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파(蘇東坡)의 무정설법(無情說法)과 정좌조식법(靜坐調息法)
⑴ 「無故而得千金 不有大福 必有大禍」
“ 까닭없이 천금을 얻는 것은 큰 福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재앙(災殃)이 있게 되느니라. ”
⑵ 「무정설법(無情說法)」의 소식
중국(中國) 당송(唐宋) 8대가(大家)의 한 사람으로 유명한 동파(東坡) 소식(蘇軾. 1036~1101)이 한때 고을의 관직을 맡아 나갔다. 그는 그 고을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에 상총조각(常聰照覺)선사라는 이름난 선승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내가 한번 가서 겨뤄보리라.」 하고 찾아갔다. 그래서 통성명을 하는데 소동파(蘇東坡)라고 하지 않고,「나는 칭(秤)가요.」하고 인사를 드렸다. 칭가란 성은 없기에,「칭가라니요?」하고 선사는 다시 물어 보았다. 그러자 동파(東坡)가,「사람이 몇 근이나 되는지 달아보는 칭가요.」라고 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선사는 「악」하고 할을 하면서,「이것이 몇근이나 되는지 일러보시오.」라고 말했다.
소동파(蘇東坡)야 문장가이기에 말이나 글로 겨루어 보리라 짐작하고 있었는데, 밑도 끝도 없는 외마디 할을 해버리니 정신이 아찔했다. 그래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소동파는 상총선사에게 청했다.「 이 우매한 중생을 위해 법을 이야기해 주십시오. 」
그러나 상총선사는, 「 산하대지가 다 설법하고 있거늘 어찌 사람의 입을 빌어 유정설법(有情說法)을 구하나. 무정설법(無情說法)의 공안(公案)을 깨치고 오면 내 유정설법(有情說法)을 하겠노라. 」고 말했다.
대답치 못한 소동파가 밖으로 나와 무정설법의 공안을 찾아 하룻밤을 지새웠다. 그래도 알 수 없었다. 동파가 답답해 풀고자 하는 이 마음이 바로 ‘발심’이라는 것이다. 잠 못 이루고 고민하다 텅 빈 상태가 된 소동파는 새벽 무렵 시냇물 소리를 듣고 홀연 깨쳤다. 그 순간 그는 시(詩)를 읊었다.
시냇물 소리 여래의 장광설이요 (溪聲便是廣長舌)
산 빛은 어찌 청정법신 아니랴 (山色豈非淸淨身)
간밤에 다가온 무량한 이 소식 (夜來八萬四千揭)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他日如何擧似人).
시냇물 소리가 진리의 말씀이요, 푸르른 산빛이 그대로 청정한 부처님의 법신이라는 것이다.
팔만사천법문을 하룻밤 새, 아니 한순간에 터득했던 것이다. 불교의 멋이 이런 데 있다. 부처님이 설한 팔만사천법문은 기껏 말이 끊어진 존재의 실다운 모습 그대로를 그린 것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무정설법이야 말로 경전 중의 경전이요, 원전 중의 원전이기 때문이다. 그런 경을 읽을 줄 알고 들을 줄 알아야 진짜 진리의 텃밭에 드는 것이다. 알고 보면 우리 자신을 포함한 존재 그대로가 진리의 화신이지만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이다.
⑶ 소동파(蘇東坡)의 정좌조식법(靜坐調息法)
소동파蘇東坡(1037~1101)의 자는 자첨子瞻,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 애칭愛稱 파공坡公·파선坡仙 등으로 불리며 이름은 식軾이다.
동생으로 소철蘇轍이 있고 동생과 비교하여 대소大蘇라고도 불리었다. 부친 소순蘇洵은 구양수歐陽脩, 왕안석王安石 등과 교우하며 송나라에서 이름난 문장가였다. 그의 가문은 부유한 지식인 집안으로 명망이 높았다. 소동파는 송나라 최고의 시인이며, 문장에 있어서도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하나로 평가된다.
소동파는 <상황제서上皇帝書>에 그의 양생이론을 설명했다.
“인지수요재원기人之壽夭在元氣 시이선양생자是以先養生者 신기거愼起居 절음식節飮食 도인관절導引關節 토고납신吐故納新 부득이이용약不得已而用藥 즉택기품지상則擇其品之上 성지양性之良 가이복이무해자可以服而無害者 즉오장화평이수명장則五臟和平而壽命長”
“사람이 요절하는 원인은 원기元氣에 있다. 섭생을 잘하고 규칙적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며 운동을 열심히 하고 도가의 수련의 하나인 토고납신吐故納新을 실행하며 마지못하여 약을 쓸 때는 최상품을 쓰되 약성이 우수한 것으로 인체에 해가 없는 것을 사용하면 오장이 화평해져서 장수할 수 있다.”
토고납신吐故納新이란 입으로 더러운 기氣를 토해 내고 코로 신선한 기氣를 마시는 기공을 의미한다. 소동파의 양생관점은 한 마디로 원기를 배양하고 오장육부의 기능을 강건하게 해줌으로써 오장육부가 서로 잘 협조하게 하는 데 있다. 소동파는 산보散步, 여행, 관광을 매우 좋아했으며 벽돌을 손으로 들어서 옮기는 건신법健身法도 사용하여 신체를 단련시켰다.
소동파는 정좌조식법을 항상 실행했는데 그 방법은 다음과 같다.
“시간불한時間不限 선일처안정적지방選一處安定的地方 단신정좌방개의대端身正坐放開衣帶 사전신방송使全身放松 얀목수렴兩目垂렴 사폐비폐似閉非閉 용설두재취리상하좌우각기차用舌頭在嘴裏上下左右攪幾次 동시장구토출탁기同時張口吐出濁氣 재종비공흡진청기再從鼻孔吸進淸氣 저양십사오편후파구중적진액인하這樣十四五遍後把口中的 津液咽下 연후고치수차然後叩齒數次 설저상악舌抵上腭 정정지수호혹흡적차수靜靜地數呼或吸的次數 종일수도십從一數到十 재유십수도백再由十數到百 일정요전심一定要專心 기청수목記淸數目 저양좌적시간월장월호這樣坐的時間越長越好 여과불상재좌如果不想再坐 가이선방송수족可以先放松手足 연후재완완기신然後再緩緩起身 여차장기견지如此長期堅持 필가사신체건강무병必可使身體健康無病”
“시간에 구애를 받지 말고 조용한 곳을 택한다. 헐거운 옷을 입고 허리띠를 풀고 온 몸의 긴장을 풀고 단정하게 똑바로 앉는다. 두 눈은 아래로 늘어뜨린 채 살짝 감는다. 눈을 감은 것처럼 보이지만 꼭 감지 않은 상태가 좋다. 혀끝으로 입안을 상하좌우로 여러 차례 휘젓는다. 입을 벌리고 탁기를 밖으로 내보내며 신선한 공기를 코로 들이마신다. 이와 같은 방법을 열네 차례 실행하고 나서 입안에 침을 만들어 삼킨다. 그런 뒤 위 이빨과 아래 이빨을 수십 번 서로 마주친다. 혀로 입천장을 떠받쳐 주고 조용히 내쉬는 숨을 세던가 아니면 들이마시는 숨의 수를 센다. 하나에서 열까지 센다. 그 다음 계속해서 열에서 백까지 센다. 수를 세는 데에만 정신을 집중시켜야 한다. 수를 분명히 기억해가며 세야 한다. 정좌하여 이와 같이 실행하는 시간이 길면 더 좋다. 수련을 끝내고 싶으면 먼저 수족부터 긴장을 푼다. 그런 다음 서서히 몸을 일으킨다. 이 같은 정좌조식법을 장기간 실행하면 신체가 건강해지고 병에 걸리지 않는다.”
소동파의 정좌조식법은 간단하면서도 효과가 큰 기공법氣功法이며 연공시練功時 호흡수 세는 데만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안정 상태로 몰입하며 전신의 긴장이 풀어지고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고 자기 자신을 조절할 수 있다. 정좌조식법은 질병을 예방하고 병을 치료하는 목적에 사용된다.
소동파가 북송 제7대 왕 철종哲宗 원우元祐 4년(1089년) 항주杭州 지부知府로 좌천되어 내려갔을 때 항주 일대에 가뭄으로 인하여 흉년이 들었고 설상가상으로 역병까지 나돌았다. 소동파는 다방면으로 굶주린 백성들을 구제하고 병든 백성들을 치료해주었다.
원우元祐 5년(1090년)에 소동파 자신의 사재私財 황금黃金 50냥兩을 기부하고 정부 창고 속에 간직해둔 문은紋銀(질이 좋은 은괴銀塊)을 팔아 보태어 병방病坊을 설립하고 안락단安樂壇이라 명하였다. 소동파는 의학 연구에 몰두하여 손수 의방醫方을 만들어 3년에 걸쳐서 수천 명의 환자들을 치료해주었다. 안락단(安樂壇)은 중국 역사상 최초의 공사公私 합작투자 병원이다.
후세 사람들은 소동파의 의방醫方을 당시 명의 심괄沈括의 저서 <심존중양방沈存中良方> 속에 넣어 <소심양방蘇沈良方>을 편찬하였다. <소심양방>은 소동파와 심괄沈括의 처방집이란 뜻이다. 심괄은 북송 때 저명한 과학자이자 정치가였다. 소동파는 <동파전집東坡全集>을 비롯하여 <소심양방>, <동파잡기東坡雜記> 등을 저술했는데, <소심양방>은 물론 <동파잡기>에도 상당 부분의 의학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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