 대한 두려움은 인류 공통의 두려움이다. 중국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런 두려움을 원한으로 전화시킨다. 모든 악독한 언사는 모두 뱀에게 갖다 붙인다. <성경>에는 하느님이 뱀을 지상에서 영원히 설 수 없게 했다는 말이 나온다. 이솝우화에는 농부가 밤을 구해주고 오히려 뱀에게 물려죽었다는 교훈이 실려 있다. 중국에는 더더욱 사갈지심(蛇蝎之心), 사심불구(蛇心佛口), 미녀사(美女蛇)등 독랄하고 나쁜 사람을 형용하는 성어가 있다. 인류는 뱀을 두려워하는데, 그 두려움은 뼛속까지 사무친다. 그래서 고인들은 만나면 이렇게 말한다: "뱀을 만나지 않았지요?" 뱀을 만나지 않았다는 것은 길한 일이다.
뱀은 악하기만 하고 좋은게 없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점차 발견한다. 뱀이 먼저 사람을 공격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을. 즉, 원래 뱀은 사람을 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반대로, 뱀은 인류를 크게 도와준다. 쥐를 잡아먹는다. 이익의 쟁탈에서, 인류의 최대적은 쥐이다. 우리는 그것을 없앨 방법이 없는데, 뱀은 죄의 무한한 번식을 통제해준다. 생각해보라. 만일 뱀이 없다면, 쥐는 우리의 양식을 모조리 먹어버리지 않았겠는가? 뱀이 있어서, 쥐는 천적이 있는 것이다. 우리의 양식도 쥐가 다 빼앗아 먹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번성도 보장을 받게 된다. 이런 보장은 일부 뱀에게서 온 것이다.
뱀은 사람을 죽이기는 해도 사람을 먹지는 않는다. 누가 사람을 먹는 뱀을 본 적이 있는가? 용도 사람을 먹지 않는다. 용을 상징으로 하는 인간의 천자(天子), 황제도 사람을 죽이기는 해도 사람을 먹지는 않는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사람을 물어죽이는 뱀은 단지 일부분이고, 대부분의 뱀은 사람을 물지도, 사람을 물어죽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큰 뱀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뱀은 천적이 없다. 최소한 인류의 주위에는 전문적으로 뱀을 먹는 생령이 장기간 '거주'하지 않는다. 그렇기는 해도, 사람들은 뱀을 자신 또는 부족을 대표하는데 쓴다.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을 겁줄 수 있고, 다른 사람을 겁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끝(矛頭)을 뱀모양으로 만든 것(蛇矛)은 사람들에게 용맹무비한 느낌을 준다.
뱀은 인류가 두려워하는 것이고, 뱀은 인류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뱀은 드러나 영성이 있는 신물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정복할 수 없으니, 그것을 모셨다. 세계의 여러 부락은 뱀은 토템으로 삼는다. 중화민족의 토템인 용은 바로 큰 뱀이다. 과거에 용이라는 동물의 원형이 도대체 무엇일까에 대하여 여러가지 이견이 있었지만, 갑골문의 출현은 이 문제를 분명하게 해주었다. 최초의 "용"자는 바로 큰 뱀의 도형이다. 그리고 중화민족의 첫번째 모친 여와와 중국한민족의 시조인 복희는 전설에 따르면 인수사신(人首蛇身)이다. 용의 조상 및 더욱 이른 원시모친으로 숭배하는 것이 뱀이라는 것을 말해주지 않는가?
그런데, 이 뱀은 너무 추악하다. 사람들의 심미관에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장기간 음습한 풀 숲에 있는 것은 고사하고라도, 평생 땅바닥에 엎드려 있고 일어서지도 못한다. 그리고 뱀에게는 사지가 없다. 이는 우리와 전혀 다르다. 우리가 마음 속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신에 대한 이해에 따라 예술적으로 가공한다. 먼저 그것에 뿔을 더한다. 즉 한 자루의 형도(刑刀)이다. 이는 권력과 위엄을 상징한다. 이어서 부락간의 합병융합으로 서로 다른 부락의 토템물을 용에게 부착시킨다. 낙타머리, 기린뿔, 거북이눈, 소의 귀, 뱀의 몸, 도마뱀의 다리, 호랑이 발바닥, 매의 발톱, 물고기의 비늘, 비록 새의 날개는 없지만, 새와 마찬가지로 날 수 있고, 바다로 들어갈 수 있다.
이렇게 하니, 용의 이미지는 풍성해진다. 다만 용에게 뿔이 자라난 이후, 그것은 더 이상 뱀 혹은 악어가 아니게 되었다. 고귀의 상징이 되었다. 귀족, 황제, 수명어천(受命於天)의 천자가 되었다.
문제가 생긴다. 이렇게 고귀한 성물에 어찌 닭, 개, 뱀, 토끼와 같이 십이생초의 하나가 되었는가? 알아야 할 것은 한 해에 출생한 사람은 용띠라 하더라도 반드시 모두 고귀하지 않다. 그런 비천한 사람도 용띠가 될 수 있는가? 기실, 이것이 바로 용이 십이생초가 된 근본의 소재를 잘 설명해준다. 고위층과 하층은 그저 사람의 위치일 뿐이다. 그것은 사람의 본질을 설명해주지 않는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평등해야 한다. 후천적인 발전이 다를 뿐이다. 그저 높고 낮은 서로 다른 위치를 부여받았을 뿐이다. 인격은 영원히 평등하다. 뱀의 우두머리는 용이다. 용은 기본적으로 뱀이다. 이 기반을 버리면 용은 용이 되기 어렵다. 옛날의 그 진문공 중이를 보자. 만일 재능있는 사람들이 그를 따르지 않았다면 그가 귀국하여 국군에 오를 수 있었을까? 후인들이 이 역사를 얘기할 때, 가장 생생한 비유를 한다. 한 무리의 뱀이 한 마리의 용을 모셨다.
고위층의 기원은 하층이다. 하층도 윗자리로 올라갈 수 있다. 설사 보통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고귀한 용이 될 수 있다. 유방과 같이, 하층인 사수정장도 마찬가지로 황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충분히 설명한다. 한나라때 사람들은 이미 이전사람과 다르게 사람의 지위를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을.
십이생초(十二生肖)의 말과 양: 귀(貴)와 천(賤)의 가치
말은 인류역사상 가장 먼저 순화된 동물의 하나이다. 말을 성공적으로 순화시킨 것은 인류로 하여금 농업생산, 교통운수, 특히 군사활동에서 새로운 동력을 얻게 해주었다. 말의 가장 현저한 특징은 달린다는 것이다. 사람이 말을 타고 활을 쏘고 사냥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때부터 그 속도를 벗어날 수 있는 동물이 많지 않게 된다. 말은 무외(無畏)의 정신을 지니고 있다. 말은 병기들이 맞부닥치는 소리에도 앞으로 전진한다. 말은 거대한 힘을 지니고 있다. 말은 전차를 끌면서도 날듯이 달린다. 지금 사람들이 여전히 동력단위를 마력(馬力)이라고 부르고, 모터의 중국어를 마달(馬達)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말은 동시에 사납고 강인하여, 길들이기가 쉽지 않다. 여러 대에 걸쳐 길러진 말의 후대라 하더라도, 사용하려면 역시 다시 길을 들여야 한다. 말의 번식주기는 비교적 길다. 10개월간 임신하여야 생산한다. 이런 특징으로, 말은 가장 고귀한 동물이 된다. 말을 기른다면 그것은 국가나 군대뿐이다. 한 가정에서 말을 기를 수 있다면, 고대에는 그저 귀족만 할 수 있었다. 후세에도 그저 부자집에서나 가능했다. 소위 "양마당차(養馬當差)"는 거의 현재의 개인소득세징수에 상당한다. 세금을 낼 수 있는 자는 분명 고수입의 군일 것이다.
고귀한 말은 그것을 가장 중요한 곳에 쓰이게 만들었다. 군대. 초기에는 전차를 끌었고, 후기에는 전사를 태웠다. 그래서 말과 군대, 전쟁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병마가 움직이기 전에 양초가 먼저 간다(兵馬未動, 糧草先行). 병마는 하나의 총체이다. 마수시첨(馬首是瞻), 장수의 말머리가 향하는 방향으로 진격하고 퇴각한다. 마혁과시(馬革裹屍), 군인은 전쟁터에서 죽는다. 마도성공(馬到成功), 신속히 전쟁의 승리를 거둔다. 마변(馬弁), 마호(馬號), 마창(馬槍), 마고(馬袴)같은 단어는 말과 관련이 있는 외에, 군대, 전투중의 말과 더욱 관련이 있다. 사마(司馬)는 더더구나 고대의 육경(六卿)중 하나이고, 전국의 군대를 관장했다.
양은 육축(六畜)의 하나이고 비교적 일찌기 인류에 의하여 순화되었다. 고기가 부드럽고 영양가치가 높아서 인류의 가장 맛있는 음식물이 된다. 물고기와 합쳐서 "선(鮮)"자를 구성하였다는 것이 이를 잘 설명해준다. 맛있으므로, 인류는 양고기를 공품으로 조상과 신을 제사지내는데 썼다. 그래서 양(羊)은 삼생(三牲)의 하나가 된다. 번식속도가 빠르므로(1년에 2번 낳거나 3년에 5번 낳는다. 매번 3마리 내지 5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길상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양은 모여살기를 좋아하여, "군(群)"이라는 글자는 바로 양처럼 함께 모여있다는 말이다. 양은 의리를 중시하여, 일치단결하여 외래의 위협에 대항한다. 그래서 "의(義)"자의 위에도 "양(羊)"자가 있다. 양이 크면 바로 미(美)이다. 양고기는 진수(珍羞)이고, 양이 많아지면 사람들이 선모(羨慕)한다. 이것은 모두 양이 인류사회생활에서 중요한 지위를 갖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양의 중요가치는 그의 군체에서 비롯된다. 개체로서, 양은 고귀한 것이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비교적 값싼 것이다. 그래서 가져와서 교환하는 물품인 것이다. 경제학에서, 상품이 기원을 설명할 때, 왕왕 양 한마리로 얼마의 물건과 교환하는지, 1개의 공구로 몇 마리의 양과 교환하는지를 예로 든다. 이를 보면, 양의 가치는 비교적 낮았다. 현재와 같이 우리가 한 사람의 실제수입이 몇년전에 비하여 올랐는지 내렸는지를 말할 때, 왕왕 한 달의 급여로 몇 근의 돼지고기 혹은 얼마의 양식을 살 수 있는지를 얘기하지, 몇 대의 TV를 살 수 있는지를 얘기하지 않는다. 즉, 돼지고기와 양식의 가격이 TV가격보다 싸기 때문에 계산에 편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유명한 "오고대부(五羖大夫)" 백리해(百里奚)는 진목공이 초나라에서 데려와서 자신이 쓰려고 할 때, 고의로 그는 도망친 노예라고 하고, 5장의 양가죽(혹은 5마리 양)과 초나라사람과 교환한다. 백리해이 당시 나이는 이미 많았고, 농삿일을 할 수는 없었다. 노예가 도망치는 것은 죽을 죄이니, 되사오더라도 그냥 칼로 쳐서 죽여, 일벌백계를 하여 다른 노예를 겁주는 용도이니, 비교적 싼 가격으로 교환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만일 5장의 양가죽이 정상적인 노예의 가격이라면, 초나라사람은 분명히 생각했을 것이다. 진나라사람은 왜 제대로된 가격으로 쓸모없는 사람을 사가려 하는 것일까? 만일 말 한 마리로 바꾸려고 했으면, 초나라사람은 즉시 경계했을 것이다. 도대체 이 자가 노예인가 아니면 보배인가?
말은 귀하고 양은 천하다는 것은 이제 분명해졌다. 그들은 차이가 있고, 절대로 같은 등급이 아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말을 주로 동력(장비)으로 하는 전쟁이 인류에게 복이 되는가? 지과위무(止戈爲武). 최고의 무력은 무력을 쓰는 것을 제지하는 것이다. 전쟁을 하지 않고 적군의 병사를 굴복시키는 것이다. 전쟁의 최고경지는 싸우지 않는 것이다.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한 사람도 이러하거늘 한 국가는 하물며 어떠할 것인가. 한 국가가 만일 '잃었다'면(전쟁), 그것이 한 나라의 복이 아니란 말인가? 당연히 말을 약간 잃었다고 하여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천하가 비록 안정되어 전쟁을 잃으면 분명 위험해질 것이므로, 일정한 양의 말을 보유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할 일이다. 단지, 이 수량이 무한팽창할 수는 없다. 대량의 말을 가지게 되면 아마도 쓸데없는 전쟁을 해야 할 것이다. 이는 국가의 복이 아니다. 국가가 비록 커도, 전쟁을 좋아하면 반드시 망하는 법이다. 이것이 바로 말이라는 비싼 동물이 우리에게 주는 계시이다. 양은 다르다. 우리는 많아도 걱정하지 않는다. 만일 집집마다 많은 양을 가지고 있다면, 천하의 양은 하늘의 하얀구름처럼 많다면, 이런 사회는 얼마나 안정되고 아름다울 것인가? 그래서 말은 귀하지만 천하의 길상이 아니고, 양이 많고, 양이 천해야 인류의 복이다. "강(羌)"이라는 글자는 양과 사람을 결합한 것이라고 한다. 이 유목민족은 양을 기르는 것을 위주로 하여서 '강족'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강(姜)씨성이 있다. 그 기원은 모계사회의 이 부락이 아마도 양을 기르는 씨족이었을 것이다. 양을 기른다면 말이 부족하겠는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양을 더욱 중시했다. 그렇지 않다면, 양을 자신의 성에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이를 보면, 사람이 말을 가지는 것은 양을 갖기 위함이다. 양을 가지는 것이 비로소 사람의 최종목적인 것이다.
십이생초(十二生肖)의 원숭이와 닭: 외(外)와 내(內)의 성상(性狀)
원숭이(猴)는 영장류의 동물이고, 원(猿)와 비슷하나 약간 작으며, 협낭(주머니)와 꼬리가 없다. 우리 인류와 친척관계가 가장 가까운 동물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와 친근한 것처럼 원숭이와도 친근하다. 다만 "원숭이(猴)"라는 글자는 진(秦)나라때 나온다. 이전에 이런 동물은 "노(猱)"라고 불렀다. 중국에는 미후(獼猴)가 많이 산다. 중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원숭이는 바로 '미후'이다. '후'라는 글자가 있으므로, '노'는 점차 미후를 가리키는 전용어가 된다. 그리고 '사(蛇)'자가 나타난다. 그리고 "견(犬)"(큰개)과 "구(狗)"(작은개)를 합쳐서 통칭 '구'라고 하는 것도 바로 이 시기이다. 이것은 바로 설명해준다. 십이생초의 출현은 한나라때라는 견해가 정확하다는 것을. 그러면 이전에는 생초라는 말이 없었을가? 그것은 아니다. 단지 이전에는 완전하지 않거나 혹은 일치하지 않았는데, 한나라때에 이르러 국가가 통일되고 안정되니, 십이생초도 그 형태가 완성된 것이다.
십이생초중 사람을 가장 많이 닮은 것은 원숭이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원숭이에 대하여는 뼛속부터 친근감이 있다. 원숭이는 사람을 닮았다. 사람을 직접 원숭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이것은 다른 동물과 다르다. 그저 어떤 행위에 대한 묘사나 비유가 아니다. 예륻 들어, "소후자(小猴子)" - 어린아이; "피후(皮猴)" - 어린아이가 장난꾸러기이다; 니후(泥猴) - 몸과 얼굴이 모두 더럽다. 후정(猴精) - 기민하고 재빠르다. 이들 단어는 모두 '원숭이같은'이라고 하지 않고 그냥 직접적으로 '원숭이'라고 하고 있다.
원숭이는 천성적으로 움직이기를 좋아하고, 기어오르고 팔을 뻗고 뛰어오르기를 멈추지 않는다. 나무 위에 조용히 앉아있지를 못한다. 이것은 계속하여 진취적이고, 현상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원숭이는 왕왕 사람의 동작을 따라한다. 간단한 도구도 사용하고, 인류이외에 가장 총명한 동물이다. 십이생초중에서 첫째로 손꼽힌다. 이는 사람이 그들을 스승으로 삼아,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계속 풍부히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신(申)에게는 편다(舒展)는 의미가 있다. '신', '후'는 서로 짝이 되어, 사람이 작은 것을 얻고 만족해서는 안되고, 계속 진취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성공인사들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최고목표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인의 최고분투목료는 무엇이었을까? '봉후(封侯)', 즉 제후에 봉해지는 것이다. 왜 최고목표가 '후'였을까? 황제가 아니고. 황제는 천자이다. 황제가 되는지 아닌지는 '하늘의 뜻'에 따르는 것이지 '사람의 의지'에 따르는 것이 아니다. 황제가 되고 싶은 사람이 많으면 천하가 어지러워진다. 이것은 사람의 뜻에 맞지 않는다. 왕은 황족이다. 혈연관계로 얻는 것이지 분투의 결과가 아니다. 단지 '봉후'만이 자신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 이것은 억측이나 함부로 지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봉후'의 '후'와 원숭이의 '후'는 직접적인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후(侯)는 최초에는 과녁이었는데, 나중에 점차 변해서 '작위'가 된다. 간단히 말해서, 활을 쏘는 것(射箭)이 사후(射侯)이고, 과녁에 맞는 것(中靶)이 중후(中侯)이다. 이는 나중의 과거급제(中擧), 장원급제(中狀元)와 같다. '후(猴)'는 비록 직립보행하지만 여전히 견(犬)형 동물이다. 원숭이들이 나무 사이에서 뛰고 날때, 마치 화살을 쏘는 것과 같이 신속하고, 민첩하며, 정확하고 직접 목표에 도달한다. 즉, 사람이 원숭이와 마찬가지로, 타고난 성격대로 하여(率性而爲), 직접 그 최고묙표를 취하고 앞뒤를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사람의 분투향상, 현상에 안주하지 못하는 것 및 타고난 성격대로 하는 것에는 한도가 있다. 이것이 바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즉, 제약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닭의 의미는 바로 제약이다.
닭의 문자를 "계(鷄)"로 쓴 것은 묶여진 새(系鳥)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해(奚)"자는 노예를 표시한다. 노예가 도망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노예주는 끈으로 그들을 묶었다. "해"자의 곁에 새(鳥)를 붙이면, 바로 이 새는 노예와 마찬가지로 묶여있다는 것이다. 이는 동시에 이런 것을 설명해준다. 닭은 조류이다. 십이생초중에서 조류의 대표이다. 조류는 아주 많다. 예쁜 것으로는 공작, 위맹한 것으로는 매, 고귀한 것으로는 학, 같은 가금류로는 오리, 거위가 있다. 왜 닭이 선택되었을까?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사람들이 닭을 가장 익숙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원래 닭과 꿩은 근친이다. 지금도 우리는 꿩을 야계(野鷄)라고 부른다. 조류의 대부분은 철새이다. 가을에 가고 봄에 온다. 그저 지나가는 나그네일 뿐이다. 그러나 꿩, 닭은 다르다. 그들은 텃새이다. 해가가고 달이가도 사람의 곁에 있다. 사람은 그래서 익숙해하고 친근해 한다. 닭의 털은 예쁘고, 성격은 위맹하고, 기질은 고귀하다. 조류의 우수한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십이생초에 집어넣는 것은 사람들에게 달리 선택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유방의 부인의 이름은 여치(呂雉)이다. 황후가 된 후에도 이름을 바꾸지 않았다. 한 여자아이의 이름이 '치'라니, 이를 보면 '치'는 좋은 새임을 알 수 있다.
당연히 이는 단지 공허한 얘기이다. 사람들은 실질을 숭상한다. 닭이 우리 집에 있다면 무슨 재주가 있고 무슨 쓸모가 있는가? 십이생초가운데, 가축에 속하는 것은 모두 쓸모가 있다. 야계는 1년에 3,4번 알을 낳고 매번 3,4개의 알을 낳는다. 사람들이 이 십여개의 알을 위하여 그것을 길러야 할까? 알아야 할 것은 닭은 곡식을 먹는다는 것이다. 만일 이 원인때문이라면, 사람들은 차라리 풀숲에서 찾는게 낫다. 기를 필요는 없다. 그것은 토끼가 이니다. 토끼는 풀을 먹는다. 번식력도 아주 강하다. 인류로서는 언제든지 얻을 수 있는 풀을 가지고 영양이 풍부한 육식으로 바꿀 이유는 충분하다.
사람들이 닭을 기르는 것은 닭이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때문이다. 그래서 닭을 사시지신(司時之神)이라 부른다. 닭은 깊은 밤에도 시간을 알고, 태양이 언제 뜨는지 안다. 울 줄 아는 수탉은 바로 상고사회의 시계였다. 고인은 "일출이작(日出而作), 일입이식(日入而息)"(해가 뜨면 일을 하고, 해가 지면 쉰다)했다. 어제 일하느라고 피곤하여 오늘 일어나는 것을 잊어버렸든지, 아니면 고의로 나태를 부려서 일어나지 않았든지, 혹은 날씨가 흐려서 하늘이 밝은줄 몰랐든지간에, 닭은 해가 떴다고 알려준다. 잠에서 깨어 일할 시간이라고 알려준다. 이는 노동자의 '자명종'이다. 닭은 아침시간을 알려줄 뿐아니라, 저녁시간도 알려준다. 유시(酉時)는 저녁 5시에서 7시이다. 겨울에서 여름까지 해가 지는 것은 바로 이 시간대이다. <시경>에 "계서어시(鷄棲於塒)"라는 말이 있다. 이는 닭이 집으로 들어간단 말이다. 일하던 사람이 집으로 돌아가 쉬어야 할 때라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닭은 사람의 "한시기(限時器, 시간을 정해주는 기기)"이다. 매일 사람들에게 일할 시간과 쉴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다.
원숭이와 닭을 함께 놓으면, 자유롭지만 제약이 있다. 즉, 모든 외재적인 자유행위는 반드시 내심의 제약을 받는 행위여야 한다. 현상에 만족하고 앞으로 나가지 않아서도 안되고, 아무런 제약없이 자의로 행동해서도 안된다. 현대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법률과 도덕의 범위내에서, 충분히 개인의 재능을 펼쳐야 하다. 이렇게 해야만이 스스로 정한 목표를 실현할 수 있다.
십이생초(十二生肖)의 개와 돼지: 노(勞)와 일(逸)의 관계
개는 가장 먼저 인류에 길들여진 동물이다. 개는 인류와 공동으로 생활한 이래, 계속하여 인류와 동감공고(同甘共苦)하며, 사람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인류의 가장 충실한 친구이자 파트너가 되었다. 개는 스스로 인류를 주인으로 모시고, 가난하든 부자이건 영원히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민간에는 "개는 집안이 가난한 것을 꺼리지 않는다(狗不嫌家貧)"이라는 말이 있다. 고양이와는 다르다. 집안에 '물고기'가 없으면 다른 집으로 간다.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같다. 개는 충신이요, 고양이는 간신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개는 십이생초에 들어올 수 있었고, 고양이는 들어올 수 없었다.
개와 인류의 관계는 가장 친근하고 오래되었다. 시종 고생을 하면서 인류를 위하여 봉사했다. 그러나, 개가 얻는 보답은 겉으로 보기에 상응하지 않는다. 개와 관련된 단어는 모두 폄하하는 뜻이 담겨져 있다. "구퇴자(狗腿子, 개다리)", 꼬리를 흔들며 불쌍하게 보이다(搖尾乞憐), 구장인세(狗仗人勢)등등. 분명히 사람이 말하는 것이지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개소리(放狗屁)"라고 한다. 그리고 이 서열에서 모두 자리를 잡은 후에 아직도 남은 것은 그 게으르고 먹기 좋아하는 돼지가 있다. 아마도 돼지가 꼴찌에 해당할 것이다.
기실, 이는 중국민족문화의 특징을 보여준다. 스스로 겸손하다. 즉, 내렴자수(內斂自修), 자아충실, 자랑하지 않는다. 즉, 일반적인 상황하에서, 관계가 가까울수록 서로 치켜세우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왜 자신의 자식을 '견자(犬子)'라고 하겠는가. 다만 다른 사람의 아들에 대하여는 오히려 "호자(虎子)"라고 해준다. 이렇게 말한다고 하여 자신의 아들과는 친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아들과 친하다고 여길 정도로 멍청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를 보면, 이렇게 너무나 친하여 닉애(溺愛)의 정도에 이른 경우에는 아들을 낳는 것을 "소견(小犬)"이라고 하고, 어른이 된 후에 며느리를 얻으면 역시 견식(犬媳)이라고 하며, 더 많은 사람들은 직접 아들의 이름을 "구아(狗兒)"라고 짓는다. 왜 윗대의 사람들에게는 이런 글자를 붙이지 않는가. 왜냐하면 윗대에 대한 애정은 경애(敬愛)이고, 아랫대에 대한 닉애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구체적인 사정과 무관한 '가벼운 폄하'는 관계의 친근함을 더욱 드러낸다. 사람들은 왜 자신의 아들을 "서자(鼠子)", "토자(兎子)" 혹은 "저자(猪子)"라고 부르지 않을까? 그래서, '일반적인 상황하에서'라고 하는 것이다. 단지 '구체적인 사정과 무관'하므로, 구체적인 일에 있어서 그 누구도 '일을 확대하여' 문제삼을 리가 없는 것이고, 여기에 스스로 겸하하는 것도 있다. 한 사람이 아들에게 어떤 일을 시키면서 이렇게 말한다고 치자: "나의 그 아들은 한 마리의 개와 같다. 부지런하기가 개다리같고, 예의가 있기로는 발바리와 같다. 일을 하나 맡기면 그는 개처럼 열심히 일을 해서 반드시 완성할 것이다." 누가 이렇게 말하는가? 이를 보면,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명백히 알아야 한다. 스스로 겸허하는 것도 정도와 때가 있다. 너를 추켜세워줄 때는 분명히 의도가 있다.
십이생초중의 개에 대하여 얘기를 계속하도록 하자. 사람들이 개를 앞에 두지 않은 것은 개가 하는 일이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말과 다르다. 말을 타고서 공명을 얻지 않는가(마상봉후), 말이 있으면 일을 완성시킬 수 있다(마도성공)
다만 개의 공헌은 인류가 알고 있다. 개는 우리 집을 지키고, 소와 양을 지키며, 사냥터에서 앞으로 달려나간다. 이런 것들은 모두 말과 같이 힘을 쓰는 것이다. 그래서 개와 말의 공로를 함께 묶어서 얘기한다. 견마지로(犬馬之勞). 더욱 두드러진 것은, 우리가 하루종일 일하고 쉴 때도, 개는 여전히 우리를 위하여 집을 지키고, 우리의 안전을 보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인류에게 좋은 (一人得道)이 있으면, 역시 개를 잊지 않는다. 하늘에 올라갈 때도 그를 데려간다(鷄犬昇天).
돼지라는 동물은 약간 억울하다. 처음에 사람들은 돼지를 집안에 두고(지붕아래에 돼지가 있으면 바로 家이다), 신전에 모셨다(삼생의 하나이다). 지금은 나태, 지저분함, 이치를 따지지 않는 부정적인 전형이 되었다. 이 차이는 실로 너무나 크다.
돼지는 고기가 많고, 살이 부드러우며, 영양이 풍부하다. 번식능력도 아주 강하다. 인류가 기르기 시작한 이후, 사람들은 더 이상 수렵이라는 위험한 행위를 하지 않으면서 더욱 맛있는 육식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돼지는 인류의 식생활구조개선에 거대한 공헌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돼지를 우리와 함께 살게 하고, 그것을 조상과 신에게 제사지내는데 쓰는 보물로 삼았다.
다만, 이 놈은 나태하다. 배부르게 먹으면 잠을 자고, 부르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은 오히려 사람의 바램이 되었다. 배불리 먹고 움직이지 않으면, 허벅지에 살이 붙는다. 그래서 잠재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후각이 그것이다. 인류는 항상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피했다. 최대의 수익은 동물의 장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돼지는 고기가 가장 맛있으니, 그저 우리를 위하여 많이 생산하도록 하면 된다. 이렇게 하다보니, 화장실에서 기르는 돼지는 멍청하고 더럽고 나태하고 탐욕스러움것과 연결시키게 된다. 완전히 '살재(殺材)'가 되고, 인류는 더 이상 돼지를 잘 돌보지 않게 된다. 나쁜 사람이 하는 일은 "저자(猪仔)", 멍청한 사람을 욕할 때는"저라(猪玀)", 뭐가먼지 모르는 사람은 "저두삼(猪頭三)"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들 단어는 모두 후세에 나타난 것이다. 최초에 사람들이 돼지를 볼 때는 그저 향락(享樂)뿐이었다. 결론적으로 하나의 '보배'였다. 한무제의 최초 이름은 유체(劉彘, 체는 돼지라는 뜻)이다. 비록 나중에 이름을 고쳤지만, 그가 태자가 되기 전에 교동왕으로 있을 때도 국왕의 이름이 여전히 돼지였던 것이다. 이를 보면 돼지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상당한 지위를 가졌음을 알 수 잇다. 이것은 가난한 집안에서와는 달랐다. 천한 이름을 짓는 것은 아이를 잘 기르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의 부친은 황제이다. 아이를 잘 기르지 못할까 걱정할 일은 없었다. 그리고 이전의 월왕 구천은 국민의 생육을 장려하기 위하여, 여자아이를 낳으면 돼지 한 마리씩을 하사했다. 다시 주제로 돌아오면, 이 돼지는 확실히 먹기 좋아하고 게으르다. 개처럼 부지런하지 않다.
근로는 부를 획득하는 것이다. 생산에 부지런하든 아니면 '왕사(王事)'에 부지런하든 모두 부를 얻을 수 있다. 나태하고 향락을 즐기면 일찍 죽는다. 지나친 향락은 실제로 자신의 생명을 소모하는 것이다. 즉 돼지와 마찬가지로, 일찌감치 살이 쪄서 제사의 희생품이 된다. 사람이 만일 개에게서 부지런하고 용감한 것을 배우지 않고 돼지에게서 향락만을 배운다면, 그것은 장수가 아니라 절수(折壽)하는 길이다. 돼지는 많이 먹는다. 그리고 사람이 먹여주어야 한다. 이런 상황을 사람에게 놓고 본다면, 만일 이런 향락이 다른 사람의 노동의 기초위에서 건립된다면, 너는 무망(無妄)한 이익을 얻는 동시에, 목숨을 다른 사람의 손에 넘겨주는 꼴이 된다.
십이생초 가운데, 돼지의 역할이 가장 적은 것은 아니다. 최소한, 돼지는 쥐처럼 사람들이 싫어하지는 않는다. 뱀처럼 사람들이 두려워서 선택할 수밖에 없게 만들지도 않는다. 고기만을 공헌하지만, 어쨌든 토끼보댜는 훨씬 많다. 왜 돼지를 맨 끝에 두었을까? 이것은 바로 인생을 총괄하는 의미가 그 속에 들어 있다. 해시(亥時)는 저녁 9시부터 저녁 11시까지이다. 이 시간은 바로 사람들이 잠을 잘 때이다. 하루종일 피곤했던 사람이 쉬어야 하는 것이다. 십이월은 1년에서 마지막 한 달이다. 1년의 노동의 수확을 거두는 대이다. 또한 적절히 쉬면서 즐겨야 한다. 한 사람이 일생동안 힘들게 일하여, 노년이 되면, 쌓아둔 부로 마땅히 즐겨야 한다.
돼지와 개는 우리에게 한 가지 문제를 던져준다: 사람은 어떻게 내놓고 어떻게 얻어야 하는지. 다른 말로 해서 사람은 일생동안 일을 해야 하는지 일생동안 즐겨야 하는지. 이는 우리가 대비하면서 고민해야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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